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이 지구촌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승리를 열망하는 선수들의 열정, 목표를 위한 무한 질주, 금메달을 향한 투쟁이 많은 이들을 열광케 하고 있습니다. 동계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지구촌 최고의 동계 스포츠 대회여서, 선수들이 4년에 걸친 철저한 준비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는데 초점을 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뜨거운 성원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국민들은 동계 올림픽에서 눈물나게 잘 싸우고 있는 선수들을 격려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통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선수들의 불꽃 투혼에 보답하고 환호하며 열화와 같은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죠. 특히 한국 선수의 금메달 획득 소식은 전국을 떠들석하게 하며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금메달 영웅들에게 열화와 같은 응원과 찬사를 보내며 격려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금메달 영웅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다소 지나쳤던 것이 사실입니다. '올림픽 금메달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금메달만 인정하고 은메달 부터 주목하지 않는 사회적인 풍토가 만연한 것이 문제죠. 2008 베이징 하계 올림픽 유도 금메달 리스트였던 최민호는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으나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스포츠를 즐기기 보다는 금메달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풍토가 선수들을 부담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자료=네티즌도 위젯을 통해 밴쿠버 동계 올림픽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메달 및 순위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감동을 선사했던 선수에게 금메달을 수여할 수 있는 위젯이죠. 이 위젯은 효리사랑 블로그의 사이드 바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C) 효리사랑 캡쳐]

그런가 하면, 메달에 관계없이 국민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뜻하지 않은 왼발 부상으로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끝까지 역기를 들어올리다 쓰러졌던 역도 선수 이배영이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당시 이배영은 역기를 드는 순간 왼발 통증을 극복하지 못해 무릎을 꿇었지만 두 손으로 역기를 끝까지 잡는 '부상 투혼'은 국민들을 비롯 개최국이었던 중국 관중들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받는 감동의 물결을 안겼습니다.

그 중에 한 네티즌은 "당신의 의지는 금메달 감이다. 당신의 투혼은 금메달리스트보다 훨씬 값지고 빛났다.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이배영의 투혼을 높이 치켜 세웠고 다른 네티즌 역시 "금메달 이상의 감동이다. 당신의 끝없는 투지에 찬사를 보낸다"라며 이배영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바라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금메달이라면, 이배영의 투혼은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 보다는 최선'을 모토로 삼는 스포츠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올림픽에서의 진정한 금메달 영웅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선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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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위젯을 통해 선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C) 효리사랑 캡쳐]

그런 이배영은 베이징 올림픽 종료 후 네티즌들이 선사하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삼성이 후원한 "아이 러브 올림픽 게임즈(I Love Olympic Games)' 캠페인을 통해 안타깝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거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을 네티즌이 직접 응원하여 금메달이 증정되는 행사였죠. 누리꾼들의 성원을 통해 금메달을 받은 선수들은 이배영을 비롯해 15명의 여자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 양궁 선수 박성현, 탁구 선수 당예서, 역도 선수 윤진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삼성이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맞이하여 '두근두근 Tomorrow'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 일환 중에 하나인 '두근두근 네티즌 금메달'은 2년 전의 이배영처럼 우승을 뛰어넘는 감동을 보여준 선수들을 네티즌이 직접 선정하여 금메달을 부여하는 이벤트입니다. 특히 이번 캠페인의 특징은 블로그에 설치된 위젯을 통해 선수들을 응원하고 금메달을 선정할 수 있습니다.

삼성이 후원하는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네티즌 금메달은 메달 및 순위와는 관련 없이 주어지는 상입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불굴의 의지와 의욕을 발휘하며 최선을 다했던, 그동안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과 운이 없었던 시련을 이기기 위해 끝까지 도전했던 선수들에게 응원의 힘을 블로그에 있는 위젯을 통해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정된 선수에게는 네티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금메달이 수여됩니다.

