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3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진행된 FC서울-수원 블루윙즈의 라이벌전. 수원 공격수 신영록은 2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수원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서울을 상대로 K리그 3연승을 거두는 그 중심에 신영록이 있었습니다. 신영록은 그해 K리그 23경기에서 7골 4도움을 기록하며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특히 서울전은 수원의 주전 공격수로 발돋움하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록바(신영록+드록바)'라는 별명도 그 시절부터 알려지게 됐죠.

신영록은 16세였던 2003년에 세일중을 중퇴하고 수원에 입단했습니다. 당시 이강진, 김준 같은 수원 동료 선수들과 함께 U-17 대표팀에서 두각을 떨쳤고, 그 이후에는 청소년 및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수원에서는 쟁쟁한 선수들에 가려 2007년까지 5시즌 동안 주전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어린 유망주가 외국인 공격수들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 이었습니다. 2007시즌 종료 후에는 대전행이 추진 되었지만 몸값 때문에 이적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2008년 '영록바'라는 별명을 얻었고, 올림픽 대표팀 주력 공격수로 활약하며, 수원의 K리그 우승 멤버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신영록의 시련은 2009년 부터 찾아왔습니다. 2009년 초 터키 부르사스포르로 이적했으나 임금 체불을 겪었고, 한때 러시아 톰 톰스크 진출을 추진했으나 부르사스포르가 이적 동의서를 발급하지 않아 상당 시간을 그라운드에서 보내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친정팀 수원 복귀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해 K리그 후반기 9경기에서 3골 1도움을 기록했으나 올 시즌을 앞두고 제주로 이적했습니다. 수원을 떠난 사유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아마도 전술적 요인이 있었을 겁니다.), 팀의 프랜차이즈나 다름 없었던 신영록의 제주행은 수원팬들이 원치 않았던 소식 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영록의 터키 진출은 최악의 선택 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뛰는 동기부여가 작용했기 때문에 터키 무대에서 처음으로 골을 넣을 때는 훗날 유럽 무대를 빛내는 한국인 공격수가 될 거라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임금 체불이라는 뜻하지 않은 시련, 러시아 진출 과정에서 부르사스포르가 무단 이탈로 규정하고 이적을 저지당했던 여파가 컸습니다. 그렇다고 부르사스포르 복귀를 원하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에 장기간 경기를 뛸 수 없었죠. 차라리 수원에 남았으면 좋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국내에서 꾸준히 몸을 만들며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2008년의 신영록이라면 국가 대표팀 주전을 노릴 잠재력이 충만했습니다.

신영록 같은 문전에서 파워풀한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압하는 타겟맨은 한국 축구에서 흔치 않았습니다. 특히 상대 선수와의 몸싸움에서 악착같은 면모를 발휘하면서 동료 공격수에게 골 기회를 내주는 이타적인 특징을 겸비했죠. 적어도 파워 만큼은 어느 누구에게 지지 않는 아우라가 있었죠. 지금으로 치면 박주영-정조국-지동원-유병수-이동국과는 엄연히 다른 타입의 공격수 입니다. 영록바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도 '한국의 드록바'라는 수식어와 일맥 상통했죠. 2003년 수원 입단때는 16세 나이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파워를 발휘했습니다. 강인함 만큼은 천부적이었던 재능이 다른 한국 공격수들과 차별되었기에 많은 축구팬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일 이었습니다. FC서울-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를 보러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찾았는데, FC서울 서포터즈 수호신이 위치한 응원석 가운데에 "우리는 너를 믿는다! 일어나라! 신영록!"이라는 걸게가 공개됐습니다. 여전히 수원 공격수 이미지가 남아있는(저의 생각이지만) 신영록을 응원하는 걸게였습니다. FC서울이 가장 싫어하는 수원 출신 공격수를 상대로 말입니다. 엄연히 다른 팀에서 뛰는 공격수지만 서울의 걸게는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신영록은 지난 5월 8일 대구전 경기 도중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축구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인천 골키퍼 윤기원 자살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시기에 또 하나의 악재가 벌어졌죠. 프로야구의 고 임수혁을 떠올리게 했던 아찔한 악몽이 재현됐습니다. 고 임수혁처럼 우리 곁에 돌아오지 못하는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초동 대처가 신속했기 때문에 '반드시 회복할 것이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한때 뇌에 간질파가 나타나 의식을 찾는데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마침내 지난 27일 기력을 되찾으며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그런 신영록이 의식을 찾기까지 50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길고 길었던 시간 동안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힘든 나날을 보낸 끝에 쾌유 했습니다. '반드시 일어서겠다'는 마음이 육체와 정신을 움직이며 의식을 되찾았죠. 부정맥에 의해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던 케이스가 많았고 소생할 가능성이 2.5%에 불과했음을 상기하면, 신영록이 의식을 회복한 것은 매우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타고났던 강인함이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이어지면서 말입니다.

