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관중석에 가면 꼭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기 제대로 못하거나 실수하는 선수에게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 욕하거나 비방하는 사람들 말이죠. 물론 짜증이 나면 자연스럽게 안좋은 말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지 않는다면 스트레스가 머릿끝까지 올라올 수 밖에 없죠. 왜냐하면 관중들은 돈을 내고 입장권을 구입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관중석에서 나쁜 소리들을 종종 하는 편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욕을 많이하는데다 직설적인 사람이라 경기장에서까지 성격이 나타나더군요. 그런데 대 놓고 큰소리로 욕하거나 모욕하지는 않습니다. 경기를 조용하게 보고 싶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해전 농구장갔을때 특정 팀에게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는 아저씨들의 추한 모습을 보니까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심하게 표현하면, 그 사람들 모습이 정말 쪽팔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톤의 혼잣말로 나쁜 말들을 내뱉죠. 마음속으로 스트레스를 끙끙 앓는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더 낫더군요. 저도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욕설 및 모욕이 안좋은 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사리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욕을 듣는 선수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경기장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하거나 열심히 뛰지 않는 선수는 몰라도(이것은 관중을 기만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경기장 많이 찾는 사람들에게는 좋게 보일리가 없죠. 저도 그런 선수들을 싫어합니다.) 좋은 활약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에게는 관중의 욕설에 마음의 부담이 되어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관중들의 심한 말이 가혹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유형의 선수들에게 "화이팅", "힘내"라는 큰 소리를 외칩니다.

그런데 얼마전 어린이날에 성남 종합 운동장에서 K리그 성남-전남의 경기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절실히 느낀게 있었습니다. 특정 선수에게 상당히 심한 모욕을 하는 축구팬을 보니까 '저건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굳이 큰 목소리로 선수에게 험한 말을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러웠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모욕을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심리로 그러는지 모르지만요.

상황은 이랬습니다. 전남의 어느 모 선수가 공격 상황에서 슈팅 기회를 놓치거나 잦은 패스미스를 연발하더니 어느 한 관중이 "아이~저 녀석, 발 자르라고 그래"라고 크게 모욕을 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발 잘라"를 두번씩이나 크게 외치더군요. 한참 뒤에는 그 선수가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자 이번에는 그 관중이 있던 맞은편 스탠드에서 "소심하게 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괴성이 나왔습니다. 이는 "발 잘라"라는 관중의 모욕에 완전히 기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중석에서 무책임하게 나왔던 목소리가 선수에게까지 다 들렸던 것이죠.

관중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성남 경기장의 특성과 밀접합니다. 성남 경기장은 월드컵 경기장에 비해 규격이 크지 않기 때문에 멀리서 퍼져 나오는 큰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관중석에서는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이 바깥에서 어떤 말들이 나오는지 잘 들리는 편이죠. 물론 경기장 관중들이 많거나 서포터즈의 응원소리가 컸다면 멀리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알 수 없지만, 이날은 1만 1818명의 관중이 입장한데다 성남과 전남 서포터즈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관중석에 잘 들렸습니다. 아직도 제 머릿속에서는 정성룡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맴돌고 있죠.

문제는 "발 잘라"라는 모욕이 해당 선수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게 들렸다는 점입니다. 축구 못한다고 해서 발을 자르라고 화를 내는 것은, 한마디로 축구를 하지 말라는 소리죠. 지금까지 축구에만 몰두했고, 축구로 생계를 꾸리는 프로축구 선수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말입니다. 그것도 신체적인 것과 연관지어 비난한 것은 매우 잘못된 행동입니다. 우리가 흔히 내뱉는 욕설은 "발 잘라"라는 말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죠.

