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리버풀의 감독으로 유명했던 빌 샹클리는 "축구팀은 피아노와 같다. 옮기는 데는 여덟 명이 필요하지만 그 악기를 연주하는 건 세 명 뿐이다"라며 살림꾼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스타 선수가 경기를 지배하려면 살림꾼이 뒤에서 헌신적인 활약을 펼쳐야 가능함을 강조했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가사 일을 도맡으며 가족들이 일상 생활에 전념하도록 돕는 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K리그의 수원 블루윙즈도 마찬가지 입니다. 1996년 K리그 참가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우승을 이루면서 중원의 살림꾼들이 팀을 지탱했습니다. 1998년 수원의 첫 K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윤성효, 1990년대 후반 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수원 중원을 주름잡았던 김진우, 2006년 후기리그 우승 멤버였던 김남일, 2008년 수원의 네번째 K리그 우승을 책임진 조원희가 대표적입니다. 네 명은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K리그 톱클래스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윤성효는 고종수, 김진우는 고종수-가비-김두현, 김남일과 조원희는 이관우-백지훈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며 전형적인 홀딩맨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수원은 윤성효-김진우-김남일-조원희 같은 특출난 살림꾼이 없습니다. 플레이메이커가 없는 아쉬움도 있지만 홀딩맨으로 활용할 스페셜 리스트가 마땅치 않죠. 현재 수원의 지휘봉을 잡는 윤성효 감독이 "선수가 없다"고 발언한 것도 나름의 일리가 있습니다.(그러나 선수가 없다고 하기에는 최근 이적시장에서 너무 많은 선수들을 영입했던) 이용래-오장은 공존 실패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오범석-양준아 같은 윙백들에게 홀딩맨을 맡겼지만 성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지난 20일에는 제주 미드필더 박현범 영입을 공식 발표하면서 양준아를 트레이드 했습니다.

수원의 박현범 영입은 중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박현범이 가세하면서 그동안 대표팀을 병행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던 이용래의 체력적 부담을 덜어주면서, 4-1-4-1 전환시에는 이용래-오장은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현범은 이용래-오장은과의 콘셉트가 겹칩니다.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도 아닌 4-4-2 중앙 미드필더 또는 앵커맨 성격이 강합니다. 박현범도 이용래-오장은처럼 움직임 및 패싱력에 일가견 있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수원이 원하는 홀딩맨과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런 수원은 박현범-이용래-오장은을 모두 가용할 경우 기존의 3-4-3에서 4-1-4-1로 전환할 가능성이 큽니다. 더블 볼란치를 세우는 4-3-3 혹은 4-2-3-1 전환도 예상되지만 윤성효 감독은 4-1-4-1을 선호합니다. 박현범이 수비형 미드필더, 이용래-오장은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수원의 허리를 지탱하겠죠. 우선, 세 가지의 장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수비적인 역할이 많아지면서 공격적인 장점을 활용하기 어려웠던 이용래의 폼이 살아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장은은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오범석과의 연계 플레이를 늘리면서 때에 따라 슈팅을 시도하는 과감함을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용래-오장은은 미드필더로서 득점력이 충분한 이점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현범이 수비형 미드필더 구실을 못하면 이용래-오장은 조합이 어긋나면서 수원 공격 밸런스가 무너질 우려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4-1-4-1은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이 벌어지면 상대에게 중앙 공격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수원의 센터백은 발이 느리기로 유명합니다. 센터백들이 골문쪽으로 내려와서 라인을 잡으니까 미드필더들의 수비 가담이 많아지면서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지 않는 약점을 아직까지 극복 못했습니다. 그래서 4-1-4-1이 아닌 3-4-3을 활용하며 최근에는 오범석을 센터백으로 내렸습니다. 박현범이 궂은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수원 수비의 약점이 노출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박현범의 수비력이 강하지 않습니다. 2009년까지 수원에서 뛸 때는 수비력 약점이 아쉬웠던 선수였습니다. '박에이라(박현범+비에이라)'라는 별명으로 주목 받았던 2008년에는 조원희와 공존하면서 공격적인 재능을 마음껏 활용했지만, 조원희가 떠난 2009년 부터 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자기 관리까지 소홀해지면서 결국 제주로 떠나게 됐습니다. 특히 수비력에 있어서는 순발력이 느린것이 흠입니다. 194cm 장신 선수임에도 제공권에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 단점도 있죠. 그리고 2~3년 전 수원 시절에는 볼을 잘 빼앗기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제주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맹활약 펼쳤지만 4-2-3-1의 더블 볼란치 짝을 이루는 오승범의 살림꾼 모드가 없었다면 수비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피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과거의 수원 시절만큼 약하지 않지만요.