특히 신영록이 일어서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50일 동안 신영록 곁을 보살폈던 부모님을 비롯 제주 구단, 제주 한라병원, 동료 선수 및 축구 관계자들을 비롯해서 축구팬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신영록의 친정팀 수원의 서포터즈 그랑블루는 지난 11일 제주 원정에서 "이겨내라 신영록! 그랑블루는 널 사랑한다"는 걸게를 걸었고, 서울을 비롯한 다른 구단 서포터즈도 쾌유을 바라는 뜻으로 응원석에 걸게를 부착했습니다.

축구팬 뿐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심장마비 소식을 접하면서 신영록이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적인 염원으로 이어졌죠. 실제로 신영록은 의식 회복 이전에 사람들의 메시지를 들으며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현역 선수 복귀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심장마비 소생 확률이 2.5%라는 점에서 그가 다시 돌아온 것 만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의식을 회복한 것만으로 놀랍고 반가울 따름 입니다.

저는 신영록의 신인 시절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중학교 중퇴하고 수원에 입단했던 2003년 말입니다. 미성년자 답지 않게 파워풀하고, 과감한 몸놀림을 발휘했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강인했던 그의 마음은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함께 심장마비를 이겨내는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언젠가는 그라운드에서 축구팬들에게 인사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그 모습을 기약하며 앞으로 다가올 재활 치료를 이겨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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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K리그가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16개 구단이 15경기씩 소화하면서 K리그 30라운드 중에 절반이 끝났습니다. 전반기 15경기는 여러가지 악재들이 터지는 슬픔과 안타까움, 분노 속에서도 어느 때보다 순위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당초 우승 후보로 꼽혔던 팀들이 부진하면서 6강 플레이오프 경쟁이 지난해보다 뜨거울 전망입니다. 이름값에 걸맞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었죠. K리그 중간 결산 차원에서 5가지 핵심 이슈를 돌아봤습니다.

1. K리그는 수비 축구? 공격 축구의 승리!

올 시즌 K리그 초반에는 언론 기사에 '구름 관중'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정도로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9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K리그 5라운드 8경기에서 10골에 그쳤고, 그 중에 4경기가 0-0 무승부로 끝나면서 수비 축구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K리그가 재미없다는 늬앙스의 반응을 쉽게 접할 수 있었죠. 단지 한 라운드에서 득점 운이 안따랐을 뿐인데 일부에서 수비 축구를 운운하며 K리그를 비판했고 대중들에게 안좋은 이미지를 심어줬습니다. 공격 축구가 존재하면 수비 축구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며, 단지 골 숫자 때문에 수비 축구를 한다고 재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수비 축구 논란은 끝내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팀들의 기세에 밀리고 말았죠.

전반기까지의 K리그는 수비 축구의 대세가 아닌 '공격 축구의 승리' 였습니다. 지금까지 공격 축구가 완성된 팀들의 순위가 높았죠. K리그 '2강' 체제를 형성한 1위 전북, 2위 포항의 콘셉트는 '닥공(닥치고 공격)' 입니다. 특히 전북은 15경기에서 36골을 기록하여 팀 득점 1위를 질주했고 2위 포항(26골)에 10골 앞서면서 '전북셀로나'의 위험을 과시했습니다. 2위 포항은 미드필더진의 응집력을 필두로 공격에 무게감을 두는 경기 내용을 보여줬습니다. 2004년 부터 지방 팀과 수도권 팀이 1년씩 K리그 우승을 번갈아갔던 통계적 흐름이라면, 올 시즌 전북과 포항중에 한 팀이 K리그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3위 제주는 1위 전북과의 승점이 9점 차이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격 축구를 지향했습니다.