그런데 그 선수는 다른 누구보다 골을 넣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당시 전남이 성남에게 1-3으로 밀렸는데, 전남은 후반 7분에 이천수를 투입하여 경기를 뒤집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여기에 이날 낮기온이 26도로 봄 날씨 치고는 무더웠는데, 그런 날씨 조건 속에서 뛰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그런 선수에게 "발 잘라"라는 말이 나온것은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2년전 수원-서울의 2군 경기에서 안정환이 경기 도중 관중석으로 난입했던 사건을 잊지 못합니다. 안정환은 한 여성 서울 서포터가 내뱉은 가족 모욕 및 지나친 비방을 참지 못해 관중석으로 달려가 거친 항의를 했습니다. 이에 안정환은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로 부터 벌금 1천만원 부과의 징계를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안정환이 아닌 서포터가 잘못한 것입니다. 그 서포터의 철없는 행동이 안정환의 돌발 행동이 화나게 했던 것이죠. 저를 비롯한 많은 축구팬들은 관중의 모욕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몇몇 축구팬들은 경기장에서 선수를 모욕하여 심리적으로 자극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성숙한 관람 문화가 아쉽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관람 문화를 탓하기 보다는 관중 모욕에 대한 심각성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물론 선수들은 각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관중의 몰상식한 모습을 훌훌 털어버리거나 또는 마음속의 부담이 되어 심리적으로 흔들릴 것입니다. 문제는 후자 격에 속한 선수들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관중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감을 느끼는데 앞으로의 경기에서 제 기량을 뽐내는데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일지 모릅니다. 마치 유럽 진출 초기에 네덜란드 홈팬들에게 거센 야유를 받았던 박지성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꼴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성남-전남의 경기는 어린이날에 열렸습니다. 이날 많은 어린이들이 무료입장하여 경기를 지켜봤는데, 관중석 어딘가에서 "발 잘라"라는 목소리가 들린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참 씁쓸합니다. '고객이 왕이다'라는 말이 있듯, 경기장에서는 돈을 내고 경기에 입장하는 관중이 왕입니다. 그러나 그라운드의 주인은 어느 누구도 아닌 선수입니다. 선수의 보다 나은 앞날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성질을 참으면서 아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저 사진은 제가 오랫동안 컴퓨터에 저장했던 사진 중 하나입니다. 당시 정규리그 3연패 및 통산 6회 우승을 기록한 성남의 주장이 샴페인을 들고 환호하는 장면이죠. 성남의 정규리그 우승(1993~1995년, 2001~2003년) 순간에는 항상 빠짐없이 등장했던 등번호 7번의 테크니션 미드필더 였습니다. 2003년 연말 성남 구단 홈페이지에 저 사진이 있어서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진을 보면서 예전에 성남 구장을 빈번하게 찾았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였죠.

저 사진은 2003년 11월 1일 성남vs부천전 종료 후에 성남 측에서 찍었던 것이며, 저는 이날 관중석 맨 앞에서 경기를 지켜 봤습니다. 경기 종료 후 성남 선수들이 정규리그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샴페인을 흔들고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도는 행사가 있었는데 '사진 속의 주인공'은 15,000명의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환호하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성남을 응원했던 관중들에 대한 보답이었죠.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남 홈구장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렸던 것은 이때가 마지막 이었습니다. 성남이 2004년 A3 챔피언스컵과 하우젠컵에서 우승하고도, 전자는 중국에서 열렸던 대회였고 후자는 성남 홈 구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었지만 대전 서포터즈가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우승 트로피를 파손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성남 선수들이 우승 세레머니를 마음 껏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남 홈 구장에서 열렸던 2004년 12월 1일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에서는 그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성남이 1차전 원정에서 '사우디 최강' 알 이티하드를 3-1로 이겨 2차전이 열리는 성남 홈 구장에서 우승이 기정 사실인것 처럼 여겨졌는데 뜻하지 않게 0-5 대패로 준우승에 만족했습니다. 성남이 전반전에 2골 내주는 어려운 경기 운영을 펼치고도 끝내 이 선수는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죠. 후반전 직전, 전광판에서 그의 모습을 비췄지만 그는 벤치에서 후배 선수들을 가만히 지켜봤을 뿐 몸을 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선수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연말에 구단으로부터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는데,

"재계약 포기"

1992년 프로 데뷔 이후 13시즌 동안 '이적 없이' 성남을 위해 몸을 바쳐 헌신하던 30대 중반의 노장 선수가 한순간에 방출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그의 활약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던 K리그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던 것이죠. 그가 성남 구단에 대한 아쉬움을 언론에 털어놓았던 내용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성남에서 13년 동안 뛰면서 많은 기록을 세웠는데 구단의 배려가 아쉽다. 통산 100호골과 70-70클럽 가입 등 앞으로 세워야 할 기록도 많은데 안타깝다"

