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아내 박리혜 재산 과거에 화제가 된 것이 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아시겠죠. 더욱이 박리혜 냉장고를 부탁해 여성 셰프로 출연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박리혜재산 더욱 관심을 끌기 쉽겠죠.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박찬호 부인으로 알려졌던 박리혜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은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시청자들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박찬호 아내 박리혜 요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겠죠.

 

 

[사진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공식 홈페이지 메인 (C) enter.jtbc.joins.com/janggo]

 

냉장고를 부탁해 박리혜 출연은 그야말로 신선합니다. 박찬호 아내 박리혜 출연이라는 화제성도 있습니다만 여성 셰프 최초로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이 성사됐습니다. 지금까지 남성 셰프들이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었다면 이번에는 여성 셰프가 등장했습니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박찬호 아내 박리혜 입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부인 TV에서 어떤 요리를 할지, 남성 셰프들과 잘 어울릴지, 출연진들을 만족시킬지 여부 등이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박찬호 아내 박리혜 셰프 미국 유명 요리학교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출신으로서 프랑스 요리 전공했던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인턴 요리사로 활동했으며 일본에서는 요리 칼럼을 기고한 경험이 있습니다. 더욱이 박찬호가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 야구 선수 활동을 했기 때문에 박찬호 아내 박리혜 요리에 많은 신경을 썼을 겁니다. 그녀가 박찬호에게 어떤 요리를 선보였을지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더욱이 박찬호는 지난해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하면서 최현석 셰프의 이탈리안 특급 파스타에 대하여 "와이프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하며 박리혜 파스타 요리를 잘하는 인물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박리혜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 인물인지 더욱 궁금증을 느끼게 합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사람들에게 인기 높은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박리혜 요리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드디어 박찬호 아내 박리혜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진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공식 홈페이지 기획의도 (C) enter.jtbc.joins.com/janggo]

 

9월 12일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임창정 온주완 게스트로 출연합니다. 특히 <내가 저지른 사랑>이라는 노래로 음원 차트 1위를 기록중인 임창정 냉장고를 부탁해 등장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여기에 박찬호 아내 박리혜 냉장고를 부탁해 셰프로 출연하면서 이번 방영분이 사람들의 상당한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이번 냉장고를 부탁해 시청률 높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듭니다.

 

 

더욱이 박리혜 재산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4월 11일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 따르면 박리혜 상속받은 재산이 무려 1조 원 넘었다고 합니다. 당시 풍문으로 들었쇼에서는 박찬호 아내 박리혜 서로 결혼하기 이전에 만나게 되었던 에피소드가 밝혀졌습니다. 그러더니 박리혜 집안이 좋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박찬호 장인 일본중앙토지주식회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박리혜 상속 받게 된 재산이 1조 원 넘었다는 부분이 당시 방송에서 전해졌습니다.

 

특히 박찬호 장인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우리 사위가 야구만 해서 돈을 많이 벌진 못했어도 사람은 참 좋아"라는 부분입니다. 박찬호 메이저리그 맹활약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던 것은 누구나 잘 압니다. 야구팬이 아닌 사람도 잘 알겠죠. 그런데 박찬호 장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달랐나 봅니다. 그만큼 박리혜 집안의 재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리혜 재산 또한 많고요.

 

 

[사진 = 9월 12일 냉장고를 부탁해 96회에서는 임창정 온주완 그리고 박리혜 출연 예정입니다. 이번 냉장고를 부탁해 예고편에 박리혜 등장했기 때문에 아마도 박리혜 출연하지 않을까 싶은 예상을 해봅니다. (C) JTBC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편성표(jtbc.joins.com)]

 

[사진 =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JTBC 건물 모습 (C) 나이스블루]

 

[사진 = 9월 12일 방송계 핫이슈는 박리혜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입니다. 사진은 저의 스마트폰이며 9월 12일을 가리킵니다.]