2. 승부조작으로 얼룩진 K리그, 신영록은 의식 찾았다

최근에 불거진 K리그 승부조작 사태는 축구팬 입장에서 잊고 싶고, 알고 싶지도 않은 이슈입니다. K리그 승부조작을 일으켰던 선수들이 구속 및 불구속 되거나 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고, 승부조작 혐의를 받았던 어느 전직 K리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11일 FC서울-포항 경기에서는 4만 4358명의 관중이 몰려들며 K리그가 승부조작 시련을 이겨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몇몇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된 사실이 새롭게 전해지면서 축구팬들이 또 다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26일에는 상위권 팀의 한 골키퍼가 승부조작을 자진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죠. 승부조작 수사는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입니다.

이러한 승부조작의 시름 속에서도 '영록바' 신영록(제주)은 오늘 오전 의식을 회복하여 축구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신영록은 지난달 8일 대구전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50일 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한때 뇌에 간질파가 찾아오면서 정상 상태로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영록바의 쾌유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소망의 메시지가 와닿았는지 마침내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일상 생활 복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제주 한라병원측 발표가 전해지면서 그동안 쌓였던 걱정을 한 시름 덜게 됐습니다.

3. 이동국-김정우-데얀의 흥미로운 킬러 경쟁

최근 K리그는 득점왕의 독주 체제가 두드러졌습니다. 2009년 이동국(전북, 21골) 2010년 유병수(인천, 22골)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누가 득점왕에 등극할지 알 수 없습니다. '사자왕' 이동국이 10골을 넣으며 2009년 영광 재현에 나섰고, '뼈트라이커' 김정우(상주)가 올 시즌 공격수 변신에 성공하여 이동국과 10골 동률을 이루며 득점 공동 선두를 달렸습니다. 득점 3위 데얀(서울, 8골)은 지난 25일 인천전에서 골을 넣으며 같은 라운드에서 골이 없었던 이동국-김정우와의 격차를 좁혔습니다. 이를 반증하듯, 어느 축구 잡지와 포털사이트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축구스타 K(월간 베스트 플레이어)'에서는 김정우-이동국-데얀이 각각 3월, 4월, 5월의 축구스타K를 수상했습니다. 세 명의 공격수가 올 시즌 K리그 흥행을 짊어지게 됐죠.

세 명의 공격수는 득점왕을 향한 동기부여가 남다릅니다. 이동국은 생애 두 번째 득점왕을 꿈꾸며 '현존하는 K리그 최고의 공격수' 이미지를 키울 수 있고, 김정우는 자신의 공격수 변신이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성과를 남기면서, 데얀은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외국인 공격수 레전드로 회자 될 결정타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관건은 지금의 득점 페이스를 최종 라운드까지 유지하느냐 입니다. 이동국은 AFC 챔피언스리그 병행에, 김정우는 오는 9월 말 성남 복귀시 라돈치치-조동건과 공존하는 숙제, 데얀은 자신의 마땅한 투톱 파트너가 없습니다. 세 명 모두 상대 수비진의 집중 견제까지 이겨내야 합니다. 과연 누가 2011 K리그 득점왕의 영예를 안을지 주목됩니다.

4. 서울-수원, 우승 후보들의 '이유 있는' 부진

서울과 수원은 올 시즌 K리그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현실은 중위권과 하위권을 오가는 상황입니다. 먼저, 서울은 지난 3월 6일 수원과의 개막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내용끝에 0-2로 패하면서 K리그 챔피언 위용을 잃었습니다. 계속된 성적 부진으로 황보관 전 감독이 사임했고, 몰리나가 전술적인 계륵이 되면서 외국인 선수 F4(데얀-몰리나-제파로프-아디) 위력이 반감되었고, 최태욱 부상이 장기화 되었고, '피터팬' 이승렬은 여전히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정조국-최효진-김진규-김치우 등 주력 선수들의 이탈 공백을 메우지 못했습니다. 최용수 감독 대행 부임 이후 경기력 회복에 나섰지만 최근 K리그 4경기에서는 1승2무1패에 그쳤습니다. 9위에 처진 팀 성적이 어색합니다.

