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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황재원-김형일 조합, 허정무호에 필요하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10일 중국전 졸전 및 0-3 패배로 표류 상태에 빠졌습니다. 중국전에서의 납득하기 힘든 선수 기용과 무리한 포지션 전환, 단조로운 공격 루트, 이동국-이근호 투톱의 부진, 중국 역습에 단번에 뚫리는 불안한 경기 운영, 허약한 수비 집중력, 중국전에 임하는 전술적인 준비 부족 등 여러가지의 치명적인 약점들을 범하고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을 향한 여론의 경질 압박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포백이 문제였습니다. 이정수(박주호)-조용형-곽태휘-오범석으로 짜인 한국의 포백은 경기 내내 중국의 빠른 역습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공간 장악 및 협력 플레이 미숙으로 상대에게 뒷 공간을 내주면서 여러차례 결정적인 골 기회를 허용했습니다. 그 중에서 조용형과 곽태휘의 호흡은 전혀 맞지 않았고 최근 부상에서 복귀한 곽태휘의 컨디션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두 선수 모두 부정확한 볼 배급을 일관하며 미드필더들의 허리 장악을 어렵게 했고 한국의 두 번째 실점 발단은 곽태휘의 패스미스 때문 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허정무호 포백의 불안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잠비아전에서는 4실점을 범했고 지난해 11월 세르비아전에서는 전반 이른 시간에 수비 집중력 부족으로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위험 지역에서 상대 공격수를 놓치거나 길목 차단이 한 박자 느린 것, 불안한 볼 처리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특히 세르비아-잠비아-중국은 역습으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던 팀들이라, 집중력 약화가 습관으로 굳어진 한국의 수비진이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없습니다. 문제는 그 어려움이 갈수록 심해졌고 이제는 한 수 아래의 팀에게 3골이나 내줬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팀의 수비 조직력은 보통 3~4개월이면 완성 형태가 갖춰지며 길게는 6개월이 걸립니다. 물론 대표팀은 클럽팀과 달리 소집 훈련 시간이 제한적이고 A매치 경기도 많지 않기 때문에 더 걸릴 수 있겠지만, 허정무호는 출범한지 2년 1개월이 지났으나 아직까지 수비 조직력 향상에 이렇다할 행보를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베어벡호 포백이 출범 이후 1년 만에 완성을 거두었음을 상기하면 허정무 감독에게 수비 조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베어벡 감독 이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도자는 허정무 감독 입니다.

대표팀 수비의 가장 큰 핵심은 센터백을 어떤 조합으로 묶느냐 입니다. 센터백은 개인의 수비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동료 수비수와의 하나 된 호흡을 바탕으로 상대 공세를 막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대인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 패턴을 재빨리 읽어 수비 위치를 선점하고 동료 선수들과 원만한 완급 조절 역할을 부여받아 강력한 지역방어망을 구축하는 역할까지 늘었죠. 그래서 센터백은 호흡과 집중력이 중요시 되는 포지션으로 꼽힙니다.

문제는 대표팀에서 줄곧 선을 보였던 조용형-강민수, 조용형-이정수 조합이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조용형-강민수 조합은 느린 발과 볼 트래핑이 약한 단점을 이겨내지 못했고 투쟁심이 강한 상대 공격수와의 몸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습니다. 조용형-이정수 조합은 고질적인 수비 집중력 약화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역습 위주의 공격을 펼치는 상대팀에게 쩔쩔메는 모습이 두드러졌고 상대 공세에 대처하는 판단력과 위치선정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지난 중국전에서 선을 보였던 조용형-곽태휘 조합은 호흡부터 맞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최근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황재원-김형일 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선수는 지난해 포항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센터백으로서 철벽같은 수비 조직력을 자랑했습니다. 좌우 풀백인 김정겸과 최효진(현 FC서울), 수비형 미드필더인 신형민과의 철저한 연계 플레이를 통해 튼튼한 수비 밸런스를 구축하여 상대의 공세를 차단하고 즉시 전방으로 공격을 빠르게 전환하는 역할이 성공적 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재원-김형일 조합은 아시아 제패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이 축구팬들의 선호를 받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반면, 조용형-강민수 조합은 지난해 K리그 14위 팀이자 포항전 8실점을 범했던 제주의 센터백 이었습니다.)