그리고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왔던 12월 말 즈음에는 성남 서포터즈 <천마불사> 홈페이지를 통해 이러한 내용의 글을 남겼습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성남구단을 위해 여러분들을 위해 단 1분간이라도 뛸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100골에 대한 미련도 70-70에 대한 미련도 버렸습니다. 오직 진정한 스포츠인으로서 여러분 앞에 서고 싶습니다. 만에 하나 그러한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 하여도 최선을 다한 사람들로서 이세상에 비추어 진다면 미련없이 뒤돌아서 한번 크게 웃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 글에 '감동'했던 성남 서포터들은 한달 뒤 이 선수의 방출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재계약할 것을 요구 했습니다. 그러나 성남 구단은 서포터들의 요구에 아랑곳 않고 '벤치 멤버로 밀렸던'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2005시즌 개막에 맞춰 성남 구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K리그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성남 가슴에 별 6개를 안긴 주역이었음에도 홈팬들 앞에서 가진 은퇴식, 은퇴 경기, 영구 결번도 없이 정든 K리그 그라운드를 쓸쓸히 떠난 것이죠. 역대 K리그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던 그의 K리그 선수 생활 '말년'은 이렇게 초라함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1992년 프로 데뷔 이후 올해까지 17시즌 동안 줄곧 한 팀에서 뛰던 롯데 염종석(은퇴)과 SK 안경현(전 두산)을 떠올리실 겁니다. 최근 여론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두 선수의 일이 4년전 K리그에서 똑같이 벌어진 것입니다. 물론 염종석은 내년 시즌 롯데 홈 개막전에서 은퇴식을 치르지만, 그래도 씁쓸한게 사실입니다.)

이후, 저는 2005시즌 성남에서 개막전이 열렸던 경기를 본 뒤 -김학범 전 감독의 사령탑 부임 후 첫 경기였기 때문- 다시는 성남 구장을 찾지 않았습니다. 성남을 K리그 최고의 팀으로 이끌었던 선수를 내친 구단이 너무나 싫어서였죠. 당시 성남의 7번 주장 완장을 차던 그는 제 마음속의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대표팀의 7번 주장선수. 지금은 테오 월콧에게 7번을 넘겨주었죠.) 같은 또 하나의 '축구 영웅'이었던 셈입니다. 공교롭게도 그는 베컴처럼 프리킥 스페셜 리스트로 명성을 떨쳤죠.

그리고 2008년 12월 1일, 다시는 성남에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그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성남팬들을 위해 선수 자격으로서 단 1분 이라도 뛰고 싶다던 그가 친정팀에서 다시 일하게 된 것이죠. 성남 선수도, 성남 코치도 아닌 성남 감독 대행으로서 말입니다. "건방지다고 할 수 있겠지만 프로는 2등이 필요없다.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말에는 전혀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역 시절 많은 우승 경험을 했던 K리그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겁니다.

축구팬들은 그를 역대 K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K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로 치켜 세우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신태용.



어떤 이들은 신태용을 김현석(현 울산 코치)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국내용 선수'라고 말합니다. 신태용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 21경기(3골)에 출장했지만 K리그의 멋진 활약과는 달리 국가 대항전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A매치였던 1997년 5월 21일 일본전에서는 상대팀 선수들에게 철저히 막힌 끝에 고전했고 이후 무릎 부상까지 겹쳐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습니다. 당시 축구 전문가들은 그가 몸싸움과 체력에 약점이 있다고 지적했고 축구선수 치고는 왜소한 체격(174cm, 66kg...은퇴 전 70kg)도 아쉬웠던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신태용은 '한국 축구 최악의 굴욕이었던' 1996년 아시안컵 이란전 2-6 패배 당시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선수 중에 한 명입니다. 전반 33분 서정원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된 뒤 1분 만에 한국의 2번째 골을 넣는(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이 2-1로 앞섰죠.)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후반전이 되자마자 다리가 풀린 듯 이란 선수들에게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해 무너져 후반 6분 아지지의 동점골을 헌납하더니, 알리 다에이에게 4골 내주고 2-6 패배의 현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신태용은 당시 이란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듯, 1997~1998년 K리그에서 부상과 슬럼프까지 겹치는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1996년 미드필더로 뛰었음에도 29경기 21골 3도움으로 정규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던 그가 이듬해 19경기 3골 2도움에 그쳤고 1998년에는 24경기 3골 6도움에 벤치 멤버로 밀리는 수모까지 당했습니다. 신태용이 2년간 부진했던 시절의 성남(당시 팀 명은 천안 일화)은 그저 그런 평범한 팀으로 전락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신태용이 '제2의 전성기'로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 1998년 9월 고 차경복 감독이 성남 사령탑을 맡으면서 부터 였습니다. 차 감독에 의해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라'며 팀의 정식 주장을 맡아 연일 붙박이 주전 선수로 뛰었던 것이죠. 스승의 힘에 자신감을 되찾은 신태용은 1993~1995년에 이어 2001~2003년에 또 한번 정규리그 3연패 달성을 이끌었습니다. 90분 동안 충분히 뛸 수 있는 체력에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도맡아 끈질긴 몸싸움을 펼치는 선수로 거듭나면서 '업그레이드'에 성공한 것이죠.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의 중대 위기를 맡던 그가 그라운드에서 강건한 모습을 뽐낸 것이었습니다.