현역 시절 반칙왕으로 유명했던 수원 레전드 김진우도 발이 느린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김진우는 상대 공격을 끊어내는 세밀함과 부지런함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홀딩맨으로서 궂은 역할을 마다 않는 성실함이 오랫동안 습관에 베이면서 자신만의 클래스를 만들었습니다. 2005시즌에는 이적생 김남일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는 외부의 예상과 달리 붙박이 주전을 지키며 김두현을 윙백으로 밀어냈죠. 하지만 박현범은 김진우처럼 수비력에서 농익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아닙니다. 다시 돌아온 수원에서 열의를 다하면 수비력 약점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축구 선수의 스타일이 하루 아침에 바뀔수는 없습니다.

수원의 더블 볼란치 전환 가능성도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용래-오장은 중에 한 명은 박현범과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공격적인 재능을 줄여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아직 K리그 이적시장 기간이 더 남았지만, 수원이 홀딩맨을 추가 수혈하려면 박현범-이용래-오장은 중에 1~2명을 벤치로 내리거나 또는 오장은을 오른쪽 윙어로 배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오장은은 측면에서 뛰었던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수원의 향후 이적시장 행보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박현범을 영입한 현 시점에서는 기존처럼 살림꾼이 없습니다. 시즌 후반기 대도약을 꿈꾸는 수원의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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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는 호날두가 떠났지만 (전력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는 한 명의 팀이 아니다. 호날두 이적 이후에도 그 이전과 동일한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미드필더 라이언 긱스는 20일(이하 현지시간) 잉글랜드 일간지 <더 피플>을 통해 밝힌 말입니다. 긱스는 맨유가 풀럼에게 0-3으로 패한 이후에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맨유의 부진 원인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공백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맨유는 호날두의 팀이 아니며 호날두와 더불어 걸출한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맨유의 최근 부진 및 공격 역동성이 사라진 원인으로 호날두 공백을 지목합니다. 하지만 맨유는 올 시즌 호날두 공백을 점유율 축구로 메웠으며 그 과정에서 '이타적이었던' 루니가 골잡이로 거듭났고 미드필더들의 득점이 늘어났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호날두의 슬럼프 속에서도 꾸준히 승점 3점을 얻으며 프리미어리그 3연패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그런 맨유의 더딘 행보는 호날두 공백과는 별개의 문제가 있음을 상징합니다.

바로 수비수들의 줄 부상입니다. 파트리스 에브라를 제외하면 1군의 모든 수비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그래서 리저브팀의 왼쪽 풀백이었던 리치 드 라예가 1군에서 좌우 풀백과 센터백을 모두 겸하고 있으며 캐릭-플래처가 수비수로 내려갔습니다. 지난 6일 볼프스부르크 원정과 20일 풀럼 원정에서는 3백으로 전환했고 각각 나니-박지성, 에브라-발렌시아가 좌우 윙백을 맡았습니다. 수비수들의 줄 부상은 맨유 전술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컸고 이것은 맨유의 공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풀럼전 0-3 패배가 그 예 입니다. 전문 센터백이 아닌 선수들로 구성된 '드 라예-캐릭-플래처'의 3백이 불안한 대인마크와 치명적인 패스미스를 일관하더니 미드필더들의 수비 부담이 커지자 공격 비중이 줄었고 공격수들이 최전방에 고립됐습니다. 골잡이 루니가 미드필더진에서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펼치고 상대가 소유한 공을 따내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맨유의 수비 불안은 축구에서 수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맨유로서는 부상자 명단에 포함된 수비수들의 빠른 복귀를 절실히 원할 것입니다. 수비수들이 복귀해야 팀이 수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맨유가 수비수들의 복귀로 예전의 철옹성 수비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입니다. 맨유는 수비수 줄 부상 이전에도 고비때마다 수비 불안으로 상대에게 실점을 헌납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보다 올 시즌에 그런 현상들이 부쩍 많아졌으며 문전 안에서 상대의 문전 쇄도를 허용하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비디치-퍼니단드-오셰이 같은 주전 수비수들의 폼이 지난 시즌보다 떨어졌습니다. 비디치-퍼디난드는 지난 시즌 막강한 센터백 라인을 형성했으나 올 시즌에는 빠른 주력을 지닌 선수들에게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문전 안에서의 상황 판단 능력과 집중력도 약해졌습니다. 잦은 부상으로 폼이 떨어진 것이 들쭉날쭉한 수비력을 발휘했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셰이는 올 시즌 들어 활동 범위가 줄어들면서 측면 윙어의 후방 공격을 돕지 못했고 상대에게 뒷 공간을 허용하는 경우도 지난 시즌보다 더 늘었습니다.

