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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7연승 비결, '포메이션의 파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공격 전술이 점점 진화하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상징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술이 점점 변화무쌍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선, 맨유는 2007/08시즌에 카를로스 테베즈를 영입하면서 '무한 스위칭'의 완성판을 그렸습니다. 루니-테베즈-호날두-나니(긱스)가 빠른 순발력을 앞세운 기동력으로 활발한 스위칭을 시도하는 파괴적인 공격 형태를 선보인 것이죠. 그 결과 2007년 10월에는 4경기 연속 4골을 터뜨리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하면서 무한 스위칭을 쓰기에는 선수들의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고 루니-베르바토프-테베즈가 잦은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하면서 공격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수비의 힘'으로 승점 3점을 거머쥐는 경우가 많았죠. 맨유 공격에서 유일하게 믿을 존재는 호날두의 드리블 돌파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맨유가 시즌 막판들어 변화를 감행했습니다. 지난 3월 14일과 22일 리버풀전과 풀럼전에서 최악의 패배에 빠진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4월 6일 아스톤 빌라전부터 5월 14일 위건전까지 12경기에서 10승2무에 7연승을 거두는 폭발적인 오름세를 발휘한 것이죠. 무엇보다 공격력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날두의 공격력에 의존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공격 옵션들의 콤비 플레이를 앞세운 부분 전술을 강화하면서 상대의 압박 수비를 가볍게 뚫었던 것이죠. 지금은 어느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선수들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맨유가 7연승을 거둔 경기들을 살펴보면, 잘나갈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맨유는 지난 23일 포츠머스전부터 이번 위건전까지 7경기를 모두 싹쓸이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7경기와 지난달 6일 아스톤 빌라전부터 20일 에버튼전까지 5경기를 살펴보면 무언가 다른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포메이션' 입니다.

맨유는 4-4-2의 팀? 이제는 아니다!

맨유는 최근 7경기에서 다양한 포메이션들을 선보였습니다. 4-3-3을 세 번 구사했고 4-2-3-1을 두 번 활용 했습니다. 그외 4-1-4-1과 4-4-2는 각각 한 번씩 선보였습니다. 그 중 몇몇 경기에서는 후반 중반부터 원래의 포메이션을 새롭게 바꾸면서 상대팀을 공략했습니다. 이번 위건전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4-3-3을 쓰다가 후반 12분 안데르손을 빼고 카를로스 테베즈를 교체 투입하면서 4-4-2로 바꾸었죠. 이는 맨유가 최근들어 여러가지 포메이션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7경기 이전에 치른 5경기를 살펴보면, 4-4-2를 세 번 구사했고 4-3-3을 두 번 활용했습니다. 4-3-3을 썼던 경기는 FC 포르투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2차전 이었죠. 그 이전으로 흘러가면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4-4-2를 썼습니다. 2000년대 중반 '킹 뤼트 시스템'의 실패로 4-3-3이 아무런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원래의 포메이션인 4-4-2를 주로 활용했는데, 이제는 4-3-3의 차원을 넘어 4선 포메이션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의' 맨유가 4-4-2의 팀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맨유의 최근 7경기 포메이션 및 선수 배치는 이렇습니다.

1. 4월 23일 포츠머스전(4-2-3-1)
-판 데르 사르/에브라-에반스-비디치-네빌/플래처-스콜스/긱스-안데르손/호날두/루니
2. 4월 26일 토트넘전(4-4-2)
-판 데르 사르/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하파엘/호날두-플래처-캐릭-나니/루니-베르바토프
3. 4월 30일 아스날전(4-3-3)
-판 데르 사르/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오셰이/캐릭-플래처/안데르손/루니-테베즈-호날두
4. 5월 2일 미들즈브러전(4-1-4-1)
-포스터/에브라-에반스-비디치-오셰이/스콜스/루니-긱스-베르바토프-박지성/마케다
5. 5월 6일 아스날전(4-3-3)
-판 데르 사르/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오셰이/캐릭-플래처/안데르손/루니-호날두-박지성
6. 5월 10일 맨체스터 시티전(4-2-3-1)
-판 데르 사르/에브라-에반스-비디치-하파엘/긱스-플래처/호날두-베르바토프-박지성/테베즈
7. 5월 14일 위건전(4-3-3)
-판 데르 사르/에브라-에반스-비디치-오셰이/스콜스-캐릭/안데르손/루니-베르바토프-호날두

맨유는 그동안 4-4-2를 썼지만 이제는 경기를 거듭할 수록 포메이션을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7경기들을 살펴보면 2경기 연속으로 같은 포메이션을 구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관점대로라면 '포메이션은 숫자일 뿐'이겠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철학은 다릅니다. 맨유에게 있어 4-4-2는 팀 전술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몇몇 경기에서는 4-3-3을 썼지만 지금까지는 미드필더진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다시 4-4-2로 원상복구 되는 경우가 여럿 있었습니다. 선수들 대부분이 4-4-2에 익숙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죠.

