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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축구 '매운맛', 이라크전서 빛났다

 

"선수들 모두 북한전이 중요한 경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승리하도록 준비하고 있다. 지난 네 번의 북한전과는 다른 결과를 내겠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캡틴' 박지성은 지난 26일 북한과의 코리안 더비를 앞둔 인터뷰에서 북한을 꺾겠다는 결의에 찬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허정무호가 지난해 북한과의 네 번의 평가전에서 모두 비긴데다 두 골에 그쳐 '북한 징크스'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빚을 갚을 차례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네 번의 경기 모두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졸전을 펼쳤던 터라 이번 북한전에서 태극전사의 강인함을 떨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북한전에서는 그동안의 부진했던 결과를 말끔히 씻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북한과의 네 경기에서 연이은 졸전으로 고전했지만 지난해 10월 15일 아랍에미리트(UAE)전 이후 월드컵 최종예선 3경기에서 2승1무에 좋은 경기 내용을 발휘하며 그동안 안타까움 속에서 대표팀 부진을 바라보던 팬들의 가슴에 '희망'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안겨줬습니다. UAR전 4-1 대승, 19년 묵은 사우디 징크스 격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치렀던 극적인 이란 원정 무승부까지 팬들의 갈채를 받는 멋진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런 허정무호가 오는 4월 1일 북한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지난해에 비해 얼마만큼 업그레이드 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특히 28일 저녁 7시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이라크전에서는 '북한 격파'를 위한 최상의 실전 무대였습니다. 사실 이라크전은 북한전을 위한 '워밍업'에 불과했고, 조금 딱딱한 표현을 쓰면 이라크전이 모의고사라면 북한전은 수능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의고사에서의 점수가 형편없으면 '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이라크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발휘해야 마땅했습니다. 그 결과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북한전 승리의 '긍정적 가능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그동안 최종예선을 앞둔 평가전에서는 경기 결과보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는데 주력했지만 이번 경기만큼은 '친선경기는 없다'는 각오처럼 이라크를 꺾겠다는 선수들의 의지가 넘쳐났습니다. 특히 이라크전 베스트 일레븐은 북한전에서 선발로 출전할 수 있는 최정예 멤버였습니다. 골키퍼에 이운재, 포백에 '이영표-강민수-황재원-오범석', 허리에 '박지성-조원희-기성용-이청용', 투톱에 '박주영-이근호' 라인을 구축하며 이라크를 상대한 것이죠. 선수들은 이라크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북한전 승리를 위한 '희망 요소'를 마련하며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이라크전에서 드러난 한국의 '필승 의지' 자세는 공격력으로 말해줬습니다. 미드필더진이 전반 초반부터 원터치, 논스톱 패스를 활용한 유기적인 패스 연결로 공격수들에게 활발한 골 기회를 제공하며 경기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전반 3분과 5분에는 이청용에서 박주영으로 연결되는 한 박자 빠른 롱패스가 매끄럽게 전개되면서 상대 미드필더진의 허를 찌르게 했습니다. 또한 미드필더진의 전방 압박을 필두로 수비망을 촘촘하게 다지면서 상대 공격을 철저히 끊었습니다. 이러한 경기력은 공격수들의 수비 부담을 줄이고 미드필더들이 공격에서 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 허정무호의 역량은 특히 전반 20분 부터 돋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분 기성용의 왼쪽 코너킥이 이근호의 머리를 향해 날카롭게 이어졌고 1분 뒤에는 박주영의 감각적인 전진 패스를 받은 이청용의 슛이 골대를 맞았고 이어 이근호의 후속 슈팅이 연결되는 등 상대 수비진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좌우 윙어와 풀백의 적극적인 옆구리 돌파를 통한 측면 공격 강화와 '조원희-기성용' 중앙 미드필더 라인의 허리 장악이 빛을 발하면서 박주영과 이근호가 문전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예리한 공격력을 뽐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라크의 역습 의지를 뿌리치며 여러차례의 골 기회를 얻어내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전반전에 공격 점유율 66-34(%), 슈팅 숫자 12-2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특히 이근호와 박주영은 문전에서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각각 5개와 3개의 슈팅을 날리며(유효슛은 3개와 1개) 이라크 수비수와 골키퍼를 충분히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공격 모드'는 북한의 밀집 수비를 적극 공략하겠다는 의도와 밀접합니다. 허정무호는 지난해 북한전 네 경기에서 상대 밀집 수비를 공략하지 못해 '북한 징크스'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이번 북한전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야 하는 만큼 이라크전에서 공격 위주의 경기력으로 '단련'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기성용은 자로잰듯한 킥력과 날카로운 패싱력을 십분 활용하며 상대의 수비망을 한꺼풀씩 벗겨냈으며 그의 뒷 공간을 보조하는 조원희의 궃은 역할까지 빛을 발했습니다. 박지성과 이청용의 측면 돌파는 '완벽' 그 자체였으며 박주영과 이근호의 콤비 플레이까지 돋보였습니다. 이 기세를 북한전에서 그대로 이어가면 밀집수비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이라크전에서 얻은 '최대의 소득'은 강팀의 저력을 깨우친 것입니다. 진정한 강팀은 상대팀에 선제골을 먼저 헌납하는 위기 상황을 맞더라도 평소의 훌륭한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고 역전시킬 때 빛을 발합니다. 한국이 후반 7분 황재원의 자책골 속에서도 후반 10분과 25분에 걸쳐 골망을 가를 수 있었던 것은 '친선전과 최종예선전을 가리지 않고'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선수들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황재원의 자책골로 52분 동안 펼친 오름세의 페이스가 단번에 끊기며 침체된 모습을 보였다면 허정무호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았을 것입니다.

태극 전사들은 0-1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이라크를 상대했습니다. 그 결과 후반 10분 김치우가 페널티박스 중앙에서 기성용의 감각적인 패스를 받아 오른발 발리슛으로 동점골을 넣었고 15분 뒤에는 기성용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이근호가 오른발 역전골을 성공시켰습니다. 특히 이번 경기에서 여러차례 슈팅 기회를 놓친 것을 비롯 그동안 유럽팀을 구하는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이근호가 페널티킥을 넣었다는 사실은 자신과 대표팀에게 좋은 징조이자 행운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승리 의지'를 예상치 못한 이라크 진영은 우왕좌왕 무너질 수 밖에 없었지요.

한국이 이라크전에서 거둔 소득은 단순히 이긴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박지성 시프트'라는 용어가 등장할 만큼 박지성 위주의 공격력에서 벗어나 기성용이라는 새로운 플레이메이커가 등장하면서 공격이 다변화된 것이죠. 기성용은 조원희의 든든한 후방 지원에 힘입어 미드필더진과 최전방을 쉴세없이 넘나드는 활발한 움직임으로 팀 공격을 진두 지휘했습니다. 20세의 어린 나이이자 대표팀 막내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인 패스와 예리한 킥력을 십분 활용한 공격 재능으로 한국의 공격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특히 한국이 두 골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장면을 연출하며 이라크전 승리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습니다. 지난해 9월 10일 북한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기 때문에 이번 북한전에서의 활약상이 기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이근호와 박주영, 박지성, 김치우 등등 많은 공격 옵션들이 이라크전에서 제 몫을 다하면서 한국 축구 특유의 '매운맛'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을 뜨겁게 달군 한국의 공격 본능은 지난해 네번이나 우리를 괴롭혔던 '북한 징크스'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이게 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북한전 선전을 계기로 '아시아 강호'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질지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