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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아르샤빈 4골+리버풀 극장=최고의 명승부

 

그동안 밤을 새우며 수많은 유럽 축구 경기를 봤지만, 이번 경기는 환호성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경기였습니다. 상대 선수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패스와 사각 모서리쪽으로 빠르게 향하는 강렬한 슈팅, 그리고 짜릿한 명승부라는 3박자가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저를 열광케 한 것입니다. 이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셨던 축구팬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실 것입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명승부였습니다. 22일 오전 4시(이하 한국시간)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팽팽한 8골 난타전 끝에 4-4로 끝났습니다. 리버풀은 이번 경기에서 비기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승점이 동률을 이뤘지만(승점 71점) 득실차에서 맨유를 5골 차이로 앞서면서 리그 1위로 뛰어 올랐으며 아스날은 4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두 팀 선수들이 보여준 각본없는 드라마는 그야말로 기가 막혔습니다. 전반전에는 아스날이 1-0으로 앞섰지만 후반전에 총 7골이 터지면서 4-4 무승부라는 8골 난타전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후반 45분에는 안드리 아르샤빈이 4번째 골을 넣으면서 아스날의 4-3 승리로 끝나는 듯 했지만 48분에 요시 베나윤이 동점골을 넣으며 4-4가 됐습니다.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많은 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은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감동의 도가니를 연출했습니다.

우선, 리버풀은 일주일전에 이어 이번에도 '리버풀 극장'을 연출했습니다. 지난 15일 첼시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후반 30분 프랭크 램퍼드에게 역전골을 헌납하기까지 2-3으로 밀렸지만 34분과 36분에 걸쳐 디르크 카윗과 루카스 레예바가 릴레이 골을 터뜨리면서 4-3으로 앞섰습니다. 비록 후반 막판에 램퍼드에게 또 다시 골을 내주고 4-4로 비겼지만 원정팀이 좀처럼 골을 넣기가 쉽지 않은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4골을 넣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닙니다.

이번 아스날전에서는 3-4 패배 위기 상황에서 베나윤의 극적인 헤딩골로 벼랑 끝에서 탈출했습니다. 후반 45분 아르샤빈에게 4번째 골을 내주고 무너지는 듯 했지만 3분 뒤 베나윤이 골망 왼쪽을 흔드는 오른발 동점골을 밀어 넣으며 패배를 모면했습니다. 리버풀은 베나윤의 골이 없었다면 홈에서 아스날에게 무너지면서 리그 1위 진입에 실패해 앞날 일정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이스 스티븐 제라드가 사타구니 부상으로 결장한 상황에서 리그 라이벌 첼시, 아스날을 상대로 4골이나 쏘아올린 것 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강력한 한 방'을 자랑하는 제라드 없이 일주일 간격으로 두번씩이나 8골 난타전 명승부를 벌인 것은 리버풀이 '제라드의 팀'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더욱 남다릅니다.

페르난도 토레스의 2골도 무시할 수 없지만, 베나윤의 2골은 그 이상으로 임펙트가 넘쳤습니다. 후반 10분 디르크 카윗의 오른쪽 크로스를 헤딩골로 밀어 넣으며 2-1 역전골을 넣더니 경기 막판에는 팀의 패배 위기 상황에서 결정적인 동점골을 터뜨렸기 때문이죠. 불과 올 시즌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그런 선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렇다할 강점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시즌 막판부터 공격력에 물이 오르면서 가파른 활약을 펼치더니 아스날전에서 2번의 값진 골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4-2-3-1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맡았는데, 그의 입지가 얼마만큼 커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리버풀 선수들의 끈질긴 승리욕과 저력도 대단하지만, 아르샤빈의 가공할만한 4골의 화력은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아르샤빈 혼자서 아스날의 공격을 주도하며 리버풀 수비진을 상대로 네 번이나 골망을 갈랐다는 것은 선수 본인이 지닌 원샷원킬 본능이 얼마만큼 뛰어난지 읽을 수 있습니다. '원정팀의 무덤' 안필드에서 선수 개인이 4골을 넣는다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지난해 유로 2008에서 러시아의 4강 진출을 이끈 저력보다 더 강했을지 모릅니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아르샤빈의 유로 2008 맹활약이 거품이라고 제기했지만, 이제부터는 이러한 주장이 완전히 설득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아르샤빈의 4골은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체력 저하로 전력에서 리버풀에 열세였던 아스날에게 엄청난 힘이 되었습니다. 전반 28분까지 리버풀에 슈팅 0-6(유효슛 0-4), 볼 점유율 46-54(%)의 열세를 나타내면서 90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후반 45분 아르샤빈의 골로 4-3 승리를 확정짓기 일보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리버풀 선수들에 못지 않은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1-2로 뒤지던 후반 19분에 데니우손을 빼고 테오 월컷을 교체 투입했던 것이 4골이나 퍼부을 수 있었던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르샤빈의 4골은 리버풀 수비진이 주춤한 상황에서 밀어 넣었던 강력한 필드골 장면이었습니다. 전반 36분 리버풀 수비진의 압박을 뚫고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땅볼 패스를 받아 왼발로 골망 윗쪽을 흔들며 선취골을 넣었습니다. 후반 22분에는 문전 왼쪽 공간에서 공을 잡더니 노마크 상황에서 무회전 슈팅으로 오른발 동점골을 터뜨렸고 3분 뒤에는 파비우 아우렐리우가 공을 잘못 걷었던 것을 틈타 오른발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더니 45분에는 상대 골키퍼와의 1-1 상황에서 강력한 왼발 슛을 날리며 안필드를 네 번씩이나 침묵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아르샤빈은 지난달 3일 웨스트 브롬위치전 부터 이번 리버풀전까지 리그 8경기에서 6골 5도움을 기록하며 아스날 공격의 새로운 해결사로 떠올랐습니다. 엠마뉘엘 아데바요르 또는 니클라스 벤트너 같은 타겟맨의 뒤를 보조하는 처진 공격수로서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을 뒤흔들더니 이제는 리버풀전 4골로 '러시안 특급'의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했습니다. 아스날이 거액을 들여 영입한 선수 중에서 최고의 이적료(1500만 파운드)를 기록한 선수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아르샤빈의 4골과 리버풀 선수들이 보여준 '극장 모드'는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이것이 진정한 축구의 매력이다'는 가르침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아르샤빈은 4골을 넣으며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강자임을 실력으로 과시했고 리버풀전은 지난 첼시전에 이어 또 다시 8골 난타전을 연출했습니다. 이들이 그라운드에서 내뿜은 감동과 열정, 승리욕이 충만했기에 명승부가 연출될 수 있었으며 역시 프리미어리그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이었습니다. 두 팀 선수들이 보여준 멋진 경기에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