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은퇴경기 그야말로 역대급 이었습니다. 자신이 현역 선수로 활동하면서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경기에 두 번 연속 홈런을 쏘아 올리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은퇴경기에서 연타석 홈런 치는 선수는 흔치 않습니다. 이승엽 은퇴경기 연타석 홈런 그야말로 믿겨지지 않는 활약이었습니다. 그가 이 경기를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된 것이 아쉽습니다만, 이승엽 은퇴경기 그야말로 멋진 명장면이 탄생했습니다. 국민타자의 위대함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진 =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승엽 은퇴 관련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C)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10월 3일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 펼쳐진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2017 KBO리그 최종전은 이승엽 은퇴경기였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3번타자 및 1루수로 선발 출전했던 이승엽 1회말에 투런 홈런을 날리더니 3회말에 솔로 홈런을 치면서 자신의 마지막 홈런을 시원스럽게 때려냈습니다. 이승엽 은퇴경기 홈런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는데, 그것도 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린 것은 그야말로 경이적이었습니다.

 

 

이승엽 은퇴경기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승엽 홈런 향한 추억을 느꼈을 겁니다. 이승엽 2003년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56개)을 세웠던 것, 일본 프로야구에서 수없이 홈런을 날렸을 때의 쾌감,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전 및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 역전 홈런 등에 이르기까지 홈런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멋진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이제는 2017년 10월 3일 이승엽 은퇴경기 연타석 홈런 또한 빼놓을 수 없게 됐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두 번 연속 홈런을 쳤으니까요.

 

올 시즌 이승엽 홈런 24개였습니다. KBO리그 공동 15위에 속하는 기록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승엽 나이 만으로 41세이며 한국식으로는 42세입니다. 한국식 나이 기준으로는 내년이면 40대 중반입니다. 40세 넘는 나이에 한 시즌 20개 이상의 홈런을 날리는 활약상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만큼 이승엽이 자기 관리를 얼마나 잘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진 = 이승엽 은퇴경기 연타석 홈런 그야말로 화제의 이슈였습니다. 트위터 인기 트렌드에 이승엽과 관련된 이슈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SNS에서 이승엽 홈런 상당한 화제를 모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C) 트위터 앱]

 

이승엽은 1995년부터 2017년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23시즌 동안 활동했던 이 시대 최고의 홈런 타자였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선수로서, 일본 프로팀 선수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로서 수없는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엽에 대하여 '국민 타자'라는 수식어가 오랫동안 회자됐습니다. 한때는 이승엽 대표팀에서 한국의 좋은 성적을 이끌면서 후배들의 병역 문제를 해결하며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수식어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승엽을 이을 새로운 국민 타자가 과연 한국 프로야구에서 나올지 의문입니다.

 

 

특히 이승엽 은퇴경기 상당한 여운을 남게 됐습니다. KBO리그에서 은퇴경기를 치렀던 선수 중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40세 넘는 나이의 타자가 자신의 마지막 프로 경기에서 두 번 연속 홈런을 쳤던 사례는 어쩌면 세계 야구에서 흔치 않을 겁니다. 상당히 전례가 드문 장면이었죠. 이승엽 은퇴경기 홈런 두 방이 남겼던 그 장면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승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4강 일본전에서 역전 홈런을 치며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듯이 말입니다.

 

아마도 야구를 좋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세대라면 이승엽 얼마나 위대한 국민 타자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아마도 어린이와 미성년자 야구팬이라면?) 현재 KBO리그에서 이승엽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치는 젊은 타자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어린 세대들이 이승엽 은퇴경기 연타석 홈런 장면 보면서 그가 왜 어른 세대에게 국민 타자로 열광 받는지 실감했을 겁니다. 그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최고의 타자였다는 것을 어린 세대들이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 이승엽은 삼성 라이온즈의 전 홈구장인 대구 시민구장에서 수많은 홈런을 날렸습니다. 2003년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인 56홈런을 날렸던 구장이기도 합니다. (C) 나이스블루]

 

 