우리들이 명심할 것은, 밴쿠버에서 땀흘리고 있는 선수들이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에 목마름이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저 경기를 보는 입장이지만, 선수들은 올림픽을 위해 4년 동안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며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올림픽에서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값진 우리들의 금메달입니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그들을 응원하고 성원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블로그에 있는 위젯을 통해서 말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유럽축구 경기가 열릴 때 입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개인기를 보면서 마음속의 열광에 젖을때가 많습니다. 특히 젊고 싱싱한 유망주가 대형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은 정말 뿌듯했습니다. 지구촌 축구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영웅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특히 호나우두가 FC 바르셀로나에서 거침없는 골 감각을 발휘하며 축구황제의 도약을 알렸던 1996년은 제가 축구를 좋아했던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이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좋아합니다. 한국 선수들이 축구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고의 리그인 잉글랜드에서 그라운드를 부지런히 누비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치열한 볼 다툼을 벌이는 모습 그 자체가 저의 두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활약을 보기 위해 밤을 새며, 혹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TV 리모콘에 전원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경기 한 시간 전에 출전선수 명단을 확인하는 것,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에 들어가 선수 평점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특히 박지성은 저에게 각별합니다. 한국인 선수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고 맨유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클럽에서 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누구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꿈을 박지성이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FIFA 클럽 월드컵, 칼링컵 우승 메달과 함께 말입니다. 특히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3년 연속 우승 메달을 받은 것은 아시아 선수 어느 누구도 이루기 힘든 기록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영웅'으로 일컫는 그의 저력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지성과 맨유의 경기를 즐겨보는 젊은 사람들을 말하는 '박지성 세대' 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SBS 축구 채널에서 방영되었던 교토 퍼플상가(현 교토 상가)의 경기를 보면서 박지성의 활약을 꾸준히 지켜봤습니다. 때로는 일본 NHK에서 방영되는 J리그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박지성의 골과 어시스트 장면을 보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더니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의 경기를 보며 박지성이 유럽 축구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지금은 맨유에서의 성공에 기뻐 했습니다.

박지성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입니다. '박지성 절친' 파트리스 에브라는 지난 7월 24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은 완전히 '한국의 왕(the king of korea)'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박지성을 위해 손을 흔든다. 한국의 베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한국에서 박지성 열기가 높다는 것을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알렸습니다. 그 열기는 맨유가 한국에서 '국민팀'으로 발돋움했던 계기가 됐습니다. 맨유는 K리그와 국가대표팀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그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습니다. 박지성 세대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하지만 제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박지성 이전에는 박찬호를 열렬히 좋아했던 것 말입니다. 11일 저녁에 MBC에서 박찬호 스페셜 방송이었던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박찬호를 좋아했던 추억들이 저의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박지성을 좋아하는 것 처럼, 예전에는 박찬호를 열렬히 좋아했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 제가 박지성 세대 이전에는 박찬호 세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현재 메이져리그 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박찬호의 경기를 통해 메이져리그 경기를 자주 봤습니다. 박찬호의 LA다져스가 이길때마다 좋아했고, 특히 박찬호가 승리투수가 되었을때는 마치 저의 일인 것 처럼 기뻤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국민들 모두가 박찬호의 승리를 기뻐했고 패전 투수가 되거나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을때는 아쉬워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져리거였던 박찬호의 맹활약은 IMF 경제 위기로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됐습니다. 척수병으로 고생하는 타이거 JK가 박지성에 희망을 가지는 것 처럼, 국민들은 박찬호의 투구 동작에 인생의 활력소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박찬호가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날에는 학교에서 쉬는시간마다 TV를 틀으며 박찬호의 경기를 봤습니다. 박찬호가 삼진 잡으면 반 전체가 환호성을 질렀고 다져스가 득점을 올릴때는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학교 선생이 개인 사정으로 수업에 빠지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박찬호 경기를 봤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뉴스에서는 박찬호의 경기를 TV로 지켜보며 환호하는 회사 직장인들, 서울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대기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그 당시의 박찬호 경기는 항상 챙겨봤으니까요.

