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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허정무호, '두번째 리모델링' 결과는?

 

허정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3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 나설 태극전사 22인 명단을 발표 했습니다. 대표팀은 오는 28일 저녁 7시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이라크와 친선 평가전을 가진 뒤 다음달 1일 저녁 8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북한과의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을 치르게 됩니다.

이라크전은 북한전을 대비한 일종의 모의고사인 만큼 어느 때보다 북한전이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정무호는 지난해 북한과 4번이나 맞붙어 모두 무승부에 그쳤지만 홈에서 열리는 이번 북한전에서는 반드시 승리하여 '북한 징크스'를 털어버리고 월드컵 본선행의 8부 능선을 넘을지 주목됩니다. 이는 북한전이 남아공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자 한국 축구의 위상 강화를 위해 승리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전 명단의 의미, '경쟁의 부활'

사실 허정무호의 전력은 북한에게 읽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 대표팀이 한국과 상대할때마다 밀집수비 효과로 선전할 수 있었던 비결로 '한국 대표팀 전력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밝혔던 만큼, 이번 북한전에서는 그동안의 틀을 바꾸고 강한 전력을 구축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대표팀 베스트 일레븐이 '이운재/이영표-강민수-조용형-오범석/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이근호-정성훈, 슈퍼서브 : 박주영' 으로 굳어지는 시점이기 때문에, 주전 경쟁 속에서의 경기력 향상이 절실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으로서는 북한전 승리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엔트리 선정에 고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염기훈과 조용형이 부상으로 빠지고 김정우가 경고 누적으로 북한전에 결장한 것, 이근호와 조원희의 실전 감각 부족 등등 갈 길이 바쁜 상황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졌습니다. 하지만 연이은 졸전으로 신음하던 지난해 10월 아랍에미리트(UAE)전을 앞두고 박지성 주장 발탁 및 정성훈-김형범 같은 대표팀 새내기의 맹활약을 앞세워 리모델링에 성공했던 것 처럼, 이번 북한전에서 '두번째 리모델링'으로 또 한번의 전력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황재원, 조용형의 확실한 대안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조용형의 대안으로 황재원이 선택된 것입니다. 허정무 감독은 23일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황재원을 지켜봤는데 포항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소문 하나 때문에 대표팀에 발탁하지 않는다면 유능한 자원을 잃을 수 있다"며 13개월만에 대표팀에 발탁된 황재원의 수비력을 치켜 세웠습니다. 황재원은 지난해 2월 동아시아연맹 선수권대회 당시 허정무호에 뽑혔으나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자 대표팀에서 하차했습니다.

황재원이 대표팀에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포항에서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의 수비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악착같은 대인방어를 비롯 팀의 주장으로서 김형일과 김광석의 위치를 조절하며 끈끈한 호흡을 과시했기 때문에 허정무 감독이 이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골 넣는 수비수'로서 세트피스에서 몇 차례의 헤딩골을 넣은 경험이 있어 장기간 부상으로 빠진 곽태휘의 공백까지 확실하게 메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정무 감독에게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8일 AFC 챔피언스리그 가와사키전에서 상대팀 공격수 정대세의 발을 꽁꽁 묶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전에서는 상대팀 원톱인 정대세를 철저히 막아야 실점을 줄일 가능성이 있어 조용형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다만 황재원은 포항에서 꾸준히 3백의 중앙을 맡았기 때문에 4백 이해도가 얼마만큼 따라오느냐에 따라 주전 여부가 가려질 것입니다. 북한전에서 '정대세 킬러'인 이정수와 끈끈한 호흡을 자랑하며 허 감독의 믿음에 부응할지 주목됩니다. 센터백 자리에는 황재원을 비롯 강민수, 이정수가 있기 때문에 대표팀이 북한전에서 3백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북한 격파' 나서는 미드필더진 선발 라인업은?

