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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축구, 아르헨티나를 이길 수 있는 이유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B조에서 맞붙습니다. 당초에 우리가 걱정했던 '죽음의 조'는 아니지만 '최상의 대진'은 아닙니다. 축구에서는 절대 강자와 약자가 없고, 공은 둥글고, 월드컵 같은 큰 경기에서는 경기 당일 컨디션에 따라 경기 내용 및 결과가 좌우되는 경기이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을 제외한 모든 월드컵 대회에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하려면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그리스전 모두 좋은 결과를 거두어야하며 특히 아르헨티나전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내년 6월 18일 오전 3시30분(이하 한국시간)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에서 아르헨티나와 본선 두번째 경기를 치릅니다. 두번째 경기는 16강 진출 희망의 씨앗을 틀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우선, 한국팬들은 아르헨티나와 조 편성이 된 것을 반갑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1시드에 포함된 남아공이 우리 입장에서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더불어 남미 축구의 양대산맥을 형성한 강호이며 월드컵 우승후보 단골 손님, 얼마전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세계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가 속한 팀입니다. '네임벨류만을' 놓고 보면 한국이 아르헨티나에게 패할 것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급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월드컵 본선 첫 출전의 세네갈이 당시 세계 최고였던 프랑스를 제압했고 한국이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을 꺾고 4강에 올랐습니다. 이변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축구이며 강팀은 언제든지 몰락할 수 있습니다. 한국 축구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16강 진출의 기틀을 다지는 시나리오는 매우 환상적입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 축구도 월드컵에서 이변을 일으킬 자격이 충분하며 우승 후보를 만났다고 해서 기 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종이 호랑이' 전락 위기에 놓였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아르헨티나의 현 전력입니다. 아르헨티나는 강팀임에 틀림 없지만 남아공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월드컵 본선 탈락 위기에 놓였던 팀입니다. 남미 예선 18경기에서 8승4무6패, 23골 20실점을 기록했고 23골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남미 국가중에서 가장 골 수치가 저조합니다.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자국에서 경질위기에 시달리는 팀이며 세대교체도 실패작이라는 평가입니다. 공수 밸런스는 불균형적이며 중앙 수비 불안으로 빠른 템포의 팀들에게 번번이 골을 허용했던 것이 남미 예선에서의 문제점 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짜임새 있고 유기적인 패스 워크를 앞세운 공격 전개로 국제 대회에서 많은 재미를 봤던 팀입니다. 하지만 마라도나 체제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선수들 개개인이 각자의 역할에 치중하면서 일부 선수가 고립되고 동료 선수끼리의 공격이 잘 안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은 무기력해졌고 끈끈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팀의 색깔도 남아공 월드컵 남미 예선을 통해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개인 공격 역량이 뛰어난 선수에 의존하는 공격 전술을 구사 했습니다. 그 선수가 바로 메시였습니다. 후안 로만 리켈메 중심의 아르헨티나 체제를 메시 중심으로 바꾸는 변화를 꾀했지만 결과는 역효과였습니다. 메시를 골문 앞에 고정시켜 골을 노리는 타겟맨 역할을 부여하고 나머지 공격 옵션들이 메시를 보조하는 것이 아르헨티나의 전술입니다. 4-3-3의 오른쪽 윙 포워드 또는 제로톱이나 투톱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활발한 기동력을 자랑하는 메시의 역량을 떨어뜨린 것이 바로 마라도나 감독입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메시의 위치를 특정 위치에 고정시키고 동료 선수의 공격 패턴이 메시쪽으로 쏠리면서 상대 수비에 읽히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메시는 상대 수비의 압박에 막혀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줬던 포스를 맘껏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메시는 지난달 14일 스페인과의 친선전에서 페널티킥골을 넣었지만 지난 6월6일 콜롬비아전부터 9월 10일 페루전까지 남미예선 6경기 연속 무득점 부진에 시달려 골 감각에 기복이 있었습니다.

또한 메시가 월드컵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지는 의문입니다. 메시는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을 소화했고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거쳐 수많은 경기를 소화해 총 54경기 뛰었습니다. 올 시즌에도 대표팀 일정과 병행하여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며 시즌 종료 후에는 휴식 없이 아르헨티나 대표팀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특유의 내구성으로 과도한 일정을 잘 이겨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메시는 이미 올 시즌 초반에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을 오가는 일정을 치르면서 체력 저하로 인해 경기력에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바로 미드필더진 입니다. 현대 축구의 생명인 미드필더 장악에 실패해 남미 예선 경기에서 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팀 전력의 구심점이었던 리켈메를 대표팀에서 제외했던 것이 악수를 두고 말았던 것이죠. 리켈메가 빠지면서 중원에서의 공격 점유율, 공간 확보, 전방 공격 연결 작업이 어려워지는 문제점이 나타나더니 측면에 의존하는 공격 패턴, 최전방 공격수의 적은 볼 터치가 끊임없이 단점으로 지적 되었습니다.

특히 페르난도 가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 중원에 없어선 안 될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마라도나 감독의 전술 앞에 좀처럼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각자의 역할에 치중하면서 전방쪽으로 공격을 띄우는 앵커 역할을 누군가 전담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메시 같은 공격수들이 고립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두 미드필더가 수비 상황에서 활동폭을 넓히지 못한 것은 포백의 수비 조직력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더 문제는, 포백도 호흡이 서로 맞지 않아 상대팀의 빠른 문전 돌파에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습니다.

최근에는 마라도나 감독의 교체 작전이 많은 이들을 갸우뚱하게 했습니다. 지난 9월 10일 파라과이전에서는 0-1로 뒤진 후반 35분에 191cm 장신 센터백 로날도 쉬아비를 투입했습니다. 세트 피스 상황에서 쉬아비의 머리를 통해 골을 넣겠다는 전략이었지만 그는 슈팅 조차 날리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36세 7개월의 나이로서 이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지난 10월 12일 페루전에서는 1-0으로 앞섰던 후반 23분에 4-4-2에서 5-3-2로 변경하는 잠그기에 들어갔습니다. 남미 경기가 언제 어느 시점에서 골이 터질지 모르는 특성이 있음을 상기하면 1-0 이후의 잠그기는 그야말로 무모한 작전이며 후반 45분 동점골을 얻어 맞았습니다. 4분 뒤 팔레르모의 결승골이 없었다면 이과인을 빼고 데미첼리스를 투입한 마라도나 감독의 교체 작전은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의 분노를 샀을지 모를 일입니다.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다수 보유했음에도 모래알 조직력으로 남미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세대교체 차원에서 리켈메를 대표팀에서 제외했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면서 공수 밸런스가 흔들렸고 아르헨티나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도 사라졌습니다. 또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메시가 아닙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메시를 활용하는 방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고 팀의 승리를 부르는 용병술도 기대하기 어려운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위기와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에 한국으로서는 아르헨티나를 만났다고 해서 좌절해선 안됩니다. 아르헨티나 같은 팀을 상대로 철저한 대비와 불굴의 투지로 맞선다면 틀림없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습니다. 물론 아르헨티나도 엄연히 강팀이지만 감독의 비중이 큰 축구에서는 마라도나 체제가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한국 축구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한국이 아르헨티나 전력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비롯 선수들의 강인한 승리욕, 경기 당일 최상의 컨디션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