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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허정무호가 꼭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


학창 시절에 가장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공부를 못했다는 이유로 숙제만 잔뜩 안겨준 것이죠. A4 용지 10장을 영어 단어로 가득 채우는 일을 비롯해서 (일명 : 깜지), 영어 본문을 그대로 외우는 것, 틀린 수학 문제 다시 공부해서 다음 수업 시간이 되면 칠판에 문제를 풀이하는 등 학생의 학습 습관을 바로잡기 위한 과제들을 내줬습니다.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자기 시간을 빼앗길 만큼 선생님이 내준 숙제가 귀찮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하기 싫은데 그래도 해야죠.

북한전에서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펼친 허정무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팀을 완성시키는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최종예선 3경기를 잘 치러야 하고 월드컵 본선 진출시 세계의 강호들과 많은 경기를 치르겠지만 이대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게 지금의 아쉬움입니다. 물론 인간의 마음은 욕심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법이어서 항상 뒷맛이 깔끔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전에서 팬들을 실망시키는 경기를 펼친 것은 앞으로를 위해 반드시 되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전 이후에 주어진 어려운 숙제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고 경기력을 업그레이드할지 참으로 막막합니다.

무엇보다 북한의 밀집수비 극복의 해법으로 삼은 대표팀의 공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3-5-2 형태를 쓰다 수비 상황에서 5-4-1, 혹은 8-1-1이 되는 북한의 촘촘한 수비에 밀려 좀처럼 공격의 실마리를 풀어가지 못했습니다. 71-29(%)의 압도적인 볼 점유율 우세와 80-70(%)로 앞선 패스 성공률, 9개의 북한보다 2배 더 많았던 21개의 슈팅을 시도하며 북한 문전을 사정없이 두드렸지만 결국 얻은것은 프리킥 골 한 방이었습니다. 나머지 20개의 슈팅 중 대부분은 허공을 가르거나 상대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기 일쑤였고 필드골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공격 패턴이 너무 안이했기 때문입니다. 짧은 패스에 의존하는 공격 루트를 그려가면서 템포가 느려지더니 상대팀의 수비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던 겁니다. 농구에서 지공 플레이보다 속공 형태의 공격이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며 득점을 기록하는 것 처럼, 수비-허리-공격진으로 향하는 패스가 한 박자 빨리 전개되고 선수들의 움직임이 유기적이었다면 북한 수비망을 정면으로 뚫을 수 있는 절호의 골 기회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후방에서 전방으로 띄우는 롱패스, 측면에서 중앙으로 연결되는 크로스의 정확도가 부족했던 겁니다. 우선 롱패스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부정확하게 향했고 체공 시간까지 길었습니다. 크로스 정확도는 29.4%(17개 시도 5개 성공)의 낮은 확률을 기록하며 71.4%(7개 시도 5개 성공)을 기록한 북한보다 열세 였습니다. 그동안 A매치 끝나면 축구 전문가들이 이구동성 '크로스 정확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했는데 이 같은 고질병을 해결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물론 골 결정력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죠.

단조로운 공격력 또한 앞으로를 위해 해결해야 할 부분입니다. 대표팀 공격 전개 과정에서 기성용에 의한 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은 북한 수비에게 충분히 읽히기가 쉬웠습니다. 그리고 후반 15분 김동진 교체 투입 이후에는 중앙이 아닌 측면 공격에 치중하면서 상대 수비망이 중앙에서 측면쪽으로 쏠리게 되었죠. 그러더니 이청용과 이근호는 무리한 전진 돌파를 시도하다 상대팀 선수에게 공을 빼앗기거나 몸싸움에서 밀리면서 팀 공격을 번번이 놓치고 말았습니다. 공격 루트가 좀 더 다채로웠다면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북한 수비를 분산시킬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박지성-조원희-기성용-이청용'으로 짜인 미드필더진을 가리켜 '황금MF'라고 하지만 어제 네 선수는 솔직히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북한 밀집 수비의 힘에 밀리면서 공격수들의 최전방 고립을 가중시켰고(전반전에는 이근호의 고립이 두드러졌습니다.) 기성용의 패스, 박지성과 이청용의 측면 돌파가 상대에게 번번히 읽히는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죠. 감각적인 패스 혹은 상대 수비를 끌고다니며 교란하는 전방 침투로 밀집 수비를 한 꺼풀씩 걷어내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중반들어 공격수와의 간격이 벌어지는 문제점을 남기면서 소강 상태에 접어드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박주영의 공격력도 아쉬움에 남습니다. 북한 수비수 차정혁의 밀착 견제를 이겨내고 최전방에서 여러차례 감각적인 공격력을 뽐낸것은 좋으나 최전방에서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면 대표팀 공격이 수월하게 이루어졌을지 모릅니다. 문전에만 머물려는 움직임은 팀이 상대 밀집 수비를 뚫기 위해 애를 써도 기대했던 성과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박주영 본인이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근호의 대표팀 발탁은 좀 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번주 안으로 소속팀이 확정된다는 말이 언론을 통해 꾸준히 보도되고 있지만 빠른 시일내에 팀을 구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팀에서 실전 감각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허정무호 합류가 어려울 것입니다. 허정무 감독 본인도 그동안 자신이 고수했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이근호를 발탁했던 것에 후회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근호 거취 문제가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달 말에 대표팀 명단 발표가 예정되어 있어 이근호의 발탁 여부가 또 한번 도마위에 오를 것입니다. 이러한 잡음을 없애려면 선수 진로에 뚜렷한 성과가 나와야 합니다.

허정무호는 이 같은 어려운 숙제들을 꼭 풀어야 경기력 업그레이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경기에서는 홈 경기의 이점이 있는데다 경험과 개인 기량이 우리가 한 수 위에 있었지만 더 좋은 경기 내용을 펼친 팀이 수비 조직력이 탄탄했던 북한이었으니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숨길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숙제들이 북한전에서 드러난 일시적 문제가 아닌 대표팀 그리고 한국 축구에 만연했던 문제점까지 포함되어 있어 참으로 막막합니다. 하지만 '결과'라는 꽃은 '내용'이라는 줄기를 거쳐야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한 만만찮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