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에버턴의 경기가 한국 축구팬들에게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박지성 엠버서더 위촉식 때문이었다. 박지성은 에버턴전을 앞두고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과 함께 그라운드에 등장하여 엠버서더 위촉식 행사를 가졌다. 박지성 엠버서더 임명이 자랑스러운 것은 맨유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축구팬을 보유중인 맨유의 홍보대사가 된 그의 위엄이 빛난다.

 

박지성은 2005/06시즌부터 2011/12시즌까지 맨유에서 7시즌 동안 205경기에서 27골 기록했던 미드필더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컵대회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에 이르기까지 맨유에서 영광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거듭났다.

 

[사진=박지성 엠버서더 선정을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박지성 엠버서더 선정이 눈에 띄는 것은 비유럽인으로서 최초로 맨유 홍보대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맨유 엠버서더가 된 인물은 박지성을 포함한 8명이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과 보비 찰튼, 브라이언 롭슨, 데니스 로, 앤디 콜, 게리 네빌, 피터 슈마이켈은 모두 유럽 국적의 인물들이다. 이중에서 덴마크 국적의 슈마이켈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영국 연방 출신이다. 박지성은 이들과 더불어 맨유 엠버서더로서 지구촌을 돌며 맨유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박지성 엠버서더 임명을 맨유 레전드 등극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박지성 이전에 맨유 엠버서더로 활동했던 인물들 모두 맨유를 화려하게 빛냈던 축구인으로서 레전드로 불릴만하다. 하지만 그가 엠버서더가 된 것은 레전드 등극이라기 보다는 맨유의 홍보대사가 되었다는 뜻이 더 정확하다. 선수가 아닌 엠버서더로서 맨유를 위해 일하는 것이지 레전드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지성이 맨유의 레전드로서 손색 없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지성 엠버서더 활동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경사다. 한국인이 유럽 축구의 빅 클럽이자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끄는 축구 클럽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 축구 역사에서 없었다. 맨유는 세계에서 축구팬을 가장 많이 보유한 팀으로 잘 알려졌으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마케팅 수익이 많다. 세계적인 축구팀의 홍보 대사로서 지구촌을 누빌 박지성의 발자취는 한국 축구 입장에서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가 맨유에 입단하면서, 맨유 선수로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것도 대단했으나 엠버서더 선정은 한국 축구에서는 전례가 드문 일이다.

 

한국 축구에서 엠버서더는 낯설게 느껴지는 존재다. 유럽 특정 클럽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축구인이 흔치 않았다. 박지성이 맨유 엠버서더가 되었을 때에도 '맨유에서 몇 번째?', '아시아에서만 엠버서더로 활동하냐?', '맨유 레전드가 되었느냐?' 여부를 놓고 말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박지성 레전드 등극에 대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다시 정리를 하면, 박지성은 맨유에서 8번째 엠버서더가 되었으며 아시아가 아닌 전 세계에서 맨유를 홍보하는 일을 하게 됐다. 그의 엠버서더 활동이 레전드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멘유 엠버서더 선정=레전드 등극'은 앞서나간 표현이다. 이러한 국내 여론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한국 축구에서 엠버서더가 얼마나 낯선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지성은 이제는 선수가 아닌 엠버서더로서 맨유를 위해 일을 하게 됐다. 그가 지구를 돌며 맨유를 홍보하는 일을 하는 소식이 한동안 우리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박지성이 선수 시절 맨유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 엠버서더로 활동할 명분을 얻었다. 어쩌면 아시아 선수로서 맨유에서 두각을 떨친 것이 맨유의 엠버서더가 되는데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 선수가 맨유에서 성공한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일본 대표팀 에이스 카가와 신지(현 도르트문트)의 맨유 실패를 통해 깨달았다. 더욱이 박지성이 7시즌 동안 205경기 뛰었을 당시의 맨유는 지금과 달리 유럽과 세계 축구를 빛냈던 팀으로서 최전성기를 보냈던 시절이었다.

 

맨유는 잉글랜드에서만 인기 팀이 아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맨유팬들이 꼭 있다. 특히 비유럽권에서는 '맨유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축구 꿈나무들이 꽤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한국에서도 맨유팬들이 많다. 박지성이 2005년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하기 전에도 맨유팬들이 많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정도로 맨유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놀랍다. 맨유 엠버서더로서 세계를 돌아다닐 박지성의 앞날 활동이 한국 축구에서 신선한 주목을 끌게 될 것이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한 박지성은 세계적인 축구 선수였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죠. 유럽에서는 PSV 아인트호벤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강렬한 경기력을 과시하며 한국 축구의 국제 경쟁력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커리어를 능가할 동양인은 쉽게 등장하지 않을 것 같네요.

 

박지성 은퇴에 대한 해외반응도 뜨겁습니다. 아마도 지구상의 수많은 미디어들과 그와 비슷한 성격의 사이트가 박지성 은퇴를 전파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SNS 또한 마찬가지죠. 그중에서 비중이 높은 반응을 추려봤습니다.