[사진 = 2017년 10월 3일 핫이슈는 이승엽 은퇴경기 연타석 홈런 이었습니다. 사진은 저의 스마트폰 달력이며 2017년 10월 3일을 가리킵니다. (C) 나이스블루]

 

[사진 = 이승엽 일본 시절 소속팀이었던 요미우리 자이언트 홈 구장 도쿄돔 모습 (C) 나이스블루]

 

저는 얼마 전 도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도쿄에 수많은 곳을 가봤습니다만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곳이 일본 야구의 성지 도쿄돔이었습니다. 그동안 일본 프로야구 경기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도쿄돔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야구팬으로서 감회가 새롭더군요. 도쿄돔에서 이승엽 홈런 치는 장면을 TV를 통해 여러 차례 봤기 때문입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홈런을 쳤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으로서 여러 차례 홈런을 날렸던 그 장소가 바로 도쿄돔이었습니다. 도쿄돔을 직접 봤던 그 행복감은 한동안 저의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승엽 프로 데뷔했던 1995년은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승엽 은퇴경기 치렀던 2017년의 저는 30대입니다. 제가 22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이승엽 홈런 장면을 수없이 봤습니다. 이승엽 프로 커리어가 쌓이면 쌓일수록 저의 나이도 늘어났네요. 이승엽 은퇴경기 보면서 예전 생각들이 많이 나게 되더군요. 이승엽은 저를 포함한 야구팬,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수많은 추억을 안겨준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였습니다. 이승엽 그는 영원한 국민 타자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이송정 이승엽 부인 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승엽 출전하는 경기를 시청하거나 또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면 야구장 관중석에서 이송정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송정 이승엽 부인으로서 응원하는 모습이 상당히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이승엽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선수 활동을 마치고 은퇴하면서 이송정 관중석에서 이승엽 응원하는 모습이 이제는 야구팬들의 추억으로 회자될 것 같습니다.

 

 

[사진 = 이승엽 (C)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samsunglions.com)]

 

이승엽 10월 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홈 경기를 끝으로 현역 선수 활동을 마감합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동하면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한국의 '국민타자' 이승엽 은퇴하는 것을 보면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합니다. 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무수한 홈런을 날리며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물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주역이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활약상이었습니다.

 

 

이승엽이 국민 타자로서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그의 아내 이송정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특히 이송정 모델로 활동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야구장에서 그녀의 예쁜 외모가 사람들에게 더욱 돋보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승엽 경기 때 이송정 모습이 TV 및 인터넷 신문에 등장할 때마다 야구팬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이승엽 부인 모델 출신이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해서 화제를 모으기 쉬었습니다.

 

그동안 프로야구 기사를 읽다 보면 사소한 이슈까지 기사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근래에는 프로야구 선수와 연예인 혹은 방송인(아나운서, 기상캐스터) 출신의 여성이 결혼하는 이슈가 흔해졌습니다. 프로야구 선수의 아내와 관련된 이슈가 눈길을 끌게 되었죠. 프로야구가 한국의 프로 스포츠로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아내 관련 기사까지 많이 나오게 됐습니다.

 

 

[사진 = 이승엽은 삼성 라이온즈의 전 홈구장인 대구 시민구장에서 많은 홈런을 날렸습니다. (C) 나이스블루]

 

얼마 전에는 이송정 포털 실검 1위에 떴습니다. 지난 9월 13일 SBS 예능 프로그램 <싱글라이프>에 출연했던 배우이자 이용규 부인으로 잘 알려진 유하나가 프로야구 선수 외모 서열 1위를 이송정으로 꼽았습니다. 자신을 3순위 정도라고 언급한 뒤, 2순위가 너무 많아 언급하기 곤란하다고 언급하면서 이송정 1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 배우이자 이용규 부인인 유하나가 이송정 미모에 감탄할 정도면 그녀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송정 이승엽 부인으로서 상당한 존재감이 나타나는 또 다른 이유는 2012년 SBS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이었습니다. 그동안 야구 중계 등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이송정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이승엽과 함께 말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죠.