그래서 비디치-퍼디난드-오셰이가 부상 복귀 후에도 불안한 수비력을 일관하면 맨유의 내림세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세 명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알 수 없지만, 비디치-퍼디난드의 경기력 부진 원인이 잦은 부상이었다는 점은 맨유의 침체 극복을 장담하기 힘든 요인입니다. 특히 퍼디난드는 토트넘 이적설까지 거론 될 정도로 전반적인 폼이 예전같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상대 공격의 1차 저지선인 미드필더들이 수비수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줄 수 밖에 없습니다.

맨유의 지난 시즌 리그 우승 원동력은 포백의 건재함이 있었지만 이들을 뒷받침하는 조연들의 역할도 빛났습니다. 수비 성향이 짙은 미드필더들의 맹활약이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캐릭-플래처-박지성이 바로 그들입니다. 세 명의 미드필더는 적극적인 수비가담과 수비 상황에서의 절묘한 위치선정, 포백과의 매끄러운 연계 플레이로 수비적인 역할에서 적지 않은 공헌을 했습니다. 포백이 과도한 수비 부담을 받지 않았던 것도 캐릭-플래처-박지성의 압박이 빛을 발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플래처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플래처는 수비 과정에서 상대의 중앙 공격 길목을 미리 선점하여 공격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압박 상황에서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상대의 예봉을 끊었습니다. 상대 공격을 저지하면 공을 소유하면서 팀 공격의 길목을 찾는데 집중하거나 아니면 전방쪽으로 정확한 패스를 연결했습니다. 이러한 플래처의 안정적인 경기 운영은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빛을 발했고 호날두 부재와 비디치-퍼디난드의 경기력 저하라는 단점을 안고 있던 맨유가 불안 요소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러나 플래처는 현재 맨유 중원에 없습니다. 수비수들의 줄 부상으로 미드필더들이 수비수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어쩔 수 없이 캐릭과 함께 수비수로 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데르손-스콜스-깁슨 같은 공격 성향의 미드필더들이 중원을 지키고 있지만 세 선수 모두 수비 상황에서의 집중력 부족과 압박 과정에서의 연계 플레이에서 문제점을 드러내 수비 불안을 가중 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맨유의 3백이 붕괴되었고 중앙 미드필더 어느 누구도 플래처의 포지션 전환 공백을 메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축구에서 살림꾼의 존재감이 얼마만큼 강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중원에서 누군가가 궃은 역할을 해야 공격과 수비 옵션들의 경기력이 빛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첼시는 마이클 에시엔이라는 살림꾼의 확실한 존재감 속에서 터프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고 수원의 올 시즌 부진 원인은 조원희의 위건 이적이 결정타 였습니다. 맨유에서는 로이 킨이 살림꾼으로서 전성기를 이끌었고 2006/07시즌의 캐릭과 2007/08시즌의 하그리브스를 거쳐 지금의 플래처가 있었습니다. 맨유가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전 0-2 패배의 원인 또한 플래처의 공백이 결정타였습니다.

