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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사비, 세계 최고가 되지 못한 '축구 천재'

 

흔히 축구팬들은 세계 3대 축구 천재를 가리켜 카카-호날두-메시의 이름을 꺼내듭니다. 세 명의 축구 천재는 올해까지 3년 단위로 소속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그 공로로 발롱도르와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라운드에서 내뿜는 파괴력은 다른 누구보다 위협적이었고 그 수준을 뛰어넘어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틀까지 3년 단위로 사이좋게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축구 천재는 지구상에서 3명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폰-카시야스-체흐 같은 세계 정상급 골키퍼들이 있고 비디치-에시엔-알론소-마이콘 등과 같은 또 다른 정상급 선수들도 존재합니다. 각 포지션에서 톱 클래스의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은 분명히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열광케하는 화려함에 있어서는 카카-호날두-메시가 압도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수비수보다 공격수, 살림꾼이나 도우미보다는 강력한 임펙트를 발휘하는 선수들이 많은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스페인 공격형 미드필더인 사비 에르난데스(29, FC 바르셀로나)는 '패스 메이커'로 통할만큼 수준 높은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질 높은 패스 능력과 뛰어난 볼 키핑력과 컨트롤, 창의적인 경기 운영, 활발한 움직임을 앞세운 넓은 활동 폭 등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섭렵한 '언터쳐블' 입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뚜렷한 단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지도자들이 좋아하는 타입에 속하며 그동안 여러 빅 클럽들이 사비의 영입을 원했습니다.

사비는 세계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가 맞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틀과는 거리감이 있는 선수입니다. 카카-호날두-메시와 대등한 기량을 지녔음에도 네임 벨류에서 밀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비 같은 도우미 유형의 선수들보다는 카카-호날두-메시처럼 출중한 골 결정력을 앞세워 공격력을 폭발하는 선수들이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사비는 세 명의 축구 천재와 스타일이 다른 선수지만 공격 옵션의 골을 돕는 도우미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 오히려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기 힘들었던 한계로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사비는 카카-호날두-메시보다 저평가 된 축구 천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 '사비가 축구 천재로 거론 될 말한 선수인가?'라는 의구심을 품을 지 모르겠지만, 사비는 올해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순위에서 모두 3위에 올랐습니다. 메시-호날두에 이어 이름을 올렸고 FIFA 올해의 선수에서는 카카를 4위로 밀어냈습니다. 도우미라는 한계 속에서도 세 명의 축구 천재와 나란히 선두권에 이름을 올린 것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선수임을 실감케 합니다.

사실, 사비의 커리어는 10년 전 부터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사비는 지난 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그 기세를 발판으로 어린 나이에 바르셀로나의 어엿한 주전 미드필더로 거듭났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제2의 과르디올라로 주목받더니 이제는 사비 그 자체로 인정 받았고 스페인 대표팀의 중원에서 오랫동안 막중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난해 스페인 대표팀의 유로 2008 우승을 이끈 공로로 대회 최우수 선수(MVP)에 올랐고 올해는 소속팀 바르셀로나의 6관왕을 이끌었습니다. 커리어만을 놓고 보면 다른 축구 천재들보다 뒤지지 않습니다.(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제외하면)

하지만 사비는 카카-호날두-메시처럼 다득점을 노리는 선수가 아닙니다. 올 시즌 프리메라리가 15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고(5도움 기록) 지난 시즌까지 프리메라리가에서의 세 시즌 동안 105경기 출전 16골을 기록했습니다. 골 생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역할 때문에 슈팅 기회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비는 '앙리-에토(올 시즌에는 즐라탄)-메시'로 짜인 3톱이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중원에서 쉴틈없는 공격 지원을 하는 선수로서 골보다는 경기 내용에서 빛을 발합니다. 사비에게 골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사비는 '꾸준함의 대가' 입니다. 2005/06시즌 무릎 인대 부상 이후 거의 매 경기에 선발출전하여 한 시즌에 소속팀에서만 40경기 넘는 일정을 소화했고 경기력에서도 기복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8월 12일 A매치 마케도니아전 이후에는 대표팀과 소속팀을 합해 총 30경기에 출전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중이지만 아직까지 잘 견디며 자신의 출중한 공격력을 발휘중입니다. 이러한 꾸준함은 사비가 강철같은 체력을 가진 것을 비롯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음을 의미합니다. 경기력도 뚜렷한 침체 기미 없이 발전을 거듭한 것은 많은 경기 출전에서 다져진 꾸준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사비의 훌륭한 진가는 스포트라이트와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사비는 스페인의 유로 2008 우승을 이끈 최우수 선수였음에도 많은 축구팬들은 투톱 공격수로 뛰었던 다비드 비야(발렌시아)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에게 주목했습니다. 스페인 우승을 이끈 동력이었던 사비를 단순한 조연으로 바라보 듯 말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에게 가려진지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시선을 덜 주목 받는 분위기입니다. 즐라탄이 바르셀로나 공격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비의 기량이 꽃을 피우지 못했다면 지금의 메시는 없었을 것이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비라는 확실한 패스 메이커가 있었기에 메시가 오른쪽 측면과 최전방을 오가며 불꽃 공격력을 과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사비는 지난 시즌 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상대 중원을 초토화시키는 맹활약을 펼쳐 팀의 우승을 이끈것을 비롯 메시의 공격력을 도왔습니다. 만약 사비가 맨유전에 없었다면 메시는 자신의 개인 능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제압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르셀로나의 6관왕도 사비가 중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비가 그동안 꾸준한 맹활약을 펼쳤고 팀의 우승을 여러차례 이끌었음에도 세계 최고의 선수로 도약할 틈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내년이면 나이가 30세입니다. 30세면 전성기의 막바지로서 언제 내리막길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시기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우승을 이끈 공로로 수비수인 파비오 칸나바로(유벤투스)가 33세의 나이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휩쓴것은 사비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사비의 스페인 대표팀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할지는 의문입니다. 월드컵과 악연있기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카카-호날두-메시는 출중한 득점 능력을 기반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지만 사비는 공격 옵션들의 골을 비롯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뛰었던 선수입니다. 그것도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선수로서 단 한번도 이적하지 않았습니다. 축구가 팀 스포츠임을 상기하면 사비도 카카-호날두-메시와 같은 대우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지녔음에도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지 못한 사비가 그저 안타까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