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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홍명보, '축구판 제갈량'으로 거듭나라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청소년 대표팀이 U-20 월드컵 4강 진출의 길목이었던 가나와의 8강전에서 2-3으로 패했습니다.

한국은 비록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끝까지 골을 넣기 위해 몸을 날리며 불굴의 의지를 발휘한 태극 전사들의 정신력과 투지는 많은 이들에게 짜릿한 감동을 안겼습니다. '최고보다 최선'이라는 격언이 존재하듯, 우리 선수들은 골을 넣기 위해 그라운드에서 상대팀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뛰었으며 매우 투쟁적 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한국의 8강 진출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사령탑 경험이 부족한 것을 비롯 '한국 축구의 신성' 기성용의 차출이 불발된 것, 선수들의 전반적인 기량이 선배 청소년 대표팀 세대들보다 뒤떨어지면서 '골짜기 세대'로 평가받은 것, 그리고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좋은 결과를 올린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의 선전을 예상한 이들이 드물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대표팀 인기 하락으로 홍명보호를 향한 여론의 관심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팀을 향한 평가는 실전에서 가려질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홍명보호는 U-20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으며 그 과정도 비교적 매끄러웠습니다. 본선 첫 경기인 카메룬전에서 0-2로 완패했지만 '유럽 강호' 독일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미국-파라과이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고 8강에 올랐습니다. 특히 독일-미국-파라과이전에서는 수준급의 경기 내용으로 많은 축구팬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성공적인 행보는 그동안 세계 무대에서 보기 드물었던 결과였습니다. 월드컵과 올림픽, 그리고 U-20과 U-17 월드컵 같은 세계 대회에 참가하면 본선 탈락 경험이 많았던 것이 한국 축구의 현실이었기 때문이죠. 홍명보호는 2005년과 2007년 세대에 비해 선수들의 기량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고 본선 첫 경기인 카메룬전 패배로 남은 잔여경기 일정까지 꼬일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러한 불안 요소를 무릅쓰고 8강에 진출한 공은 당연히 홍명보 감독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홍명보 감독이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국제 무대에서 보여준 전술 능력 때문입니다. 그는 카메룬전 패배를 통해 팀의 전술적 약점을 정확히 짚고 보완하여 독일전 이후부터 '전술의 힘'으로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그동안 국내 감독들이 세계 무대에서 전술적인 한계로 고전했던 것과는 다른 행보였기 때문에 그의 지략가적, 승부사적 기질이 돋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초보 감독'이라는 점입니다.

홍명보 감독의 축구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바로 '점유율 축구' 입니다. 선수들의 간격을 최대한 좁혀 공을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을 길게 가지는 축구 스타일을 말합니다. 지공 위주의 공격 패턴으로 여러차례 패스를 시도하여 상대 수비의 틈새를 찾아내는데 가장 적합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독일전부터 가나전까지 상대팀보다 볼 점유율, 패스 성공률, 패스 시도 횟수가 많았으며 총 4경기에서 9골을 작렬했습니다. 경기 내용에서 상대팀을 앞선 것은 홍명보 감독의 지략이 출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위기 대처 능력도 돋보였습니다. 카메룬전에서는 상대의 전방 압박과 빠른 역습에 밀렸으며 공격 전개도 자연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홍명보 감독은 카메룬전에서 가동했던 4-3-3을 4-2-3-1로 바꾸고 양쪽 윙어로 이승렬-조영철 같은 주전급을 빼고 김민우-서정진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문기한은 구자철과 함께 중원으로 내리고 김보경을 공격의 구심점인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소화하게 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독일전에서 전술을 뒤바꾼 것은 시의 적절했습니다. 카메룬전 패배로 인한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국은 독일전부터 다섯명의 미드필더들을 앞세워 지공 위주의 공격 패턴으로 점유율을 장악하는데 주력했고 허리싸움에서도 상대 공격을 압박했습니다. 그러더니 공수 양면에 걸쳐 전력이 향상 되었고 독일전 무승부를 비롯, 미국-파라과이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며 8강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가나전 패배는 수비에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커버링 플레이가 잘 되지 못해 가나 공격 숫자와 한국 수비 숫자가 비슷해지는 상황이 여럿 노출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A급' 실력을 지닌 가나 공격수들에게 3실점을 허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두 골을 넣으며 동점을 위해 끝까지 안간힘을 쏟은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허리에서 상대 공격을 끊은 뒤 바로 역습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랐으며 빈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공격 옵션들의 스위칭이 활발했습니다. 상대가 골을 넣을 때마다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친 경향이 있었지만, 전반 중반부터 경기 종료까지 볼 점유율에서 70-30의 흐름을 유지하며 주도권을 잡았던 한국의 경기 운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패배의 위기에 움츠려들지 않고 끝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았던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을 전술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지휘한 홍명보 감독의 지도력은 칭찬 받아야 할 것입니다.

홍명보 감독은 U-20 월드컵에서 지략가적인 기질을 발휘하며 한국의 8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아울러 이번 대화를 통해 한국 축구의 부흥을 이끌 명장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음을 알렸습니다.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본선 탈락이 많았던 과거를 상기하면 U-20 월드컵 8강 진출은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 진정한 지략가로 거듭나기에는 아직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공적인 감독으로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국제 경기에서 보여줄 것이 더 남았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을 맡을 홍명보 감독이 앞으로 지략가의 기질을 맘껏 발휘하여 '축구판 제갈량'으로 거듭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