그래서 맨유가 지금의 침체를 극복하려면 부상중인 수비수들의 복귀가 전제 된 가운데 플래처의 중원 복귀가 절실합니다. 플래처가 중원으로 돌아와야 맨유의 공수 밸런스가 불안에서 안정 모드로 돌아설 수 있고 수비수들이 안정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공격 옵션들이 공격에 전념하여 루니의 골이 늘어나고 발렌시아의 문전 침투가 용이해지는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위한 꾸준한 오름세를 달리기 위한 시작점은 플래처의 중원 복귀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많은 축구팬들은 스콜라리 체제에서 좌초하던 첼시가 지난 2월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고공행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마법기질'을 꼽고 있습니다. 끝없이 내림세를 거듭하던 첼시가 트레블(3관왕)을 노릴 수 있는 발판의 기회를 마련한 것은 히딩크 감독 부임과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과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 및 FA컵 4강 진출,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리버풀전 3-1 승리 등등 트레블 달성에 전력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이러한 첼시의 가파른 행보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사람은 단연 히딩크 감독 이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 혼자서 첼시의 오름세를 주도했던 것은 아닙니다. 축구는 11명이 뛰는 단체 종목이기 때문에 감독과 선수가 서로 합심해야 좋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 11명 중에서도 공수 양면에 걸쳐 경기의 중심 역할을 바로 잡는 믿을맨이 있다면, 거의 매 경기마다 좋은 성과를 달성하기가 수월합니다. 여기에 여러 포지션까지 소화할 수 있다면 감독 전술 운용에 커다란 효과와 이득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스콜라리 체제에서는 해당 선수의 긴 부상 공백이 화근이 되어 끝없는 내리막을 거듭했지만 히딩크 체제에서는 그 선수가 복귀하면서 시즌 막판인 지금까지 가파른 상승 곡선을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 선수는 첼시의 살림꾼이자 세계 최정상급 미드필더로 꼽히는 '중원의 들소' 마이클 에시엔(27, 가나 출신)입니다.

에시엔, 첼시 전력에 없어선 안될 '살림꾼'

현대 축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특히 팀의 중원에서 궃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살림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궃은 역할을 해야 공격 옵션들이 수비 부담을 느끼지 않고 공격에 전념할 수 있으며, 수비수들은 살림꾼이 자신의 앞선에서 상대팀 공격을 활발히 끊는 장면에 힘을 얻으며 부담없이 수비에 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살림꾼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거나 수비에 전념할 수 있는 중원 옵션이 없다면 미드필더진에서의 압박이 약해지고 볼 점유율은 물론 수비에서 상당히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수비 영역을 뛰어 넘어, 살림꾼이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대 축구는 선수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포지션 파괴 현상까지 두드러지면서 수비형 미드필더에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기본적인 몸싸움과 상대 공격의 흐름을 차단하는 수비력은 물론이며 넓은 시야를 앞세운 예리한 패싱력, 상대팀 압박을 한꺼풀 벗겨낼 수 있는 감각적인 개인기와 볼 키핑, 그리고 골에 이르기까지 '슈퍼맨'을 방불케 하는 장점들을 골고루 갖춰야 합니다. 살림꾼 스타일의 미드필더가 가장 완벽하게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이 바로 이러한 유형이죠. 에시엔은 이러한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미드필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는 에시엔이 첼시 전력에 중요한 선수이자 세계 최고의 클래스를 지닌 살림꾼인지 실감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경기였습니다. 첼시와 상대했던 리버풀은 '제토라인' 제라드-토레스 콤비를 앞세워 많은 골을 넣는 팀이자 공격 의존도가 높은 팀인데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 아스톤 빌라가 두 선수의 출중한 득점력 앞에 대량 실점을 헌납하여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지만 에시엔은 달랐습니다.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빠른 순발력과 천부적인 수비력을 앞세워 미드필더진에서 스티븐 제라드로 연결되는 물줄기를 번번이 차단했고, 제라드의 발을 꽁공 막는 타이트한 압박 수비로 포백 수비의 부담을 덜어 주었습니다.