수원은 지난 11일 제주전까지 K리그 7연속 무승(1무6패)의 늪에 빠지면서 1위에서 14위까지 추락했습니다. 마토-황재원의 느린 발, 이용래-오장은 중원 공존 실패, 플레이메이커 및 홀딩맨 부재, 최성국을 비롯한 다수의 공격수들 부진 등 전술적인 여러 악재들이 겹치면서 무기력한 행보를 거듭했습니다. 윤성효 감독을 향한 수원팬들의 질타가 끊이지 않았죠. 수원은 최근 K리그 2연승으로 성적을 7위까지 올렸지만 지금의 순위 향상이 일시적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용래-최성국-황재원-곽희주가 부상으로 빠졌고 오는 주말 포항전에서는 최성환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합니다. 3백을 어떻게 구성할지, 아니면 4백으로 전환할지 궁금합니다.

5. 6강 플레이오프 경쟁, 올해가 가장 치열하다

K리그 '2강' 전북-포항은 후반기에 별 다른 이변이 없으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무난합니다. 나머지 6강 티켓 4장에 도전하는 팀들은 3위 제주부터 13위 광주까지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무려 6팀(7위 수원~12위 경남)이 시즌 중반에 승점 20점을 기록하는 보기 드문일이 나타났죠. 광주는 승점 18점으로 13위를 기록중이지만 6위 상주(21점)와의 승점이 불과 3점 밖에 되지 않으며, 3위 제주(25점)와는 7점 차이 입니다. 후반기에 분발하면 K리그 창단 첫 해에 6강 고지를 밟는 기념비적인 돌풍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하위권 이미지가 강했던 10위 대구도 K리그 첫 6강 진출에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죠. 6위 상주가 최근 K리그 3연패를 당하면서 승점 20점 이하의 팀들이 6강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6강 플레이오프 경쟁은 올해가 가장 치열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수원이 기대 이하의 행보를 나타내면서 가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며 중동으로 이동하는 체력적 부담에 직면했고, 3위 제주는 올 시즌 15경기 1골에 그친 김은중 득점력에 발목 잡혔고, 4위 전남-5위 인천은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할지 관건입니다. 11위 울산은 스쿼드 이름값에 비해 성적이 안좋았습니다. 상주-부산-대구-경남-광주 같은 6강 인연이 드물었거나 예산이 적은 구단들의 도약과 맞물리면 과연 어느 팀이 6강에 진출할지 쉽게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위권팀을 겨냥한 승강제가 없는 것이 아쉽지만 6강 경쟁 만큼은 흥미진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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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한국 정통파 공격수들의 부진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은?

1.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90년대 말, 한국 축구 대표팀에는 3명의 정통파 공격수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황선홍과 최용수, 김도훈이 바로 그들이죠. 세 선수는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뛰어난 득점 실력을 발휘하며 많은 팬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세 선수 뿐만은 아닙니다. 이동국과 김은중 같은 정통파 공격수 외에도 안정환이라는 개인기와 순발력이 뛰어난 쉐도우 공격수까지 등장해 '공격수 풍년'을 이루었습니다.

2.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10년 전과 다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 처럼, 한국 축구에 구조적인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 행보는 긍정이 아닌 부정의 색깔을 띄었습니다. 황선홍과 최용수, 김도훈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후부터 누구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자리매김하지 못했습니다. 본프레레호와 아드보카트호에서는 이동국이 '포스트 황선홍'으로 떠오르는 듯 했지만 2006년 4월 십자인대 부상 이후 3년 동안 슬럼프에 시달리는 불운에 시달렸습니다.

이동국 뿐만은 아닙니다. 81년생의 조재진, 82년생의 남궁도 같은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정통파 공격수들도 기대만큼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기복이 심했던 것을 비롯해서 몇몇 국제 대회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선수 밑으로 내려가면 정통파 공격수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84년생 3인방인 김동현과 정조국, 정윤성은 한때 청소년 대표팀 부동의 공격수로 활약했지만 지금은 K리그에서 조차 어떠한 이름값을 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동현과 정윤성은 지난해 시즌부터 기나긴 침체에 빠졌으며 정조국은 광대뼈 부상을 비롯해서 경기력 저하 등등 총체적인 슬럼프에 빠진 상황입니다.(참고로, 김동현은 올 시즌 K리그 13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86년생의 양동현은 잦은 부상으로 성장이 오랫동안 더뎠던 것이 아쉽죠. 그나마 87년생의 신영록이 터키 리그에 진출하여 이름값을 떨치고 있지만, 수원에서 경기 출전이 많지 않았던 것이 한때 기량이 정체되었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이것 때문에 2007시즌 종료 후 지방팀으로 이적하려고 했죠.)

