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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에서 K리그 좋아하기 힘든 10가지 이유

 

2006년 10월 어느날 이었습니다. 상병 정기휴가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러 기차에 탔을 때, 필자의 뺨에 두 줄기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K리그 경기를 현장에서 몇 개월 동안 못보니까 너무 슬펐던 거죠. 필자의 팀인 모 클럽의 후기리그 성적이 너무 좋았는데, 시즌 마지막 일정까지 못보니까 아쉬워서 울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제대하면 경기장 많이 돌아다닐꺼야. 내 인생의 낙은 축구 경기 관전이니까'라는 마음속의 다짐을 하며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007년 군 제대 이후 K리그와 A매치, U-17 월드컵, K3리그 등등 축구현장 거침없이 돌아다니더니 작년과 올해 K리그 경기를 현장에서 각각 2번밖에 못봤습니다. 아무리 TV로 K리그 경기를 빼놓지 않고 시청하더라도, 경기장과 TV 브라운관에서 축구를 보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K리그 경기장 가는 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으로 여겼는데, 이제는 K리그 좋아하고 싶어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문제는, 필자의 사례가 결코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K리그 팬들이라면 이 글의 전반적인 내용을 공감하실 것입니다. 필자의 사례까지 포함해서, 한국에서 K리그 좋아하기 힘든 10가지 이유를 나열했습니다.

1. K리그 팬들의 주적은 과다근무와 시험공부

한국이라는 산업사회에서는 일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주6일제 근무를 고수하는 회사가 많은데다 잔업, 야근, 그리고 휴일 근무까지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을 해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은 0교시에 방과후 학습, 그리고 야자까지 강행하며 하루종일 공부 합니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평일에 학원 3~4개 다니는 것을 비롯 주말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 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풍토 속에서 K리그 경기장을 꾸준히 찾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필자도 그랬습니다. 2008년에는 K리그 경기 관전을 포기하고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스리잡과 포잡을 오갔습니다.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 현실에 순종하면서 K리그에 신경 쓸 틈이 없어진 것이죠.

2. "K리그 재미없다'는 주변의 멸시

일상생활에서 K리그 팬을 접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축구 이야기 하면 "저는 K리그 안좋아하고 유럽축구 보는데요(아니면 대표팀, 프로야구). K리그 재미없는데 누가 보겠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참고로 저는 서울 토박이입니다.) 'K리그는 재미없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K리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좀처럼 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K리그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필자를 '특이 성향'으로 바라보더군요. 제가 군대에서 소대 왕고였을때는 TV로 K리그 경기 보다가 어떤 후임에게 이런 소릴 들었습니다. "효리 병장님 뭡니까. K리그 재미 없는데 이딴 걸 왜 봅니까. 소대에서 K리그 좋아하는 사람 효리 병장님 밖에 없습니다. 제발 후임 좀 생각하십쇼."(But, 효리사랑 고집대로 K리그 계속 봤습니다. 소대 왕고니까 가능했던 일)

3. 연고지 이전, 지역연고 정착 실패를 의미

일본 J리그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밑바탕은 지역연고 정착 성공 때문이었습니다. 지역 팬들을 끌어안기 위해 여라가지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고 지역 축구 인재들을 유스 시스템에 포함했던 것이 결국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릅니다. 잦은 연고지 이전으로 지역연고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팀들이 기존 연고지 팬들을 고려하지 않고 구단 이익을 위해 새로운 연고지로 옮기면서 K리그 팬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그팀을 좋아하던 팬들은 K리그와 인연이 멀어지게 됐죠. 기업 구단 팬의 입장에서도 '내 팀이 연고지 이전하면 안될텐데'라며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4. K리그에서는 긱스-스콜스-네빌을 찾기 힘들다?

K리그의 문제점은 팀을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유형의 선수를 찾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프랜차이즈는 신인 시절부터 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며 오랫동안 클럽에 공헌하는 선수를 말합니다. 맨유를 예로 하면 긱스-스콜스-네빌을 말하는 것이죠. K리그 팬들 입장에서도 다른 선수들보다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에 애착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선수 개인 의사 없이 구단끼리 트래이드를 단행하고 수도권팀을 선호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인 K리그의 흐름에서는 마땅한 프랜차이즈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운재, 곽희주(이상 수원) 김치곤, 정조국(이상 서울) 최은성(대전) 황재원, 황진성(이상 포항) 등의 이름이 쉽게 떠오를 뿐이죠. 'K리그 레전드' 신태용이 2004년 성남 선수 시절, 노쇠화를 이유로 은퇴식 없이 방출될 정도로 프랜차이즈에 대한 대우도 약합니다. 프랜차이즈 부족은 K리그 흥행에 이롭지 못합니다.

