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동국 프로필 (C) 대한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kfa.or.kr)]
'사자왕' 이동국(30, 전북)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한국 축구를 빛낸 스트라이커입니다. 자신의 경기 장면 하나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때로는 극적인 골을 터뜨리며 축구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아로새긴 선수였습니다. 한때는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K리그 흥행을 주도했을 정도로 열렬한 사랑을 독차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의 축구 인생은 한마디로 다사다난했습니다. 부상과 부진, 불운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안좋은 일을 겪어 어려움에 빠진적이 많았고, 자신의 잘못으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강력한 한 방으로 국민적인 환호를 받았지만 때로는 실망스러운 활약으로 모든 이들의 비난을 받거나 침체의 늪에 빠져 축구팬들을 아쉽게 했습니다. 그 주 무대는 다름 아닌 국가 대표팀이었습니다.
그런 이동국이 2007년 7월 아시안컵 이후 2년 1개월만에 대표팀에 복귀했습니다. 1998년 5월 A매치 자메이카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이후 지금까지 11년 동안 7명의 감독과 접했지만 축구팬들은 여전히 자신에 대하여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 해피엔딩 또는 불운한 대표팀 커리어의 기로에 선 이동국의 앞날이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영광과 아픔이 엇갈리는 이동국의 대표팀 인생 11년 추억을 정리하며 지난날의 시간을 되돌아 봤습니다.
1. 차범근호 : 프랑스 월드컵, 한국 축구 혜성의 등장(A매치 2경기 출전)
이동국은 1998년 2월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그해 포항에 입단하여 프로에 몸을 담았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동물같은 골 감각으로 K리그의 뉴페이스로 거듭났고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잠재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그해 5월 프랑스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 23인에 뽑혔습니다. 5월 16일 자메이카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르고 월드컵 본선에 임했지만, 한국은 멕시코전 1-3 및 네덜란드전 0-5 패배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은 네덜란드전에서 후반 32분 교체 투입해 경기 종료 5분여를 남기고 빨랫줄같은 중거리슛을 날리며 한국 축구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한국 축구 혜성의 등장을 알린 그의 앞날은 오랫동안 순탄할 것 같았습니다.
2. 허정무호 : 아시안컵 득점왕, 혹사속에 거둔 영광 (A매치 15경기 출전 8골)
그러나 이동국의 불운은 프랑스 월드컵 이후부터 시작 됐습니다. 그해 7월부터 연말까지 K리그와 청소년, 아시안게임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여 혹사에 시달렸고 12월 방콕 아시안게임(당시 A매치 인정)에서는 4경기 무득점 및 경기력 부진으로 '게으르다', '걸어다닌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에도 혹사는 계속 되었고 2000년 2월 골드컵에서는 무릎부상이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경기에 출전하더니 결국 부상이 심화되어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 여파는 시드니 올림픽 본선 부진 및 독일 분데스리가 실패(2001년 1월 진출, 베르더 브레멘)로 이어졌습니다. 분데스리가 진출도 무릎부상 후유증을 앓고 있던 상황에서 일이 추진된 것이죠.
하지만 2000년 10월 아시안컵에서는 올림픽 본선 부진 만회를 위한 심기일전을 했습니다. 한국이 아시안컵 본선 2차전 쿠웨이트전까지 1무1패로 탈락 위기에 몰려 인도네시아와의 3차전 올인에 직면했죠. 이동국은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의 3-0 승리 및 8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8강 이란전-4강 사우디 아라비아전-3/4위전 중국전에서 연이어 골을 터뜨리며 대회 6골로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특히 이란전에서는 연장 전반 10분에 팀의 2-1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넣으며 4년 전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대패했던 수모를 통쾌하게 복수했습니다. 혹사 후유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음에도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사력을 다했던 겁니다.
3. 히딩크호 : 2002년, 최악의 해를 보내다 (A매치 11경기 출전 1골)
이동국은 히딩크호에서 A매치 1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습니다. 2001년 9월 16일 나이지리아전에서 후반 46분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의 2-1 승리를 이끈 것 이외에는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1998~2000년 혹사 및 2001년 분데스리가 실패, 그리고 무릎 부상 후유증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력을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 부진했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의 눈에 좋게 보일리 없었습니다.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해 가을 부산 아시안게임(A매치 기록 인정되지 않음) 5경기에서 4골을 넣었으나 4강 이란전 승부차기 패배로 병역면제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여파는 어느 K리그 서포터즈가 "개동국 당신의 군입대를 축하합니다"라는 비방성 걸게를 경기장에 내거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동국은 이 걸게를 한참 처다보며 서있기만 했습니다. 시즌 막판에는 또 부진에 빠지면서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의 호된 질타를 감수했습니다.