통산 401경기 출장 99골 68도움,
정규리그 6회와 하우젠컵, FA컵 우승/아시아 클럽 선수권, 아시아 슈퍼컵, A3 챔피언스컵, 아프로-아시안컵 우승,
1992년 신인왕,
1995년과 2001년 K리그 최초 두 차례 정규리그 MVP,
1996년 정규리그 득점왕,
K리그 BEST 11 9회(1992~1996년, 2000~2003년) 등등...

신태용은 많은 우승과 대기록을 세우며 K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습니다. 그것도 성남 소속으로 쌓았던 경력이기 때문에 축구팬들로부터 '역대 K리그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일하게 기록을 세우지 못했던 것은 100호골 달성과 70-70클럽이었을 뿐이죠.

특히 신태용의 100호골이 무산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실력이 부족해서 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2004 시즌 막판 팀의 페널티킥 기회가 왔으면서도 후배들에게 넘긴 것이죠. "100호골은 페널티킥 골로 넣지 않겠다"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100호골 만큼은 자신의 전매특허였던 날카로운 슈팅으로 멋지게 넣고 싶었던 것이죠.

100호골과 관련된 하나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2004년 9월 부산전이었는데 99호골 기록하던 신태용이 자신의 페널티킥 기회를 98호골 기록하던 '후배' 김도훈에게 넘겼던 것입니다. 신태용은 100호골을 반드시 필드골로 넣으려고 후배에게 페널티킥을 양보했고 김도훈이 99호골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한달 뒤 포항전에서 페널티킥 기회가 주어지더니 이번에도 김도훈에게 양보한 것입니다.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100호골을 기록하더라도 끝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겁니다. 결국 김도훈은 선배의 양보 속에 100호골을 넣었지만 신태용은 더 이상 자신의 통산 골 기록에 숫자 '1'을 더하지 못하고 쓸쓸히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신태용이 축구팬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K리그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2001년에는 성남이 정규리그에서 우승하자 일본 J2리그에 속한 오이타 트리니타로 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 선수들의 J리그 진출이 활발했던 시기여서 J2리그에서도 한국 선수 영입에 군침 흘렸고 교토 퍼플상가가 '촉망받는 유망주' 박지성을 영입하더니 오이타는 그해 K리그 MVP를 수상한 신태용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태용은 "K리그 MVP가 왜 일본 2부리그에서 뛰어야 하느냐"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사실,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J2리그에서 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그는 성남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며 K리그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일본 진출을 원하는 국내 선수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죠. 이후 신태용은 K리그 올스타전 등 각종 K리그 행사에서 인터뷰를 가지면 항상 "K리그 경기 많이 보러오세요"라는 멘트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2003년 7월 27일 대전전에서는 축구팬들에게 두 번의 '진기명기쇼'를 펼쳤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왼쪽 코너킥이 누군가의 머리도 거치지 않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K리그 통산 11번째 코너킥 골을 성공시킨 것입니다. 또 하는 경기 도중 골키퍼를 봤던 것입니다. 후반 막판 골키퍼 김해운이 목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는데 팀이 교체 한도 카드 3명을 모두 쓰는 바람에 필드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골키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에 신태용은 골키퍼를 맡겠다며 장갑을 끼었고 상대팀 슈팅 5개를 잡아 2골 내줬음에도 팀의 3-2 승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신태용의 트레이드 마크가 하나 있습니다. 신태용은 관중석 가까이에 있으면 항상 박수를 유도했습니다. 주로 성남의 홈 경기와 올스타전에서 관중석에 다가가 박수를 치며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이끌었죠. 축구팬들이 축구 경기를 재미있게 관전하기 위해서, 관중들의 박수가 그라운드에 서 있는 22명의 선수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박수를 유도했던 것입니다.

