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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볼튼 이청용의 혹사가 걱정되는 이유

 

'블루 드래곤' 이청용(22, 볼튼)은 지난 24일 셰필드 유나이티드(이하 셰필드)와의 FA컵 4라운드에서 도움을 기록해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지난 21일 아스날 원정에 이어 2경기 연속 도움을 올리는 오름세를 달렸고 오언 코일 신임 감독의 기대를 받는 영건으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현재까지 4골 5도움을 기록해 앞으로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굳이 공격 포인트를 논하지 않아도, 이청용은 볼튼의 에이스로서 물 오른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미드필더진의 아기자기한 패싱력을 주도하며 롱볼 위주의 단순한 공격 패턴을 나타냈던 볼튼의 색깔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볼튼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청용의 기교를 앞세운 공격 전개가 날이 갈수록 위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코일 감독이 이청용의 기량을 치켜 세우고 슈퍼 스타로 키우겠다고 공언함에 따라, 이청용의 오름세는 앞으로 계속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청용의 오름세는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합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의 특징은 쉴세 없는 공수 전환과 빠른 공격 템포를 90분 동안 버텨낼 수 있는 강철같은 체력을 겸비했습니다. 특히 빅4 클럽의 주축 선수라면 여러 대회를 치르며 바쁜 일정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친정팀인 FC서울 시절에 체력 부족에 대한 약점을 해결하지 못한 이청용이 시즌 후반을 무사히 버티며 지금의 활약상을 꾸준히 이어갈지는 의문입니다. 현재의 이청용 체력도 90분 풀타임을 매끄럽게 소화할 수 있는 레벨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후반 중반부터 지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청용이 현재 과도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아스날과의 홈 경기를 시작으로 오는 31일 리버풀 원정에 이르기까지 보름 동안 5경기를 소화하는 바쁜 일정에 시달리고 있죠. 지난 6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아스날 원정이 현지 기상 악화로 21일로 연기되어 순연 경기를 치렀던 것이 체력적인 부담을 키우게 됐습니다.

이것은 이청용의 18일 아스날전과 21일 아스날전 활약상의 차이가 서로 뚜렷해지는 원인이 됐습니다. 18일 아스날전에서는 상대 왼쪽 뒷 공간을 뒤흔드는 맹활약으로 적장인 아르센 벵거 감독의 찬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3일 뒤에는 후반들어 움직임이 눈에 띄게 적어지고 공격적인 활약이 살아나지 않자 후반 중반에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이청용의 체력이 저하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일 간격으로 런던과 볼튼을 오가며 강팀과 경기한 것 자체만으로도 체력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이청용이 24일 셰필드전에 풀타임 출전한 것은 무조건 좋은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사실, 셰필드전은 선발 출전하지 않아도 되는 경기였습니다. 프리미어리그가 아닌 FA컵이었기 때문에 아스날과의 2연전을 치른 주축 선수들이 체력을 안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기는 홈 경기인데다 코일 감독이 홈팬들을 상대로 사령탑 부임 후 첫 승을 거둘 기회가 있었고, 리그 19위로 강등권에 빠진 팀의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이겨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청용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이 선발 라인업에 이름이 포함 되었습니다.