 

박찬호 아내 박리혜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이 흥미로운 또 하나는 남편처럼 인기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주목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박찬호는 최근 MBC 일밤 진짜 사나이 출연중입니다. 그의 아내 박리혜 냉장고를 부탁해 방영분이 곧 TV에서 공개 될 예정입니다. 예전에는 박찬호가 야구장에서 코리안 특급으로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으며 박리혜가 박찬호 아내로 관심을 받았다면 지금은 두 사람이 인기 예능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특히 박리혜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은 단발성인지 아니면 고정 출연인지 궁금하게 됐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셰프가 여럿 있다는 점에서 박찬호 아내 박리혜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매주 월요일 오후 9시 30분 JTBC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유럽축구 경기가 열릴 때 입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개인기를 보면서 마음속의 열광에 젖을때가 많습니다. 특히 젊고 싱싱한 유망주가 대형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은 정말 뿌듯했습니다. 지구촌 축구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영웅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특히 호나우두가 FC 바르셀로나에서 거침없는 골 감각을 발휘하며 축구황제의 도약을 알렸던 1996년은 제가 축구를 좋아했던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이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좋아합니다. 한국 선수들이 축구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고의 리그인 잉글랜드에서 그라운드를 부지런히 누비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치열한 볼 다툼을 벌이는 모습 그 자체가 저의 두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활약을 보기 위해 밤을 새며, 혹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TV 리모콘에 전원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경기 한 시간 전에 출전선수 명단을 확인하는 것,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에 들어가 선수 평점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특히 박지성은 저에게 각별합니다. 한국인 선수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고 맨유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클럽에서 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누구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꿈을 박지성이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FIFA 클럽 월드컵, 칼링컵 우승 메달과 함께 말입니다. 특히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3년 연속 우승 메달을 받은 것은 아시아 선수 어느 누구도 이루기 힘든 기록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영웅'으로 일컫는 그의 저력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지성과 맨유의 경기를 즐겨보는 젊은 사람들을 말하는 '박지성 세대' 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SBS 축구 채널에서 방영되었던 교토 퍼플상가(현 교토 상가)의 경기를 보면서 박지성의 활약을 꾸준히 지켜봤습니다. 때로는 일본 NHK에서 방영되는 J리그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박지성의 골과 어시스트 장면을 보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더니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의 경기를 보며 박지성이 유럽 축구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지금은 맨유에서의 성공에 기뻐 했습니다.

박지성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입니다. '박지성 절친' 파트리스 에브라는 지난 7월 24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은 완전히 '한국의 왕(the king of korea)'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박지성을 위해 손을 흔든다. 한국의 베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한국에서 박지성 열기가 높다는 것을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알렸습니다. 그 열기는 맨유가 한국에서 '국민팀'으로 발돋움했던 계기가 됐습니다. 맨유는 K리그와 국가대표팀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그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습니다. 박지성 세대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하지만 제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박지성 이전에는 박찬호를 열렬히 좋아했던 것 말입니다. 11일 저녁에 MBC에서 박찬호 스페셜 방송이었던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박찬호를 좋아했던 추억들이 저의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박지성을 좋아하는 것 처럼, 예전에는 박찬호를 열렬히 좋아했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 제가 박지성 세대 이전에는 박찬호 세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현재 메이져리그 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박찬호의 경기를 통해 메이져리그 경기를 자주 봤습니다. 박찬호의 LA다져스가 이길때마다 좋아했고, 특히 박찬호가 승리투수가 되었을때는 마치 저의 일인 것 처럼 기뻤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국민들 모두가 박찬호의 승리를 기뻐했고 패전 투수가 되거나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을때는 아쉬워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져리거였던 박찬호의 맹활약은 IMF 경제 위기로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됐습니다. 척수병으로 고생하는 타이거 JK가 박지성에 희망을 가지는 것 처럼, 국민들은 박찬호의 투구 동작에 인생의 활력소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박찬호가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날에는 학교에서 쉬는시간마다 TV를 틀으며 박찬호의 경기를 봤습니다. 박찬호가 삼진 잡으면 반 전체가 환호성을 질렀고 다져스가 득점을 올릴때는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학교 선생이 개인 사정으로 수업에 빠지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박찬호 경기를 봤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뉴스에서는 박찬호의 경기를 TV로 지켜보며 환호하는 회사 직장인들, 서울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대기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그 당시의 박찬호 경기는 항상 챙겨봤으니까요.