3. 이 같은 현상은 정통파 공격수로 주목받았던 선수들이 성장통을 이기지 못한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부상과 부진의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공격수 스타일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죠. 굳이 많이 뛰지 않더라도 최전방에서 헤딩으로 공중볼을 떨구거나 혹은 동료 공격수에게 패스하거나, 상대 수비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파고들어 골 기회를 노리거나,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하는 것이 정통파 공격수의 역할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공격수들이 그라운드를 지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현대 축구는 공격수들에게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격수 역할을 비롯해서 측면과 중앙, 혹은 최전방과 미드필더진을 활발히 오가며 다른 공격 옵션들과 유기적인 공격 전개를 이어가는 스타일이 필수 옵션으로 자리매김한 것이죠. 어느 공간에서든 궃은 역할도 겸할 수 있고 때로는 최전방으로 침투하는 선수에게 크로스를 올려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공간을 파고들거나 또는 역습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골 기회를 노리는 개인 역량까지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사뮈엘 에토, 페르난도 토레스, 카림 벤제마 같은 정통파 공격수가 아닌 선수들이 타겟맨으로 맹활약을 펼친 것은 현대 축구의 공격수 변화를 상징하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K리그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수준급 외국 공격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K리그 팀들의 전반적인 공격력이 예전보다 몇배 이상 좋아졌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국내 공격수들이 외국인 공격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던 것이죠. 최근 몇 년 동안 K리그 상위 득점 순위에서 외국인 공격수들의 숫자가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재진과 남궁도, 정윤성, 김동현, 정조국, 신영록 같은 정통파 공격수들은 K리그 팀에서 외국인 공격수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그 중, 조재진은 2004년 수원에서 나드손-마르셀 투톱에게 밀리더니 김동현과의 서브 경쟁에서 밀리면서 4-4-2의 측면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차범근 감독이 김동현 스타일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죠.)

한국 대표팀도 마찬가지 입니다. 박주영과 이근호가 투톱 공격수로 활약중이지만 사실 두 선수는 전형적인 공격수가 아닙니다. 박주영이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쉐도우 공간에서 자신의 역량을 살리는 유형이라면 이근호는 측면 옵션 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유병수, 이승렬, 조동건 같은 영건 공격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정통파가 아닌 빠른 순발력과 화려한 기교로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유형의 선수들입니다. 그중 조동건은 4-2-3-1을 쓰는 성남의 원톱 공격수로 뛰고 있으며 이승렬은 최근 서울에서 측면 미드필더까지 겸하고 있습니다. 한때 허정무 감독이 원하던 스트라이커로 꼽혔으나 최근 수원에서 슬럼프에 빠진 서동현과 하태균도 이들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이죠.

4.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정통파 공격수들이 맥을 못추는 것을 비롯해서 서로 비슷한 유형의 공격수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으로 이어진 한국 축구를 빛낸 정통파 공격수 계보가 끊긴 것도 이 때문이죠. 반면에 '박주영-이근호' 투톱이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현대 축구가 원하는 공격수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황선홍에 비해 최전방에서의 파괴력이 약한 것이 흠이지만, 분명한 것은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뛸 역량이 충분하다는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박주영-이근호 투톱으로는 대표팀의 공격 문제를 커버하기가 어렵습니다. 두 선수 모두 골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활동 반경이 겹치고 있기 때문이죠.(세부적인 스타일은 서로 다르지만) 박주영이 쉐도우 역할에 치중하면서 타겟맨이 되어야 할 이근호의 역할이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의 볼 터치가 많아진 반면에 이근호가 최전방에서 고립되면서 최근 A매치 5경기 연속 무득점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공격력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월드컵 16강 진출은 힘들 것임이 분명합니다. 공격수의 다재다능한 역할로 4-4-2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현대 축구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5. 이러한 공격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박주영-이근호 투톱과 다른 유형의 선수를 대표팀에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바로 신영록입니다. 박주영-이근호-유병수-조동건-이승렬과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다 대표팀에서는 양동현보다 더 검증되었고, 최근 정통파 공격수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그 이유죠. 최근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A매치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대표팀에 포함될 기회는 여전히 무궁무진합니다.