4. 쿠엘류호 : 연이은 대표팀 탈락 (A매치 1경기 출전)
이동국은 2003년 초 상무에 입대해 재도약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의 부진은 계속 되었습니다. 2003년 4월 16일 일본전에서 4-2-3-1 포메이션의 원톱으로 선발 출전했으나 선수들이 새로운 포메이션에 적응하지 못해 유기적인 공격을 펼치기 어려웠습니다. 이동국의 최전방 고립은 당연한 결과였고, 결국 이렇다할 활약 없이 후반 20분 관중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벤치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후 1년 넘게 대표팀에서 탈락했지만, 상무에서 꾸준히 기량을 연마하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재기 성공에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5. 본프레레호 :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다 (A매치 22경기 출전 11골)
이동국은 2004년 7월 본프레레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7월 10일 바레인전에서 선제골을 넣더니 아시안컵 4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본프레레 감독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거의 매 경기마다 골을 넣으며 골잡이의 진가를 발휘했지만 축구팬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가웠습니다. 문전 앞에서의 저조한 움직임과 소극적인 공격 기회 창출로 팬과 언론의 거센 질타를 감수하고 말았죠.
그러나 2004년 12월 독일전에서 그림같은 오른발 발리슛으로 팀의 3-1 승리를 이끌며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자신의 골 장면을 지켜봤던 한 독일 축구 기자는 "이동국의 골은 네덜란드 특급 골잡이 마르코 판 바스텐이 1988년 유럽 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터뜨린 골과 비견된다"고 극찬했을 정도였죠. 그는 2005년 2월 9일 쿠웨이트와의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에서 멋진 한 방을 꽂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6월 8일 쿠웨이트와의 리턴 매치에서는 한국의 4-0 대승 및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견인하는 골을 넣었습니다. 본프레레호 22경기에서 11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 부동의 공격수로 자리잡았습니다.
6. 아드보카트호 : 십자인대 부상으로 월드컵 본선 출전 좌절 (A매치 13경기 출전 2골)
이동국의 진가는 아드보카트호에서도 게속 되었습니다. A매치 13경기에서 2골에 그쳤지만 골보다는 주위 선수들을 돕는 이타적인 활약에 포커스를 맞춰 아드보카트 감독의 신뢰를 얻었던 것이죠. 아드보카트 감독이 주문하는 3-4-3과 4-3-3에서의 원톱은 측면에서 전방으로 돌파하는 선수들에게 공을 배급하고 위치를 바꾸면서 팀 공격의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선수였는데, 자신이 대표팀 공격수 중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독일 월드컵 본선은 자신의 이타적인 활약으로 박지성(박주영)-이천수의 득점력을 살리는 전술에 포커스가 맞추어졌습니다.
그러나 2006년 4월,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 자신의 월드컵 본선 출전에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술을 하면 완치될 수 있지만 회복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월드컵의 꿈을 접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이동국은 부상 악화를 무릅쓰고 재활을 하겠다며 월드컵 본선 출전 의지를 불태웠지만 본선 날짜가 얼마 안남았기 때문에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는 수술을 택하여 월드컵 본선 출전의 꿈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으로 미루었습니다. 그동안 누구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던 월드컵 본선 무대는 그라운드가 아닌 관중석(토고전)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7. 베어벡호 : 부상 후유증 그리고 음주파동과 방출 (A매치 7경기 출전)
이동국은 2006년 10월 29일 수원전에서 복귀전을 가진 뒤 이듬해 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 입단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6월 29일 A매치 이라크전에 출전하여 1년 3개월만에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2007년 2월과 6월 무릎 타박상을 입더니, 6월 25일 대표팀 훈련 이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아시안컵에서는 조재진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무득점에 그쳤고,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마저 충분히 주어지지 못해 2007/08시즌 미들즈브러에서 몸이 무거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여기에 아시안컵 음주파동에 휘말려 1년간 대표팀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지난해 미들즈브러(5월)-성남(12월)에서 방출되는 시련을 당했습니다. 유명 축구 선수가 1년에 두 팀에서 방출되는 경우는 무척 드문일이어서 선수 본인의 마음이 착잡했을 것입니다.
8. 허정무호 : 한국 축구의 진정한 영웅이 되고 싶다!
그동안 온갖 시련으로 고생했던 이동국이 지난 3일 대표팀에 발탁 됐습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에 따라 대표팀 선수를 뽑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원칙에 부합되면서 태극 마크를 달을 수 있는 명분을 얻었던 것이죠. 이동국은 올 시즌 K리그 16경기 14골로 데얀(서울, 15경기 10골) 김영후(강원, 17경기 10골)를 제치고 득점 1위를 기록중입니다. 2006년 4월 십자인대 부상 이후 연이은 부상 악몽과 끝없는 부진으로 마음 고생이 많았던 그가 이제는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대표팀 부동의 골게터로 활약하게 됐습니다.
이동국은 이번 남아공 월드컵 본선이 사실상 마지막 도전입니다. 남아공행 비행기에 탑승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선수 본인은 월드컵 본선 출전 12년의 한을 끝맺기 위해 절치부심할 것입니다. 적어도 현존하는 한국 공격수 중에서는 골 냄새를 캐치하는 감각과 공간을 파고드는 능력, 문전에서 골을 노리는 위치선정 만큼은 최고입니다. K리그에서 부활에 성공한 그가 한국의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을 선두에서 이끌며 한국 축구의 불운아에서 한국 축구의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날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By. 효리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