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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개막전, 박지성 존재감 '강했던 이유'

 

개인적으로는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2009/10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버밍엄 시티(이하 버밍엄)전에 선발 출전할 거라 예상했습니다. 맨유가 지난 두 시즌 동안 개막전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슬로우 스타터를 보낸데다 올 시즌 빅4와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 추격이 만만찮기 때문에 개막전에서 최정예 멤버를 앞세워 총공세를 펼칠거라 생각했습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주전 선수이기 때문에 버밍엄전 선발 출전은 당연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효리사랑 뿐만 아니라 다른 축구팬들과 축구 전문가들까지 기대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결장이었습니다. 그것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 됐습니다. 맨유의 주전인 마이클 캐릭과 함께 18인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휴식 차원에서 버밍엄전에 결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맨유가 16일부터 22일까지 3경기를 치르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때문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선수 보호 차원에서 엔트리에 제외시킨 겁니다. 박지성이 무릎 부상 후유증 때문에 과도한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운 사실, 그리고 퍼거슨 감독이 종잡을 수 없는 인물임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 이었습니다.

버밍엄전, 박지성이 선발 출전했으면 어땠을까?

맨유는 버밍엄전에서 전반 33분 웨인 루니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버밍엄을 상대로 슈팅 숫자 30-7(유효 슈팅 11-2), 볼 점유율 63-37(%)의 우세를 점했음에도 1골에 그친 것은 공격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루니가 골을 넣지 못했다면 30개의 슈팅도 소용 없었을 것이며 지난 2007/08시즌 레딩과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23개의 슈팅을 날리고도 단 1골도 넣지 못했던 졸전이 2시즌 만에 도돌이표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효리사랑이 버밍엄전을 보면서 느낀것은, '박지성이 나왔으면 맨유의 공격이 매끄러웠을텐데...'라는 아쉬움 이었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전력 이탈 공백도 있지만, 버밍엄전에서 선보인 맨유의 공격은 거의 졸전에 가까울 정도로 지난 시즌보다 더딘 모습이었습니다. 박지성을 대신해서 선발 출전한 루이스 나니는 여전히 경기력이 정체된 모습을 보이며 공격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팀의 전반적인 공격력에 역동성이 떨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맨유 공격 옵션 전원이 상대의 밀집 수비에 막혀 좁은 공간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좁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파고드는 박지성의 존재감이 강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맨유는 90분 동안 버밍엄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고 많은 공격 과정과 골 기회를 잡았음에도 상대의 밀집 수비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맨유가 버밍엄전에서 많은 골을 넣기 위해서는 밀집 수비를 벗겨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어느 한 명의 개인 공격 역량보다는 공격 옵션끼리의 활발한 콤비 플레이와 유기적이고 부지런한 움직임, 빠른 패스 타이밍을 앞세운 역동성이 있어야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며 결정적인 골 기회를 여러차례 얻었을 것입니다.

물론 호날두 존재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호날두는 팀 공격의 중심축이었고 결정적인 상황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해결사 기질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하의' 호날두도 지난 시즌 상대의 집중적인 견제에 시달려 시즌 중반 9경기 연속 무득점 슬럼프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맨유가 지난 시즌 호날두가 있었음에도 상대의 밀집 수비에 고전했던 경험이 여럿 있음을 떠올리면, 버밍엄전에서의 매끄럽지 못한 공격 작업은 호날두 공백이 아닌 공격 전술에 문제가 있던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격 전술은 밀집 수비를 이겨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선수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바로 박지성 입니다.