신영록은 최전방에서의 절묘한 위치선정과 저돌적인 움직임, 빠른 문전 쇄도, 상대 수비수를 지치게 만드는 악착같은 몸싸움을 자랑하는 타겟맨입니다. 최전방 이외에도 미드필더진과 공격진 사이를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 있고 K리그 시절에는 중거리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문전에서는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하기보다는 궃은 역할에 충실하면서 다른 공격 옵션의 화력을 돕는 장점까지 있습니다. 수원 시절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신영록은 문전 앞에서의 움직임이 한국에서 최고 수준이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죠.

그동안 신영록의 성장이 더뎠던 원인은 수원에서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군에서 풀타임으로 뛰었던 시즌이 2008시즌에 불과할 정도로 1군 벤치와 2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죠. 하지만 최근에는 터키 1부리그 부르사스포르의 주전 공격수로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에 실전 감각에서는 더 이상의 문제가 없어졌습니다. 수비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현대 축구의 흐름까지 더하면, 신영록의 가치는 계속 커질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신영록이 지난달 허정무 감독의 대표팀 호출을 받았던 원인은 자신의 기량이 허정무호에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비록 햄스트링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공격수 개인 기량이 다른 축구 강국에 비해 떨어지는 한국 축구의 실정에서는 자신만의 특징이 차별화된 선수가 필요합니다. 신영록은 '박주영-이근호에게 없는' 정통파 공격수 부재까지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한국 축구의 공격수 문제는 언젠가 신영록이라는 해답으로 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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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은 1978년부터 10년 동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쳐 유럽 축구계에서 '차붐'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UEFA컵 2차례 우승을 비롯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골(98골)을 넣는 맹활약으로 한국 축구의 저력을 알렸죠.

이러한 차범근의 선전은 한국 축구가 유럽리거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쾌거로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 김주성과 황선홍, 서정원을 비롯해 2000년대를 거슬러 안정환과 설기현, 박지성, 이영표, 박주영 등에 이르기 까지 많은 축구 인재들이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고 몇몇 선수들은 꾸준한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리고 2009년 1월 이적시장에서 터키 슈퍼리그(1부리그) 9위 팀 부르사스포르에 진출했던 '영록바' 신영록(22)이 유럽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긍정적 여운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신영록은 8일 밤 메이시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슈퍼리그 19라운드 게슐빌리지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해 전반 9분 팀의 선제골이자 자신의 터키 진출 데뷔골을 쏘아 올렸습니다. 지난 1일 겐클레비르리지와의 슈퍼리그 18라운드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그는 이적 후 세 경기만에 골을 넣으며 팀 내 입지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과 동시에 터키 리그에서 확실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신영록, 차범근-박지성의 뒤를 이을 기대주

신영록은 오래전부터 축구팬들로 부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각광 받았습니다. 15세였던 2002년 아시아 청소년 대회(U-16)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며 한국의 차세대 간판 스트라이커로 주목 받았죠. 이듬해에는 세일중을 중퇴하고 수원 삼성에 입단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때 축구에 입문한 이후 불과 4년만에 K리그에 입성한 것이어서 자신의 출중한 축구 재능을 '수원 사령탑을 맡던' 김호 감독(현 대전 감독)으로 부터 인정 받았던 겁니다.

