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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은 월드컵 16강 도전, 일본은 왜 4강이 목표?

 

"태극전사들은 남아공에서 사고치고 싶은 욕망이 크다.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 목표다"(허정무 한국 감독)
"월드컵 본선에서 선수들이 열심히 싸워주길 바라며, 4강 진입을 목표로 하겠다"(오카다 다케시 일본 감독)

한국과 일본의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본선의 목표는 서로 다릅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 7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 2-0 승리 후 월드컵 본선 16강 진출이 목표라고 말한 반면에 오카다 감독은 이에 앞서 열린 6일 우즈베키스탄전 1-0 승리 후 월드컵 본선 4강 진출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나타냈죠. 한일 대표팀의 경기력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상기하면 목표가 다르다는 것이 색다릅니다.

사실, 아시아 국가가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역대 18번의 월드컵 대회에서 아시아팀이 조별 예선을 거쳐 상위 토너먼트에 진출했던 대회가 3개 대회에 불과하니까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진출했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16강에 진출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한국이 4강, 일본이 16강에 올랐죠. 그러나 나머지 대회에서는 아시아 팀의 성적이 좋지 못했거나 불참했던 경기도 있었습니다. 특히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시아권에 속했던 4개 국가 모두 16강 진출에 실패했죠.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현 인도네시아-는 193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에 진출했지만 당시 대회 규정이 조별 예선 이후에 16강 토너먼트로 이어진 것이어서, 통계에서 제외 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호주가 16강에 진출했지만 아시아가 아닌 오세아니아 자격으로 진출한 것이어서 이것도 제외 했습니다.)

이러한 통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국의 16강 진출 목표는 '현실적'이고, 일본의 4강 진출 목표는 '비현실적'입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8번 월드컵 본선 진출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외한 나머지 대회에서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성적이 역대 본선 최고의 성적이며, 나머지 월드컵 원정 경기에서는 6전 1무5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원정 대회 1승 조차 못한 팀이 4강 진출을 바라고 있으니 참으로 비현실적이죠.

우선, 한국이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는 이유는 86-90-94-98년 본선에서 1승 및 16강 진출에 실패했던 영향이 큽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1승을 1차 목표로 설정한 뒤 16강 진출을 2차 목표로 설정했죠. 이렇다 보니, 세계 무대의 벽이 크다는 것을 인지하여 본선 조추첨부터 월드컵 실전 무대에 이르기까지 16강 진출 여부에 모든 초점을 쏟았습니다. 16강에 오르면 그 다음 목표에 도전하고 다다음 목표에 도전하여 한 단계씩 밟아가는 것이 주된 패러다임이죠. 아시아 팀이 16강에 진출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반면 일본이 4강 진출을 벼르는 이유는 오카다 감독이 한국에 자극받았기 때문입니다. 오카다 감독은 지난 2007년 11월 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했는데, 일본도 그에 맞는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4강 진출을 목표로 하겠다"는 말을 종종 내뱉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을 때도 "월드컵 4강에 진출하겠다"고 거침없이 쏘아 붙였죠.

이러한 오카다 감독의 발언은 어찌보면 한국 축구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비춰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입니다. 감독 입장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그 목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일본 축구 역사에 길이 남길 커리어를 올리기 위해서는 월드컵이 가장 중요할 수 밖에 없었으며 특히 한국을 의식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도 진정한 아시아 축구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한국의 월드컵 4강 성적과 나란히 하거나 그에 필적할 수 있는 커리어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죠. 만약 오카다 감독이 목표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지 않은 존재라면 지휘봉을 잡을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면 곤란합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반에서 16등 안에 들지 못하는 학생이 시험에서 4등 안에 들겠다고 '큰 소리' 치는 것과 똑같은 행동입니다. 상위권 학생과 중상위권 학생, 중위권 학생의 레벨이 엄연히 다른데 중위권 성적의 학생이 어느 순간에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어렵고 힘듭니다.(공교롭게도, 요즘 교실 정원수가 30명 내외더군요.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팀과 거의 똑같은 규모입니다.) 오카다 감독의 월드컵 4강 진출 희망사항이 '오르지 못할 나무'에 비유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한국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본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 하나는 월드컵 본선이 한국에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후와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 선수들보다는 태극 전사들이 유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유럽팀 출신 선수들은 2001/02시즌 유럽축구 일정을 마친 뒤 지구 반대편을 돌아 한국에 입국했던 체력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만약 2002년 월드컵이 비아시아권 지역에서 열렸다면 한국이 4강 진출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런 요소가 있는데, 일본의 남아공 월드컵 4강 도전 과정은 2002년의 한국보다 힘들 것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없습니다. 일본이 4강 진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면 오카다 감독의 발언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자들이 세계 축구를 지배하는 최근 흐름에서는 정신력 하나로는 못버팁니다. 어디까지나 실력이 전제 되어야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2006년 독일 월드컵은 강팀들의 잔치로 끝났습니다.

일본 축구의 문제는 공격수입니다. 아무리 세밀한 패스를 자랑하는 미드필더들이 풍부하더라도 공격수가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들의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또한 일본 선수들은 전형적으로 피지컬이 떨어집니다. 그 약점을 보완하지 못해 격렬한 경기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 약점을 오카다 감독이 보완하지 못하면 남아공 월드컵 4강 진출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보다는 16강 진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것은 허정무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카다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3전3패의 성적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물론 3경기 모두 좋은 경기 내용을 보였지만 축구는 결과로 말할 뿐입니다. 그랬던 오카다 감독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4강 진출에 도전합니다. 꿈도 야무지고 목표도 높게 잡았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허정무 감독의 16강 진출 도전이 현실적인 목표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까지 12개월 남은 한국과 일본 축구의 앞날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