 

이송정은 21세의 어린 나이에 이승엽과 결혼했습니다. 알고보니 그 배경에 대하여 이송정은 힐링캠프에서 남편에게 속아서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승엽이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결혼하면 미국에 같이 가자는 말을 했었답니다. 하지만 이승엽은 메이저리그가 아닌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송정이 깊이 생각을 안 하고 결혼한 것 같다는 폭탄발언을 하면서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송정은 어린 나이에 이승엽과 결혼을 했습니다. 가족들의 만류 속에서도 이승엽이 너무 좋아서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혼 이후 이승엽 내조하는데 힘을 쓰면서 현재 두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진 =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간판 타자로 활약했습니다. 사진은 요미우리 홈 구장인 도쿄돔 전경입니다. (C) 나이스블루]

 

 

[사진 = 이승엽의 전 소속팀은 오릭스 버팔로스입니다. 사진은 오릭스 홈 구장인 쿄세라 돔 전경입니다. (C) 나이스블루]

 

[사진 = 2017년 10월 3일 이승엽 은퇴합니다. 사진은 저의 스마트폰 달력이며 2017년 10월 3일을 가리킵니다. (C) 나이스블루]

 

2017년 10월 3일은 2017시즌 KBO리그 최종전입니다. 상위권에 있는 1~4위 팀들의 최종 순위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구 라이온즈 파크에서는 삼성과 넥센의 맞대결이 펼쳐집니다. 이 경기의 시구는 이송정 맡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이승엽 은퇴식이 펼쳐지면서 현역 선수 활동을 마감하게 됩니다. 과연 이승엽 은퇴 행사가 어떻게 성대하게 진행될지 기대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국민타자 이승엽 400홈런 드디어 터졌습니다. 6월 3일 포항 구장에서 펼쳐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3회말 투수 구승민을 상대로 솔로포를 쏘아올리며 자신의 시즌 10호이자 KBO리그 통산 400호 홈런 달성했습니다. 프로야구 데뷔 해였던 1995년 당시 19세의 나이에 13개의 홈런을 터뜨렸던 이승엽은 2003년 홈런 56개를 쏘아올리며 KBO리그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12년 지난 2015년에는 KBO리그에서만 400개의 홈런을 날리며 한국 최고의 타자라는 자부심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사진 = 이승엽 400홈런 축하합니다. (C)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samsunglions.com)]

 

이승엽 400홈런 기록이 대단한 것은 한 가지 이유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향후 KBO리그에서 이승엽 400홈런 기록을 새롭게 뛰어넘을 선수가 등장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릴지 모를 일입니다. KBO리그 통산 최다 홈런 순위를 살펴보면 10위권 안에 포함된 현역 선수는 이승엽(400개, 1위) 이호준(299개, 8위) 뿐입니다. 둘 다 1976년생 동갑이라는 점에서 이호준이 이승엽 통산 기록을 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15위권 이내에는 이대호(현 소프트뱅크, 225개, 13위) 장성호(220개, 14위) 김태균(214개, 15위) 같은 현역 선수들의 이름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대호는 현재 일본 프로야구에서 맹활약중으로서 언제 KBO리그에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장성호는 30대 후반으로서 이승엽 400홈런 기록을 깨기 힘들 것으로 보이며 김태균은 올해 33세이나 이승엽 통산 홈런 기록을 넘으려면 앞으로 많은 홈런을 쳐야 합니다.

 

따라서 이승엽 400홈런 기록을 넘어서는 KBO리그 선수의 등장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KBO리그에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홈런을 치는 선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승엽 통산 홈런 기록을 넘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승엽 400홈런 기록이 더욱 대단한 것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동했습니다. 8년 동안 KBO리그에서 뛰지 않았음에도 지금까지 그의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넘었거나 근접했던 한국인 타자는 없었습니다.

