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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욕설 발끈' 안정환을 옹호하는 이유

 

'반지의 제왕' 안정환(33, 다롄 스더)이 단단히 화났습니다.

안정환은 지난 10일 다롄 스더-장수 순티엔과의 경기 도중, 상대팀 미드필더 친성이 계속 따라붙는 과정에서 '개X끼'라는 한국어 욕설을 들었다고 합니다. 타지에서 예상치 못했던 모욕을 듣더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더니 친성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양팀 선수들의 집단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안정환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 밖 대기심석에서 친성의 사과를 받지 않으면 경기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으름장 놓았고 이에 장수팀 관계자의 사과를 받으며 갈등이 봉합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정환의 욕설 발끈에 두 팀 선수들의 반응이 서로 엇갈립니다. 안정환의 팀 동료이자 친성을 밀치는 행동으로 퇴장당했던 양린은 <시나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친성은 안정환을 귀찮을 정도로 따라가면서 계속 욕했다. 정말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친성을) 밀쳤다"며 욕설 사실을 밝혔습니다. 반면 욕설 당사자인 친성은 "장수에는 한국인도 없고 나는 한국어도 못한다. 안정환이 너무 성질이 폭발하다보니 말다툼이 생긴것일 뿐이다"고 부인했습니다.

친성이 한국어로 욕설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정확히 판가름하기 어렵습니다. 안정환이 친성과 경합을 하는 과정에서 무언가의 말을 듣더니 발끈한 사실만 남을 뿐이죠. 그런 안정환이 왜 발끈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정환은 축구 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극도의 분노감을 느끼면 참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친성이 욕설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의 말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논란의 소지를 일으켰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친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지난 3월 중국 진출 과정에서 우려되었던 부분 입니다. 안정환은 4년전 요코하마 마리노스(일본) 소속으로 뛰던 지난 2005년 5월 11일 AFC 챔피언스리그 산둥 루넝과의 원정 경기에서 한 스트레쳐(의무 요원)가 자신에게 욕설을 가하자 그의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그러더니 산둥 선수들이 달려와 자신과 뒤엉켰고, 그 과정에서 산둥 팀 닥터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습니다. 이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국내 유명 축구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네티즌들을 들끓게 했습니다. 근본적인 잘못은 선수에게 욕설을 가했던 의무 요원이었죠.

그리고 4년 뒤에 이러한 일이 또 다시 되풀이 된 것은 '공한증'에 시달리는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에 대한 열등 의식이 여전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4년전 안정환이 산둥측과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오히려 안정환에게 비판과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4년전 소속팀의 중국 투어에서 골을 넣자마자 중국 팬들의 거센 야유를 받았던 장면을 떠올리면 '한국 축구 그리고 한국인 선수들이 잘되는 꼴을 볼 수 없다'는 중국 축구계의 분위기를 짐작케 합니다. 특히 안정환은 한국 축구를 상징하던 최고의 스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겟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비관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면, '안정환은 왜 참을 줄 모르느냐?'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두 개의 사건 모두 안정환 본인 스스로가 마음을 추스리고 참았다면 사태는 더욱 커지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안정환은 축구만 할 줄 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며 나름의 감정이 있습니다.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이 자신에게 모욕을 가한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가했던 것 처럼, 상대로 부터 어떠한 안좋은 말을 들으면 폭발할 수 밖에 없는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만약 자신이 일상 생활에서 어느 누군가에게 듣기 싫을 정도의 모욕을 받았다면 그걸 참고 넘기겠습니까.

남자들의 성격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불의를 못보면 참지 못하는 성향이기 때문이죠. 속된 말로는 욱하는 기질이라고 하죠. 물론 일부는 그렇지 않겠지만, 타인에게 어떠한 모욕감을 받거나 그것과 비슷한 안좋은 일이 있다면 폭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축구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렸을적 부터 많은 경기를 치르고 상대팀 선수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공을 다투는 장면으로 단련되었던 선수들에게는 승리욕이 어느 누구보다 남다릅니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마찰이 있더라도 상대와 신경전을 벌이곤 합니다.

안정환은 그동안 여러 팀을 오가며 많은 산전수전을 겪었기 때문에 상대의 어떠한 행위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2005년 부터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팀을 계속 옮겨 다니는 '져니맨' 신세이기 때문에 어느 팀에서 뛰더라도 마음 놓고 뛸 수 없는 상황이죠. 또한 오는 8월에는 호주 A리그가 개막하기 때문에 다롄과의 단기계약을 종료하고 호주에서 또 다른 팀을 찾아야 합니다. 마치 이탈리아 출신 공격수 크리스찬 비에리(아탈란타)를 떠올리게 하는 것 처럼 여러 팀을 옮겨다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2005년 프랑스 메츠 입단 이후부터 지난해 부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는 것이죠.

어쩌면 안정환은 자존심이 강한 선수였는지 모릅니다. 소속팀에서 본인 스스로 납득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다른 팀을 찾느라 애를 썼기 때문이죠. 원래는 친정팀인 부산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려고 했지만, 구단으로부터 기대 이하의 연봉을 제시받아야만 했고 또 다른 공격 옵션들이 영입 되면서(안정환 부인 이혜원씨가 얼마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밝혔죠.) 결국 부산을 떠났습니다. 부산이 자신을 소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죠. 누군가는 '똥고집'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안정환은 그저 본인이 원하는 대우를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 그가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한국 축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선수로는 처음으로 중국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 것이죠. 실제로는 호주 A리그 진출 이전까지 실전 감각을 키우기 위해 다롄과 단기 계약을 맺었지만(언론 보도에 의하면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국내 팬들 중에 일부는 '돈 때문이 아니냐?'며 그를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돈 문제 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해해야 합니다. 올해 한국 나이로 34세(1976년생)인 안정환의 선수 생명이 얼마 안남았기 때문이죠. 축구 선수 자격으로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이제는 별로 없기 때문에 돈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겁니다. 선수 본인이 돈 문제 때문에 중국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더라도 안정환의 진로는 이제 존중해줘야 합니다. 축구 선수로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팬들은 안정환의 대표팀 합류를 바라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표팀 세대교체 작업과 이동국-이천수-최태욱이 부활의 기재개를 켠 지금의 상황에서 그의 대표팀 커리어는 어쩌면 끝났을지 모릅니다. 호주로 진출한다고 할지라도, 내년 월드컵 본선에 뛸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안정환이 팀을 옮겨 다니는 것, 그리고 상대의 심한 모욕을 참지 못했던 것은 자기 자신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기가 죽은 듯이 선수 생활을 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게 더 낫기 때문입니다. 어느 팀에서든 편안하게 축구 생활 하고 싶었고 자신의 활약과 실력에 걸맞는 돈을 받고 싶었습니다. 다른 선수였다면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남들과 달랐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죠.

수원 소속이었던 지난 2007년 9월 FC 서울과의 2군 경기에서도 그랬습니다. 서울의 한 여성 서포터가 자신에게 부인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신랄한 모욕을 가하자 관중석으로 난입했던 사건은 그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선수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꽃미남이라는 겉으로된 이미지 때문에 순하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축구를 직업으로 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며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그는 은퇴를 앞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안정환은 선수 생활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낮추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의 모욕을 받으면 또 한번 발끈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또한 자신의 실력에 걸맞는 대우를 받기 위해 새로운 팀을 찾을지 모릅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큰소리를 쳤고 또 칠 것입니다. 그는 은퇴하는 그날까지 고개를 떨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안정환의 축구 인생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까지 절때로 약한 모습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록 지금은 오랜 시련의 터널 끝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웃으리라 믿습니다. 그 자존심, 계속 변치 않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