박찬호의 전성기 시절 동료였던 노모 히데오,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게리 셰필드의 이름도 아직 기억에 납니다. 일본인 투수 노모는 독특한 투구폼으로 유명했고 피아자와 몬데시는 '피하자'와 발음이 비슷하고 '몬데이~시'로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개그맨들이 개인기 소재로 삼았습니다. 몬데시는 박찬호 경기때마다 홈런과 안타를 날리며 국내에서 '박찬호 도우미'로 각광받았고 그 뒤를 잇는 셰필드의 타격폼과 염소 모양의 수염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1997년에 SBS 개그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박찬호-노모-피아자-몬데시를 흉내내던 코너 말입니다. 박찬호 신드롬은 국내 방송계까지 강타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지성의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2002년에는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져스에서 먹튀 소리를 듣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하면서 5년간 845억원의 어마어마한 계약을 맺었으나 제구력 난조 및 허리 통증으로 슬럼프에 빠져 결국 내리막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845억원이라는 거액은 박찬호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줬고 메이져리그에서 전례를 보기드문 '먹튀 리스트'에 박찬호의 이름이 포함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박찬호를 향한 인기가 분노로 돌변했고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안티팬들이 기하급수로 늘었습니다.

저의 머릿속에도 박찬호라는 존재감이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일이 없이 없는데다 당시에는 야구보다 축구가 대세였기 때문에 유럽축구와 K리그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찬호가 재기를 벼르던 2000년대 중반의 저는 군인 이었습니다. 바깥 소식을 접하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박찬호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메이져리그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저의 고참은 항상 박찬호를 욕하고 다니더군요. 군대에서 제대했던 2007년에는 박찬호가 뉴욕 메츠에서의 부진으로 마이너리그로 추락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거기서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박찬호는 2008년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LA 다져스에서 재기에 성공하여 '자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실력으로 과시했습니다. 전성기 시절처럼 10승 이상의 성적을 올린것은 아니었지만 선발과 불펜 요원을 오가며 팀에서 맡은 일을 척척 도맡았습니다. 비록 자신의 인기는 전성기 시절 같지 않았지만 명예회복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뜨는 박찬호 관련 소식이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많았으니, 대중들도 박찬호를 다시 반겼습니다.

박찬호의 올해 나이가 37세 입니다. MBC 스페셜에서 박찬호의 나이가 37세로 소개되는 모습을 보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낍니다. 박찬호가 전성기를 쓰기 시작했던 1997년의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지금은 20대 중반입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 1등 신랑감이었던 박찬호도 이제는 2명의 예쁜 딸이 있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듯, 세월은 상류에서 하류로 향하는 물 처럼 흐르고 말았습니다. 비록 박찬호 시대는 끝났지만, 어제 MBC 스페셜을 보면서 그 추억이 달콤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박찬호가 언제까지 메이져리그에서 공을 던질지는 모릅니다. 메이져리그에서 40세 넘는 선수가 선발 등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처럼, 박찬호도 그 중에 한 명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때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얻었던 박찬호의 선수 말년은 다른 노장들보다 화려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어쩌면 축구팬인 제가 야구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는게 다른 사람에게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야구와 축구가 한국에서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축구팬이 야구를 논하고, 야구팬이 축구를 논하는 정서가 그동안 우리들에게 달갑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구팬들이 유명 축구 게시판을 공격하고 축구팬들이 야구를 비방하는 일이 오랫동안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의 전쟁이 길고 치열했습니다.