 

 

[사진 = 대구 야구장에서 봤던 삼성 라이온즈 로고 (C) 나이스블루]

 

이승엽 400홈런이 칭찬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한국 나이가 올해 40세입니다. 40대가 된 현재 시즌 10개의 홈런을 때려낼 정도로 여전히 거포의 명성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타율 0.290, 타점 36개, 안타 56개, 2루타 10개 등의 기록을 놓고 보면 항상 현재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롱런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30대 중반이나 후반에 이르러 은퇴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한국 나이로 40세인 선수가 전성기 시절 못지 않은 기량을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이승엽이 올 시즌에 충분히 과시하는 중입니다.(이호준과 더불어서 말입니다.) 이승엽 400홈런은 그가 롱런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감이 있습니다.

 

 

이승엽 400홈런 장면이 기분 좋았던 것은 그를 상대했던 롯데 투수 구승민이 정면승부를 펼쳤다는 점입니다. 지난 5월 31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가 맞붙었던 경기에서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상대 팀 고의사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볼넷을 기록했던 장면에 대하여 여론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당시 포수가 옆쪽으로 빠지면서 투수의 공을 받았던 장면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LG가 고의사구 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승엽 400홈런 장면의 희생양이 되기 싫어서 승부를 거른 것 아니냐는 야구팬들의 질타가 끊이지 않았죠.

 

[사진 = 글쓴이는 올해 4월 대구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전광판에 삼성 5번 타자 이승엽이 표기된 모습이 눈에 띕니다. 6월 3일 롯데전에서는 6번 타자로 출전했으나 그는 여전히 삼성을 대표하는 타자입니다. (C) 나이스블루]

 

반면 롯데와 구승민은 달랐습니다. 이승엽과 정정 당당한 승부를 펼쳤습니다. 비록 롯데에게는 6월 2일 이승엽에게 3안타 허용한 것에 이어 6월 3일 이승엽 400홈런 허용했던 팀이 되었으나 LG와 달리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프로 답게 경기에 임했다고 볼 수 있죠. 물론 고의사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경기 상황에 따라 고의사구가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승엽 향한 고의사구는 400호 홈런의 희생양을 피하려는 의도가 짙었습니다. 야구팬들에게 좋게 보이기 어렵습니다. LG가 여론의 쓴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글쓴이는 LG팬입니다. 하지만 그 장면에 대해서는 LG가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그만큼 삼성과 상대하는 팀에게는 이승엽 400호 홈런 내주는 것이 부담스러웠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승엽 400홈런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LG가 각인 시킨 꼴이 되었죠. 반면 롯데와 구승민은 이승엽과의 승부를 피하지 않으면서 여론의 칭찬을 받게 됐습니다. 이승엽 영향력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강했음을 느낍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한국 야구가 올해 3월 열리는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선전을 위한 대비에 돌입하면서 야구계의 시선은 두 선수에게 쏠렸습니다. 박찬호와 이승엽. 현존하는 한국 야구 선수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국민들의 머릿속에 맴돌았던 대표적인 선수들입니다.

두 선수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선전을 이끌며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대들보'로 거듭났죠. 그동안 쌓은 업적도 대단했습니다. 전자가 1994년 동양인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해 통산 117승을 거둔 빅리그 스타라면 후자는 2003년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56개)에 일본 야구 최고의 명문 클럽인 요미우리에서 70대 4번 타자로 맹위를 떨쳤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재목들이죠.

최근에는 두 선수의 WBC 참가 여부에 관심에 쏠렸습니다. 김인식 감독은 베테랑 우완 투수와 경험많은 거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두 선수의 참가를 강력히 원했습니다. 물론 두 선수의 존재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 대표팀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박찬호는 2년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한국팀의 주장을 맡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이승엽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4강 일본전과 결승 쿠바전 홈런포로 금메달 주역이 되어 병역 미필 선수들의 무거운 짐이었던 문제를 해결해 '합법적인 병역 브로커'로 이름을 떨쳤죠.

