국민들이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열광하던 사이, 축구팬들은 지난 연휴에 한국 축구 두 아이콘의 맹활약을 지켜보며 흐뭇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이청용은 지난달 28일 울버햄턴전에서 시즌 6도움을 기록해 볼턴의 1-0 승리 및 강등권 탈출을 견인했고 박지성은 1일 애스턴 빌라와의 칼링컵 결승전에서의 활발한 공격력으로 맨유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두 선수는 경기 종료 후 각각 <스카이스포츠><골닷컴 영문판>으로 부터 양팀 최다 평점인 8점, 8.5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각각 애스턴 빌라전과 울버햄턴전에 나선 박지성과 이청용의 역할이 같았다는 점입니다. 측면을 기반으로 중앙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정확한 패싱력을 앞세워 공격 연결 고리 역할을 한 것이죠. 그것도 4-4-2의 윙어로서 출중한 공격력을 발휘하며 맨유와 볼턴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물론 맨유와 볼턴의 클래스는 엄연히 다르지만 팀의 승리를 이끈 박지성과 이청용의 역할이 같았다는 유사성은 4-4-2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두 선수의 공격력을 중요시하는 허정무호가 참고해야 할 부분입니다.
박지성-이청용, 4-4-2 트라이앵글 형성에 능하다
4-4-2는 현대 축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포메이션입니다. 투톱 공격수들의 시너지 효과로 상대 수비를 허물거나 최전방 공격수의 고립을 줄일 수 있는 것, 미드필더를 통한 강력한 압박,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똑같은 숫자 배치로 공간을 똑같이 점유해 팀 밸런스 구축에 능한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4-2는 약점이 있습니다. 공격형과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포백과 간격이 벌어지기 쉬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4-4-2에서는 미드필더 전원의 엄청난 운동량과 희생 정신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4-4-2의 약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세 가지 입니다. 윙어가 중앙으로 이동하여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수 사이에서 공격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것, 중앙 미드필더 중에 한 명이 종적인 움직임이나 드리블 돌파를 통해 빌드업을 전개하거나, 공격수 중에 한 명이 쉐도우를 맡아 미드필더쪽으로 내려와 후방에서 연결되는 패스를 받아 페너트레이션을 주도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역할을 하는 선수가 공격과정에서 서로 힘을 합치면, 트라이앵글 모양의 공격 루트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앞선으로 나온 중앙 미드필더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는 윙어에게 패스를 뿌리고, 윙어가 쉐도우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것이죠. 굳이 윙어가 중앙에 있지 않아도 측면에서 중앙 미드필더를 통해 대각선 패스를 받을 공간을 마련해 공을 받고 쉐도우에게 패스를 연결하면 트라이앵글 모양의 공격 루트가 그려집니다. 미드필더에 4명, 공격수에 2명이라는 고정적인 형태를 버리고 위치 이동을 통한 역동적인 형태를 취해 4-4-2의 약점을 줄이는 팀들은 효과적인 공격력을 자랑합니다. 그래서 4-4-2의 공격 근간은 트라이앵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지성과 이청용은 지난 연휴에 열렸던 애스턴 빌라전과 울버햄턴전에서 트라이앵글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박지성이 왼쪽을 기반으로 중앙과 오른쪽 측면까지 가담해 공격 연결 고리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청용은 오른쪽을 기반으로 중앙과 왼쪽 측면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특히 이청용이 잭 나이트에게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던 위치는 왼쪽 측면 코너킥 지점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선수는 정확한 짧은 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개했던 공통점까지 있었습니다. 넓은 활동 폭과 부지런한 움직임을 통해 동료 선수들과 트라이앵글 형성에 주력하다보니 패스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죠. 동료 선수와 간격을 좁히기 때문에 짧은 패스에 대한 빈도가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맨유가 애스턴 빌라를 제압한 원인은 박지성-캐릭-베르바토프(또는 캐릭-박지성-베르바토프)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을 상대팀이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맨유의 공격이 나니-발렌시아 같은 오른쪽 윙어들의 돌파에 의존하다보니 애스턴 빌라는 발렌시아쪽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맨유는 이날 경기에서 발렌시아가 아닌 박지성에게 공격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박지성이 맨유의 역습 축구에서 종적인 움직임과 종패스에 강하기 때문에 단조로운 공격 패턴과 왼발 사용 능력이 부족한 발렌시아보다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측면과 중앙을 골고루 번갈아가며 캐릭-베르바토프와 끊임없이 연계 플레이에 주력했고 이것은 맨유의 우승 발판이 됐습니다.