허정무호 전력의 약점인 미드필더진의 '수술'여부 또한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9월 북한전에서 홍영조를 주축으로 하는 북한과의 허리싸움에서 밀렸던 터라 이번 경기에서는 최적의 조합을 구성하여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우의 경고 누적, 이청용의 경기력 저하가 북한전 승패를 좌우하는 미드필더진의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김정우 자리에는 조원희가 합류했고 박현범이라는 새로운 신예까지 등장하면서 변화가 요구되는 대표팀 중원의 경쟁체제를 유도했습니다. 조원희는 '아시아의 가투소'라 불릴 만큼 넓은 활동량과 빠른 순발력, 악착같은 대인마크를 자랑하는 홀딩맨으로서 중원에서 북한 공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믿을맨'입니다. 김정우가 수비에서 취약점을 드러내는 선수임을 감안하면 '조원희 효과'가 짭짤할 것으로 보이며 공격 지향적으로 변신하는 기성용의 수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이점까지 안겨줄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조원희-기성용'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북한전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원희의 이름값을 높이 평가했을 뿐, 기성용의 파트너로 누가 등용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조원희는 지난해 12월 7일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이후 약 4개월 동안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라크전에서 몸 상태를 파악한 뒤 북한전 출전 여부를 정하겠다"고 밝힌 것 처럼 조원희의 주전 기용은 좀 더 두고봐야 할 사안입니다. 한태유가 최근 소속팀 서울에서 기성용과의 호흡에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대표팀 시절 기성용과 함께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던 '박에이라' 박현범의 주전 도약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 이청용의 폼이 떨어진 것은 허정무 감독에게 만족스럽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7일 전남전 3어시스트를 제외하면 지난해 11월부터 최상의 컨디션으로 좋은 경기를 펼친 장면이 드물기 때문이죠. 그동안 허정무호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뛰었지만 경기력이 저하되었다는 점에서 '선수 발전을 위한' 경쟁체제 가동이 불가피 합니다. 김치우와 박지성이 각각 좌우 윙어를 맡거나 올림픽대표팀 시절 오른쪽 윙어로 두각을 나타냈던 이상호가 허정무호에서 오른쪽 공격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청용으로서는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분발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주영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 

공격진에서는 '이근호-정성훈' 투톱의 북한전 선발 출장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근호는 최근 유럽에서 소속팀을 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실전 감각이 무너진 상황이며 정성훈은 A매치 7경기 무득점의 부진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최근 프랑스리그 4경기 중에 3경기에서 공격 포인트(1골 3도움)를 기록한 박주영의 선발 출장 가능성이 어느 때 보다 높아 보입니다. 박주영은 강력하고 타이트한 수비로 공격수들이 골을 넣기 쉽지 않은 프랑스리그 적응에 성공했기 때문에 북한의 밀집 수비를 뚫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원'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정성훈이 지난 14일 전남전 2골, 21일 강원전 1골로 연이어 골을 터뜨리면서 골 침묵에서 벗어난 상황입니다. 만약 이근호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을 경우 '박주영-정성훈' 투톱이 북한전에 모습을 내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이상호는 상대 수비진을 흔들고 배후 침투를 활용할 수 있는 선수이며 배기종은 골문 앞에서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특이한 재능이 있다"며 이상호와 배기종이 북한의 밀집 수비를 극복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치켜 세웠습니다. 박주영과 정성훈이 소집훈련에서 서로 호흡이 맞지 않는 문제점을 드러낼 경우(두 선수가 A매치에서 발을 맞춘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상호와 배기종에게 북한전 선발 출장의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상호와 배기종의 대표팀 발탁이 '의외'입니다. 두 선수 모두 올 시즌 수원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일관하며 팀의 정규리그 꼴찌 추락을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이상호는 에두를 비롯한 동료 선수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는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는데다 팀의 빠른 공격 템포에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배기종은 이상호가 올해 초 수원 유니폼으로 갈아 입으면서 벤치 멤버로 밀렸죠. 그런데 허정무 감독이 수원에서 고전하는 두 선수를 대표팀에 부른것은 최근 경기력보다는 선수 개인의 장점을 더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수의 특징을 지켜보는 안목이 국내에서 가장 뛰어나기로 정평난 허 감독이 이번에는 어떤 결실을 거둘지 기대됩니다.

이렇듯, 허정무 감독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발판으로 북한전에서 최적의 베스트 라인업을 구성하여 '북한 징크스' 격파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몇몇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경고 누적, 이근호와 조원희의 실전 감각 부족 등등 주전 선수들의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북한전에서 '두번째 리모델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