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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첼시에 졌지만 전술에서는 이겼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스탬포드 브릿지 원정의 고비를 넘지 못해 프리미어리그 2위 탈환에 실패했습니다.

맨유는 9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첼시 원정에서 0-1로 패했습니다. 후반 31분 프랭크 램퍼드의 프리킥 상황에서 존 테리에게 백 헤딩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8승1무3패(승점 25)로 아스날에 이어 리그 3위를 지켰으며 첼시는 10승2패(승점 30)로 독주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맨유의 4-3-3, 다이아몬드 뚫었다

이날 경기는 맨유에게 불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맨유가 스탬포드 브릿지에 약하기 때문이죠. 맨유는 이번 경기를 포함해서 2002년 이후 7년 연속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승리한 적이 없으며 7경기 동안 단 2골에 그쳤습니다.(그 중에 한 골이 지난해 박지성의 골)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는 14번이나 이기지 못했습니다. 또한 첼시가 맨유전 이전까지 올 시즌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5전 전승 15골 1실점의 경이적인 기록을 올린 것도 맨유에게 불안함이 가중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맨유는 전력의 핵심 선수들이 부상 또는 경고 누적으로 결장했습니다. '드록바 킬러' 네마냐 비디치를 비롯해서 퍼니난드-베르바토프가 부상으로 결장했고 최근 '회춘 모드'에 들어간 게리 네빌은 경고 누적으로 빠졌습니다. 지난해 첼시와의 2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산소탱크' 박지성의 결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지성의 무릎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면 첼시전에 출전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가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첼시의 다이아몬드를 뚫어야 하는 부담스런 과제가 있었습니다.

맨유가 상대할 첼시의 다이아몬드는 견고하고 강합니다. '램퍼드-에시엔-발라크'로 짜인 중원은 터프한 수비력과 효율성 높은 공격, 매서운 움직임과 결정적인 임펙트를 자랑합니다. 데쿠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아기자기한 경기 운영을 펼쳐 드록바-아넬카 투톱의 뒷쪽에서 공격 작업을 매끄럽게 풀어갑니다. 그래서 첼시는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철옹성 같은 다이아몬드 효과로 모든 대회에서 전승을 올렸습니다. 맨유의 첼시전 승리 키워드는 바로 '다이아몬드 격파' 였습니다.

이날 맨유는 4-3-3을 주 포메이션으로 삼았습니다. 그동안 4-3-3을 쓰면서 좋은 결과를 거둔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베르바토프가 없었고 마이클 오언의 폼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웨인 루니만을 최전방에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미드필더진을 두껍게 포진했습니다. 캐릭-안데르손-플래쳐를 중원에 포진시키고 긱스-발렌시아가 측면에서 프리롤 형태로 움직였습니다. 여기에 루니가 미드필더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안데르손이 최전방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4-3-3이 4-4-1(안데르손)-1(루니)가 되거나 4-6-0의 제로톱으로 변형 되었습니다.

이것은 맨유가 미드필더 싸움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스 안에 있는 선수 숫자를 줄이고 루니가 미드필더진에 적극적으로 내려오면서 점유율 확보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첼시의 다이아몬드가 맨유 진영쪽으로 전진하지 못하도록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의 간격을 촘촘하게 좁혔습니다. 발렌시아가 중앙에 포진하고 존 오셰이가 측면 윗쪽으로 동선을 확보하는 장면도 여럿 있었습니다. 미드필더를 최대한 두껍게 놓으며 점유율 확보에 주력, 상대의 다이아몬드를 파괴하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전술이 돋보였습니다.

맨유의 다이아몬드 공략은 '경기 내용 관점에서' 성공했습니다. 램퍼드-에시엔-발라크 사이의 공간을 뚫기 위해 빠른 타이밍의 패스를 앞세워 상대의 중원을 뚫은 것입니다. 왼쪽에서 캐릭이 안데르손 또는 플래쳐에게 패스를 연결하면 발라크-에시엔 뒷쪽에 있었던 긱스에게 재빠르게 패스가 넘어가고 오른쪽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져 첼시의 다이아몬드 공간이 계속 열렸습니다. 안데르손과 루니는 중앙에서 짧은 패스의 정확성을 높이면서 '다이아몬드 격파'의 중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전반 30분 점유율에서 56:44(%)로 첼시를 앞선것이 이를 대변합니다.

무엇보다 발라크-램퍼드의 활동폭을 좁혔던 것이 첼시의 다이아몬드를 공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됐습니다. 다이아몬드의 근간은 좌우 미드필더들의 넓은 활동폭과 왕성한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안첼로티 체제의 AC밀란은 세도로프-가투소 같은 투쟁적인 미드필더들이 그 역할을 맡았죠.) 맨유는 발라크-램퍼드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캐릭과 플래쳐를 가까이에 포진시켜 상대의 발을 묶었습니다. 그래서 빌드업 과정에서 캐릭과 플래쳐가 공을 잡으면 전방 옵션들이 간격을 좁혀 패스 길목을 마련했습니다. 이것은 발라크-램퍼드의 힘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였고 결과는 성공적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맨유가 무득점에 그친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이아몬드를 뚫는데 성공했으나 첼시 포백의 터프한 수비까지 공략해야 하는 버거움이 있었죠. 그래서 루니가 최전방에서 공을 잡으면 상대 수비를 뚫기 위한 후속 연결 동작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이아몬드 격파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종종 루니 혼자서 첼시의 골망을 흔들려는 장면이 여럿 노출 되었습니다. 특히 전반 21분에는 루니가 왼쪽에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여 상대 수비와 경합중 이었으나, 루니로부터 공을 받을 선수가 없어 공격이 무산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긱스-발렌시아가 활동폭을 넓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 격파에 주력하던 두 선수가 루니를 보조하는 역할까지 맡았으니 왕성한 기동력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긱스는 부지런히 움직이기에는 체력이 아쉬웠고 발렌시아는 애슐리 콜에게 공격 길목에서 막히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전반전에 포백 공략에 실패하면서 후반전에 공격 템포가 느려졌고 31분 테리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전반전에 골을 넣었다면 경기의 양상은 달랐을지 모를 일입니다.

비록 맨유는 졌지만 상대팀 전술의 키워드인 다이아몬드를 격파한 것은 전술 싸움에서 이겼음을 의미합니다. 이날 경기에서 가장 부족했던 골운까지 따랐다면 스탬포드 브릿지에서의 악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맨유의 첼시전 전술 운용이 앞으로 첼시와 상대하는 팀들에게 '첼시 격파'의 해답이 되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