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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첼시 지르코프, 맨유전 골 넣으면 안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오는 9일 저녁 11시(이하 한국시간) 커뮤니티 실드를 시작으로 2009/10시즌의 대장정에 돌입합니다. 2009 커뮤니티 실드에서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FA컵 우승팀인 첼시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격돌합니다. 두 팀은 올 시즌 유력한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이어서 리그 우승 판도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입니다.

맨유와 첼시의 커뮤니티 실드에서 주목받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올 시즌 부활을 꿈꾸는 '올드보이' 마이클 오언과 안드리 셉첸코, 상대팀 골문을 겨냥할 웨인 루니와 디디에 드록바, 측면에서 치열한 혈투를 벌일 박지성과 조세 보싱와, 부상으로 빠진 에드윈 판 데르 사르를 대신하여 맨유 골키퍼를 맡을 벤 포스터 또는 토마스 쿠쉬착 등이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선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첼시로 이적한 '러시아의 호날두' 유리 지르코프(26) 입니다.

셉첸코, 말루다...이번에는 지르코프?

첼시는 지난 2005년 커뮤니티 실드 아스날전에서 드록바의 2골로 아스날을 2-1로 물리치고 우승 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10년 동안 아스날을 꺾지 못한 징크스가 있었지만 커뮤니티 실드에서 10년의 한을 풀으며 런던 라이벌을 제압했죠. 이 경기에서 골을 넣은 드록바는 2004/05시즌 첼시에 입단하여 단숨에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랐던 선수입니다.

그 이후 첼시는 2006년과 2007년 커뮤니티 실드에 참가했습니다. 2006년에는 리버풀에게 1-2로 패했고 2007년에는 맨유와 1-1로 비겼으나 승부차기에서 판 데르 사르의 3연속 선방에 막혀 0-3으로 패했습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2006년과 2007년에 골을 넣었던 셉첸코와 플로랑 말루다 입니다. 두 선수는 각각 2006년과 2007년 첼시에 입단하여 커뮤니티 실드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으나 첫 시즌부터 극도의 부진으로 '먹튀' 오명을 뒤집어 쓴 공통점이 있습니다.

셉첸코는 2006년 여름 당시 프리미어리그 최고 이적료인 3000만 파운드(약 617억원)를 기록하고 첼시로 이적했습니다. 커뮤니티 실드에서 데뷔전 데뷔골을 넣을때 까지만 하더라도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득점 기계', '티에리 앙리의 새로운 라이벌'로 주목 받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끝났습니다. 셉첸코는 2006/07시즌 프리미어리그 30경기에서 4골 6도움에 그쳤으며 이듬해 시즌 17경기에서는 5골 1도움에 머무르며 먹튀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무결점 공격수'로 꼽혔던 그가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무장점 공격수'로 전락했던 것이죠.

말루다는 2007년 여름 1350만 파운드(약 278억원)를 기록하고 첼시로 이적했습니다. 셉첸코에 이어 커뮤니티 실드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프리미어리그 성공 예감을 실현케 했지만 그 이후부터 경기력 저하와 잔부상에 시달린 끝에 2007/08시즌 최악의 먹튀가 되었고 지난 시즌 중반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올해 2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맡은 이후부터는 경기력을 회복하면서 지난달 첼시와 3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지만 첫 시즌에서의 부진이 아쉽습니다.

만약 셉첸코와 말루다가 커뮤니티 실드에서 골을 넣지 않았다면 두 선수의 첼시 생활은 순탄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 선수에게는 커뮤니티 실드 데뷔전 데뷔골, 첫 시즌 먹튀 전락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여파는 올해 커뮤니티 실드에서 데뷔전을 치를 '이적생' 지르코프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르코프는 올해 여름 1800만 파운드(약 370억원)의 이적료로 CSKA 모스크바에서 첼시로 이적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유로 2008에서 러시아의 4강 진출을 이끌며 첼시와 FC 바르셀로나의 꾸준한 영입 공세를 받은 끝에 프리미어리그에 정착했죠. 포지션은 왼쪽 윙어지만 때에 따라 왼쪽 풀백을 맡을 수 있으며, 호날두를 뺨치는 드리블로 측면 이곳 저곳을 파고들 수 있고 날카로운 패싱력과 크로스 능력까지 겸비한 테크니션 입니다.

첼시가 지르코프를 데려왔던 이유는 '드록바-아넬카' 투톱의 득점력을 높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지르코프는 두 선수처럼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닙니다. 러시아리그에서 활약한 139경기에서 15골에 그쳐 골보다는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을 두었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커뮤니티 실드 맨유전에서 골을 넣는다면 셉첸코-말루다의 길을 걸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말루다도 이타적인 성향의 윙어이기 때문에 지르코프의 앞날이 어찌될지 모를 일입니다.

지르코프는 맨유전에서 4-3-1-2 포메이션의 왼쪽 미드필더를 맡거나 아니면 4-4-2의 왼쪽 윙어를 담당할 것입니다. 골을 담당하는 위치는 아니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골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지르코프로서도 데뷔전에서 강렬한 임펙트를 발휘해야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신임을 얻을 수 있고 기존 선수와의 주전 경쟁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 실드에서 맹활약을 벼르고 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만약 지르코프가 커뮤니티 실드에서 데뷔전 데뷔골을 기록하다 첫 시즌에 부진하면 셉첸코와 말루다의 전례를 그대로 밟게 됩니다. 1800만 파운드의 거금으로 첼시에 입성했기 때문에 먹튀로 평가 받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면서 첼시는 '커뮤니티 실드의 저주'라는 새로운 악명에 시달립니다. 안첼로티 감독이 셉첸코와 말루다의 첫 시즌 부진 이유를 알고 있다면 지르코프의 맨유전 출전을 반대했을지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지르코프의 맨유전 출전 여부 및 골 여부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