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퀴아오 은퇴경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세계 권투계를 평정했던 아시아의 영웅이자 필리핀 국적의 권투선수 매니 파퀴아오 마지막 경기는 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는 한국 시간으로 4월 10일에 펼쳐졌던 세계복싱기구(WBO) 인터내셔널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미국 국적의 티모시 브래들리를 상대로 3-0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파퀴아오 은퇴경기 그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현역 선수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그의 행보를 보면 개인적으로 박지성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진 = 매니 파퀴아오는 자신의 은퇴경기를 승리로 마쳤던 소감을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그 게시물에서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기념 사진 찍었던 것을 올렸습니다. (C) 파퀴아오 공식 트위터(twitter.com/mannypacquiao)]

 

파퀴아오 은퇴경기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그의 상대가 브래들리였기 때문입니다. 파퀴아오 브래들리 전적 이번 경기 이전까지 2전 1승 1패였습니다. 만약 파퀴아오가 패했다면 브래들리를 제압하지 못한것에 따른 심리적인 데미지를 겪지 않았을까 걱정했습니다. 브래들리 프로통산 전적 33승(13KO) 1무 1패(파퀴아오 은퇴경기 이전까지의 전적입니다.)라는 점은 그가 막강한 복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 1패는 2년 전 파퀴아오에게 당했던 패배였습니다.

 

 

파퀴아오는 이번 경기 승리를 통해 브래들리와의 전적을 1승 1패에서 2승 1패로 바꾸어놓았습니다. 브래들리 프로통산 전적에서 2패를 안겨줬던 인물이 되었죠. 이와 더불어 자신의 프로통산 전적을 58승(38KO) 2무 6패로 마무리했습니다. 복싱 역사상 최초로 8체급 석권했던 아시아의 영웅 파퀴아오의 마지막 경기는 승리로 끝났습니다. 아시아가 배출했던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로서 위대한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파퀴아오하면 지난해 4월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미국 국적의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와의 맞대결 패배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워낙 메이웨더 파퀴아오 맞대결을 봤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인지(BUT 실제 경기는 지루했던) 파퀴아오 패배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파퀴아오의 건재함은 여전했습니다 .파퀴아오 은퇴경기 승리는 그의 복싱 능력이 여전히 세계 정상급임을 증명했던 계기가 됐습니다.

 

 

[사진 = 파퀴아오 별명은 팩맨(Pac-Man)입니다. 게임 캐릭터 팩맨에서 유래된 별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사진은 저의 영화 픽셀 관람 인증샷입니다. 픽셀은 게임 캐릭터 팩맨을 다루었던 영화입니다. (C) 나이스블루]

 

파퀴아오의 커리어가 대단했던 것은 자신보다 체격이 큰 선수와의 맞대결에서 이기는 모습을 통해 '아시아 선수가 권투를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실력으로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권투는 몸을 격렬하게 쓰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체격이 크거나 파워가 강한 서양인들에게 유리하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파퀴아오가 지금까지 수많은 상대를 이기면서 아시아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 놀라웠습니다.

 

 

개인적으로 파퀴아오 은퇴경기 승리 소식을 통해서 박지성 떠올렸던 이유는 아시아 스포츠 선수의 한계를 뚫고 세계 스포츠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과시했습니다. 박지성도 축구 선수치고는 체격이 큰 선수가 아닙니다. 더욱이 박지성은 평발이었습니다. 그러한 아쉬움 속에서도 그라운드에서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팀의 승리를 위해 공격과 수비에서 많은 역할을 해내는 발군의 경기력을 과시했습니다. 지금도 성실한 축구 선수로 기억에 남는 인물이죠.