만약 박지성이 버밍엄전에 선발 출전했다면 맨유의 공격 작업이 잘 풀렸을 것입니다. 박지성이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촘촘한 수비 공간을 파고들며 빈 공간을 창출하거나 그 사이에서 정교한 스루 패스를 앞세워 팀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았다면 버밍엄전이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을 겁니다. 그 역할이 지난 9일 첼시와의 커뮤니티 실드에서 빛을 발했기 때문이죠. 박지성은 첼시 미드필더진과 수비라인 사이에 형성된 좁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파고들며 공격 옵션들에게 여러차례 골 기회를 내주거나 자신이 직접 골문 앞으로 파고들며 슈팅을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경기력은 버밍엄의 밀집 수비를 뚫기에 충분했지만, 문제는 박지성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맨유 공격 옵션이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공격 옵션 치고는 볼 터치가 적은 선수입니다. 공격 능력이 떨어져서 공을 많이 못잡는게 아니라 퍼거슨 감독이 원하는 전술적인 움직임에 충실했기 때문에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했던 겁니다. 공의 방향과 반대되는 공간에서 상대 수비와 맞닥드리며 활동 반경을 넓히지 못하도록 공간을 커버하거나(그 과정에서 동료 공격 옵션들의 문전 침투가 수월해지죠.) 혹은 최전방에 들어가 후방에서 전진 패스를 받을 위치를 찾으며 상대 미드필더진의 허를 찌르는 공격 전개를 노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장점이 버밍엄전에서 그대로 나타났다면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의 공격력이 수월했을 것입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베르바토프가 상대 수비의 집중적인 견제에 막혀 제 실력을 뽐내지 못했습니다. 자신과 쉐도우 성향이 비슷한 루니와 공존이 어긋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다른 동료 선수들이 자신의 압박을 덜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측면에서 최전방쪽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 빈 공간을 창출했다면 베르바토프에게 향했던 골 기회가 늘어났을 것이며 루니의 문전 돌파도 용이했을 것입니다. 지난 커뮤니티 실드에서 박지성-베르바토프로 연결되는 패스가 상대 뒷 공간을 뚫은 뒤 슈팅 상황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2차례(전반 25, 27분) 있었음을 상기하면, 박지성의 버밍엄전 결장이 아쉬운 대목 이었습니다.

버밍엄전에서 박지성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루이스 나니의 부진입니다. 나니는 루니의 결승골을 엮어내는 임펙트를 발휘했지만 전반적인 공격력이 안이하다는 느낌 이었습니다. 전반 18분과 21분 상황이 그 예입니다. 나니는 하프라인 왼쪽 공간에서 벤 포스터가 띄운 롱 드로잉을 받아 전방쪽으로 돌파했지만 그 속도가 느렸습니다. 루니가 왼쪽 측면에서 공간을 열으며 나니에게 패스 받을 타이밍을 얻었지만, 오히려 나니는 패스는 커녕 무리한 돌파를 시도해 상대 압박에 밀렸습니다. 만약 박지성이었다면 루니에게 재빨리 패스하여 공격 침투 공간을 확보했거나 또는 과감한 드리블 돌파로 빠른 역습을 전개했을 겁니다. 박지성이 나니보다 팀 내 입지에서 우세를 점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박지성의 존재감이 느껴진 또 하나는 프리킥 기회입니다. 박지성은 상대와 경합하는 과정에서 반칙 유도를 잘합니다. 그 지점이 주로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프리킥 골을 넣기 쉬운 공간에 쏠린 것은 박지성이 팀의 골을 위해 얼마만큼 헌신적인 활약을 펼치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맨유가 버밍엄 수비의 거센 압박에 막혀 공격이 잘 안풀리던 시점에서, 박지성이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면 맨유가 골을 넣는 과정이 수월했을 것입니다. 물론 호날두가 없기 때문에 특출난 프리키커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겠지만, 베르바토프-나니의 가공할 프리킥 능력이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쩌면 박지성의 버밍엄전 결장은 퍼거슨 감독의 로테이션 미스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결장은 '여론에서 걱정하는' 공격력 또는 골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발렌시아도 박지성처럼 골이 부족한 윙어라는 것을 상기하면, 박지성의 버밍엄전 결장은 휴식 차원임이 명확해집니다. 비록 박지성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 결장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이 한껏 드높아 졌습니다. 일부 여론에서는 박지성 결장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박지성은 그저 컨디션 유지에 신경쓰면 됩니다.

p.s : 버밍엄전에서 한 가지 경이적인 것은 폴 스콜스의 패싱력 이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100개의 패스를 시도했는데 97개가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향했습니다. 한국 나이로 36세 선수가 출중한 패싱력을 뽐낸 것입니다. 대런 플래쳐는 78개 시도하여 72개를 성공했고, 발렌시아는 41개 시도하여 34개 성공, '전반전만 뛴' 나니는 19개 시도하여 14개 성공했습니다. 물론 윙어들은 위치적인 한계 때문에 중앙 미드필더보다 패스 횟수가 부족하지만, 스콜스의 활약이 놀라울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