당시 신영록은 181cm, 72kg의 웬만한 성인 선수 못지 않은 체격을 자랑했습니다. 데뷔초에는 주로 2군 경기에 출장했지만 시즌 후반 1군 경기 경험을 쌓으면서 성인 선수와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은 파워를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10월 30일 부천(현 제주 UTD)전에서는 자신의 K리그 데뷔골을 넣었고 이듬해에는 12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하여 킬러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07년까지는 수원의 두꺼운 선수층에 밀려 이렇다할 선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2007시즌 종료 후 지방구단 이적을 추진했지만 '앞으로 많은 출장 기회를 주겠다'는 차범근 감독의 만류로 팀에 잔류했고, 지난해 시즌 23경기에서 7골 4도움을 기록하여 수원의 더블 우승 주역으로 거듭났습니다. 어쩌면 7골이 평범한 수치일지 모르지만, 에두-서동현 같은 동료 골잡이에게 많은 골 기회를 주기 위해 최전방에서 상대팀 선수들을 흔드는 강력한 포스트 플레이와 악착같은 몸싸움을 발휘하여 이타적인 활약에 많은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팀 공헌도가 빛났던 겁니다.

이러한 신영록의 성장은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습니다. 16세의 나이에 프로 경험을 쌓으면서 성인 선수들과 몸을 자주 맞닥뜨린것이 국제 경기에서 자신감을 뽐낼 수 있던 원동력이 되었이며, 자신보다 체격이 큰 선수를 상대로 거침없이 몸싸움에서 이기는 장면이 많아지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2003년 U-17 월드컵, 2005년 U-20 월드컵, 2006년 U-19 아시아 청소년 대회, 2007년 U-20 월드컵의 주전 공격수로 참가하여 어린 나이에 풍부한 국제 경기 경험을 쌓았습니다. 지난해에는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고 그해 9월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르면서 가파른 성장 곡선을 달렸습니다.

결국, 신영록이 터키리그에서 데뷔 3경기만에 골을 넣은것은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릅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10대 중반의 나이에 K리그에 입단하여 6시즌 동안 프로 경험을 쌓은데다 수많은 국제 경기를 치렀던 것, '어린 나이 답지 않은' 과감하고 대담한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낯선 외국 땅에서 기죽지 않는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겁니다. '시작이 반이다'는 인생의 격언 처럼, 현재 페이스가 순조롭기 때문에 이 기세를 그대로 이어갈 경우 지금보다 많은 성장을 거듭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신영록은 거칠기로 유명한 터키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의 드록바(영록바)'라는 별명처럼 최전방에서의 절묘한 위치선정과 저돌적인 움직임, 빠른 문전 쇄도, 상대 수비수를 지치게 만드는 악착같은 몸싸움으로 강한 선수와 만나도 절대 밀리지 않는 힘을 발휘하는 전형적인 타겟맨 입니다. 공중볼에 능한 다른 타겟맨보다 열세라 할 수 있는 182cm의 키가 약점일 수도 있지만, 최근 1~2년간 K리그와 국제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를 뒤흔드는 저돌적인 공격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단점을 커버했습니다. 왼발과 오른발을 가리지 않는 대포알 같은 슈팅 또한 그의 장점이죠.  

올해 22세의 신영록은 병역 면제(중학교 중퇴, 2000년대 중반 병역법이 개정되기 전)된 선수이기 때문에 적어도 10년 동안 유럽리그에서 롱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터키리그에서의 활약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현 소속팀인 부르사스포르에서 확고한 위치에 오를 경우 터키리그의 정상급 공격수로 활약하거나 더 나은 여건의 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고, 나중에는 차범근-박지성에 이은 유럽리그를 빛낸 한국인 축구 선수로 거듭날 수도 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체격 조건이 좋은 수준급 팀과의 경기에 적절히 활용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영록은 한국에서 문전 앞에서의 움직임이 최고 수준이다. 움직임과 동작이 루디 펠러와 비슷하다"

차범근 수원 감독은 지난해 3월 6일 K리그 개막을 앞둔 기자 간담회에서 신영록을 독일 축구의 레전드인 펠러와 비견했습니다. 이는 신영록이 한국 축구를 대표할 수 있는 기대주에서 '한국 축구의 별'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에 그의 앞날이 기대될 수 밖에 없습니다. 터키리그에서 데뷔 골을 쏘아 올린 그가 언젠가 유럽 리그를 빛내는 한국인 선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발돋움할지 거침없는 그의 발끝이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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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록(21, 수원)에게는 재미있는 별명이 하나 있다. 베이징 올림픽 이전까지 첼시 골잡이 디디에 드록바와 비슷한 머리띠를 했기 때문에 ´영록바´라는 별명이 붙여졌던 것.