 

박지성 또한 아시아의 영웅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빅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우승 등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으며 한국 대표팀 선수로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아시아 축구 선수 중에서 커리어가 뛰어난 인물 중에 한 명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21세기 현재까지 활약했던 선수 중에서는 박지성 커리어가 아시아 No.1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14년 10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을 팀의 엠베서더로 임명했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는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manutd.com)]

 

[사진 = 2014년 PSV 에인트호번 소속으로서 수원 블루윙즈와 친선전을 치렀던 박지성 (C) 나이스블루]

 

파퀴아오 박지성 외에도 자신의 분야에서 아시아 스포츠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 인물이 더욱 많이 등장하면 아시아인들이 그들의 활약을 통해 '아시아 선수가 서양 선수들보다 더 잘하는구나'라는 긍지를 느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체격 조건은 서양 선수가 더 좋은데 정작 스포츠 실력은 아시아 선수가 더 좋은 사례들을 접하면 웬지 모르게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되더군요.

 

아무튼 파퀴아오 은퇴경기 승리로 인하여 그의 현역 선수 커리어는 화려하게 끝났습니다. 향후 세계 권투계에서 파퀴아오처럼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아시아 출신 복싱 선수가 과연 등장할지 기대를 모으게 됩니다.(아니면 제가 모르는 선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상 최초로 8개 체급 석권했던 파퀴아오 업적은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회자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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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블루

지난 일요일 저녁에 관심을 모았던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 통해서 박지성 올드 트래포드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엠버서더이자 레전드로 꼽히는 박지성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 출전은 그의 현역 선수 시절을 기억하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했다. 이날 박지성은 전반 45분 앤디 콜 득점을 어시스트하며 맨유 레전드 팀의 4-2 승리를 기여했다. 비록 전반전을 마치고 교체 되었으나 45분의 출전 시간 동안 좋은 경기력을 과시했다.

 

 

[사진 =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 결과를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맨유 레전드 팀이 뮌헨 올스타 팀을 4-2로 이겼다. (C) 맨유 공식 홈페이지(manutd.com)]

 

박지성은 맨유 레전드 팀에서 퀸튼 포춘과 함께 4-3-3 포메이션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폴 스콜스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으면서 포춘과 박지성이 스리톱(루이 사하, 드와이트 요크, 앤디 콜)과 스콜스 사이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전반 초반에는 스콜스의 칼날 같은 볼 배급이 눈길을 끌었으나 경기가 무르익으면서 박지성의 오프 더 볼 플레이가 점점 빛을 발했다. 뮌헨 올스타 수비 진영에서 볼이 없는 곳을 미리 선점한 뒤 동료 선수에게 볼을 받으면서 다시 패스를 내주는 패턴이 맨유 레전드 팀의 공격 활로 개척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 그 흐름이 맨유가 전반전에 많은 공격 기회를 얻었던 계기가 됐다. 전반 45분 박지성 패스가 콜의 득점으로 이어졌던 도움 장면과 더불어 박지성 공간 패스에 이은 요크의 슈팅이 몇 차례 연출되기도 했다.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전반 39분 박지성과 요크가 만들어낸 득점이 처음에는 박지성 골이었으나 몇 분 뒤에 요크 골로 변경됐다. 이 상황을 살펴보면 포춘의 오른쪽 크로스에 이은 박지성 헤더슛이 상대 선수들의 몸을 맞고 굴절되었는데 볼이 골 라인을 통과하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요크가 왼발슛으로 볼을 밀어 넣었으나 그 볼이 박지성 왼쪽 어깨를 맞았고 골 라인 통과했는데 그 장면이 요크의 골로 인정됐다. 박지성이 아닌 요크에 의한 득점이었던 것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다면 박지성 골이 되었을 장면이었다.

