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2012 런던 올림픽을 보는 것 같았다. 기성용은 8강 영국전 승부차기에서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서면서 득점을 올리며 한국의 4강 진출을 확정시켰다. 2년 뒤에는 선더랜드의 일원으로서 영국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득점이 선더랜드의 결승 진출을 이끄는 장면이 됐다.
기성용은 2013/14시즌 캐피털 원 컵 4강 2차전 맨유 원정에서 선더랜드의 결승 진출 주역이 됐다. 이날 120분 풀타임 뛰었으며 연장 후반 14분 필립 바슬리의 동점골을 도왔다. 올 시즌 2호 도움을 기록한 것. 선더랜드는 2차전에서 1-2로 패했으나 통합 스코어 3-3이 되면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2-1로 승리한 끝에 결승에서 맨체스터 시티와 우승을 다투게 됐다. 네 번째 키커 기성용 득점 이후 누구도 골을 성공시키지 못하면서 그 장면이 선더랜드 결승 진출의 결정타가 됐다.
[사진=기성용 (C) 선더랜드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safc.com)]
기성용 승부차기 골이 빛났던 이유는 실축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승부차기에서 10명의 키커가 나왔는데 3명만 득점을 성공시켰다. 맨유의 두 번째 키커였던 대런 플래처, 선더랜드의 세 번째와 네 번째 키커였던 마르코스 알론소, 기성용만 골을 넣었으며 나머지 7명은 실축했다.
선더랜드의 승부차기 승리도 운이 좋았다. 첫 번째와 두 번재 키커가 득점에 실패했기 때문. 맨유가 승부차기를 잘했다면 선더랜드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니 웰백, 아드낭 야누자이, 필 존스, 하파엘 다 실바가 실축하면서 행운의 여신은 선더랜드의 편을 들어줬다. 기성용의 골은 자신의 킥력이 좋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던 장면이 됐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우상으로 알려졌던 스티븐 제라드(리버풀)도 페널티킥골을 잘 넣는 선수로 유명하다.
연장 후반 14분에 도움을 올렸던 장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후반에 이어 연장전에서도 쉴새없이 패스를 공급하며 동료 선수들의 공격 전개를 도왔고 그 과정에서 바슬리의 득점을 공헌했다. 바슬리의 골은 맨유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의 실수에 의해 득점으로 연결됐으나 그 이전에는 기성용의 패스가 인상 깊었다. 이날 기성용은 팀에서 패스 횟수가 가장 많았으며(73개) 패스 성공률 93%를 기록했다. 여전히 정확한 패싱력을 과시했다.
도움 이전이었던 연장 후반 7분에는 드리블로 맨유 선수들을 제쳤던 장면이 있었다. 연장전을 소화하는 엄청난 체력 소모 속에서도 볼을 잘 다루며 상대 팀 선수들에게 주늑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많은 경기에 투입하면서 최근 체력 저하로 경기력이 주춤했으나 맨유전에서는 연장전에서도 잘 싸웠다. 지난 주말 사우스햄튼전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으나 이번 맨유전은 팀의 결승 진출 여부가 달려있던 경기였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정확한 패싱력과 안정적인 볼 컨트롤, 드리블을 뽐내며 맨유 선수들을 압도했다.
일본 대표팀 에이스 카가와 신지와의 맞대결에서도 이겼다. 카가와는 후반 16분에 교체됐으며 경기력 관점에서 기성용보다 존재감이 부족했다. 현 시점에서 동양인 최고의 프리미어리거는 기성용이라고 봐야 한다. 아무리 카가와가 빅 클럽 선수라고 할지라도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 활약상만을 놓고 보면 기성용이 더 우세하다.
기성용은 지난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맨유 격파의 일등공신이 됐다. 1차전에서는 마이클 캐릭, 톰 클레버리, 라이언 긱스와의 중원 대결에서 이기면서 선더랜드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2차전에서는 팀의 1-2 패배 속에서도 도움을 기록했고 승부차기에서는 결승골을 터뜨렸다. 선더랜드는 지난 몇 시즌 동안 맨유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올 시즌 캐피털 원 컵에서는 '기성용 효과'에 웃었다. 기성용과 선더랜드의 다음 목표는 캐피털 원 컵 우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