2004년 3월 전북과의 슈퍼컵에서는 관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팀이 경기 종료 전까지 0-2로 패색이 짙어지자 후반 45분 관중석 가까이에서 윤정환의 마크를 뿌리치기 위해 드리블 돌파를 시도 할때 큰 목소리로 "야. 아저씨도 좀 뛰자"라며 관중들을 웃기게 했습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관중 앞에서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농담성 어조로 관중들에게 팬 서비스를 안긴 것이죠.

2003년 7월 수원전에서는 신태용의 '배짱'이 두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가 심판 판정에 불만 품으며 그라운드를 향해 물병 투척하자 그 자리로 다가간 것이죠. 신태용은 자신 앞에 물병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자 병 뚜껑을 열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가 그랑블루에게 외쳤던 한 마디가 이랬습니다.

"물 마시게 해줘서 고마워"

라며, 그랑블루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런 일을 예상치 못했던' 그랑블루 분위기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이후 수원 서포터 어느 누구도 그라운드에 물병을 던지는 못했습니다. 신태용의 '포스'가 다른 선수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화였죠. 당시 K리그 최고의 다혈질로 꼽히던 190cm의 샤샤도 자신보다 16cm 작은 신태용 앞에서 쩔쩔맸고 상대팀의 후배선수들이 신태용에게 거친 파울을 가하면 재빨리 고개 숙여 인사할 정도로(주로 광주 상무 선수들이 그러더군요.) 오랜 주장 생활을 통해 후배 선수들을 장악하는 리더십이 강했던 겁니다. 그런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38세의 나이에 사령탑을 맡게 된 것이죠.




신태용 하면 '최고'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현역 시절 관중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던 것 처럼 실력에서도, 커리어에서도 늘 K리그 최고였으니까요. 25년의 K리그 역사가 50년, 100년이 흘러도 '신태용'이란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역대 K리그 최고의 선수', 'K리그 레전드'라는 수식어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런 신태용이 지난 1일 성남 감독 대행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2009시즌 성남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겠다는 당찬 포부를 나타냈는데 이러한 면모는 37세의 나이에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사령탑을 맡아 팀의 프리메라리가 독주를 이끌고 있는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을 떠오르게 합니다. 현역 시절 '신태용 맹활약=성남 우승' 공식을 성립시켰던 그가 사령탑으로서 성남의 고공질주를 이끌며 '한국판 과르디올라'로 떠오를지 주목됩니다. 공교롭게도 신태용과 과르디올라는 현역 시절 성남과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이자 주장으로 활약하여 선수들을 강하게 통솔했던 스타일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2009시즌 K리그 최대의 이슈는 '신태용의 성남'입니다. 성남 감독 대행으로서 K리그 지도자에 첫 발을 내딛는 신태용이 자신의 화려했던 선수 시절에 이어 또 하나의 '신화'를 이룰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아울러 "성남 홈 구장을 노란 물결로 뒤덮일 수 있도록 팬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힌 그의 축구팬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신태용 감독 화이팅...!!!

By. 효리사랑
Posted by 나이스블루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와의 계약이 종료된 이동국(29)이 K리그 복귀 모색 끝에 성남 이적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 구단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5일 모 일간지를 통해 "성남은 스타성과 한 방이 있는 이동국의 가치를 인정해 영입을 확정했고, 이동국도 성남의 올 시즌 우승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이 맞아 떨어졌다"고 말해 그가 올해 후반기부터 성남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 구단 관계자가 최근 여러 언론을 통해 "이동국이 성남에 이적을 타진하는 것이 맞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그의 성남행은 이전부터 유력했던 소식.

그동안 에이전트 업계에서는 '이동국이 성남을 비롯 수원, 서울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수도권 '빅3' 클럽들이 이적 대상에 떠올랐다. 그는 수도권 이적설이 나돌기 이전까지 친정팀 포항과 먼저 접촉해 약 8억원의 연봉을 요구했지만 끝내 결렬된 상황. 물론 미들즈브러와 계약이 끝나 'K리그 복귀시 포항 우선 이적' 조항은 효력을 잃은 상태여서 수도권 클럽 이적에 계약적인 무리는 없다.