또 하나는 신영록의 포스트 플레이가 드록바를 빼닮았다는 점이다. 웬만한 특급 공격수라도 상대팀 선수에게 몸싸움에서 밀려 부진하지만 신영록은 절대 밀리지 않는 법이 없었다. ´한국의 드록바´라는 그의 또 다른 별명처럼 최전방에서의 저돌적인 움직임과 빠른 문전 쇄도, 다른팀 선수를 지치게 만드는 악착같은 몸싸움은 강한 선수와 만나도 절대 밀리지 않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신영록은 182cm의 ´크지않은´ 키를 지녔지만 그동안 여러 경기에서의 경험을 축적하며 자신보다 우월한 선수를 상대로 거침없이 몸싸움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신영록과 상대했던 수비수들은 그의 저돌적인 활약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었다. 힘 좋은 장신 수비수들도 그의 다부진 공격력에 속수무책이었던 것.

한국 대표팀의 고질적 문제는 포스트 플레이가 뛰어난 최전방 공격수가 없다는 점이다. 조재진과 박주영, 고기구는 연이은 A매치 부진으로 대표팀 합류에 실패했고 2000년대 중반 한국 축구를 빛낸 이동국은 아직까지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 같은 공격력의 고민을 신영록이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해결사 처럼 등장하면서 허정무호의 뉴페이스로 떠올랐다.

이날 상대팀 수비수를 따돌린 상황에서 시도했던 슈팅 장면은 예술이었다. 전반 23분 하프라인 부근에서 상대팀의 패스를 가로챈 뒤 돌파에 이은 슈팅을 시도했고 16분 뒤에는 상대팀 수비수들을 차례로 등지고 정확한 타점에 의한 헤딩슛을 날렸다. 비록 두개의 슛이 골대를 살짝 벗어났지만 상대팀 선수를 농락한 상황에서 시도했던 슈팅 장면이었기에 '역시 신영록'이라는 칭찬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영록에게 부족한 것은 '골'. 지난 6월 28일 전남전 이후 거의 4개월 동안 각급 대표팀과 소속팀 수원을 포함해 단 2골에 그쳤다는 점이다. 지난 7월 31일 호주 올림픽대표팀과의 친선전과 지난달 27일 전북전서 1골씩 넣었지만 나머지 경기서 골과 인연이 없었다. 이는 지난 3월 29일 경남전을 시작으로 6월 28일 전남전까지 K리그 12경서 6골을 넣었던 활약상과 대조적이다.

언뜻보면 골 부진으로 읽을 수 있지만, 사실 신영록은 올해 처음으로 풀 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세일중학교를 중퇴하던 2003년 수원 입단 이후 지난해까지 31경기 출장했으나 대부분 2군에 머물렀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소속팀에 걸출한 공격수들이 많아 출장 기회가 적은데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 마저 마땅치 않아 풀 시즌을 소화할 수 있는 감각이 부족해 꾸준히 골을 넣을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신영록은 4월 20일 울산전서 골을 넣은 뒤 5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리다 6월 28일 전남전서 골을 넣었고, 이후 4경기 연속 무득점에 빠지다 9월 27일 전북전서 골을 기록했다. 경기 내용상으로는 거의 완벽한 선수임에 분명하나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된 임무를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

분명 신영록은 앞으로의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축구 천재들이 끝없는 어려움에 빠졌던 전례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신영록은 국가대표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는 '한국의 드록바'라는 별명에서 벗어나 황선홍에 이어 오랫동안 '한국 최고의 공격수'로 불릴 수 있는 잠재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신영록이 국가대표팀에 없어서는 안될 중심 공격수로 거듭나려면 '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006/07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던 드록바 처럼 꾸준히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 본능으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는 것. 올해 수원 2군 선수에서 '1군 주전 선수&국가대표팀 선수'로 거듭난 그에게 또 하나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영록의 미래가 긍정적인 것은 '발전형 공격수'이기 때문이다. 올해 21세에 불과하나 프로 6년차에 국제 경기 경험이 풍부했던 선수로서 빠르게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성장동력이 충만하다. '골 넣는 영록바'로 거듭나야 할 신영록의 날갯짓이 어느 시점에서 훨훨 타오를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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