 

 

[사진 = 맨유 공식 트위터에서는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 하프타임 무렵에 전반 39분 득점이 박지성이 아닌 요크 골이라고 정정했다. sorry Park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C) 맨유 공식 트위터(twitter.com/ManUtd)]

 

그럼에도 박지성은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 통해서 지능적인 움직임을 과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볼이 없을 때의 움직임과 위치선정이 좋다는 것은 자신의 전술적 이해도가 현역 선수 시절 못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플레이는 스콜스의 정교한 패스와 조화를 이루며 맨유가 전반전 주도권을 잡는 효과로 이어졌다. 팀을 위해 희생적으로 움직이는 박지성 특유의 헌신이 맨유 승리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자신의 현역 선수 시절과 똑같은 흐름이었다. 그때는 '박지성 선발 출전 = 맨유 승리' 공식이 많이 통했는데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에서도 적중했다.

 

 

박지성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처럼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성향의 인물이 아닌 것은 축구를 제대로 보는 이라면 누구나 잘 안다. 개인보다는 팀을 위해 희생하며 철저히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박지성의 살림꾼 기질이 맨유에서 7년 동안 버티며 지금의 레전드로 주목을 끄는 결정타가 됐다. 팀을 위해 뛰는 박지성만의 차별화가 맨유 같은 세계적인 빅 클럽에서 통했던 것이다. 그가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에서도 팀 플레이를 통해 맨유 레전드에 활기찬 공격 흐름을 가져다준 것은 특유의 이타적인 플레이가 그의 최대 강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 2014년 PSV 에인트호번 시절의 박지성 (C) 나이스블루]

 

공교롭게도 맨유는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했던 2012년 여름 이후부터 하락세를 나타냈다. 비록 2012/13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했으나 마이클 캐릭의 분전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오히려 그떄는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및 세대교체 타이밍을 놓치는 아쉬움을 보였다. 그러더니 2013/14시즌, 2014/15시즌 순탄치 못한 행보를 나타내면서 빅 클럽 체면을 구겼다. 2014/15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4위를 기록하며 두 시즌만에 챔피언스리그 진출하게 되었으나 선수 영입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도 4위에 그친 것은 문제가 있다. 화려한 기량을 뽐내는 선수는 많은데 팀을 위해 철저히 희생적인 선수가 부족한 것이 지금의 맨유 단점이다.

 

맨유 뮌헨 레전드매치 박지성 활약 더욱 눈에 띄었던 것은 자신과 비슷한 플레이을 펼치는 현 맨유 선수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연은 많은데 감초가 부족한 것이 지금의 맨유 문제점이다. 어쩌면 맨유에서 박지성 같은 선수가 나오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맨유의 이적시장 정책이 달라지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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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블루

'산소탱크' 박지성 맨유 레전드 매치 출전이 성사됐다. 한국 시간으로 6월 14일 오후 10시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바이에른 뮌헨 레전드끼리의 친선 경기에서 박지성 레전드매치 출격을 앞두고 있다. 이 경기는 맨유와 바이에른 뮌헨의 과거를 빛냈던 선수들이 출전한다. 박지성이 맨유 레전드 매치 명단에 포함된 것과 더불어 은퇴한지 이제 1년이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올드 트래포드에서 재현할지 기대된다.

 

 

[사진 = 박지성 출전하는 맨유 레전드 매치 알리는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박지성이 맨유에서 성공한 선수인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그저 그랬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없다. 박지성 같은 맨유 레전드에게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 박지성 맨유 엠버서더 위촉은 그가 맨유의 레전드임을 각인시키는 결정타가 됐다. 박지성 레전드매치 출격 또한 마찬가지. 그의 맨유 성공 스토리는 향후 맨유에서의 영광을 꿈꾸는 세계적인 어린 축구 유망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다.

 

 

되돌아보면 맨유 같은 세계 최정상급 빅 클럽에서 레전드로 주목 받았던 아시아 선수는 드물었다. 한국에서는 박지성이 최초다. 훗날 박지성 현역 시절을 뛰어넘는 축구 실력을 앞세운 한국인 선수가 등장해도 그의 발자취를 능가하는 인물이 나타날지 의문스럽다. 그런 인물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이 한국 축구 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되겠으나 그 과정이 빠를지 아니면 느릴지 알 수 없다.