* 한때 프랜차이즈였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친정팀을 떠난 주요 선수들

울산-이천수, 전남-김영광, 포항-이동국, 전북-김도훈&박성배, 대전-김은중&이관우, 수원-고종수, 성남-김상식&김영철

5. 구단의 축구 무관심, 팬들을 화나게 하다

한때 한국 축구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꼽히던 모 구단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그 구단은 어느 순간부터 계획성 없는 축구행정과 선수&팬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한국 축구의 열악한 구조를 변명삼아 구단 투자에 소극적인 마인드를 일관하더니 구단 운영에 1년 200억 투자하겠다던 약속은 결국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서포터즈와의 대립, 주력 선수들의 이탈, 잦은 감독 교체로 바람잘 날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 홈 경기장을 찾는 연고지 팬들의 발길이 뜸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K리그 골수팬 분들이라면 어느 구단을 말하는 것인지 짐작하실 겁니다.

6. 팬들이 원하는 것은 지루한 수비축구가 아니다

축구팬이 원하는 경기는 시원하고 화끈한 공격축구입니다. 하지만 K리그에서는 이 같은 논리가 배제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때 수비축구가 유행했던 2000년대 중반을 말하는 것이죠. 당시 K리그 팀들중에 몇몇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히딩크호의 선수비-후역습 전략에 감탄받아서 인지, 3-4-1-2와 3-4-3 포메이션의 압박 축구를 밀고 나가면서 공격보다는 수비에 무게감을 실었습니다. 전,후기리그/하우젠컵이 각각 12경기씩 있었기 때문에 공격 위주로 운영하기에는 리스크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렇다보니 수비축구로 실점하지 않는 전략을 밀고 나가면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원하던 팬들을 지루하게 했습니다. 물론 수비축구도 축구의 일부분이지만, 리그 전반에 걸쳐 성행했다는 점이 흥행에 발목 잡히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7. 맥빠지는 하위권 팀들 경기력, 승강제 도입하면 되는데?

하위권 팀들의 특징은 홈 경기장을 방문하는 팬들의 숫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경기력이 좋지 않은데다 좀처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죠. 상위권 팀들이 K리그의 판세를 주도하는 현 구조에서는 흥행력이 한계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위권 팀들도 하위권 팀들끼리의 흥행 구조를 만들어어만 축구팬들의 높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승강제를 통해 성적이 나쁜 팀을 2부리그로 보내고 2부리그에서 좋은성적을 거둔 팀을 1부리그로 끌어올리며 리그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물론 팬들을 위한 여러가지 흥행 거리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 구단들의 홍보 목적으로 운영되는 팀이 많은 K리그의 현실에서는 승강제가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위권 팀들의 경기가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승강제 없이는 어떠한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8. 유럽축구 인기에 밀리는 K리그

K리그 보다 유럽축구를 더 좋아하는 축구팬들이 많다는 것은, K리그 흥행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최근들어 한국인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늘어나고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의 맨유가 국민팀으로 회자 될 만큼(그 이전에는 PSV 에인트호벤이 국민팀이었죠.), 유럽 축구는 어느 덧 축구팬들의 일상에 없어선 안될 요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유럽축구의 수준 높은 경기력과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의 존재감, 그리고 한국인 선수의 맹활약 여부가 골고루 결합되어 '흥행이 정체된' K리그의 인기를 넘어섰습니다. 이렇다보니 축구팬들 혹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K리그 재미없다"는 래퍼토리가 유행하고 말았죠.

9. 2~3만명 들어온 것도 관중이 부족하다고?

K리그 관중 및 경기력에 대한 TV 방송사들의 편파적인 보도는 K리그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특히 관중에 대한 보도가 가관이었습니다. 6만 6천명을 수용하는 대구 스타디움 관중이 2~3만명 들어왔음에도 관중이 부족하다는 보도를 하더니, 수원 빅버드는 경기 시작 전 관중석 모습을 비추면서 K리그 관중 문제를 꼬집었습니다. 이러한 보도는 대중들에게 'K리그=텅 빈 관중'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10월 모 방송국 스포츠 뉴스에서는 어느 K리그 경기에서 선수들이 실수한 장면만 반복적으로 내보내면서 "상위팀의 대결답지않게 지루했습니다. 수비수는 어이없이 공을 흘리고 공격수는 시간을 끌다가 기회를 놓쳤습니다. 걷어낸다는 게 자책골이 될 뻔했고 골문 앞에서 헛발질도 나왔습니다"라며 K리그를 깎아내리는 보도를 하더니 K리그팬들의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10. K리그&AFC 챔피언스리그 빅매치 외면하는 방송사들

방송사들의 문제점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공중파에서 조차 K리그 빅매치를 외면할 정도죠. 지난해 챔피언결정전 1차전 수원vs서울의 경기와 지난 4월 수원vs서울의 정규리그 경기는 공중파에서 중계되지 않았습니다. 수원과 서울이 K리그 최대의 흥행카드이자 챔피언결정전이 프로야구의 한국시리즈라는 것을 상기하면, 공중파 보도는 이루어져야 마땅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 마저도 공중파 중계를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지난 24일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원-서울-포항이 중요한 국제경기에 참가했는데,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사 모두 생중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팬들은 새벽 시간에 방영된 녹화중계를 보거나 외국 인터넷 방송사 생중계 동영상을 통해 버퍼링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방송사들의 외면이 K리그의 흥행 어려움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