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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본인 선수 오노 신지와 함께 페예노르트에서 뛰었던 송종국 (C) 페예노르트 공식 홈페이지]

한국을 비롯 아시아의 축구 선수들에게 있어 더 큰 명예와 부를 쌓을 선망의 대상은 유럽입니다. 그러나 유럽에 진출한(또는 진출했거나) 아시아 선수들 중에는 낯선 기후와 험한 플레이 스타일, 고질적인 부상, 그 외의 예상치 못한 불안요소에 못이겨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럽에서 성공한 선수보다 여러가지 사정을 이유로 실패했던 선수들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국내에서 톱클래스의 재능을 지녔음에도 유럽 현지에서 제대로 자리잡은 선수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유럽에서의 실패 이후 국내에서도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던 선수들의 행보일 것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선수들은 '쿠키' 송종국(30, 수원) '미꾸라지' 이천수(28, 전남) 입니다.

송종국-이천수, '이 죽일 놈의 페예노르트'

송종국과 이천수가 몇년 간 걸어왔던 축구 인생은 그야말로 순탄치 못했습니다. 두 선수는 유럽 진출 이전까지 국내 무대 평정을 비롯해서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쳤지만 유럽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그때부터 축구 인생의 내리막길이 시작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페예노르트 진출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팀의 주력 멤버로 자리잡거나 기대주로 떠올랐지만 이러한 긍정적 행보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두 선수는 페예노르트 진출 이전까지의 시기가 축구 인생 최고의 하이 클래스 였다는 점입니다. 송종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던 루이스 피구를 족쇄같이 묶으며 한국의 4강 진출을 견인했고 그 이후에는 잉글랜드 토트넘의 적극적인 영입 관심을 받으며 최고의 주가를 달렸습니다. 이천수는 2007년 8월 페예노르트 진출 이전까지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자 K리그의 사기유닛으로 명성을 떨치며, 위기 일로로 치닫던 한국 축구의 시원한 단비와 다름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지난 2007년 6월 A매치 네덜란드전에서의 자신감 넘치는 활약상은 많은 축구팬들에게 든든함을 더했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두 선수의 축구 인생은 페예노르트 진출 이후부터 하나 둘 씩 꼬이기 시작합니다. 우선, 송종국부터 언급하겠습니다. 송종국은 2002년 8월 페예노르트에 진출한 이후부터 주전 오른쪽 풀백으로 자리잡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예선 6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상이었습니다. 2002년 12월 헤렌벤과의 경기에서 왼발목 아킬레스건을 다치더니 4개월 뒤에 가진 복귀전에서도 부상이 재발하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때의 감각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진출 이전까지 대표팀의 장기간 합숙 훈련 및 A매치 그리고 K리그 일정까지 소화하면서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던 여파가 결국 부상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송종국은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부상에 빠지면서 팀 전력에 어떠한 보탬을 주지 못했습니다. 정상적인 컨디션 감각을 찾지 못하더니 수비 집중력 결여, 공격 활로를 잃은 오버래핑, 부정확한 패스 등을 일관하며 날이 갈수록 부진에 빠졌습니다. 2004/05시즌에는 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던 루드 굴리트 감독을 어필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결국 2005년 1월 K리그로 유턴했습니다. 국내 여론에서는 송종국의 수원 이적 원인이 굴리트 감독과의 불화로 지목했지만, 송종국은 그동안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그런 송종국의 불운은 K리그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연봉 7억원의 돈을 받으며 수원의 파란 유니폼을 입었지만, 이적 후 첫 시즌에 두번씩이나 왼발목 부상을 입은 것을 비롯해서 기나긴 경기력 저하로 부진하자 K리그 팬들에게 '먹튀'라는 비아냥을 받았습니다. 2005년 4월에는 전 부인과 이혼하면서 축구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더니 2006년 후기리그를 기점으로 본래의 경기력을 회복하면서 그동안의 불운을 깨끗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페예노르트에서의 고질적인 부상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그의 축구 인생은 분명히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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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남에서 활약중인 이천수 (C) 효리사랑]