 

아시아 선수가 세계적인 빅 클럽에서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일본의 카가와 신지(현 도르트문트) 중국의 덩팡저우(현 허베이 종지) 등을 통해 확인했다. 가깝게는 맨유 라이벌 아스널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박주영(현 FC서울)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선수들은 빅 클럽 진출 여부로 주목을 끌었으나 결과적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박지성 맨유 레전드 매치 참가는 아시아 축구의 한계를 넘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박지성 레전드매치 참가 자랑스러울 수 밖에 없다.

 

 

[사진 = 지난해 5월 PSV 에인트호번 소속으로 수원 블루윙즈와의 친선전에 출전했던 박지성 (C) 나이스블루]

 

맨유 레전드 매치 박지성 출전은 그의 현역 선수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기분이 든다. 박지성 경기를 즐겨보며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축구의 묘미를 느꼈던 사람은 글쓴이만이 아닐 것이다. 주말 저녁 및 평일 새벽에 걸쳐 TV 생중계로 박지성 경기를 지속적으로 봤던 것은 이제 추억이 됐다. 무한도전 토토가를 통해 90년대를 그리워했던 사람이 많았던 것처럼 맨유를 좋아했던 축구팬들에게는 박지성 맨유 시절을 그리워하기 쉽다.

 

 

이제서야 고백하면, 이 블로그의 최대 전성기는 박지성 맨유 시절이었다.(지금도 블로그를 운영중이나 그때 만큼의 영향력이 없다. 그보다는 블로그스피어가 옛날과 지금이 매우 달라졌다.) 지금은 모바일 및 문화 포스팅에 집중하는 편이나 과거에는 축구 포스팅을 활발하게 올렸던 시절이 있었다. 박지성이 지난해 이맘때 은퇴한 이후부터 유럽 축구 경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깊게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상에서 유럽축구는 점점 멀어졌다. 다시 축구 블로거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맨유 레전드 매치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일요일 저녁에 펼쳐진다는 점이다. 주말 저녁은 TV로 유럽 축구 즐겨보기 가장 좋은 때였다. 새벽 시간대에 비하면 취침 시간대를 피하면서 경기 시청하기 적절한 장점이 있다. 맨유 레전드 매치는 과거에 박지성 경기 끊임없이 지켜봤던 추억을 되살리는 기분 좋은 시간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동영상 = 지난해 5월 수원 vs PSV 에인트호번 경기가 끝난 뒤 박지성 위송빠레, 헹가래 연출되는 모습 (C) 나이스블루]

 

박지성 레전드 매치 출전은 앞으로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맨유 엠버서더이자 아시아 최초로 맨유에서 성공했던 축구 스타로서 구단과 관련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꽤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향후 맨유 행사에 참가하는 박지성을 보며 '과거에 맨유에서 잘했던 한국인 선수'라고 떠올릴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임에 분명하다.

 

박지성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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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블루

10월 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에버턴의 경기가 한국 축구팬들에게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박지성 엠버서더 위촉식 때문이었다. 박지성은 에버턴전을 앞두고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과 함께 그라운드에 등장하여 엠버서더 위촉식 행사를 가졌다. 박지성 엠버서더 임명이 자랑스러운 것은 맨유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축구팬을 보유중인 맨유의 홍보대사가 된 그의 위엄이 빛난다.

 

박지성은 2005/06시즌부터 2011/12시즌까지 맨유에서 7시즌 동안 205경기에서 27골 기록했던 미드필더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컵대회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에 이르기까지 맨유에서 영광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거듭났다.