물론 야구와 축구 중에 어느 종목이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지는 쉽게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야구가 세계 빅3에 들어갈까 말까한 자국 프로리그를 운영하고 있다면 축구는 3부리그(K3리그) 운영에 세계 정상급의 시설을 자랑하는 축구장만 여러개를 보유한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조기 축구회까지 활성화 될 정도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 차이점이 있지만 워낙 우리나라의 스포츠 파이가 적다보니, 야구팬들과 축구팬들이 No.1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소모적인 경쟁 뿐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야구와 축구 모두 한국 스포츠에 없어선 안될 '히트 상품'이라는 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사실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축구처럼 완전히 미칠듯이 좋아하지 않았는데다 모 프로축구팀 서포터로 활동했기 때문에 '완전한 축구팬'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더구나 군 입대 전까지는 야구 경기를 TV로 보는 것이 곤욕이었습니다. 3시간 넘게 진행되는 야구 경기 시간이 너무 길고 따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공부에 쫒기느라 야구 경기를 볼 시간이 없었고 대학교때는 '지루한 야구를 보느니 90분 동안 하는 축구가 다이내믹하다'며 1년에 50차례 넘게 축구장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때는 야구의 전반적인 인기가 지금에 비해 떨어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야구의 '진짜 매력'을 몰랐습니다. 지금도 축구 경기에 쫓기면서 야구를 즐겨 볼 시간이 많지 않았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야구가 많은 사람들의 매력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한때 연간 관중 300만이 되지 않았던 프로야구가 지난해 500만 고지를 넘어서면서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제가 주로 찾는 유명 축구 게시판 여러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야구 이야기로 꽃을 피울 정도로 이 땅에 '야구 열풍'이 불어닥친 것입니다. 야구를 비방하는 이들도 아직은 존재하고 있지만 야구 인기의 오름세 분위기를 누르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입니다. 축구와 야구를 모두 좋아하는 스포츠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열린 베이징 올림픽은 야구와 축구의 명암을 엇갈리게 하는 결정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축구는 이탈리아전 0-3 완패의 무기력한 경기력을 일관하며 '축구장에 물채워라'라는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고 야구는 9전 9승에 힘입어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더욱이 허정무호가 지난해 9월 요르단전과 북한전에서 답답한 경기를 펼치면서 두 스포츠 종목의 인기 구도는 '축구<야구'로 완전히 기울어졌습니다. 특히 북한전 이후에는 '축구를 다루는' 제 블로그에 몇몇 네티즌들이 '아직도 축구 즐겨 봅니까? 정신건강에 해로우니까 절때로 보지 마세요', '요즘 시대에 축구글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까?'라는 내용의 악성댓글을 달으며 축구를 깎아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 야구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길 바랬습니다.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하다 이듬해 베트남과 오만에게 발목 잡히고 K리그 흥행까지 저조했던 것 처럼 야구도 거품이 빠지길 바랬던 것입니다. 시끄러웠던 감독 선임 과정을 비롯해 박찬호-이승엽의 불참,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이 한국 야구 대표팀의 발목을 잡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을 발판삼아 축구의 인기가 회복되길 바라는 '아주 이기적인' 생각을 마음속에 그려봤습니다. 참으로 못된 축구팬이죠.

하지만 한국인의 끊어오르는 피는 절때로 못속이겠더군요. 한국이 도쿄돔에서 일본에게 2-14 콜드패를 당할때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WBC는 절때로 보지 않겠다'던 제가 주말에 우연히 TV를 틀어 보니까 김광현이 1회초부터 일본 타자들에게 무더기 안타를 맞더니 무라타 슈이치에게 스리런 홈런을 허용하면서 8실점으로 고개를 떨구고 강판당한 것입니다. 김광현의 모습이 어찌나 승부차기에서 결정적인 실축을 범한 선수의 심정과 비슷하게 느껴지던지 모르겠습니다. 12점차 패배 및 콜드패라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일본킬러' 김광현이 무너지는 모습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장면이었습니다. 어찌나 위로해 주고 싶었던지...

그 이후부터는 WBC 한국 경기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챙겨 봤습니다. 'WBC 우승은 못하더라도 일본의 콧대를 완전히 눌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제 마음속을 야구로 이끌리게 한 것이죠. 특히 '의사' 봉중근이 일본 타선을 두번이나 요리했던 경기는 정말 시원하고 화끈했습니다. 그런데 탈락 위기에 있던 일본이 2라운드 패자부활전에서 쿠바를 꺾은뒤 1~2위 결정전에서 '여유있게 경기하던' 한국까지 이기더군요. 마치 미꾸라지처럼 지지리도 운이 좋았던 겁니다. 그 모습이 명랑만화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나애리처럼 얼마나 얄미웠던지요.(일본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WBC 일정이 석연찮은것은 사실입니다.)

