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볼튼, 이청용 없었으면 EPL 꼴찌였다

 

축구팬들은 박주영을 가리켜 '박선생'이라고 부릅니다. 박주영이 AS 모나코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카드이기 때문이죠. 모나코는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미드필더진의 섬세한 공격 전개 부족으로 절호의 공격 기회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좋은 선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박주영이 해결하면서 모나코의 공격력은 지난 시즌 후반에 이르러 부쩍 향상되었고, 박주영은 축구팬들에게 박선생(또 다른 별명은 박코치)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최근에는 이청용이 축구팬들에게 '이선생(혹은 이코치)'으로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볼튼 공격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볼튼은 짧은 패스보다 롱볼을 구사하면서 현지 여론으로부터 '재미없는 뻥축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팀입니다. 불과 2~3년 전 리그 중상위권을 기록했던 '빅 샘' 샘 엘러다이스 감독(현 블랙번) 시절에도 뻥축구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고 그 흐름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이청용은 테크니션으로서 볼튼의 공격 스타일을 아기자기한 축구로 바꿀 수 있는 존재로 주목받았고 지금까지의 맹활약 덕택에 이선생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볼튼은 프리미어리그 18위 팀이자 강등권에 속한 팀입니다. 그 이유는 롱볼 또는 아기자기한 공격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중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롱패스 위주의 공격 패턴을 이청용 효과를 앞세운 스루패스 위주로 바꾸려 했으나 선수들이 스타일 변화에 어려움을 겪어 효과적인 공격력이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30일 헐 시티전에서 이청용의 기교를 앞세운 기술축구보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롱볼을 띄우는 과거의 축구로 회귀했습니다. 볼튼이 이날 넣었던 두 골 모두 롱볼 과정이었음을 상기하면 기술축구에 대한 지속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기존 선수들이 롱볼 전략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롱볼을 줄기차게 구사했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기술축구로 전환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청용의 활약을 살리는 전술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볼튼의 후방 옵션들이 케빈 데이비스의 머리를 노리는 롱볼을 구사할수록 미드필더들의 공격 역량이 줄어들고 이청용이 기교를 부릴 수 있는 기회도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이청용에게 볼 배급이 안되면서 볼튼의 공격 전개는 롱볼만 고집합니다. 이청용의 30일 헐 시티전 부진 원인은 이 때문입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올 시즌 볼튼의 부진 원인 중 하나가 데이비스의 골 부진이라는 점입니다. 데이비스는 지난 시즌 38경기에서 12골 4도움의 출중한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지만 올 시즌에는 3골 4도움에 그쳤습니다. 지난 10월 1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부터 지난 26일 번리전까지 9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리며 팀의 주 득점 자원 답지않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데이비스의 머리를 노리는 롱볼축구가 이제는 상대팀들이 읽었음을 시사합니다. 게리 멕슨 감독의 과감한 전술 변화가 요구되나 아직까지는 꾸준한 성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볼튼의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볼튼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전 경기에서 실점을 허용했으며 고질적으로 수비 조직력이 불안합니다. 특히 지난 26일 번리전과 30일 헐 시티전에서는 먼저 선제골을 넣고도 수비 불안으로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비겼습니다. 헐 시티전에서는 후반 15분 데이비스의 헤딩골까지 2-0으로 앞섰음에도 25분과 32분에 골을 헌납하여 2-2로 비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수비 문제는 이청용의 공격력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번리전이 대표적 이었습니다. 이청용은 볼튼이 1-0으로 앞섰던 전반전에 문전으로 파고드는 과감한 플레이와 날카로운 패싱력, 감각적인 페인팅을 맘껏 뽐내며 동료 선수들에게 여러차례 골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후반들어 볼튼의 수비진이 무너지면서 이청용은 어쩔 수 없이 수비 부담이 커졌고 공격에서 아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후반 중반에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헐 시티전에서는 볼튼 수비가 실점을 거듭함에 따라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래서 볼튼은 공격과 수비 모두 문제가 있는 팀입니다. 선수들의 개인 역량도 부족하고 끈끈한 조직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이청용은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지 얼마되지 않아 에이스로 자리잡았고 국내 축구팬들에게 '이선생'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헐 시티전을 중계했던 어느 TV 해설위원이 볼튼의 모 선수가 공격과정에서 실수를 범하자 "개인기를 이청용에게 강습 받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입니다.

또한 이청용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골을 넣은 3경기는 볼튼이 모두 승리했습니다. 이청용은 지난 9월 26일 버밍엄 시티전에서 후반 막판 결승골을 넣으며 볼튼의 2-1 승리를 이끌었고 지난 10월 25일 에버튼전에서는 선제골을 기록해 팀의 3-2 승리를 견인했다. 지난 16일 웨스트햄전에서도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3-1 승리의 주인공으로 거듭났죠. 볼튼의 프리미어리그 4승 중에 3승이 이청용의 발끝에서 터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청용이 맹활약을 펼쳐야 볼튼의 공격력이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이비스의 내림세와 미드필더 및 후방 옵션들의 개인 공격력 약화, 롱볼 축구로 고민하던 볼튼의 문제점은 이청용의 물 오른 활약과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이청용은 볼튼 공격의 젖줄로 두각을 떨치면서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습니다. 물론 볼튼이 롱볼을 버리고 아기자기한 축구를 펼칠 때 말입니다. 그래서 이청용의 기교를 중심으로 팀의 공격 스타일을 개선하고 그런 모습이 꾸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볼튼이 지난 여름 이청용을 영입하지 않고 올 시즌을 치렀다면 현재 성적은 틀림없이 꼴찌였을 것입니다. 아울러 멕슨 감독의 경질도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볼튼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그나마 이청용이 있었기에 승점을 올릴 수 있었던 겁니다. 볼튼으로서는 올 시즌 최고의 소득이 이청용 영입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는 이청용에 전술적인 초점을 맞추고 수비 라인을 재정비하면서 강등권 탈출을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 구티를 단기 임대하여 전력을 보강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