 

[사진=박지성 엠버서더 선정을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박지성 엠버서더 선정이 눈에 띄는 것은 비유럽인으로서 최초로 맨유 홍보대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맨유 엠버서더가 된 인물은 박지성을 포함한 8명이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과 보비 찰튼, 브라이언 롭슨, 데니스 로, 앤디 콜, 게리 네빌, 피터 슈마이켈은 모두 유럽 국적의 인물들이다. 이중에서 덴마크 국적의 슈마이켈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영국 연방 출신이다. 박지성은 이들과 더불어 맨유 엠버서더로서 지구촌을 돌며 맨유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박지성 엠버서더 임명을 맨유 레전드 등극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박지성 이전에 맨유 엠버서더로 활동했던 인물들 모두 맨유를 화려하게 빛냈던 축구인으로서 레전드로 불릴만하다. 하지만 그가 엠버서더가 된 것은 레전드 등극이라기 보다는 맨유의 홍보대사가 되었다는 뜻이 더 정확하다. 선수가 아닌 엠버서더로서 맨유를 위해 일하는 것이지 레전드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지성이 맨유의 레전드로서 손색 없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지성 엠버서더 활동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경사다. 한국인이 유럽 축구의 빅 클럽이자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끄는 축구 클럽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 축구 역사에서 없었다. 맨유는 세계에서 축구팬을 가장 많이 보유한 팀으로 잘 알려졌으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마케팅 수익이 많다. 세계적인 축구팀의 홍보 대사로서 지구촌을 누빌 박지성의 발자취는 한국 축구 입장에서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가 맨유에 입단하면서, 맨유 선수로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것도 대단했으나 엠버서더 선정은 한국 축구에서는 전례가 드문 일이다.

 

한국 축구에서 엠버서더는 낯설게 느껴지는 존재다. 유럽 특정 클럽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축구인이 흔치 않았다. 박지성이 맨유 엠버서더가 되었을 때에도 '맨유에서 몇 번째?', '아시아에서만 엠버서더로 활동하냐?', '맨유 레전드가 되었느냐?' 여부를 놓고 말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박지성 레전드 등극에 대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다시 정리를 하면, 박지성은 맨유에서 8번째 엠버서더가 되었으며 아시아가 아닌 전 세계에서 맨유를 홍보하는 일을 하게 됐다. 그의 엠버서더 활동이 레전드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멘유 엠버서더 선정=레전드 등극'은 앞서나간 표현이다. 이러한 국내 여론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한국 축구에서 엠버서더가 얼마나 낯선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지성은 이제는 선수가 아닌 엠버서더로서 맨유를 위해 일을 하게 됐다. 그가 지구를 돌며 맨유를 홍보하는 일을 하는 소식이 한동안 우리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박지성이 선수 시절 맨유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 엠버서더로 활동할 명분을 얻었다. 어쩌면 아시아 선수로서 맨유에서 두각을 떨친 것이 맨유의 엠버서더가 되는데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 선수가 맨유에서 성공한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일본 대표팀 에이스 카가와 신지(현 도르트문트)의 맨유 실패를 통해 깨달았다. 더욱이 박지성이 7시즌 동안 205경기 뛰었을 당시의 맨유는 지금과 달리 유럽과 세계 축구를 빛냈던 팀으로서 최전성기를 보냈던 시절이었다.

 

맨유는 잉글랜드에서만 인기 팀이 아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맨유팬들이 꼭 있다. 특히 비유럽권에서는 '맨유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축구 꿈나무들이 꽤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한국에서도 맨유팬들이 많다. 박지성이 2005년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하기 전에도 맨유팬들이 많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정도로 맨유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놀랍다. 맨유 엠버서더로서 세계를 돌아다닐 박지성의 앞날 활동이 한국 축구에서 신선한 주목을 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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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블루

박지성 스페셜 포스팅을 올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박지성이 7월 25일 오늘 K리그 올스타전을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칩니다. '산소탱크', '캡틴 박', '아시아의 영웅'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들을 남기며 한국 축구에 엄청난 업적을 기여했던 박지성이 현역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모습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선수였던 박지성 스페셜 포스팅을 그동안 쓰고 싶었는데 오늘 올리게 되었네요.