결국 WBC 우승 트로피는 한국이 아닌 일본 선수들이 하늘 위로 치켜 세웠습니다. 1회 대회때도 한국에게 두번이나 지면서도 우승하더니만 2회 대회에서는 봉중근에게 두 번 당하고도 결승전에서 한국을 누른 것입니다. 결승 한국전에서 6타수 4안타에 결승 2타점을 올린 스즈키 이치로와 한국전 선발투수로 선전했던 이와쿠미 히사시의 안정적인 볼배합을 우리 선수들이 정면공략하지 못한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김광현이 결승전에 마지막 구원 투수로 등판해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고 '특유의' 웃음을 짓기를 바랬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지요.

그 보다 더 아쉬운 것은 우리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일본을 꺾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것을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 것입니다. 봉중근과 정현욱이 여러차례의 잔루 위기 상황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대량 실점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 추신수가 이와쿠미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뽑은 것, 고영민의 다이빙 캐치, 9회말 2사 상황에서 이범호가 동점 안타를 날린 것 그 외 등등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우리 선수들의 똘똘 뭉친 집념은 일본을 충분히 압도했습니다. 야구는 엄연히 팀 플레이가 중심이 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의 하나된 마음이 9회~10회 즈음에 좋은 결실을 얻을것이라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비록 결승전은 아쉽게 패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뜨거운 승리욕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2-14 콜드패라는 시련이 있었지만 이러한 기억은 한국 야구 대표팀이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게한 '힘'이었던 겁니다. 1루-2루-3루, 그리고 홈플레이트를 밟기 위해 일본을 상대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선수들의 끈기는 마치 '꿈과 목표'를 향해 달리는 우리들의 인생사와 다름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 단순한 '반짝 성적'이 아니라는 것을 지구촌 야구팬들에게 당당히 증명한 것과 동시에 국민들에게 야구라는 매력을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WBC를 보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축구보다 야구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사랑하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전 2-14 콜드패의 압박 속에서도 다시 피고 또 피어나는 향연은 마치 꽃 한송이가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비단 WBC 뿐만은 아닙니다. '도하의 굴욕'을 당한 한국 야구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21타수 1안타로 눈물을 흘린 김현수가 이번 대회에서 3번 타자로서 제 몫을 다한 것, '노예'로 여겨졌던 정현욱이 '국노'로 급부상한 장면 등이 어찌나 '아름다운 꽃'과 같았는지요. 어쩌면 우리 선수들이 국민들에게 안겨준 최고의 선물은 WBC 우승이 아닌 '야구의 진정한 매력'이었을지 모릅니다.

이제 한국 축구도 야구가 WBC에서 보여준 저력을 보면서 좀 더 분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짧게는 다음달 1일 북한전에서 지난해 4연속 무승부의 징크스에서 벗어나 화끈하게 승리하기를, 길게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맹활약 및 앞으로의 모든 국제 대회 선전으로 국민들에게 '축구는 행복한 스포츠'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굳혀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야구도 지금의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기를 기원합니다. 비록 축구와 야구는 한국에서 대립적인 관계지만, 두 종목 모두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쏘아 올리는 '인간승리의 드라마'임을 오랫동안 증명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두 종목의 진정한 '선의의 경쟁'이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지난 2005년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전. 안산공고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187cm의 키 큰 투수는 강속구로 일본 타자를 압도하는 구위를 자랑하며 5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습니다.  앳된 미성년자였던 그는 1년 선배였던 류현진, 한기주와 함께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받으며 앞날의 밝은 미래를 예감케 했습니다.

그런 그는 2007년 SK 입단 후 괴물 투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3승7패에 2군 강등이라는 수모를 당하며 주위의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던 것이 2007년 11월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주니치전 이었습니다. 이날 경기에 선발 등판해 7.2이닝 1실점으로 대회 사상 처음으로 일본에 패배를 안기며 괴물 투수의 이름값을 해냈습니다.

