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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주영, 허정무호 원톱에 적합한 타겟맨

 

1. 최근 축구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킨 키워드가 바로 '타겟맨' 입니다. 허정무 감독이 며칠전 A매치 잠비아전 종료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타겟맨들의 실력이 모자르면 억지로 남아공 월드컵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논쟁의 발단이 됐죠. 허정무 감독이 누구를 겨냥한 말인지는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짐작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동국입니다.

2. 이동국은 허정무호 출범 이후에 가진 A매치 5경기에서 무득점에 시달린 것을 비롯 대표팀 전술과 맞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공개적으로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지난 잠비아전 부진까지 겹쳐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14일 저녁(이하 한국시간) 남아공 2부리그 축구팀 베이 유나이티드와의 친선전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비록 2부리그 축구팀과의 경기지만 대표팀에서 골맛을 봤다는 것은 대표팀에서의 입지를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이 2골을 넣었다고 해서 붙박이 주전을 확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남아공 2부리그 팀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었으나 A매치에서는 아직까지 인상적인 활약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허정무호에서 두각을 떨친 공격수가 박주영-이근호에 불과하고 정조국-고기구-조재진-정성훈 같은 타겟맨들이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음을 떠올리면 이동국이 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동국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이동국은 허정무 감독이 원하는 성향의 타겟맨이 아닙니다. 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으로 짜인 한국의 미드필더들은 타겟맨에게 다이렉트 패스를 연결하기 보다는 움직임이 부지런한 공격수와 함께 공을 돌리며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격수들이 많은 움직임과 패스 플레이를 요구받고(박주영-이근호가 허정무호의 주전인 이유) 이동국이 허정무 감독에게 움직임에 대한 지적을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대표팀에서 왼쪽 측면과 최전방을 오가고 2선으로 가담하며 활동 폭을 넓혔으나 전반적인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했고 슈팅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런 이동국은 박주영-이근호가 아닙니다. 미드필더들의 크로스, 대각선 패스, 논스톱 패스를 문전에서 받아 '절묘한 위치선정과 함께' 슈팅을 날리는 저격형 공격수입니다. 전북에서 에닝요-루이스-최태욱에게 이러한 형태의 공격 지원을 받으며 많은 골을 생산했고 이것은 전북의 지난 시즌 K리그 우승 공식 이었습니다. 전북과 대표팀의 서로 대조된 미드필더 공격 전개 스타일은 이동국이 허정무호의 전술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그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 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정황상으로는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으로 뛸 가능성이 많지 않습니다.

3. 그 이유는 박주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이 허정무호 공격에서 중요 기능을 수행하는 선수이자 지금까지의 공헌도가 높았습니다. 특히 투톱 체제에서는 왼쪽 측면과 최전방을 자유롭게 번갈아가는 움직임,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통한 역습 유도, 페너트레이션 과정에서 중요 기능을 수행하며 출중한 기동력을 뽐냈습니다. 이러한 박주영의 역할은 이동국이 대표팀에서 맡는 임무와 활동 범위가 똑같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을 박주영의 또 다른 대안으로 생각했으나 선수 본인은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이동국 중심의 공격을 구사하기에는 미드필더 물갈이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은 허정무호의 타겟맨이 아닙니다. 측면과 중앙, 2선을 아우르는 움직임을 펼쳐 미드필더들과 패스를 주고 받아 공간을 파고드는 스타일이죠.(맨유의 베르바토프와 유사한 플레이) 반면 이근호는 중앙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빠지면서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흐트러놓으며 왼쪽에 있는 박주영의 문전 침투를 도와줍니다.(첼시의 아넬카가 드록바를 보조하듯이) 이근호가 박주영과 투톱을 맡은 이후 A매치에서 골 침묵에 빠졌던 것도, 골을 노리기보다는 이타적인 플레이에 주력했기 때문입니다.(아넬카도 드록바와 호흡을 맞춘 이후부터 골 숫자가 줄었죠.)

다만, 박주영은 드록바와 다른 유형의 공격수입니다. 드록바는 강력한 포스트 플레이를 앞세워 상대 수비수를 힘으로 제압하며 골을 노리는 전형적인 타겟맨입니다. 반면 박주영은 움직임과 패스 플레이로 동료 선수들과 협력하는 경향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근호와 함께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치다보니 서로의 스타일이 중복 됐습니다. 그래서 두 선수 사이에서 공간이 겹치는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대표팀이 활발한 공격 기회 속에서도 공격 마무리 부족으로 골 기회를 놓치는 모습이 잦았습니다. 박주영-이근호 투톱의 콤비 플레이를 앞세운 골이 거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2년 전 박성화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나타났던 문제점이죠.