 

이 포스팅에서 올리는 사진과 동영상은 모두 제가 촬영했습니다. 사진은 2011년 9월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취재하면서 찍었습니다. 2014년 5월 PSV 에인트호벤이 수원 블루윙즈와 친선 경기를 펼쳤을 때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들도 있고요. 저만의 박지성 스페셜을 올립니다.

 

 

박지성은 올해 33세입니다. 신장은 178cm이며 축구 선수치고는 큰 체격이 아니었으나 강철같은 체력과 부지런한 움직임, 끈질긴 승리욕에 특유의 성실한 면모까지 더해지면서 항상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항상 열심히 하겠다는 마인드가 습관으로 굳어지면서 한국 대표팀과 소속팀에 걸쳐 자신의 진가를 충분히 발휘했고 특히 큰 경기에 강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3개 대회에서 모두 골을 넣었으며 그가 전성기를 보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시절에는 '강팀 킬러', '아스널 킬러', 'AC밀란 킬러'로 유명했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겼던 이유 중에 하나가 리더의 부재였습니다. 박지성 같은 팀의 상징적인 리더가 더 이상 대표팀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젊은 선수 위주의 스쿼드가 세계 최고의 축구 대회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죠. 우리는 한국 대표팀의 연이은 졸전과 끊이지 않는 구설수를 보며 박지성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실감했습니다. 박지성 같은 훌륭한 축구 선수가 쉽게 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진] 박지성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유니폼이 박지성 축구센터에 전시된 모습입니다.

 

 

[사진] 제가 2011년 9월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봤던 박지성 어렸을적 일기입니다.

 

 

[사진] 박지성의 초등학교 시절 차범근 축구상 상패.

 

운이 나빴다면 박지성이라는 훌륭한 축구 선수는 등장하지 않았을 겁니다. 명지대에 겨우 입학했으니까요. 명지대 테니스부 정원이 1명 비어 있어서 다행히 학교에 입학하며 축구 선수 활동을 했습니다. 만약 명지대 축구부가 되지 못했다면 지금쯤 그가 어떤 인생을 보내는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비슷한 시기에 수원 블루윙즈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죠. 최악의 경우 수원공고 시절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좋은 스승들을 만나면서 인생이 잘 풀리게 되었죠.

 

 

[사진=박지성 교토 퍼플상가 시절의 유니폼&축구화]

 

박지성은 2000년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프로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2003년 1월 1일까지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었으며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떠나면서 10년 넘게 유럽 축구 무대를 누볐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 축구를 좋아하게 된 것도 박지성과 이영표의 PSV 에인트호벤 동반 입단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 이전까지 유럽 축구는 매니아들만 좋아했을 뿐이죠. 지금은 유럽 축구 경기를 흔하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사진=박지성은 2002년 7월 2일 체육훈장 맹호장 받았습니다. 훈장증에 '대통령 김대중'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사진=박지성의 2002년, 2006년, 2010년 월드컵 유니폼 및 축구화]

 

박지성하면 떠오르는 존재는 월드컵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전으로서 4강 신화를 주도했습니다. 특히 조별본선 3차전 포르투갈전 결승골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그때는 '루이스 피구 전성기였던' 포르투갈이 한국에게 부담스러운 상대였는데 그 경기에서 한국이 1-0으로 이기면서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유일한 득점자였던 박지성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16강을 이끌었죠. 당시 21세이자 대표팀에서 막내급이었던 박지성은 한일 월드컵 전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4강 신화 주역이 됐습니다.

 

되돌아보면 박지성의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전 발탁은 의외였습니다. 대회 이전까지는 언론에서 월드컵 최종 엔트리 탈락 후보 중에 한 명으로 꼽혔는데 당시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라운드에서 항상 싱싱한 모습을 보여줬던 박지성이 한국 대표팀 전력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판단했죠.