물론 이동국은 수도권 빅3와 포항으로 이적하더라도 그들의 넘쳐나는 공격 자원 때문에 주전 진입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미들즈브러에서의 잦은 결장과 오프 시즌으로 인한 휴식 때문에 경기 감각이 떨어진 상태에서 몸 상태가 최정상에 올라있는 기존 주전 선수들과의 경쟁이 힘겨울거란 지적이다. 그 외 다른 K리그 팀들이 있지만 '최근 이적 협상 과정에서' 많은 연봉을 받기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동국이 직접 이적을 원할지는 의문.

이동국은 한때 스위스와 벨기에, 일본 리그 이적을 추진했으나 이적 협상이 줄줄이 실패로 끝나면서 '해외에서 더 뛰고 싶다'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마저 무너졌다. 미들즈브러에서의 부진과 대표팀 징계라는 악영향이 작용해 최근까지 차기 행선지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것.

따라서 이동국에게 맞는 K리그 팀은 그의 별명인 '사자왕'처럼 포효하여 부활할 수 있는 클럽이 적격이었다. 긴 시간의 고민 끝에 성남 이적이라는 택한 그는 치열한 주전 경쟁 속에서도 한때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렸던 명성을 다시 떨치기 위해 김학범 감독의 품에 안겼다.

이동국, '샤샤-김대의-김도훈-우성용-두두'에 이어 성남에서 부활?

공교롭게도 이동국을 영입한 성남은 유독 '공격수 부활'과 인연이 많은 팀이다. 2001년 성남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샤샤를 비롯 김대의, 김도훈, 우성용, 두두가 그 대상이다. 물론 성남은 올 시즌 '모따-조동건(김동현, 최성국)-두두'를 스리톱에 활용하는 막강한 공격진을 구축해 이동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다. 그러나 성남이 공격수 부활과 연관 깊다는 점에서 이동국의 성남행이 그리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앞에 언급된 성남 공격수가 부활한 그 해에는 성남이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2000년 가시와 레이솔과 수원에서 부진 끝에 퇴짜를 맞은 샤샤가 이듬해 성남에서의 맹활약을 앞세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것이 그 발단. 90년대 말 일본 J리그에서의 부진과 2000~2001년 성남에서 고전하던 김대의는 2002년 팀의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맡아 17골 12도움의 기록으로 정규리그 2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성남 공격수의 부활 역사는 2002년 전북에서의 부진으로 2군 강등의 쓴맛을 봤던 김도훈으로 바톤이 넘겨졌다. 그는 이듬해 성남에서 역대 K리그 최다골(28골)을 쏘아올리며 팀의 정규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2005년 성남 이적 후 3골에 그쳤던 우성용은 이듬해 19골 넣으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견인했고 지난해 서울에서 기대 이하의 경기력과 부상으로 신음하던 두두는 올해 정규리그 15경기에서 14골 넣는 맹활약 속에 성남의 7연승을 이끌며 팀의 건재를 알렸다.

결과적으로 '프로 입단 후 우승 경험이 없는' 이동국에게는 성남에서의 부활 가능성은 물론 우승에 대한 희망까지 키우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됐다. 최근에는 조동건의 부상과 김동현의 부진, 최성국의 조커 전환, 이들의 병역 미필이란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할 기회까지 주어졌다. 또 성남에는 이동국의 국가대표팀 선배였던 김도훈이 코치를 맡고 있어 누구보다 자신의 고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있다.

이동국의 성남행은 팀 전력 뿐만 아니라 구단 마케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규리그 우승 7회의 화려한 업적 속에서도 관중이 적은 것으로 유명한 성남에게 이동국 같은 '꽃미남+전국구 스타 플레이어'의 입단은 충분히 환영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요소가 반영된 듯, 26일 새벽 한 언론에 보도된 이동국 성남 이적 확정 기사에 따르면 '이동국은 성남으로부터 연봉과 수당을 합쳐 10억원을 받게 됐다'는 정보가 보도되기도.