더욱이 두 선수는 3년 전 WBC 1회 대회때 맹위를 떨치며 한국 야구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야구 강국' 미국, 일본을 꺾고 한국 야구의 위상을 업그레이드 시킨 주역이기 때문에 김인식 감독은 그런 경험을 높이 사며 두 선수의 2회 대회 참가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두 선수가 처한 환경입니다. 두 선수가 속한 소속팀 입지가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두 선수 모두 올 한해 소속팀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지 않으면 마이너리그 혹은 2군 생활을 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 시즌 종료 후 방출 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박찬호는 필라델피아와의 계약 기간이 올해까지이며(1년 계약), 이승엽은 2010년까지 계약기간이나 3년 연속 부진할 경우 이듬해 출전 기회 조차 못얻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 나이로 올해 37세와 34세인 박찬호와 이승엽은 소속팀에 더욱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며 태극 마크가 부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WBC 불참을 선언한 두 선수도 나름 마음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특히 박찬호는 13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WBC 불참 및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던 도중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김인식 감독과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WBC에 불참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승엽이야 공식 기자회견을 갖지 않았지만 박찬호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무거울 겁니다.

그런데 두 선수는 이전부터 WBC 불참을 선언 했었습니다. 박찬호는 지난해 10월 31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WBC때문에 선발 투수 출장 기회를 방해받고 싶지 않다. WBC 1회 대회에 참가한 뒤 소속팀에 돌아오니 선발 경쟁을 하던 젊은 투수에게 5선발 자리를 내주고 불펜으로 가게 됐다. 그때 WBC에 참가한 것을 후회도 해봤다. WBC 2회 대회는 출전하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승엽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7일 일본시리즈 7차전이 끝나고 국내외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지면서 "한국야구위원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WBC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할 것이다. 올해 올림픽 예선(2008년 3월과 8월)으로 요미우리에서 실패한게 아닌가 싶다"며 WBC 불참 의사를 피력했죠.

그럼에도 야구 대표팀은 WBC 1차, 2차 후보 선수 명단에서 두 선수의 이름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은 지난 8일 대표팀 유니폼 발표 및 기자회견에서 "박찬호와 이승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멤버로도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어찌됐건 최선을 다해 부딪혀 보겠다"며 대표팀에 합류시키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나타냈습니다. 12일에는 한 스포츠 언론사가 "박찬호는 일본에서 열리는 WBC 아시아 라운드에만 부분 참가하는 조건으로 WBC 대표팀에 합류한다"고 보도하면서(결국 오보로 드러남) 박찬호의 WBC 참가가 가시화 되는 듯 했습니다.

현재 박찬호와 이승엽의 소속팀 입지가 어떤지는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관계자분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두 선수를 참가 시키겠다는 의지를 최근까지 꺾지 않았던 것은 두 선수의 팀 내 입지 및 미래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미 두 선수는 WBC 1회 대회, 베이징 올림픽 참가로 인한 후유증으로 극심한 부진에 고생했고요.

물론 WBC가 큰 대회임에는 분명합니다만 두 선수의 앞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WBC 참가는 무리입니다. 일찌감치 WBC 불참 의사를 밝힌 두 선수의 의사는 이전부터 마땅히 존중 받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선수는 10년 동안 한국 야구의 도약을 위해 항상 대표팀 선봉에 있었고 누구보다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국가를 위해 뛰었던 기여도까지 높았는데 왜 이들의 의사는 무시되어야 하나요.

언제까지 30대 후반에 접어든 선수와, 이제 30대 중반 대열에 포함된 선수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한국 야구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절대적 원동력은 '세대교체' 였으며 이제는 새로운 야구 영웅을 계속 발굴해서 포스트 박찬호, 제2의 이승엽을 수없이 배출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WBC에서 한국의 선전을 이끌 핵심적인 존재는 박찬호와 이승엽만이 아니며 이들 못지 않게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은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특히 박찬호와 이승엽의 활약으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는 한국 야구의 근시안적인 대표팀 운영은 정말 아쉽습니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포스트 박찬호, 이승엽'이 등장해야 하나 지금 이대로의 분위기라면 한국 야구는 두 선수의 은퇴 이후에도 지금처럼 박찬호, 이승엽 '집착'만 할지 모릅니다.

