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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청용의 선발 제외가 반가운 이유

 

축구 선수에게 있어 꾸준한 선발 출전 만큼 팀 내 입지를 키우기 위한 방법은 없습니다.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는 빅 클럽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한 시즌 동안 베스트 일레븐을 풀 가동하는 팀 이라면 꾸준한 선발 출전을 하는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인정받기 쉽습니다. 그런 팀에서 어느 날 갑자기 선발에서 제외되면 우리들은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보냅니다.

하지만 '블루 드래곤' 이청용(22, 볼턴)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지난 21일 블랙번 원정까지 16경기 연속 선발 출전을 거듭하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죠. 오른쪽 측면에서 힘차게 질주했던 동력이 주춤한 것을 비롯 홛동폭이 좁아졌고 동료 선수에게 공을 받으려는 타이밍에서 자기 공간을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아 상대팀에 고립될 때가 최근들어 빈번했습니다. 그래서 볼턴의 페너트레이션을 주도하지 못했고, 상대를 제칠때의 임펙트와 슈팅 마무리 동작이 평소와 달리 위력적이지 못했고, 문전으로 과감히 침투하지 못해 골 기회를 스스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청용이 25일 오전 5시(이하 한국시간) 화이트 하트레인에서 열린 토트넘과의 FA컵 16강 재경기에서 선발 명단에 제외 되었고 후반 33분 교체 투입했습니다. 그동안 왼쪽 윙어로 모습을 내밀었던 메튜 테일러가 자신의 자리인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78분 동안 벤치를 지켰죠. 이날 볼턴은 이반 클라스니치를 원톱으로 놓는 4-2-3-1을 구사했으며 가드너-홀든-테일러가 3의 자리를 맡았고, 코헨과 무암바가 더블 볼란치, 오브라이언-나이트-사무엘-리케츠가 포백, 유시 야스켈라이넨이 골키퍼를 맡았습니다.

이청용의 볼턴은 토트넘과의 재경기에서 0-4로 패하여 8강 진출에 실패 했습니다. 전반 23분 후안 파블류첸코에게 결승 선제골을 내준것을 시작으로 8분 뒤 야스켈라이넨, 후반 2분 오브라이언이 자책골을 허용한 이후에는 전세를 뒤집을 기력이 없었습니다. 후반 42분에는 파블류첸코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대량 실점 패배 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도 고질적인 수비 불안에 시달리며 결정적인 실점 기회를 허용하는 장면이 잦았습니다. 이청용을 대신해 투입한 테일러는 볼 배급과 적극적인 수비가담은 좋았지만 오른쪽에서 페너트레이션을 주도하는 능력이 다소 미흡했습니다.

하지만 볼턴의 토트넘전 패배는 결과적으로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프리미어리그 18위로 강등권에 밀린 볼턴으로서는 FA컵 우승보다는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아무리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려도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면 다음 시즌 챔피언십리그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토트넘과의 FA컵 16강 재경기에서의 승리가 반가울 수는 있지만, 프리미어리그 강등권에 몰린 특성을 상기하면 FA컵 8강 진출은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커지는 악영향이 될 수 있습니다.

볼턴은 토트넘전 패배를 통해 프리미어리그 일정에 전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토트넘전 0-4 패배가 쓴약이 될 수 있지만, 그동안 많은 경기에 패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면역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는 27일 울버햄턴전을 치르고, 다음달 6일 웨스트햄전부터 13일 위건전까지 1주일에 3경기를 소화하면, 나머지 8경기는 1주일에 한 경기씩 치르는 무난한 일정에 접어듭니다.

오언 코일 감독이 토트넘전에서 이청용과 팀의 주장인 케빈 데이비스를 벤치에 앉혀 선발에서 제외한 것은 다음 경기를 위해 아껴두겠다는 심산입니다. 두 선수의 존재감이 볼턴에서 중요하기 때문이죠. 만약 이청용과 데이비스가 이번 토트넘전에 선발로 모습을 내밀었다면 체력 부담이 커지면서 시즌 막판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쉴틈없이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숨 고르기가 필요했고 볼턴 입장에서 FA컵 16강 재경기가 프리미어리그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청용의 토트넘전 선발 제외는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청용이 0-3으로 뒤진 상태에서 후반 33분에 교체 출전한 것은 코일 감독 입장에서 보면 선수의 경기 감각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청용이 토트넘전 결장으로 맥이 풀리면 다음 경기에서 굴곡이 심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죠. 이것은 코일 감독이 볼턴의 에이스인 이청용을 애지중지하게 여기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코일 감독도 이청용의 체력이 좋은 선수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인지했을 것입니다. 이청용은 친정팀 FC서울 시절부터 체력에 약점이 있었고 볼턴 이적 전까지 잦은 대표팀 경기 출전으로 과도한 일정을 치러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죠. 볼턴 이적 이후에는 팀의 철저한 관리속에 체력을 향상시켜 빠른 공수 전환과 왕성한 움직임이 요구되는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지만 체력이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볼턴의 빠듯한 경기 일정 속에서 16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여 체력 고갈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죠.

이청용은 지난해 1월 허정무호의 동계훈련 및 중동에서의 평가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렇다할 휴식기 없이 경기 출전을 거듭하는 강행군을 치렀습니다. 2009년 이전에는 3개 대표팀(청소년, 올림픽, 국가대표)의 주전 선수로 뛰었고 소속팀 FC서울에서 거의 매 경기 주전으로 활약해 어린 나이임에도 많은 경기를 소화했습니다. 그러더니 2009년 상반기에 피로 골절을 호소하며 경기력이 침체에 빠졌고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에서 볼턴에 이적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휴식이었고, 결장까지는 아니었지만 토트넘전에서 78분 동안 벤치에 앉아 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런 이청용이 앞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끝없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꾸준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꾸준함을 결정짓는 키워드는 바로 체력입니다. 프리미어리그 특성상 많은 체력을 소모할 수 밖에 없는데다 이제는 강등권 싸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강한 체력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볼턴의 에이스로서 화려하게 비상하며 팀의 강등권 탈출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볼턴은 지난달 27일 번리전에서 이청용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한 이후 프리미어리그 5경기 연속 무득점 무승(2무3패)에 시달리며 리그 15위에서 18위로 추락했습니다. 강등권에서 탈출하려면 수비 불안 해결도 필요하지만 공격력 강화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상대팀에게 1골 내주면 2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것이 축구인 만큼, 볼턴은 이제 공격쪽에 사활을 걸어야하는 시점에 왔습니다. 토트넘전 선발 제외로 체력을 안배한 이청용이 오는 28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울버햄턴전 부터 12경기 동안 볼턴의 에이스다운 진가를 발휘할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