박찬호의 전성기 시절 동료였던 노모 히데오,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게리 셰필드의 이름도 아직 기억에 납니다. 일본인 투수 노모는 독특한 투구폼으로 유명했고 피아자와 몬데시는 '피하자'와 발음이 비슷하고 '몬데이~시'로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개그맨들이 개인기 소재로 삼았습니다. 몬데시는 박찬호 경기때마다 홈런과 안타를 날리며 국내에서 '박찬호 도우미'로 각광받았고 그 뒤를 잇는 셰필드의 타격폼과 염소 모양의 수염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1997년에 SBS 개그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박찬호-노모-피아자-몬데시를 흉내내던 코너 말입니다. 박찬호 신드롬은 국내 방송계까지 강타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지성의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2002년에는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져스에서 먹튀 소리를 듣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하면서 5년간 845억원의 어마어마한 계약을 맺었으나 제구력 난조 및 허리 통증으로 슬럼프에 빠져 결국 내리막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845억원이라는 거액은 박찬호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줬고 메이져리그에서 전례를 보기드문 '먹튀 리스트'에 박찬호의 이름이 포함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박찬호를 향한 인기가 분노로 돌변했고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안티팬들이 기하급수로 늘었습니다.

저의 머릿속에도 박찬호라는 존재감이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일이 없이 없는데다 당시에는 야구보다 축구가 대세였기 때문에 유럽축구와 K리그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찬호가 재기를 벼르던 2000년대 중반의 저는 군인 이었습니다. 바깥 소식을 접하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박찬호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메이져리그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저의 고참은 항상 박찬호를 욕하고 다니더군요. 군대에서 제대했던 2007년에는 박찬호가 뉴욕 메츠에서의 부진으로 마이너리그로 추락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거기서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박찬호는 2008년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LA 다져스에서 재기에 성공하여 '자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실력으로 과시했습니다. 전성기 시절처럼 10승 이상의 성적을 올린것은 아니었지만 선발과 불펜 요원을 오가며 팀에서 맡은 일을 척척 도맡았습니다. 비록 자신의 인기는 전성기 시절 같지 않았지만 명예회복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뜨는 박찬호 관련 소식이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많았으니, 대중들도 박찬호를 다시 반겼습니다.

박찬호의 올해 나이가 37세 입니다. MBC 스페셜에서 박찬호의 나이가 37세로 소개되는 모습을 보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낍니다. 박찬호가 전성기를 쓰기 시작했던 1997년의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지금은 20대 중반입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 1등 신랑감이었던 박찬호도 이제는 2명의 예쁜 딸이 있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듯, 세월은 상류에서 하류로 향하는 물 처럼 흐르고 말았습니다. 비록 박찬호 시대는 끝났지만, 어제 MBC 스페셜을 보면서 그 추억이 달콤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박찬호가 언제까지 메이져리그에서 공을 던질지는 모릅니다. 메이져리그에서 40세 넘는 선수가 선발 등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처럼, 박찬호도 그 중에 한 명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때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얻었던 박찬호의 선수 말년은 다른 노장들보다 화려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한국 야구가 올해 3월 열리는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선전을 위한 대비에 돌입하면서 야구계의 시선은 두 선수에게 쏠렸습니다. 박찬호와 이승엽. 현존하는 한국 야구 선수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국민들의 머릿속에 맴돌았던 대표적인 선수들입니다.

두 선수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선전을 이끌며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대들보'로 거듭났죠. 그동안 쌓은 업적도 대단했습니다. 전자가 1994년 동양인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해 통산 117승을 거둔 빅리그 스타라면 후자는 2003년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56개)에 일본 야구 최고의 명문 클럽인 요미우리에서 70대 4번 타자로 맹위를 떨쳤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재목들이죠.

최근에는 두 선수의 WBC 참가 여부에 관심에 쏠렸습니다. 김인식 감독은 베테랑 우완 투수와 경험많은 거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두 선수의 참가를 강력히 원했습니다. 물론 두 선수의 존재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 대표팀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박찬호는 2년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한국팀의 주장을 맡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이승엽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4강 일본전과 결승 쿠바전 홈런포로 금메달 주역이 되어 병역 미필 선수들의 무거운 짐이었던 문제를 해결해 '합법적인 병역 브로커'로 이름을 떨쳤죠.