4. 축구는 상대팀보다 많은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스포츠인 것 처럼, 한국이 본선에서 승리하고 16강에 진출하려면 공격수들의 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만약 허정무호가 월드컵 본선에서 박주영-이근호 투톱을 쓰면 기존의 문제점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두 선수가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기에는 기회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박주영과 이근호는 허정무호 공격 전술에 맞는 공격수이지만 투톱으로서 힘을 합치면 서로의 위력이 반감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이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를 상대로 미드필더진을 장악하거나, 경기 흐름을 유리하게 이끌려면 4-4-2보다는 4-2-3-1이 수월합니다. 한국의 4-4-2는 미드필더들의 공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강팀을 상대로 매끄럽게 경기를 펼치는데 제약을 받습니다. 김정우-기성용이 상대의 중앙 공격을 정면에서 맞대응하면서 공격 비중이 줄어들고, 이것은 공격 옵션들에게 부담이 커져 팀의 공수 밸런스가 깨지는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시아 무대에서는 김정우-기성용 조합이 통했지만 세계 무대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반면 4-2-3-1은 미드필더들의 역할이 철저히 구분되기 때문에 두꺼운 압박과 유연한 공격 전개를 노릴 수 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가 한 명 없는 것이 부담이지만, 3과 1이 활발한 패스 플레이를 통해 간격을 좁힌다면 공격 숫자 극복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한국이 지난해 11월 세르비아전에서 90분 동안 4-2-3-1을 구사한 것은, 월드컵 본선에서의 주 전술이 4-4-2가 아닌 4-2-3-1로 바뀔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박주영-이근호 투톱의 문제점도 4-2-3-1을 통해 해결할 수 있죠.

5. 결국, 허정무호의 공격 답안은 바로 박주영의 원톱 기용입니다. 이근호가 원톱을 맡은 경험이 전무한 만큼, 박주영에게 초점이 쏠릴 수 밖에 없습니다. 박주영은 타겟맨과 쉐도우, 도우미 역량과 킬러 본능을 골고루 지닌 선수입니다. 특히 AS 모나코에서 4-2-3-1의 원톱이자 타겟맨을 소화하며 올 시즌 6골 3도움을 기록했고 최근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3골 1도움)를 기록하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모나코에서 유럽 및 흑인 수비수들과 정면으로 경합하여 경험 및 실력 향상에 주력한 박주영의 오름세는 대표팀 공격 향상의 플러스 효과를 안길 것입니다.

박주영은 프랑스리그에서의 꾸준한 경기 출전을 통해 타겟맨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역량을 쌓았습니다. 다부진 체격에 거친 방어 자세를 취하는 상대 수비수와 맞닥드려 적극적인 몸싸움과 공중볼 다툼을 펼쳤고 그것을 즐기는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이것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노하우가 쌓였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돌파를 통해 직접 슈팅을 시도하거나 후방 공격 옵션의 문전 침투 공간을 만들며 골을 유도했습니다. 아직은 임펙트가 덜 여물었지만 경기를 거듭할 수록 좋아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박주영의 역할은 대표팀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주영을 원톱에 놓고 이근호-박지성-이청용을 후방 공격에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이근호-박지성-이청용 라인은 지난 세르비아와의 후반전에서 선을 보였던 조합입니다. 공격수였던 이근호가 본래의 자리인 왼쪽 윙어로 내려가면서 특유의 기동력을 발휘하며 한국 공격의 분위기를 끌어 올렸죠. 박주영이 부상으로 결장하지 않았다면 의미가 남달랐을 평가전 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주영이 없었던 지난해 11월 덴마크-세르비아 원정에서는 한국이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타겟맨을 월드컵 본선에 데려가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역으로 볼 때 박주영의 공격력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박주영은 이동국 같은 정통 타겟맨은 아니지만 타겟맨과 쉐도우 역량을 골고루 종합한 유틸리티의 능력을 자랑하며 팀에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이 있죠. 이미 모나코는 박주영의 공격 역량을 끌어올리는 원톱 체제로 재미를 봤고 허정무 감독이 그것을 염두하면서 타겟맨을 데려가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을지 모릅니다. 박주영이 허정무호 원톱에서 가장 적합한 타겟맨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