성남에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할 이동국. 그가 새로운 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사자왕의 면모를 되찾을지 축구팬들은 그가 성남에서 좋은 결과 거두기를 바라고 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와의 계약이 종료된 이동국(29)이 K리그 복귀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성남 이적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 관계자는 최근 여러 언론을 통해 "이동국이 우리 팀에 이적을 타진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아직 영입이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않았다"고 밝혀 성남행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에이전트 업계에서는 '이동국이 성남을 비롯 수원, 서울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수도권 '빅3' 클럽들을 저울질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수도권 이적설이 나돌기 이전까지 친정팀 포항과 먼저 접촉해 약 8억원의 연봉을 요구했지만 끝내 결렬된 상황. 물론 미들즈브러와 계약이 끝나 'K리그 복귀시 포항 우선 이적' 조항은 효력을 잃은 상태여서 수도권 클럽 이적에 계약적인 무리는 없다.

그러나 이동국은 수도권 빅3와 포항으로 이적하더라도 그들의 넘쳐나는 공격 자원 때문에 주전 진입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미들즈브러에서의 잦은 결장과 오프 시즌으로 인한 휴식 때문에 경기 감각이 떨어진 상태에서 몸 상태가 최정상에 올라있는 기존 주전 선수들과의 경쟁이 힘겨울거란 지적이다. 그 외 다른 K리그 팀들이 있지만 '최근 이적 협상 과정에서' 많은 연봉을 받기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동국이 직접 이적을 원할지는 의문.

이동국은 한때 스위스와 벨기에, 일본 리그 이적을 추진했으나 이적 협상이 줄줄이 실패로 끝나면서 '해외에서 더 뛰고 싶다'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마저 무너졌다. 미들즈브러에서의 부진과 대표팀 징계라는 악영향이 작용해 최근까지 차기 행선지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것.

따라서 이동국에게 맞는 K리그 팀은 그의 별명인 '사자왕'처럼 포효하여 부활할 수 있는 클럽이어야 한다. 그럴 만한 팀이 여럿 있겠지만 필자는 이동국의 성남행을 추천하고 싶다.

이동국, '샤샤-김대의-김도훈-우성용-두두'에 이어 성남에서 부활?

이동국의 영입을 검토중인 성남은 유독 '공격수 부활'과 인연이 많은 팀이다. 2001년 성남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샤샤를 비롯 김대의, 김도훈, 우성용, 두두가 그 대상이다. 물론 성남은 올 시즌 '모따-조동건(김동현, 최성국)-두두'를 스리톱에 활용하는 막강한 공격진을 구축해 이동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다. 그러나 성남이 공격수 부활과 연관 깊다는 점에서 이동국의 성남행이 그리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앞에 언급된 성남 공격수가 부활한 그 해에는 성남이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2000년 가시와 레이솔과 수원에서 부진 끝에 퇴짜를 맞은 샤샤가 이듬해 성남에서의 맹활약을 앞세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것이 그 발단. 90년대 말 일본 J리그에서의 부진과 2000~2001년 성남에서 고전하던 김대의는 2002년 팀의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맡아 17골 12도움의 기록으로 정규리그 2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성남 공격수의 부활 역사는 2002년 전북에서의 부진으로 2군 강등의 쓴맛을 봤던 김도훈으로 바톤이 넘겨졌다. 그는 이듬해 성남에서 역대 K리그 최다골(28골)을 쏘아올리며 팀의 정규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2005년 성남 이적 후 3골에 그쳤던 우성용은 이듬해 19골 넣으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견인했고 지난해 서울에서 기대 이하의 경기력과 부상으로 신음하던 두두는 올해 정규리그 15경기에서 14골 넣는 맹활약 속에 성남의 7연승을 이끌며 팀의 건재를 알렸다.

결과적으로 '프로 입단 후 우승 경험이 없는' 이동국에게는 성남에서의 부활 가능성은 물론 우승에 대한 희망까지 키우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조동건의 부상과 김동현의 부진, 최성국의 조커 전환, 이들의 병역 미필이란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할 기회가 분명 존재한다. 또 성남에는 이동국의 국가대표팀 선배였던 김도훈이 코치를 맡고 있어 누구보다 자신의 고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있다.