더욱이 두 선수는 3년 전 WBC 1회 대회때 맹위를 떨치며 한국 야구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야구 강국' 미국, 일본을 꺾고 한국 야구의 위상을 업그레이드 시킨 주역이기 때문에 김인식 감독은 그런 경험을 높이 사며 두 선수의 2회 대회 참가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두 선수가 처한 환경입니다. 두 선수가 속한 소속팀 입지가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두 선수 모두 올 한해 소속팀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지 않으면 마이너리그 혹은 2군 생활을 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 시즌 종료 후 방출 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박찬호는 필라델피아와의 계약 기간이 올해까지이며(1년 계약), 이승엽은 2010년까지 계약기간이나 3년 연속 부진할 경우 이듬해 출전 기회 조차 못얻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 나이로 올해 37세와 34세인 박찬호와 이승엽은 소속팀에 더욱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며 태극 마크가 부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WBC 불참을 선언한 두 선수도 나름 마음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특히 박찬호는 13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WBC 불참 및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던 도중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김인식 감독과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WBC에 불참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승엽이야 공식 기자회견을 갖지 않았지만 박찬호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무거울 겁니다.

그런데 두 선수는 이전부터 WBC 불참을 선언 했었습니다. 박찬호는 지난해 10월 31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WBC때문에 선발 투수 출장 기회를 방해받고 싶지 않다. WBC 1회 대회에 참가한 뒤 소속팀에 돌아오니 선발 경쟁을 하던 젊은 투수에게 5선발 자리를 내주고 불펜으로 가게 됐다. 그때 WBC에 참가한 것을 후회도 해봤다. WBC 2회 대회는 출전하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승엽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7일 일본시리즈 7차전이 끝나고 국내외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지면서 "한국야구위원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WBC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할 것이다. 올해 올림픽 예선(2008년 3월과 8월)으로 요미우리에서 실패한게 아닌가 싶다"며 WBC 불참 의사를 피력했죠.

그럼에도 야구 대표팀은 WBC 1차, 2차 후보 선수 명단에서 두 선수의 이름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은 지난 8일 대표팀 유니폼 발표 및 기자회견에서 "박찬호와 이승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멤버로도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어찌됐건 최선을 다해 부딪혀 보겠다"며 대표팀에 합류시키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나타냈습니다. 12일에는 한 스포츠 언론사가 "박찬호는 일본에서 열리는 WBC 아시아 라운드에만 부분 참가하는 조건으로 WBC 대표팀에 합류한다"고 보도하면서(결국 오보로 드러남) 박찬호의 WBC 참가가 가시화 되는 듯 했습니다.

현재 박찬호와 이승엽의 소속팀 입지가 어떤지는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관계자분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두 선수를 참가 시키겠다는 의지를 최근까지 꺾지 않았던 것은 두 선수의 팀 내 입지 및 미래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미 두 선수는 WBC 1회 대회, 베이징 올림픽 참가로 인한 후유증으로 극심한 부진에 고생했고요.

물론 WBC가 큰 대회임에는 분명합니다만 두 선수의 앞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WBC 참가는 무리입니다. 일찌감치 WBC 불참 의사를 밝힌 두 선수의 의사는 이전부터 마땅히 존중 받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선수는 10년 동안 한국 야구의 도약을 위해 항상 대표팀 선봉에 있었고 누구보다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국가를 위해 뛰었던 기여도까지 높았는데 왜 이들의 의사는 무시되어야 하나요.

언제까지 30대 후반에 접어든 선수와, 이제 30대 중반 대열에 포함된 선수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한국 야구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절대적 원동력은 '세대교체' 였으며 이제는 새로운 야구 영웅을 계속 발굴해서 포스트 박찬호, 제2의 이승엽을 수없이 배출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WBC에서 한국의 선전을 이끌 핵심적인 존재는 박찬호와 이승엽만이 아니며 이들 못지 않게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은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특히 박찬호와 이승엽의 활약으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는 한국 야구의 근시안적인 대표팀 운영은 정말 아쉽습니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포스트 박찬호, 이승엽'이 등장해야 하나 지금 이대로의 분위기라면 한국 야구는 두 선수의 은퇴 이후에도 지금처럼 박찬호, 이승엽 '집착'만 할지 모릅니다.

만약 대표팀이 출범 초기부터 원만하게 운영했다면 박찬호와 이승엽은 WBC 참가에 대한 걱정을 떨치고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의 맹활약을 착실하게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찬호는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기자회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겠죠. 박찬호가 우는 모습이 왜 이리 슬프기만 할까요. 한국 야구의 대들보인 박찬호의 눈물은 한국 야구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By. 효리사랑
Posted by 나이스블루



14년 전,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인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한국 야구를 빛낸 ´코리안 특급´ 박찬호(35, LA 다저스).