 

 

[사진=박지성 은퇴를 언급했던 맨유 트위터. 사진은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을때의 모습 (C) 맨유 공식 트위터(twitter.com/manu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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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은퇴가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등장했던 것은 그가 얼마나 세계적인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FIFA는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전 맨유 스타였던 박지성이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했던 선수였던 선구자적인 경력을 끝냈으며 수요일에 자신의 은퇴를 발표했다"고 전했습니다. 박지성에 대한 주요 경력과 은퇴 이유, 그의 은퇴 기자회견 발언을 FIFA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글의 소제목은 Korean trailblazer(한국의 선구자)로 설정됐습니다. FIFA에서는 "박지성은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3회 연속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공동 개최국 한국의 4강 진출에 기여하는 충격적인 역사를 만들었으며 아시아팀의 최고 선수가 됐다"고 언급했으며 그 대회에서 포르투갈전 결승골을 넣었던 때를 좋아했던 박지성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아울러 맨유 시절 아시아인 최초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 출전,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 경력도 홈페이지에서 소개했습니다.

 

 

 

 

박지성 친정팀 맨유도 홈페이지를 통해 은퇴 소식을 전했습니다. "맨유에서 (사람들이) 좋아했던 박지성은 지속적인 무릎 문제로 인하여 축구계에서 은퇴했으며 걸출했던 그동안의 경력이 끝나게 됐다"고 밝혔죠. 33세의 박지성이 맨유에서 205경기에 출전하여 27골 넣으며 팀의 여러 차례 우승을 이끌었던 과거를 소개하면서 "올드 트래포드에서 7시즌 보내는 동안 팬들이 크게 좋아했던 사람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맨유의 모든 사람들이 박지성의 행운을 빈다"는 입장을 전했으며 박지성의 맨유 시절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박지성이 맨유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음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맨유에서는 지금까지 세 명의 아시아 출신 선수가 활약했는데 박지성만 성공했었죠.

 

중국의 덩팡저우는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일본의 카가와 신지는 도르트문트 시절 분데스리가를 빛냈던 기세를 맨유에서 보여주지 못하면서 자신의 경쟁력이 약화됐습니다. 특히 카가와가 맨유에서 두 시즌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한것을 보면 박지성의 맨유 시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박지성이 맨유 시절에 친했던 선수 중에 한 명을 꼽으라면 네덜란드의 뤼트 판 니스텔로이입니다. 판 니스텔로이는 1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4개의 해쉬태그를 올렸습니다. "박지성(JiSungPark) 전설(Legend) 귀감(Example) 친구(Friend)"라는 박지성과 관련된 상징적인 단어를 올리며 우정 관계가 변함 없음을 알렸습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박지성이 오늘 오전 기자회견에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당초에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과의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15년 여름에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현역 선수 커리어를 2014년에 완결을 맺게 됐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무릎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면서 2014/15시즌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2013/14시즌에도 무릎 부상의 악령은 계속되었죠.

 

만약 무릎 부상으로 신음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박지성은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으로서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준비했을지 모릅니다. 올해 나이가 33세니까요. 그러나 2003년 유럽 진출 이후 잦은 무릎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9개월 동안 뛰지 못했던 아픔도 있었습니다. 30세의 이른 나이에 대표팀에서 은퇴해야했고 3년이 지난 오늘 현역 선수 은퇴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사진=맨유 시절의 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메인(manut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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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박지성은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축구 선수입니다. 그의 선수 생활이 더욱 대단했던 것은 무릎 부상 악몽을 이겨내고 한국 최고를 넘어 아시아의 영웅이 되었고 유럽 축구에서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입니다. 2000년대 이후를 기준으로 유럽 축구에서 박지성보다 더 좋은 활약을 펼쳤던 아시아 선수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어느 선수든 부상은 반갑지 않습니다. 부상 이후 경기력이 감퇴되거나 평소의 폼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선수들이 적지 않았죠. 특히 축구 선수는 발을 많이 이용합니다. 한 경기당 약 10Km 정도 뛰는 편이며 발의 움직임이 많으면서 무릎이 잘 견뎌내야 합니다. 박지성은 끊임없는 무릎 부상 후유증을 안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산소탱크'라는 별명처럼 그라운드에서 엄청난 움직임을 과시하기로 유명했죠. 이렇다보니 무릎이 많이 안좋아지면서 다른 선수에 비해 대표팀을 떠났던 시점이 빨랐습니다. 이제는 은퇴를 하게 되었죠.