그의 주니치전 활약은 지난해 '반짝'이 아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지난해 프로 최다승과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프로야구 최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하더니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금메달 획득의 주역으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특히 일본과의 2경기 활약이 매우 눈부셨습니다. 13.1이닝 3실점(2자책)의 호투를 펼쳐, 경기 전 인터뷰에서 자신을 깎아내렸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코를 납짝하게 만든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일본전에서 상대 타자들을 거침없이 제압했던 그를 향해 '일본 킬러'라는 수식어를 선물했습니다. 그가 바로 김광현(21, SK) 입니다.

김광현은 특히 일본전에서 눈부신 피칭을 자랑하며 우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그런 김광현이었기에 우리들이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많았고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 일본전에서는 평소보다 더 기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가대항전을 비롯 아시아시리즈에서는 '김광현 선발=일본전'이라는 공식이 성립했을 정도로, 김광현의 선발 등판은 이번 일본전을 앞두고도 기정 사실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김광현이 이번에도 무언가 해줄 거란 기대감에 경기를 지켜봤으며 코칭스태프 또한 주저 없이 그를 일본전 선발 투수로 기용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엄청난 독이 되었을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일본 야구는 '현미경 야구'로 불릴 만큼 선수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환경에 익숙합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그리고 김광현에게 두번의 굴욕을 맛봤던 일본이었기에 이번 WBC를 단단히 벼르고 있었으며 한국 공략의 모든 초점은 '김광현 격파'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김광현을 한국전 선발 투수로 일찌감치 예상했기 때문에 하라 다쓰노리 감독을 비롯한 일본 코칭스태프들과 언론들이 그의 투구를 집중 분석했고 아사히 TV에서는 15분 동영상으로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그를 자극했습니다. 어쩌면 김광현의 이번 일본전 부진은 당연한 현상이었을지 모릅니다.

김광현은 1회 선두 타자와 승부하면서 부터 단단히 무너졌습니다. 1회 이치로에게 2구째만에 안타를 허용하더니 나카지마와 아오키로부터 안타를 맞으면서 노아웃 주자 만루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후속 타자들에게 진루타를 내주면서 3실점. 이후 김태균이 1회말 마쓰자카로 부터 투런 홈런을 뽑으면서 기가 살아나는 듯 했지만, 2회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이치로의 희생번트를 놓치고 4번 무라타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며 고개를 떨구고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일본 킬러'로 불리던 그의 이번 경기 성적은 1.1이닝 7안타 8실점(3점 홈런 포함) 볼넷 2개의 초라한 성적이었습니다.

결국 '김광현을 마음껏 공략하자'는 일본의 작전은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이미 일본전 선발 투수로 줄곧 김광현이 예고되었으니 '현미경 야구'에 그대로 당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일본의 선발 투수로 누가 투입할지 쉽게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일본의 두꺼운 선수층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한국 투수진 중에서 김광현 처럼 일본전에 강한 투수가 있었다면 이번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김광현을 믿고 기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14-2에 7회 콜드 게임 패배라는 한일전 야구 역사상 최악의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일본 킬러였던 김광현의 명성이 억수로 무너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번 일본전 패배의 '주범'으로 김광현을 지목하며 온갖 짜증과 불평을 내뿜었습니다. 한국 야구의 기대주로 찬사 받던 김광현의 단 한번의 일본전 때문에 '형편없는 투수'라는 가혹한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21세의 젊은 선수에게 엄청난 비난과 질타 그리고 악플이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야구 인생이래 처음으로 가혹한 시련을 남겼고 김인식 감독과 야구팬, 그리고 국민들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안겨줬습니다.