만약 대표팀이 출범 초기부터 원만하게 운영했다면 박찬호와 이승엽은 WBC 참가에 대한 걱정을 떨치고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의 맹활약을 착실하게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찬호는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기자회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겠죠. 박찬호가 우는 모습이 왜 이리 슬프기만 할까요. 한국 야구의 대들보인 박찬호의 눈물은 한국 야구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By. 효리사랑
Posted by 나이스블루



역시 이승엽(32, 요미우리)은 한국의 자랑스런 ´국민 타자´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일본전에서 역전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자신이 한국 대표팀의 4번 타자 몫을 해낼 선수 임을 증명했다.

이승엽은 22일 오전 11시 30분(한국 시간) 베이징 우커송 경기장서 열린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8회초 이와세 히토키의 5구를 역전 투전 홈런으로 받아치며 2-2 동점 상황이었던 한국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승엽의 홈런은 1997년 이민성이 축구 A매치 일본전 역전골을 날렸던 '도쿄 대첩'을 연상케 하듯 한국 야구의 저력으로 일본을 통쾌하게 꺾은 '베이징 대첩'을 이뤄냈다.

이번 이승엽의 홈런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우선, 한국 야구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을 두번이나 물리치면서 '한국 야구<일본 야구'라는 공식을 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동안 한국 야구는 일본에 절대적인 열세를 보였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베이징 올림픽까지 3개 연속 대회에서 일본전 2승의 업적을 달성했다. 특히 이승엽의 투런포가 발판이 된 이번 일본전 승리를 바탕으로 한국 야구의 저력을 그대로 증명했다.

그리고 이번 경기가 치러진 베이징 우커송 경기장은 한국 야구가 올림픽 사상 첫 결승 진출을 일군 장소가 됐다. 그것도 준결승 일본을 상대로 올림픽 8연승을 이어가면서 금메달 획득에 강한 희망을 엿본것과 동시에 축구의 '도쿄 대첩'에 이은 야구의 '베이징 대첩'을 완성 시켰다.

이번 일본전은 그동안의 일본전 못지 않게 국내팬들에게 시원한 명승부를 선사한 '베이징 대첩'이 됐다. 경기 내용과 결과에서 일본을 압도했을 뿐더러 반드시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한국 선수들의 불타오르는 의지가 빛났기 때문. 그 요소들을 조화시키며 김광현 8이닝 호투, 7회말 발야구로 일군 2-2 동점, 그리고 이승엽의 통쾌한 역전 투런 홈런으로 'WBC 우승국' 일본을 제압했다.

물론 경기 초반의 한국 경기력은 팬들에게 답답함을 안겼을지 모른다. 1회초 김광현과 강민호의 배터리 호흡이 맞지 않은 끝에 1실점을 헌납했고 3회초에 적시타를 맞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것. 그러나 '일본에 지지 않겠다던' 한국은 4회말과 7회말에 1점씩을 득점하며 일본을 따라잡았고 그 와중에 김광현이 4회부터 8회까지 단 한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2-2의 팽팽한 접전을 치렀다.

이러한 '베이징 대첩' 시나리오 완성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 바로 이승엽이었다. 그는 8회말 이와세를 상대로 역전 투런홈런을 뽑으며 일본을 격침시켰고 후속 타자들이 2점을 더 뽑으면서 한국 야구대표팀은 일본을 6-2로 물리쳤다.

이승엽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누구보다 마음 고생이 심했다. 올림픽 본선 7경기에서 22타수 3안타(타율 0.136)에 그쳐 올해 요미우리에서의 극심했던 부진의 악령이 되살아났기 때문. 이번 일본전에서도 역전 홈런을 날리기 전까지 3타수 무안타에 2개의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빈공에 허덕여야만 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전통적으로 일본에 강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과 3-4위전에서 일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두번씩이나 홈런으로 울리며 한국의 3위 달성을 이끌었고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전에서도 역전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한국의 3-2승리를 견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승엽의 극심한 부진에 지친 팬들은 이승엽의 일본전 부활포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 성원은 이승엽이 부활하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이어져 한국 승리의 큰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국 타선의 중심이자 일본전에서 4번 타자의 몫을 해낸 이승엽이 오는 23일 결승전에서 한국 야구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기고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할지 벌써 결승전에서의 활약이 기다려진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