첼시가 전반 5분 실점 이후 전열을 되찾아 세 골을 몰아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에시엔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에시엔이 '알론소-루카스'로 짜인 상대 더블 볼란치의 공격 활로를 번번이 차단하고 미하엘 발라크와 프랭크 램퍼드의 협력 수비까지 짜임새 있게 이뤄지면서 첼시가 전반 중반부터 허리싸움에서 우세를 점하더니 경기 종료까지 무수히 많은 공격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히딩크 감독의 '리버풀 격파' 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결정적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공격에서도 에시엔의 진가는 빛났습니다. 적극적인 문전 침투로 루카스 레예바를 여러차례 농락하더니 '말루다-드록바-칼루'로 짜인 스리톱에게 많은 골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죠.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살림꾼 자리에는 발라크가 뒷 공간에서 커버 플레이를 했으니, 중원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에시엔의 패싱력은 양팀 선수 중에서 가장 정확도가 높았습니다. 이날 에시엔은 55개의 패스 중에 47개를 성공했는데 85%의 높은 패스 정확도를 기록했습니다. 동료 미드필더인 램퍼드(40/67, 60%) 발라크(30/45, 67%)가 60%대의 패스 정확도를 기록했으니, 첼시 미드필더진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격 지원을 했습니다. 첼시 3톱인 말루다(24/40, 60%) 드록바(19/33, 58%) 칼루(21/35, 60%)보다 더 월등한 기록이죠. 에시엔의 패스 정확도는 4-2-3-1을 구사했던 리버풀 미드필더들을 앞서고 있습니다. 제라드(33/42, 79%) 리에라(19/26, 73%) 알론소(71/90, 79%) 카윗(45/65, 69%) 루카스(50/62, 81%)를 압도하고 있지요. 리버풀 미드필더들이 첼시 미드필더들보다 패스 횟수가 많은데다 짧은 패스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에시엔의 패싱력이 얼마만큼 뛰어난지 알 수 있습니다.

에시엔의 진가는 리버풀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램퍼드-미켈-발라크'의 앞선에 위치한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하며 팀 공격을 진두 지휘했습니다. 중원에서의 빠른 패스로 상대 중원의 허를 찌르게하더니 수비 가담시에는 상대 오른쪽 공격을 찰거머리처럼 끊으며 동료 선수들의 수비 부담을 덜어줬습니다. 그리고 전반 45분에는 자신이 직접 동점골을 넣으며 첼시의 8강 진출을 공헌하는 결정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당시 6개월의 부상 공백에서 회복된지 얼마 안되었던 터라 실전 감각 저하가 우려되었지만, 에시엔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무리뉴 체제였던 2006/07시즌에는 팀의 수비수 부족으로 센터백과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여 뛰어난 수비능력을 발휘했으니, 이러한 믿을맨의 진면목이 단련이 되어 히딩크 체제에서 무르익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히딩크 체제 초기에는 미켈이 살림꾼으로서 나름 제 몫을 다하며 붙박이 주전으로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미켈은 종종 집중력을 잃는 잔실수를 범하면서 팀 전력의 안정감을 실어주지 못했고 그 여파가 후반들어 상대팀에게 경기 주도권에서 밀리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살림꾼은 90분 동안 공격과 수비 모든 영역에서 팀 전력에 안정감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에시엔의 중요성이 절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에시엔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고 경기 감각을 되찾으면서 램퍼드와 발라크의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까지 무르익었고, 첼시의 미드필더진은 한달전보다 더욱 견고하고 강해졌습니다. 현재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한 팀들 중에서 가장 꾸준하고 안정감 넘치는 활약을 펼치는 미드필더진을 꼽으라면 단연 첼시일 것이며 그 중심엔 에시엔이 있습니다.

첼시는 클럽 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면서 많은 경기를 통해 승승장구를 거듭하더니 경기력의 완성도를 높이며 유럽 제패에 대한 의욕을 강하게 다질 수 있게 된 것이죠. 지금까지는 히딩크 감독의 '마법 효과'가 빛을 발했지만 언제까지 마법이 지속될지는 의문입니다. 그동안 여러 팀의 감독을 맡으면서 항상 4강 문턱에서 무너진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일이죠.

그런 첼시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바로 '에시엔 효과' 입니다. 무리뉴 체제에서 많은 우승을 이끌었던 에시엔의 살림꾼 역할은 첼시가 2000년대 중반부터 유럽 무대를 주름잡는 강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제패 및 트레블 달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이러한 에시엔의 진가는 히딩크 감독과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