 

박지성은 치열한 주전 경합 끝에 한일 월드컵에서 3-4-3 포메이션의 오른쪽 측면 공격수를 맡으면서 수준급 경기력을 과시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선수 인지도 및 인맥과 관계없이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주전으로 발탁했던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은 지금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이후 PSV 에인트호벤 지휘봉을 잡으면서 2003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박지성과 이영표를 영입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유럽 축구에서 성공하기까지 히딩크 감독의 존재감이 컸습니다.

 

 

 

 

박지성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원정 첫 승 멤버로 활약했습니다. 비록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으나 조별본선 1차전 토고전 2-1 승리를 통해 처음으로 월드컵 원정 1승을 거두었습니다. 2차전 프랑스전 1-1 무승부는 박지성 동점골이 빛났던 경기였죠. 박지성은 4년 전 프랑스와의 A매치에서도 골을 넣었는데 월드컵 본선 프랑스전에서도 득점을 올리며 강팀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A매치에서는 통산 13골 넣었으나 모두 값어치가 컸습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만들어냈던 장면들이었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한국 대표팀 주장을 맡았습니다. '캡틴 박' 신화를 만들어냈던 대회였죠. 조별본선 1차전 그리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한국의 2-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원정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박지성이 팀 전력의 구심점이 되면서 후배 선수들이 큰 무대에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과시했습니다. 아마도 한국 축구 역사상 '위대한 주장' 중에 한 명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박지성의 PSV 에인트호벤 시절 유니폼 및 축구화. 맨유 입단 이전 시절의 유니폼입니다.]

 

 

[사진=박지성의 맨유 시절 유니폼]

 

 

[사진=박지성이 맨유에서 이루었던 성과들을 메달 및 우승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진=2007/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메달]

 

 

[사진=맨유에서 받았던 메달들. 가장 오른쪽에는 2008년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메달입니다.]

 

박지성의 클럽팀 최고의 전성기는 맨유 시절입니다. 2005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맨유로 이적하면서 7시즌 동안 205경기에서 27골 넣었습니다. 주로 왼쪽 윙어로 뛰었으나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오른쪽 윙어, 윙 포워드, 3백 전환시 오른쪽 윙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맡았습니다. 특유의 이타적인 경기력으로 동료 선수들의 공격 전개 및 득점 기회를 돕거나 허리에서 강한 압박을 과시하며 팀에 많은 승리를 챙겨줬습니다. 박지성이 선발로 뛰는 경기에서 맨유가 많이 이긴 것을 빗대서 '박지성 선발=맨유 승리'라는 공식까지 성립되었던 시절도 있었죠.

 

맨유 시절을 통해 아시아의 영웅으로 거듭난 박지성은 당시 맨유 사령탑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퍼거슨 감독 및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한 팀이 되면서 여러 차례 우승 성과를 이루었죠.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메달을 모두 받았던 유일한 한국인이 바로 박지성 입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와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결승전 선발 출전 경험이 있었죠. 

 

[동영상=2014년 5월 PSV 에인트호벤의 친선 경기 수원전에서 선수 소개때 박지성이 많은 환호를 받는 장면. 나이스블루 촬영]

 

 

[동영상=박지성이 수원전을 마치고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는 감동적인 모습. 나이스블루 촬영]

 

박지성은 2012/13시즌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거쳐 2013/14시즌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돌아왔습니다. 2014년 5월에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은퇴 선언을 했습니다. 선수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무릎이 버텨주지 못하면서 더 이상 현역 선수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죠. 2011년 1월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한 것도 무릎 때문입니다. 만 30세의 나이에 대표팀을 은퇴한 것은 한국 축구에서는 흔치 않았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여론의 옹호를 받았던 것은 그동안 대표팀에서 세웠던 공헌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여론에서는 2011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2의 박지성' 등장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 같은 위대한 축구 영웅이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박지성의 유럽 축구 커리어를 뛰어넘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박지성의 월드컵 커리어를 능가하는 인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21세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 축구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던 박지성의 투혼을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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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