이천수가 페예노르트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던 것은 2007년 9월 중순이었습니다. 여름 이적시장 막판 우여곡절 끝에 유럽 진출에 성공했지만 비자문제로 팀에 늦게 합류했고 종종 2군 경기에 나서는 등 적응 과정이 들쑥날쑥했습니다. 여기에 독일어를 쓰는 통역과의 호흡이 맞지 않았던 것도 적응을 더디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유럽 진출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과 초조함, 그리고 심한 감기 몸살을 더해 향수병에 빠지면서 그해 11월 말 구단에 2주 휴가를 요청하여 국내에 귀국했습니다. 페예노르트에서의 맹활약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는데, 차분히 적응하는 마음보다 빨리 성공하겠다는 조급함이 돌이킬 수 없는 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008년 1월 알크마르전에서 발목 부상을 입은 이후 끊임없는 부상 악령에 시달린 것이죠. 지난 2001년 부터 발목  통증에 시달렸지만 운동에 별 무리가 없어 참고 뛰더니, 네덜란드에 진출했던 2007년 하반기부터 무리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진통제를 먹으며 아픔을 달랬지만 발목 부상이 점점 악화되면서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2008년 5월에는 오른쪽 발목 뼈조각 제거 수술로 2개월간 재활에 매달렸습니다. 이천수가 네덜란드에서 무난한 경기력을 펼치고도 끝내 국내로 임대되었던 배경에는 부상으로 인한 전력 손실이 결정타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천수의 시련은 국내에서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졌습니다. 지난해 여름 수원에 임대되면서 무단으로 훈련에 불참하고 코칭스태프 지시에 반발하더니 평소 아버지와 아들처럼 절친했던 차범근 감독과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그해 연말 수원 구단에 의해 임의탈퇴 공시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올해는 전남 임대 신분으로서 새출발을 다짐했지만 서울과의 K리그 개막전에서 심판에게 감자 세리머니를 하는 경솔한 행동으로 국내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페어플레이 깃발을 드는 기수로 나오는 유례없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전남을 떠나야 하는 신세에 몰렸습니다. 원 소속 구단인 페예노르트가 재정 확보를 위해 자신의 해외 진출을 추진중인데 계약상의 조건에 따라 이적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페예노르트와 전남과의 완전 이적 협상이 결렬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니스로를 비롯해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리그 팀들, 독일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 등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전남을 떠나기 싫었던 이천수에게는 페예노르트의 이적 방침이 그야말로 황당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중동으로 이적하면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출전의 꿈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페예노르트에서 꼬였던 축구인생이 여전히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By.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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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는 자신의 포지션 역할과 관계없이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다양한 공격을 펼치는 선수를 가리켜 '프리롤(Free-Role)'이라 부른다. 지난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오른쪽 윙어라는 포지션과 관계없이 프리롤의 역할을 수행하며 리그 31골을 기록한 것 처럼 프리롤은 팀 공격의 핵심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올 시즌 K리그 1위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2004년 부임 이후 줄곧 프리롤 형태의 공격을 고수했다. 2004년 김대의를 3-4-1-2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프리롤 공격의 재미로 정규리그 우승을 거두었고 2005년 안효연, 2006~2007년 이관우를 거쳐 올해는 서동현을 4-4-2의 오른쪽 윙어로 놓으며 프리롤 공격의 효과를 봤다.

그리고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1년 임대로 이천수를 영입해 올 시즌 K리그 우승을 위한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해 여름까지 K리그를 대표했던 이천수의 가세는 2위 성남과의 불꽃튀는 선두 다툼에 엄청난 기름을 부은 격이어서 향후 이천수가 전력에 가세하는 수원의 모습이 벌써부터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울산에서 프리롤 공격을 전담했던 이천수의 역할이 수원으로 옮겨질 공산이 크다. 이천수가 2005년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울산으로 복귀한 뒤 3-4-1-2 포메이션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프리롤을 수행했던 경험 역시 참고해야 할 부분.

188cm의 장신이자 최전방 공격수인 서동현이 수원의 오른쪽 측면에서 프리롤을 맡는 것은 역설적으로 윙어들의 활약이 기대 이하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수원은 오른쪽 측면에 서동현을 고정했지만 왼쪽에 '김대의-루이스(현 전북)-이관우-남궁웅' 등을 로테이션으로 활용했음에도 뚜렷한 적임자가 없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올해 34세인 김대의의 나이와 이현진-배기종의 기나긴 슬럼프가 수원 측면에 부담거리로 굳어진 것.

최근에는 서동현의 프리롤 공격에 대한 일부 수원팬들의 불만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서동현은 7월에 접어들자 오른쪽보다 중앙에 치우치는 공격으로 측면 돌파보다 골에 대한 욕심을 냈지만 자신의 슈팅이 번번이 골대 바깥을 스치면서 팀의 7월 부진(1승3패) 장본인으로 비판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동현의 이 같은 욕심이 올림픽대표팀 제외로 이어진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제기 할 정도.

더구나 서동현이 병역 미필이란 점에서 이천수가 프리롤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충분해졌다. 프리롤 상태에서 더욱더 자신의 가치를 발산하는 스타일을 지닌데다 날카로운 킥력과 크로스, 경기 조율 능력까지 고루 갖춘 이천수의 합류는 수원의 전술적 비중을 높이 살 수 있다.

물론 '좌 천수 우 동현' 라인이 측면에 활용될 수도 있다. 이천수가 지난 시즌 페예노르트에서 왼쪽 윙 포워드로 활약했다는 점에서 그의 왼쪽 측면 기용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측면 뒷 공간을 보조할 양상민과 송종국의 수비 부담이 커지는 단점이 있겠지만 두 명의 프리롤 공격을 앞세워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는 장점이 있어 '골 넣는 공격축구'를 선호하는 차범근 감독이 채택할 여지가 분명 있다.

'이천수 프리롤'의 성공 여부는 이천수 본인에 달려 있다. 이천수는 지난 시즌 12경기 출전(선발 4회)에 그친데다 최근 발목 수술 재활까지 받고 있어 9~10월에 복귀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천수는 수원의 K리그 우승을 위해 데려온 선수라는 점에서 중요한 고비마다 그의 활용도와 가치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포스트 시즌을 겨냥한 비밀병기라는 것.

지난 두 시즌 동안 K리그 우승의 문턱에서 고개를 떨궈야 했던 수원. 올해는 그동안 갈망했던 우승의 한을 '이천수 프리롤'의 효과로 풀으며 K리그 명문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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