김광현이 부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저 '현미경 야구'에 의한 패배만이 아닙니다. 김광현은 대회 이전까지 자신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했으며 일본전 이전에 가진 연습 경기에서도 지난해 프로야구 MVP의 '포스'를 맘껏 뽐내지 못했습니다. 몸이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도 한국'을 벼르던 일본 타자들에게 맥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2회초 노아웃 주자 만루 2-3 볼카운트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삼진이 될 수 있었던 공이 주심에 의해 볼로 처리되어 실점하면서, 이때부터 심리적인 안정을 잃으면서 구위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번 일본전을 보듯, 김광현은 아직 어린 선수였을 뿐입니다. 아무리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에서 눈부신 피칭을 했지만 산전수전 경험을 다 겪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타자들의 날카로운 칼날에 고전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특히 일본전은 다른 경기보다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일본의 집중 분석에 시달렸던' 김광현이 마음속에 짊어졌던 짐은 너무나 무거웠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이번 경기에서 최상의 투구 내용을 기대했던 것은 그에게 무리한 요구였을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나라 야구는 아무리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을 두번이나 꺾으며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전반적인 야구 수준은 아직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국 프로야구 환경 및 전반적인 인프라 등에서는 일본에게 압도적으로 밀려있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초등학교 야구부들이 해체되는 곳이 하나 둘 씩 늘어날 정도로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프로 야구가 한국 스포츠 중에서 가장 인기많은 종목이라고 하더라도 유소년 양성 및 인프라는 열악한 수준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며 김광현이라는 투수가 배출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김광현 스스로도 이번 경기에서 얻은 교훈이 있었을 것입니다. 경험이 없으면 위기 상황에서 쉽게 무너진다는 것 말입니다. 아직 김광현은 21세의 어린 선수이며 적어도 10~15년 동안, 길게는 송진우와 구대성처럼 20년 더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할 수 있습니다. 단기전에서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김광현 본인 스스로도 이번 경기를 타산지석 삼을 겁니다. 더욱이 그에게는 자신의 스승인 김성근 SK 감독이 애지중지하게 아끼고 있기 때문에 아직 앞날이 밝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김광현이 일본전에서 복수할 기회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한국이 8일 중국과의 패자부활전에서 승리하면 다시 일본과 맞붙은 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일본과 대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본전 8실점'이라는 굴욕적인 피칭을 만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비단 WBC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SK가 한국시리즈 우승 자격으로 아시아시리즈에 진출하면 그때 일본 팀과 상대할 수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국가대항전과 아시아시리즈를 통해 일본전 선발 투수로 여려차례 모습을 내밀 것입니다.

아무리 김광현이 이번 일본전에서 부진했지만 한국 미래를 짊어질 투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김광현은 21세 선수이며 아직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일본전 패배로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이릅니다.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해맑게 웃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합니다. 김광현 화이팅...!!!

Posted by 나이스블루


한국 야구가 올해 3월 열리는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선전을 위한 대비에 돌입하면서 야구계의 시선은 두 선수에게 쏠렸습니다. 박찬호와 이승엽. 현존하는 한국 야구 선수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국민들의 머릿속에 맴돌았던 대표적인 선수들입니다.

두 선수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선전을 이끌며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대들보'로 거듭났죠. 그동안 쌓은 업적도 대단했습니다. 전자가 1994년 동양인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해 통산 117승을 거둔 빅리그 스타라면 후자는 2003년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56개)에 일본 야구 최고의 명문 클럽인 요미우리에서 70대 4번 타자로 맹위를 떨쳤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재목들이죠.

최근에는 두 선수의 WBC 참가 여부에 관심에 쏠렸습니다. 김인식 감독은 베테랑 우완 투수와 경험많은 거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두 선수의 참가를 강력히 원했습니다. 물론 두 선수의 존재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 대표팀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박찬호는 2년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한국팀의 주장을 맡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이승엽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4강 일본전과 결승 쿠바전 홈런포로 금메달 주역이 되어 병역 미필 선수들의 무거운 짐이었던 문제를 해결해 '합법적인 병역 브로커'로 이름을 떨쳤죠.

더욱이 두 선수는 3년 전 WBC 1회 대회때 맹위를 떨치며 한국 야구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야구 강국' 미국, 일본을 꺾고 한국 야구의 위상을 업그레이드 시킨 주역이기 때문에 김인식 감독은 그런 경험을 높이 사며 두 선수의 2회 대회 참가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두 선수가 처한 환경입니다. 두 선수가 속한 소속팀 입지가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두 선수 모두 올 한해 소속팀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지 않으면 마이너리그 혹은 2군 생활을 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 시즌 종료 후 방출 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박찬호는 필라델피아와의 계약 기간이 올해까지이며(1년 계약), 이승엽은 2010년까지 계약기간이나 3년 연속 부진할 경우 이듬해 출전 기회 조차 못얻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 나이로 올해 37세와 34세인 박찬호와 이승엽은 소속팀에 더욱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며 태극 마크가 부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WBC 불참을 선언한 두 선수도 나름 마음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특히 박찬호는 13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WBC 불참 및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던 도중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김인식 감독과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WBC에 불참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승엽이야 공식 기자회견을 갖지 않았지만 박찬호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무거울 겁니다.