하지만 맨유가 최근 경기에서 포메이션을 자주 바꾸는 이유는 선수들의 '멀티 능력'을 늘리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루니-호날두-베르바토프의 포지션은 거의 매 경기마다 변신을 거듭하는 상황입니다. 루니는 지난달 26일 토트넘과의 후반전에서 왼쪽 윙어로 변신한 것을 포함해서, 자신이 출전했던 최근 5경기 모두 왼쪽 측면에서 뛰었습니다. 호날두는 지난 6일 아스날전에서 3톱의 중앙 공격수로 뛰었죠. 골잡이였던 베르바토프는 미들즈브러전과 맨시티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려갔습니다. 또한 맨시티전에서 전반 25분 이후 20분 동안은 박지성과 포지션을 바꾸면서 오른쪽 윙어로 뛰었습니다.

또한 맨유 공격 옵션들의 포진은 '고정'이라는 느낌을 완전히 지웠습니다. 대게 포메이션하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면서 경기를 풀어가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맨유는 다릅니다. 왼쪽 윙어를 맡는 선수 같은 경우, 왼쪽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면서 때로는 중앙으로 비집고 들어가면서 공격을 풀어가거나 경기 상황에 따라 오른쪽까지 맡을 수 있습니다. 중앙 공격을 맡는 선수 또한 마찬가지죠. 게다가 최전방 뿐만이 아니라 하프라인 부근에서 상대팀의 공격을 차단하거나 아니면 팀 공격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도맡습니다. 맨유에게 있어 포메이션은 고정 형태일 뿐, 실제로는 경기 상황에 따라 제2의 제3의 포메이션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맨유 공격의 근간은 무한 스위칭의 핵심인 빠른 기동력 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부지런한 움직임과 넓은 활동량을 비롯해서 지구력, 체력, 파워 그리고 전술 실행력 등등 90분 동안 쉴틈없이 공격 펼칠 수 있는 요소들을 골고루 종합하여 여러가지 포메이션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최근 7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친 공격 옵션들 모두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갖춘데다 여러가지 역할과 임무를 도맡았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상대팀에게는 맨유라는 존재를 난공불락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겠죠.

원톱의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킹 뤼트 시스템을 쓰던 시절에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현 레알 마드리드)가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몇몇 선수들이 도와주는 역할에 치중했죠. 원톱하면 골을 가장 잘 넣는 선수들이 주로 포진하는 것이 기존의 흐름 이었습니다. 하지만 원톱은 최근에 이르러 다른 선수들의 골을 도와주는 존재로 변했습니다. 루니와 테베즈는 빠르고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망을 한꺼풀 벗겨내는데 주력했고 베르바토프는 특유의 우아한 패스로 최전방에서 여러차례의 공격 기회를 창출 했습니다. 특히 베르바토프는 위건전에서 3톱의 중앙을 맡았지만 단 한번의 슈팅을 날리지 않고 패스 플레이에 치중했습니다. 그 결과 88%의 높은 패스 정확도(46개 시도 52개 성공)를 기록하여 팀 승리의 숨은 역할을 해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4선 포메이션의 비중을 늘렸습니다. 선수들끼리의 공간을 세부적으로 나누면서 서로의 콤비 플레이를 최대화 시키기 위함이죠. 지금까지의 현대 축구는 공격 옵션들의 개인 역량에 따라 골을 넣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수비 조직력이 더욱 견고하고 강해지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격 트렌드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분 전술을 강화시켜면서 세밀하고 정확한 공격 루트를 통한 콤비 플레이로 골을 넣는 것이죠. 지금의 맨유가 그런 형태입니다. 그만큼 한 치의 실수라도 용납할 수 없는 전술의 진화를 퍼거슨 감독과 맨유 선수들이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맨유의 '포메이션 파괴' 현상은 프리미어리그 최강자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오랫동안 승리를 거듭하기 위해서 전술 능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맨유가 최근 7연승을 통해 보여주는 축구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맨유의 행보는 한국 축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