 

 

 

 

되돌아보면 박지성은 악플러들의 많은 공격을 받았던 유명 스포츠인 중에 한 명 입니다. 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시절이 대표적입니다. 경기에 뛰지 않을 때마다 박지성을 비하하는 댓글들이 끊이지 않았죠.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사에서 박지성을 깎아내리는 댓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던 때가 기억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어느 기사에 박지성 비하 댓글이 올라왔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박지성 안티가 많았던 배경에는 맨유 시절에 결장이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맨유에서 7시즌 동안 200경기 넘게 뛰면서 팀의 여러 차례 우승에 기여하는 최상의 활약을 펼쳤음에도 결장 횟수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교체 투입 횟수도 만만치 않았죠. 맨유 같은 빅 클럽은 엄청난 경기 일정을 소화하는 특성상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 활용이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박지성의 거의 매 경기 선발 투입'을 바랬던 국내 여론에게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이 낯설었죠. 이 때문에 박지성과 관련된 악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 제기되었던 '박지성 위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이 있었기에 박지성이 현역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맨유 시절 사령탑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무리하게 투입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이 경기에 투입될 때마다 좋은 경기력을 과시하며 팀에 많은 승리를 기여했죠. 그때는 '강팀킬러'로 유명했습니다. 유독 강팀과 맞붙을 때 혼신의 힘을 쏟으며 상대팀 선수를 잘 막아내면서 팀의 공격 전개에 적극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아스날 킬러로 유명했고 첼시와의 2010/11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는 결승골까지 넣으며 맨유의 4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올해 초에는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그의 복귀를 원했고 그가 대표팀에 돌아오기를 바랬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박지성 무릎을 확인했던 홍명보 감독은 "박지성 무릎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심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더 이상 대표팀 활동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결국 박지성은 2013/14시즌을 마치면서 오늘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몸이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했으면 좋겠네요.

 

 

 

Posted by 나이스블루

 

박지성은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축구 선수다. 국가 대표팀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루어냈으며 A매치 100경기 출전을 통해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다. 소속팀에서는 교토 퍼플상가와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 이어 올 시즌에는 에인트호번에 임대되어 활약중이다.

 

현재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수들이 여럿 있으나 박지성의 전성기 시절이었던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은 지금과 분위기가 달랐다. 많은 축구팬들의 시선이 '박지성 경기'에 쏠렸다. 그때는 박지성 당시 소속팀 맨유가 유럽과 세계 최정상급 클럽으로 이름값을 떨쳤다. 그의 축구 인생을 살펴보면 맨유 시절이 전성기였다고 볼 수 있다. 맨유에서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사진=박지성 (C) PSV 에인트호번 공식 홈페이지 메인(psv.nl)]

 

많은 사람들은 박지성의 전성기 시절 몸값 혹은 연봉을 궁금하게 생각할 것이다.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받는가?' 여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주요 이슈 중에 하나다. 축구의 경우 이적료가 겨울과 여름 이적시장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이적료는 선수가 받는 금액이 아니다. 선수는 구단에 연봉을 받게 된다.

 

박지성은 맨유와 4번의 계약을 맺었다. 2005년 여름 이적시장 입단 당시, 2006년 8월, 2009년 9월, 2011년 8월이었다. 그중에서 2006년과 2009년, 2011년은 기존의 계약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새로운 계약을 맺었으며 몸값까지 올랐다. 그동안 소속팀에서 맹활약 펼쳤던 공로를 인정받아 몸값이 향상되었던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선수 몸값이나 연봉 같은 선수 인건비를 공개 발표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나 현지 언론이나 박지성 측을 통해 언급되는 특징이 있었다. 참고로 몸값과 연봉은 비슷한 개념이다.

 

한국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던 박지성은 맨유 입단 당시 연봉이 200만 파운드(약 35억 원, 한국돈은 현재 환율을 기준)로 전해진다. 2005/06시즌 맨유의 윙어로서 부지런한 움직임을 과시하며 팀 전력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었고 2006년 8월 계약 기간이 늘어나면서 팀의 주력 선수로 인정받게 됐다. 당시 연봉은 280만 파운드(약 49억 원)으로 알려졌으며 그때의 환율로는 51억 원으로 계산됐다.

 

2009년 9월에는 또 다시 재계약을 맺었다. 연봉이 364만 파운드(약 64억 원)로 뛰어올랐던 것.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3연패와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멤버로 활약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연봉이 향상됐다. 주급은 7만 파운드(약 1억 2400만 원)로 알려졌으며 당시 맨유에서 7번째로 몸값이 높았다. 그 이전까지는 2007/08시즌 300만 파운드(약 53억 원), 2008/09시즌 310만 파운드(약 55억 원)로 연봉이 조금 오르면서 세 번째 재계약을 맞이하게 됐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2006년 재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시즌을 치를 때마다 연봉이 올라가는 조건의 계약을 맺었던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2011년 8월에는 맨유와 네 번째 재계약을 맺었다. 당시 연봉은 470만 파운드(약 83억 원)였으며 2005년 맨유 입단 당시의 연봉보다 2배 더 많은 금액이다. 주급은 9만 파운드(약 1억 6000만 원)이며 팀 내 몸값이 웨인 루니, 리오 퍼디난드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맨유에서 성공한 선수였음을 몸값을 통해 알 수 있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