올해 소속팀 LA 다저스에서 두 번째 전성기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박찬호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 예정됐던 선수였다. 메이저리거의 올림픽 출전을 놓고 국제야구연맹과 메이저리그 사무국, 선수노조의 삼자 합의 끝에 "올해 8월 1일자로 메이저리그 25인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고 삼자 합의하면서 박찬호는 추신수(클리블랜드)와 더불어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박찬호의 올림픽 출전 무산은 김경문 야구 대표팀 감독이 안타까워했던 부분이다. 김 감독은 지난 5월 26일 3차 대표팀 예비명단에 박찬호의 이름이 빠지자 "찬호는 어떻게 안 되나. 메이저리그에서 잠깐 풀어줘도 될 것 같은데..."라며 3차 예비명단에 대한 아쉬움을 살짝 내비쳤다.

지난해 11월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 주장을 맡았던 박찬호는 누구보다 올림픽 출전을 열망했었고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박찬호의 합류를 잔뜩 기대했었다. 올해 LA 다저스에서 펄펄 나는 박찬호는 구위가 전성기 시절처럼 다시 살아나면서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빅리거로서 확실하게 활동한 선수로서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 일본, 쿠바 같은 금메달 경쟁국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존재였다.

박찬호가 없는 한국은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 7전 7승의 성적을 거두었다. 겉으로는 박찬호 없이 잘 나가고 있지만 속 사정은 이와 다르다. 박찬호의 대표팀 보직이었던 마무리 투수쪽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한 것. 이번 본선에서 마무리 투수로 자주 등장했던 한기주(KIA)의 부진이 대표팀 전력의 약점으로 꼽힌 것.

한기주는 지난 13일 미국전에서 9회초 등판해 첫 타자에게 솔로 홈런을 내주는 등 3피안타 3실점으로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강판됐다. 16일 일본전 9회말에서는 아라이 다카히로에게 3루트를 맞은 뒤 3루수 김동주의 실책으로 1실점 했다. 곧바로 무라타 슈이치에게 2루타를 맞아 한 번도 아웃을 잡지 못하고 마운드를 넘겼다. 대만전에서는 2이닝을 소화했지만 8-8 동점의 빌미를 제공하고 강판됐다.

특히 금메달 경쟁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일본전에 등판한 한기주는 아웃 카운트 없이 4실점, 평균 자책점 99.9를 기록하며 야구 팬들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직구가 한 가운데로 몰리고 제구력까지 떨어지면서 연일 맥을 못추는 것. 김경문 감독도 17일 경기에서 "이기는 경기에 투입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말해 한국의 마무리 투수진에 문제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문제는 한기주의 부진 뿐만이 아니다. 대표팀의 유력한 마무리 투수로 거론되던 오승환(삼성)이 최근 구위 저하와 컨디션 난조로 자주 마운드에 등판하지 못한 것. 19일 쿠바전에서는 살아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한 경기만으로 '완벽 부활'을 속단할 수는 없다. 또 다른 마무리 자원인 정대현(SK)은 왼손 타자에 유독 약한 문제점이 있는데다 당초 '한기주-오승환'에게 밀렸던 대표팀 마무리의 '차선 카드'로 여겨졌던 선수다. 

당연히 박찬호의 존재감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박찬호는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과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선발과 마무리를 맡아 각각 금메달과 4강 신화를 이룬 주역이었다. 지난해 12월 대만과의 아시아 예선에서는 류현진에 이어 3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쳐 팀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WBC에서의 활약이 경이적이었다. 박찬호는 4경기(선발 1회) 동안 10이닝 3세이브 평균 자책점 0.00의 특급 투구를 과시하며 마무리 투수로서 뒷문을 든든히 책임지는 에이스급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 대만전에서도 마무리 투수로 뛰었고 올해 LA 다저스에서는 선발보다는 불펜 투수로서 더 많이 출전했기 때문에 베이징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한국의 마무리 투수로 '완벽 피칭'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물론 한국 야구 대표팀은 투타 전반에 걸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기주와 오승환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마무리쪽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으며 승리의 든든함을 더해가는 노련한 마무리 선수가 한국에게 필요했다. 한국의 마무리가 불안한 현 시점에서 어쩌면 '박찬호는 한국 야구의 대들보'라는 생각은 결코 무리는 아닐 듯 싶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