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전지훈련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25명 태극전사들의 올해 최대의 목표는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탁 및 본선 출전입니다. 남아공 전지훈련에 합류한 만큼 '허심'을 사로잡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이들의 마음은 간절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자왕' 이동국(31, 전북)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에서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리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공격수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혹사 후유증으로 인한 슬럼프,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낙마하며 두 번 연속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탁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12년의 한을 풀기 위해 남아공 전지훈련에 합류했습니다. 어쩌면 올해가 선수 생활 중에서 월드컵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이 아닌가 싶습니다.
A매치 5경기 0골...이제는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동국은 허정무호 발탁 후 지금까지 골을 넣는데 실패했습니다. 지난해 8월 12일 파라과이전부터 지난 9일 잠비아전까지 A매치 5경기에서 상대 골망을 가르지 못했습니다.(지난해 10월 14일 세네갈전 결장) 지난해 시즌 K리그에서 정규리그 21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오르고, 전북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 선수(MVP)에 등극했던 화려한 행보는 대표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북의 이동국은 K리그 최고의 골잡이였으나 대표팀의 이동국은 골을 못넣는 공격수라는 이미지가 잔뜩 쌓이고 말았습니다.
이동국의 대표팀 골 침묵은 선수 본인의 역량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공격수가 어떤 상황에서든 골을 넣지 못한것은 공격수의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 거침없는 골 감각을 발휘하며 대표팀에 발탁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한 것은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전북과 대표팀에서의 역할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북에서는 후방 공격 옵션들의 활발한 공격 지원을 얻으며 많은 골 기회를 창출했지만 대표팀에서는 2선과 최전방을 부지런히 오가며 공격 연결 고리 역할을 해야 하는 이타적 역량에 힘을 실어야 합니다.
사실, 이동국의 스타일은 대표팀보다는 전북에서 잘 어울립니다. 강력한 '한 방'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로서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지으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전북의 원톱으로서 꾸준한 골 감각을 발휘하며 팀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든든히 해냈고 소속팀이 지난해 정규리그에서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상대팀 선수 뒷 공간을 파고드는 후방 옵션들의 전진 패스를 이어받아 연계 플레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활동 분포에서도 최전방에 고정되기 보다는 왼쪽 측면이나 동료 공격수 밑선에서 자리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다보니 이동국이 대표팀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는 전북 시절처럼 풍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허정무호 발탁 후 5경기에서 골이 없었다는 점은 골잡이로서의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연계 플레이도 좋지만 때로는 문전에서 상대 수비수를 등지거나 동료 선수와의 패스 플레이를 통해 절묘한 슈팅을 시도했다면 골을 넣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이동국이 골을 넣는 센스가 뛰어남을 떠올려 볼때 이러한 영민한 활약을 대표팀에서 볼 기회가 적었던게 아쉽습니다.
대표팀에서 골이 없는 이동국의 또 다른 문제점은 움직임입니다. 허정무 감독이 자신을 못미더워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움직임 때문입니다. 활동폭을 늘리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연계 플레이를 하기에는 자신의 골잡이 성향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동국은 지난해 11월 덴마크-세르비아전까지는 움직임에서 개선 된 모습을 보였으나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못했고 특히 덴마크전에서는 이근호의 최전방 고립을 부추기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번 잠비아전에서의 부진 여파가 큽니다. 슈팅할 기회도 쉽게 얻지 못했고 움직임도 활발하지 못했으니 공격수의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경기 종료 후 "이동국은 오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동국의 대표팀 입지가 좁아졌음을 의미하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이동국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탁의 난항을 예고했습니다. A매치 5경기 무득점 및 대표팀 역할의 충실함에서 부족함이 있는 이동국에게 허정무 감독이 채찍을 든 것입니다.
이동국의 잠비아전 부진 원인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미드필더들의 활발한 공격 지원을 얻지 못해 골 기회를 마련하기가 마땅찮았고 또 하나는 이동국의 움직임 부족 이었습니다. 만약 이동국이 경기 초반부터 수비 밸런스가 붕괴된 중원을 보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비 가담에 임하여 압박을 도와줬다면 한국이 점유율을 끌어올려 공격 기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동국을 보조하는 염기훈-김정우-김재성의 공격적인 폼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동국의 부진은 이동국 자신과 미드필더 양쪽의 잘못에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대표팀에서 최상의 폼을 발휘하지 못한 이동국은 어쩌면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못올릴 수도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름값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제외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동국의 대표팀 탈락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설기현은 세르비아전 부진 및 소속팀 벤치 신세로 남아공행을 장담할 수 없고 신영록-김영후-유병수를 부르기에는 검증할 기회가 마땅치 않습니다. 이동국과 함께 남아공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김신욱-하태균-이승렬은 출중한 골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아닌데다 기복이 심합니다.
만약 한국의 공격수 가용 자원이 풍부하고 내실이 튼튼했다면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동국을 제외시키기에는 한국의 공격수 자원이 취약한 단점이 있습니다. 박주영-이근호 이외에는 어떤 공격수도 대표팀에서 검증된 활약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K리그에서 만큼은 이동국보다 폼이 좋고 경험이 많은 공격수가 없습니다. 안정환-이천수의 대표팀 발탁이 변수가 될 수 있으나 현실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음을 떠올리면 이동국의 분발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동국은 지난해 시즌 K리그 개막 이전까지 전북의 연습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으나 개막 이후 거침없는 골 감각을 앞세워 득점왕 등극에 성공했습니다. 이 같은 행보는 대표팀에서 되풀이 되어 아직까지 평가전에서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월드컵에서의 골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전북과 대표팀에서 처한 상황이 서로 다릅니다. 전북에서는 최강희 감독의 신뢰를 얻으며 출전 기회를 보장 받았으나 대표팀에서는 허정무 감독에게 쓴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축구에서 감독의 호불호에 따라 선수의 입지가 가려지기 쉬운것을 상기하면 이동국의 대표팀 미래는 어찌될지 모릅니다.
그런 이동국은 자신의 경기력 개선이 대표팀의 공격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 가능성이 커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탁 및 본선 출전의 기회가 이제는 많지 않기 때문에 허정무 감독에게 어필할 수 있는 활약상 혹은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합니다. 월드컵 출전 12년의 한을 풀으려는 이동국의 향후 행보가 긍정으로 끝날지 아니면 부정으로 끝날지, 이제는 이동국 자신의 실력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