볼턴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오언 코일 감독이 지난달 25일 토트넘과의 FA컵에서 이청용에게 80분 동안의 휴식을 부여한 이유는 울버햄턴전에서의 넓은 활동폭과 부지런한 움직임을 주문하기 위한 체력 안배 차원 이었습니다. 코일 감독의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이청용은 울버햄턴전에서 그동안의 체력 고갈을 잊게 하듯, 왼쪽 측면과 중앙까지 움직이고 적시적소에서 짧은 패스를 활발히 연결하며 팀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는 무암바의 적극적인 문전 침투, 최전방에만 머물던 엘만더의 적극적인 미드필더 가담이 돋보였습니다. 무암바가 앞선으로 치고나와 이청용에게 대각선 패스를 연결하고, 이청용이 엘만더에게 패스를 연결해 트라이앵글 모양의 공격 루트가 그려졌고 이것이 경기 내내 활발함을 잃지 않으면서 볼턴이 경기 흐름을 장악했습니다.
맨유와 볼턴의 트라이앵글이 상대팀의 압박에 걸리지 않은 것은 패스가 속전속결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캐릭-베르바토프, 이청용-무암바-엘만더로 짜인 트라이앵글은 어느 누구도 공을 길게 끌고 다니기 보다는 빠른 타이밍에 의한 짧은 패스 연결로 공격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긴 패스 보다는 짧은 패스가 공격 전개 정확성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특히 윙어의 역할이 트라이앵글 형성 과정에서 중요합니다. 상대 측면 옵션이 자신에 대한 봉쇄에 주력하면 그 즉시 중앙으로 이동해 공격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능동적인 활약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박지성과 이청용은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박지성은 다우닝의 견제를 뿌리쳤고 이청용은 상대 왼쪽 수비의 집중 견제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중앙쪽에 압박 강도를 높이면 다시 측면으로 돌아가 중앙 미드필더의 대각선 패스 공간을 미리 선점합니다. 그래야 중앙 미드필더-윙어-쉐도우 사이에서 연결되는 트라이앵글의 위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결국, 박지성과 이청용은 팀의 트라이앵글 형성을 주도하며 팀 승리의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트라이앵글도 허점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맨유와 볼턴을 상대하는 팀이라면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의 뒷 공간을 파고드는 역습을 노려 밸런스를 무너뜨렸을 것입니다.(애스턴 빌라와 울버햄턴은 그렇지 못했죠.) 맨유라면 캐릭과 박지성, 볼턴이라면 무암바와 이청용의 뒷 공간을 공략했겠죠. 그래서 캐릭-박지성-무암바-이청용을 뒷 공간에서 보조하는 선수의 활동 폭이 넓어야 하며 투쟁적인 수비력까지 전제되어야 합니다. 네 선수 뒤에는 플래처-에브라-홀든-스테인손이 포진했는데 활동폭과 수비력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선수들 이었습니다.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맨유와 볼턴의 트라이앵글이 성공한 것입니다.
이러한 박지성과 이청용의 맹활약은 허정무호가 깊이 눈여겨 봐야 합니다. 4-4-2를 쓰는 허정무호가 두 선수의 측면 공격을 줄기차게 활용했던, 두 선수의 공격 의존도가 높았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박지성과 이청용을 통한 공격력이 빛을 발하려면 두 선수의 트라이앵글을 통한 세밀한 공격력을 키워야 합니다. 왼쪽에서 박지성이 트라이앵글을 만들면 이청용이 전방쪽으로 전진하거나 아니면 서로 반대되는 역할을 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죠. 이것은 허정무호 공격 패턴의 다양화를 노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박지성과 이청용을 통한 트라이앵글을 다른 선수가 보조할 수 있냐는 것인데, 아직까지 허정무호는 이러한 부분이 세밀하지 못합니다. 두 선수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다른 선수들이 빠른 볼 배급을 하지 못하거나 상대 수비 위치에 따른 움직임의 능동성이 떨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공격 과정에서 패스가 끊겨 상대팀에 역습을 허용하고 맙니다. 지난해 4월 북한과의 A매치에서는 미드필더들이 상대팀의 밀집 수비에 걸려 트라이앵글 형성 및 연계 플레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관건은 중앙 미드필더인데, 김정우와 기성용의 빠른 판단과 안정적인 볼 키핑, 강한 압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박지성과 이청용을 통한 트라이앵글의 위력이 대표팀에서 주춤할 가능성이 큽니다. 두 선수가 지난 연휴에 4-4-2에서 강인한 활약을 펼친 이유를 허정무호가 참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