이동국의 성남행은 팀 전력 뿐만 아니라 구단 마케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규리그 우승 7회의 화려한 업적 속에서도 관중이 적은 것으로 유명한 성남에게 이동국 같은 '꽃미남+전국구 스타 플레이어'의 입단은 충분히 환영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요소가 반영된 듯, 지난 25일 스포츠 동아에 따르면 '성남은 이동국이 원하는 몸값보다 높은 연봉 10억원 정도를 베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정보가 보도되기도.

K리그 후반기 선수 등록 기한이 이번달 31일까지인 상황에서 이동국이 남은 기간 성남행을 선택할지 아니면 다른 팀의 이적을 결정지을지 축구팬들은 그가 새로 이적할 팀에서 좋은 결과 거두기를 바라고 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성남 일화의 브라질 골잡이 두두(28)의 골 폭풍이 무섭게 타오르고 있다.

두두는 지난달 25일 대구전 1골 2도움을 시작으로 23일 대전전 결승골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출장한 최근 6경기에서 연속 골을 뽑아 넣으며(6골) 성남의 K리그 7연승 행진을 이끌고 있다. 올 시즌 21경기서 16골 6도움(정규리그 15경기 14골 4도움)의 뛰어난 기록을 거두며 팀의 눈부신 선전을 주도한 ´명불허전´ 두두는 올 시즌 K리그 최고 골잡이라 부를 만 하다.

이 같은 두두의 활약은 시즌 전 예상을 뒤엎었다는 평가. 지난해 서울에서 부상에 따른 기대 이하 활약으로 20경기 6골 1도움에 그쳐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자신의 친정팀 성남으로 돌아왔기 때문. 그는 실망스러웠던 지난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3월 13일 수원전 골을 시작으로 ´물 오른´ 득점포를 앞세워 성남의 연승 행진을 주도하며 서울 시절의 악몽을 깨끗이 씻었다.

2004년 여름 성남에 입단했던 두두의 최대 강점은 빠른 스피드. 5시즌 동안 K리그에서 자신의 빠른 발을 앞세워 상대팀 수비진을 쉽게 허물며 화끈한 골 장면과 이에 못지 않은 어시스트 능력으로 성남의 최전방을 빛냈다. 최근에는 성남 스리톱의 일원인 모따, 최성국과 함께 상대팀 문전을 적극 파고든 뒤 감쪽할 사이에 골을 넣으며 전반적인 팀 공격 전술 운영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무엇보다 올 시즌 정규리그 15경기에서 14골 넣은 두두의 순도높은 골 기록(경기당 0.99골)은 지난해 K리그 득점왕 까보레(15경기 출장 당시 10골, 경기당 0.66골)를 통계상으로 넘어섰다는 평가다. 정규리그 득점 순위에서는 나란히 9골로 정규리그 득점 공동 2위를 기록중인 라돈치치(인천) 에두(수원) 데얀(서울)을 5골 차이로 크게 앞서 있어 당분간 두두의 1위 자리를 추월할 골잡이의 등장 가능성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정도.

물론 두두는 2006년 여름 서울 이적 이전까지 줄곧 윙 포워드를 소화하며 골잡이보다 도우미 역할에 치중을 두었던 존재다. 팀의 골잡이였던 김도훈(현 성남 코치) 우성용(현 울산)을 향해 적재적소에 찔러주는 침투 패스와 크로스를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이타적인 역할로 인정받아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남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부각됐다.

이러한 두두 효과를 본 성남은 6월 23일 대구전 4-3 승리 이후 최근 K리그 7연승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리그 우승의 신호탄을 쐈다. 시즌 중반에 접어들자 두두 중심의 공격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아들어가고 있어 공격 전개 방식과 골 장면에서 그가 화려하게 마무리짓는 장면이 늘어가는 요즘이다.

두두는 지난 4월 14일 인천전이 끝난 뒤 "성남에서 뛰는 것은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나는 성남의 스타일과 그 밖의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친숙함이 최근 활약에 도움이 됐다"고 성남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며 앞으로도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팀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른 성남의 ´두두 효과´는 올 시즌 빛을 발하며 정규리그 우승 가능성을 비추게 했다. 성남 유니폼에 별 8개를 새기기 위한 그 중심에 ´올 시즌 K리그 최고 골잡이´ 두두가 서 있는 것이다. 그의 무섭게 타오르는 골 폭풍은 성남의 연승 행진과 맞물려 K리그의 주요 볼 거리를 팬들에게 선사 할 것으로 전망된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