그런데 두 선수는 이전부터 WBC 불참을 선언 했었습니다. 박찬호는 지난해 10월 31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WBC때문에 선발 투수 출장 기회를 방해받고 싶지 않다. WBC 1회 대회에 참가한 뒤 소속팀에 돌아오니 선발 경쟁을 하던 젊은 투수에게 5선발 자리를 내주고 불펜으로 가게 됐다. 그때 WBC에 참가한 것을 후회도 해봤다. WBC 2회 대회는 출전하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승엽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7일 일본시리즈 7차전이 끝나고 국내외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지면서 "한국야구위원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WBC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할 것이다. 올해 올림픽 예선(2008년 3월과 8월)으로 요미우리에서 실패한게 아닌가 싶다"며 WBC 불참 의사를 피력했죠.

그럼에도 야구 대표팀은 WBC 1차, 2차 후보 선수 명단에서 두 선수의 이름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은 지난 8일 대표팀 유니폼 발표 및 기자회견에서 "박찬호와 이승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멤버로도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어찌됐건 최선을 다해 부딪혀 보겠다"며 대표팀에 합류시키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나타냈습니다. 12일에는 한 스포츠 언론사가 "박찬호는 일본에서 열리는 WBC 아시아 라운드에만 부분 참가하는 조건으로 WBC 대표팀에 합류한다"고 보도하면서(결국 오보로 드러남) 박찬호의 WBC 참가가 가시화 되는 듯 했습니다.

현재 박찬호와 이승엽의 소속팀 입지가 어떤지는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관계자분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두 선수를 참가 시키겠다는 의지를 최근까지 꺾지 않았던 것은 두 선수의 팀 내 입지 및 미래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미 두 선수는 WBC 1회 대회, 베이징 올림픽 참가로 인한 후유증으로 극심한 부진에 고생했고요.

물론 WBC가 큰 대회임에는 분명합니다만 두 선수의 앞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WBC 참가는 무리입니다. 일찌감치 WBC 불참 의사를 밝힌 두 선수의 의사는 이전부터 마땅히 존중 받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선수는 10년 동안 한국 야구의 도약을 위해 항상 대표팀 선봉에 있었고 누구보다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국가를 위해 뛰었던 기여도까지 높았는데 왜 이들의 의사는 무시되어야 하나요.

언제까지 30대 후반에 접어든 선수와, 이제 30대 중반 대열에 포함된 선수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한국 야구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절대적 원동력은 '세대교체' 였으며 이제는 새로운 야구 영웅을 계속 발굴해서 포스트 박찬호, 제2의 이승엽을 수없이 배출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WBC에서 한국의 선전을 이끌 핵심적인 존재는 박찬호와 이승엽만이 아니며 이들 못지 않게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은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특히 박찬호와 이승엽의 활약으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는 한국 야구의 근시안적인 대표팀 운영은 정말 아쉽습니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포스트 박찬호, 이승엽'이 등장해야 하나 지금 이대로의 분위기라면 한국 야구는 두 선수의 은퇴 이후에도 지금처럼 박찬호, 이승엽 '집착'만 할지 모릅니다.

만약 대표팀이 출범 초기부터 원만하게 운영했다면 박찬호와 이승엽은 WBC 참가에 대한 걱정을 떨치고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의 맹활약을 착실하게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찬호는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기자회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겠죠. 박찬호가 우는 모습이 왜 이리 슬프기만 할까요. 한국 야구의 대들보인 박찬호의 눈물은 한국 야구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By. 효리사랑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