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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김남일 대표팀 복귀, 홍명보 빼닮았다

 

허정무호는 불과 1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오합지졸의 팀이었습니다. 스리백과 포백, 3-4-1-2와 4-3-3 같은 여러가지 포메이션을 번갈아 선택했지만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고 여러명의 선수들을 골고루 시험했으나 조직력에 문제를 드러내면서 공격 전개와 수비 라인 강화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몇몇 선수는 뛰겠다는 의지가 결여된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겨야 할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고, 경기에서 승리하더라도 찝찝하게 승리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특히 지난해 9월 10일 A매치 북한전은 그야말로 '막장의 결정판'이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첫경기이자 코리안더비로서 많은 국민들이 경기를 지켜봤으나 그 기대가 점점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느슨한 공격 전개와 부정확한 패싱력, 무기력했던 선수들의 움직임은 팬들에게 '월드컵 진출할 의지가 있냐?'는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기성용의 극적인 동점골로 1-1로 비겼으나 상대팀과의 슈팅과 볼 점유율, 경기 주도권에서 우세를 점하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기까지 허정무호의 주장 임무를 맡던 김남일(32, 빗셀 고베)은 북한전 종료 후 1년 동안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북한전에서 홍영조에게 파울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거나 상대팀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문제점을 나타냈지만 그것 때문에 1년 동안 대표팀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팀의 분위기 쇄신과 세대교체를 위해 김남일에 메스를 들었습니다. 김남일이 중심이 되는 대표팀 시스템은 더 이상 힘들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죠.

당시 김남일의 대표팀 존재감은 막강했습니다. 대표팀의 최고참으로서(이운재가 없었음) 정신적 지주 역할과 팀 전술의 중심 역할을 맡았죠. 하지만 김남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은 늘 무기력했고 경기 내용 및 결과 모두 좋지 않았으며 북한전에서 그 한계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팀의 쇄신을 위해 김남일의 왼쪽 팔에 있던 주장 완장을 박지성에게 넘겼고 젊은 선수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전술에 초점을 맞춰 세대교체에 탄력을 가했습니다. 그 결과는 대표팀 전력 업그레이드 및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로 이어졌습니다. 김남일은 허정무호 변화의 희생양이었던 겁니다.

허정무호가 김남일 없이 승승장구했던 원인은 4-3-3에서 4-4-2로 전환했던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4-3-3에서는 김남일의 전술적 비중이 컸지만 4-4-2에서는 기성용이 중원의 활력소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죠. 김남일의 문제가 바로 그거였습니다. 김남일은 2004년 8월 부터 3년 동안 다섯번의 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활동량과 체력이 떨어지고 상대 공격 침투를 저지하려는 스피드도 느려졌습니다. 4-4-2는 4-3-3보다 중앙 미드필드들의 넓은 활동량과 스피드가 요구되는 포메이션이기 때문에 김남일이 그 자리를 맡기에는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 시스템에서는 기성용이 스타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김남일이 최근 대표팀에 합류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오는 5일 호주전을 앞두고 프로축구연맹과 선수 차출을 둘러싼 갈등을 벌였던 것이 해외파의 총동원으로 이어져 대표팀에서 명예회복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죠. 1년 동안 거듭되었던 대표팀 탈락 속에서도 월드컵 본선 출전에 대한 목표를 잃지 않았던 김남일에게는 이번 기회가 중요할 것입니다. 불과 1년 전까지 허정무호 전력의 구심점이자 팀의 맏형이었기 때문에 그 포스를 되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할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 만약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대표팀에서 영원히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호주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될 것입니다.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김남일의 최근 행보가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절의 홍명보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홍명보도 한동안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해 대표팀 명단 발표때마다 번번이 쓴맛을 봤기 때문이죠. 두 선수는 카리스마를 대표로하는 주장이자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도맡는 선수들입니다. 팀의 쇄신을 위해 감독으로부터 엔트리 제외라는 딱지를 맞았던 공통점도 있습니다. 홍명보가 다시 대표팀에 합류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루기까지 팀을 위해 솔선수범했다면 이제는 김남일이 그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히딩크호와 허정무호는 각각 홍명보, 김남일의 존재감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홍명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명의 선수들을 3백 스위퍼로 기용하고 심지어 오른쪽 미드필더이자 황태자로 꼽혔던 송종국까지 중앙 수비수로 내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홍명보 만큼의 수비력을 발휘하지 못해 히딩크 감독을 고민에 빠뜨렸습니다. 결국 홍명보는 2002년 3월 대표팀에 재합류하여 체력테스트에서 우수한 결과를 거두며 자신의 체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던, 그동안 자신을 엔트리에서 제외했던 히딩크 감독의 판단이 틀렸음을 증명했습니다.

김남일 존재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허정무호가 기성용 중심의 중원 체제로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기성용을 보조하는 파트너의 역량 부족 이었습니다. 김정우는 악착같은 수비 능력을 자랑하나 자신의 장점인 공격력이 예전에 비해 무뎌졌고 피지컬이 약한 한계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조원희는 빈틈없는 홀딩 능력과 김남일을 능가하는 순간 스피드를 자랑하나 패스 전개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두 선수의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선수가 김남일 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김남일은 자신에게 익숙치 않은 대표팀 4-4-2에 순조롭게 적응해야 합니다. 4-4-2는 4-3-3보다 중앙 미드필더들의 활동량과 기동력을 요구로 하기 때문에 부상 후유증에 시달렸던 김남일에게는 버거울 수 있습니다. 물론 호주전 한 경기만으로는 김남일의 부활 여부를 속단할 수 없겠지만 대표팀의 주축으로 다시 거듭날 수 있는 자신감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홍명보가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체력에 대한 편견을 넘어선 것 처럼, 김남일도 4-4-2에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허정무 감독도 김남일의 복귀를 놓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기성용-김정우(조원희)' 조합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강호들을 상대로 경기 주도권에서 우세를 점해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현대 축구에서는 미드필더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경기에서 원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의 불안 요소는 곧 팀의 패배와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대표팀이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한 믿음을 얻으려면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완벽해야 하며 '기성용-김남일' 조합에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김태영-홍명보-최진철' 3백 조합이 견고하고 단단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김남일의 대표팀 행보는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 여부를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지 모릅니다. 김남일이 기성용의 파트너로서 제 몫을 다하면 허정무호에 내제되었던 불안 요소가 없어지는 것이며 그 여파는 포백의 수비 부담이 줄어들고 공격 옵션들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는 효과로 이어집니다. 또한 김남일이라는 정신적 지주의 존재감은 월드컵 본선을 맞이하는 젊은 선수들에게 든든한 힘이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김남일이 무너지면 대표팀은 이렇다할 업그레이드 없이 남아공행 비행기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김남일의 행보가 홍명보를 빼닮을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