이청용은 셰필드전에서 도움을 기록해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로 부터 "팀 내에서 유일하게 활발한 플레이를 펼쳤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의 관점에서 보면, 이청용은 팀의 활기찬 공격을 위해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날 볼튼 선수들의 몸 상태가 전체적으로 무거웠기 때문에 이청용의 부담이 적지 않았죠. 일주일 사이에 아스날과의 2연전과 셰필드전에 선발 출전했던 이청용이 27일 번리와의 라이벌전과 31일 리버풀 원정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팀 승리를 위해 맹활약을 펼칠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이청용은 다음달에도 바쁜 일정을 이겨내야 합니다. 오는 6일 풀럼전을 시작으로 9일 맨시티전, 13일 토트넘-리즈 경기의 승리팀(FA컵 5라운드), 16일 위건전, 22일 블랙번전, 27일 울버햄튼전까지 총 6경기를 소화해야 합니다. 팀의 주축 선수이자 강등권 탈출을 위해 프리미어리그 5경기 모두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FA컵 5라운드 경기인 13일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 체력적인 부담이 더 커집니다. 만약 볼튼이 FA컵 5라운드에서도 승리하면, 이청용은 오는 봄에도 만만치 않은 일정에 시달려야 합니다. 지난 9일 기상 악화로 취소된 선더랜드와의 순연 경기, 오는 3월 3일 코트디부아르와의 A매치를 치러야 하는 부담감도 있죠.

만약 이청용이 빅4 클럽 선수였다면 로테이션 시스템의 일환으로 몇몇 경기를 걸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볼튼은 강등권에서 벗어나야 하는 팀이기 때문에 주축 선수들의 의존도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볼튼의 에이스인 이청용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것은 이청용의 체력 부담이 커지면서 자칫 혹사로 인한 슬럼프에 빠질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도한 경기 출전은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최상의 폼을 발휘하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이죠. 부상 위험성도 커집니다. 특히 이청용은 활동량이 많고 움직임의 폭이 넓은 윙어이기 때문에 혹사에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이청용은 볼튼 이적 이전에 혹사로 슬럼프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2007년 부터 줄곧 계속 되었던 각급 대표팀과 소속팀 일정을 빠짐없이 소화했던 것이 그것이죠. 지난해 초에는 충분한 휴식없이 허정무호 동계훈련에 참가했더니 그 해 소속팀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까지 소화하면서 경기력 저하로 고전했습니다. 지난해 초 허정무호 동계훈련에서 두 번의 발목 통증을 겪었던 것이 소속팀 서울 복귀 후 피로누적에 시달리며 시즌 초반 슬럼프로 이어졌죠. 혹사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볼튼에서의 앞날이 우려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청용의 과도한 경기 출전은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바쁜 일정을 이겨낼 수 있는 내구성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청용의 축구 선배인 고종수-이동국-최성국-박주영-김진규는 어린 나이에 각급 대표팀과 프로팀 경기 출전으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며 혹사에 시달렸고 기나긴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2001년 십자인대 파열 이후 내리막길을 걸은 고종수, 무릎 부상 이후 독일 진출까지 겹친 이동국, 지금까지 잔부상이 끊이지 않는 박주영, 예전보다 수비의 과감함이 떨어진 김진규의 부침은 혹사가 주 원인 이었습니다.

물론 이청용이 시즌 막판 잔여경기 일정을 무리없이 소화하면 혹사로 인한 걱정이 줄어들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프리미어리그 종료 이후에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하여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참가해야 합니다. 만약 잉글랜드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평가전을 치르고 남아공에 입성하는 일정을 소화하면 장거리 이동 여파 등으로 컨디션에 지장이 따를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박지성이 고생했던 것 처럼) 프리미어리그 시즌을 마무리하고 지구 반대편을 두 번씩이나 오가는 일정속에서 남아공 월드컵에서 최상의 폼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청용을 비롯한 유럽파들이 시즌 종료 후 한국 복귀가 아닌 현지에서 휴식을 취한 뒤 남아공에 입성하는게 더 좋다는 생각입니다. 남아공과 유럽의 시차가 비슷한 이점도 있고요.)

지금으로서는 이청용 본인이 몸 관리를 철저히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바쁜 일정을 소화중인 상황에서 몸 관리에 만전을 기하면 혹사로 인한 부담을 덜어낼 것입니다. 아울러 볼튼의 선수 관리도 어떠한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강등권에 속한 팀으로서 이청용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청용의 오름세가 계속되어 남아공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다음 시즌 볼튼의 돌풍을 이끄는 긍정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려면 과도한 일정으로 인한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