물론 황재원과 김형일의 개인 수비력은 엄연히 약점이 있습니다. 둘 다 파이팅이 넘치는 수비력을 자랑하지만 세밀함이 떨어지고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는 상대 공격수에게 수비 뒷 공간을 내주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지난해 연말 FIFA 클럽 선수권 4강 에스투디안테스(아르헨티나)전에서 상대 공격수의 기교에 무너졌던 것이 대표적 예입니다. 또한 황재원은 대인방어 과정에서 잔실수가 있으며 김형일은 파이터형 수비수의 전형적인 단점인 발이 느린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황재원과 김형일은 허정무호에서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해 조용형-강민수-이정수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습니다. 황재원은 지난해 3월 이라크전에서 자책골을 범했고 4월 초 북한전에서는 경기 도중 복부 통증을 호소해 교체되는 불운에 시달리더니 그 이후 대표팀에서 이렇다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김형일은 지난해 6월 월드컵 최종예선 두 경기를 뛰었으나 그 이후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센터백은 조용형을 주전으로 두면서 강민수와 이정수를 로테이션으로 기용하는 성격이 강했고 지금도 그 틀을 유지 중입니다.

그럼에도 황재원과 김형일은 개인 역량보다는 조합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스타일입니다. 마치 '1+1=3'의 효과를 내는 것 처럼 서로의 단점을 극복하며 조합을 완성시키는 성향입니다. 황재원이 포항의 주장으로서 동료 선수들의 수비 위치를 조절하며 팀의 수비력을 높이는 리더 성향이라면 김형일은 상대 공격수 마크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황재원이 지능적인 위치선정과 세밀한 공격 차단을 통해 김형일을 커버하면서 두 선수 사이의 시너지 효과가 빛을 봅니다. 특히 황재원이 수비를 이끌어가며 선수들의 완급 조절을 높이는 모습은 지금의 대표팀 포백에서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만약 허정무호에서 황재원-김형일 조합을 예전부터 줄곧 실험했다면 조용형-강민수, 조용형-이정수 조합과는 다른 행보를 나타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황재원은 이라크전 자책골 여파가 컸고 그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출전 기회를 잡은 김형일은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서 두 선수의 조합을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대표팀은 조용형-강민수-이정수가 자리를 선점한 상황이었기에 황재원-김형일 조합의 필요성이 '그때까지는' 절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황재원-김형일 조합이 대표팀 수비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카드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물론 월드컵 본선이 4개월 남았고 다음달 3일 코트디부아르전 이후 2개월 동안 A매치를 치르지 않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수비 조합을 실험할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용형-강민수-이정수-곽태휘 체제의 대표팀 센터백이 14일 일본전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면 월드컵 16강 과정이 어려워질 공산이 큽니다. 월드컵 같은 단기적인 경기에서 수비의 중요성이 큰 특징을 상기하면 허정무 감독이 '과감한 결단'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재원-김형일 조합의 단점은 대표팀 경기 경험이 적습니다. 하지만 조용형-강민수-이정수-곽태휘도 비 아사아권 팀을 상대로 경기를 치른 횟수가 많지 않으며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베어벡호 포백 완성의 핵심이었던 김진규-강민수 센터백 조합도 아시안컵 예선 2차전까지는 김동진-김상식 조합에 밀렸습니다. 김진규-강민수 조합이 성공한 이유는 당시 소속팀인 전남과 올림픽대표팀에서 다져진 호흡을 통해 베어벡호에서 성공의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황재원-김형일도 이들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황재원-김형일 조합의 필요성은 아직 대표팀에서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