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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주영, '골 숫자'로 평가해선 안된다

 

'27경기 출전 4골 6도움 기록'

'박 선생' 박주영(24, AS모나코)의 올 시즌 스탯입니다. 기록만을 놓고 보면 공격수 치고는 평범한게 사실입니다. 아니, 부족할지 모릅니다. 국내에서 특출난 골잡이로 유명했던 선수가 27경기에서 4골을 넣었다는 것(1경기당 0.15골)은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골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일부 축구팬들은 박주영의 골 부족을 아쉬워합니다. 거의 7경기에 1골을 넣었으니 골잡이로서의 매력이 없어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포털에 있는 박주영 관련 기사 댓글에 골 부족과 관련된 의견을 나타내며 그를 조롱하거나 비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연한 현상일지 모릅니다. 골잡이는 어디까지나 골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골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도 가혹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박주영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다름 아닌 '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나코에서의 박주영은 골잡이와 다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후안 파블로 피노와 투톱 공격수를 맡으면서 서로의 역할을 바꾸고 있지만 주로 쉐도우쪽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이후에는 오른쪽 윙어로 출전하는 빈도가 늘어났죠. 지난 3월 2일 생테티엔전에서는 4-3-3의 왼쪽 윙 포워드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굳이 위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박주영은 모나코에서 골잡이와 무관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팀내 득점 1위(컵대회 포함 9골)인 알렉산드레 리카타는 지난해 11월 6일 프랑스 일간지 <니스마탱>을 통해 "박주영은 이타적인 선수다. 모든 방향에서 좋은 콜을 해주는 것은 물론 패스도 좋다"고 했습니다. 이는 박주영이 다른 공격 옵션들의 역량과 팀의 전체적인 공격 흐름을 이끌기 위한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럽축구를 좋아하는 축구팬들은 박주영을 '박 선생', '박 코치'라고 부릅니다. 단조롭고, 맥이 느리고, 정적이고,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와 거리감이 있는 모나코의 공격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믿을맨이기 때문이죠. 박주영은 모나코에서 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하기 보다는 모나코의 불안 요소인 공격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한 박자 빠르면서 섬세하고 예리한 패싱력에 유연한 볼 컨트롤, 힘이 실린 드리블 돌파, 여기에 프랑스리그에서 단련된 몸싸움 능력까지 전체적인 기교는 군계일학입니다.

물론 기술과 스피드, 움직임, 그리고 슈팅은 박주영보다는 피노가 더 우세입니다. 콜롬비아 출신 공격수 답게 엄청난 탄력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자랑하며 시즌 중반부터 팀 공격의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하지만 피노의 문제점은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루이스 나니보다 심할 정도로) 박주영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기에는 독단함이 지나칠 수 밖에 없었죠. 공격 과정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하지 않고 무리하게 볼 끌기를 시도하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른 시간에 질책성 교체된 적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마치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죠.

반면 박주영에게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이타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는 꾸준함이 있었기 때문에 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피노보다 화려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하나 만큼은 상대 수비를 공략할 수 있는 임펙트가 있기 때문에 모나코 공격 옵션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죠. 그래서 그는 히카르두 고메스 감독의 확실한 신임을 얻으며 팀내 공격 옵션 중에서 유일하게 붙박이 주전으로 뛰고 있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든 묵묵히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를 연결하고 미드필더진으로 내려가면서 공격을 전개하다보니 팀 공격에 없어선 안될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박주영은 최근 10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11개의 슈팅을 날렸습니다. 반면에 지난해 9월 13일 로리엔트와의 데뷔전 이후에 가진 10경기에서는 2골 1도움을 올리면서 25개의 슈팅을 날렸습니다. 이 기록만을 놓고 보면, 슈팅을 아낀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의 최근 경기력을 보면, 자신이 직접 슈팅을 날리기보다는 동료 선수들의 공격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그 빈도가 늘어났다는 것은 고메즈 감독의 지시에 의한 전술적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나코 공격의 확실한 믿을맨이라는 것입니다.

올 시즌 4골에 그친 선수가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보다 골이 더 많은 리카타와 프레데릭 니마니(6골)는 시즌 후반부터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렸습니다. 활약도가 들쑥날쑥한 피노도 6골을 넣고 있죠. 이는 박주영의 가치를 '골 숫자'로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골이 아닌 '자신의 또 다른 장점'인 이타적인 공격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괴물 골잡이'로 불렸던 시절의 박주영이라면 모나코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2007년에 잦은 부상으로 부침에 시달리면서 출중한 골 감각과 부지런한 움직임, 빠른 스피드에 힘을 실릴 수 있는 능력을 아직까지 되찾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잦은 대표팀 차출로 혹사에 시달리면서 부상 및 부진으로 어려운 나날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더니 지난해 서울에서는 왼쪽 윙어로 전환하면서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올림픽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골을 책임지는 역할은 자신이 아니라 이근호였죠.

그리고 박주영은 모나코에서도 이타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만약 박주영이 골만 넣을 줄 아는 그저 그런 골잡이였다면 모나코에서 성공할 수 없었을 뿐더러 전형적인 반짝 선수의 축구 인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박주영에게는 동료 선수들의 골과 드리블 돌파를 도울 수 있는 패싱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경기를 손쉽게 풀어갈 수 있는 영리함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리그 적응에 성공했던 겁니다. 물론 지난일이긴 합니다만,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하는 잦은 대표팀 차출이 선수를 힘들게 했던 겁니다. 일부 팬들에게는 박주영의 골 부족이 못마땅하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프랑스리그에서 순조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그러나 아쉬운것은 있습니다. 모나코는 박주영의 쉐도우 역량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걸출한 골잡이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리카타와 니마니의 내림세 행보가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두 선수보다 꾸준한 능력을 지닌 소유자가 있었더라면 박주영의 공격력에 힘이 실렸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을지 모르죠.

개인적으로는 박주영이 모나코에 오랫동안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풀럼으로 이적하라고 그런것은 아닙니다.(저는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박주영의 풀럼행 및 올해 여름 이적을 반대합니다.) 모나코 공격력의 취약 요소가 여럿 있기 때문에 이보다 수준이 뛰어난 팀에서 기량을 연마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언제까지 '박 선생'에 만족할 수는 없으니까요. 유럽리그 감각이 충분히 쌓일 수 있는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본선 이후가 상위팀에 이적할 수 있는 최적기가 아닐까 합니다.

어찌되었건, 박주영의 모나코 활약상을 단순한 골 숫자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박주영이 왜 모나코에서 유일한 붙박이 주전 공격 옵션으로 활약하면서 팀 공격의 믿을맨으로 활약하는지 그게 더 중요합니다. 적어도 모나코에서 만큼은, 박주영은 골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