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수원 리웨이펑 별명이 '만리장성'인 이유

 

올 시즌 수원의 최대 약점은 수비 라인 입니다. 마토 네레틀야크, 이정수 같은 센터백 자원들이 팀을 떠났고 홀딩맨 조원희까지 잉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수비 약화가 불가피했죠. 지난 시즌 K리그 최소 실점 1위로 정규리그 우승의 기틀을 마련했던 수원이었기에 올 시즌 K리그 전망이 지난해처럼 밝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수원은 '이 글의 주인공'인 리웨이펑(31, DF)과 알베스를 떠난 선수들의 대체자로 영입했지만 지난 7일 포항전에서 2-3 패배를 당하면서 '수비 약화'라는 꼬리표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 경기에서는 알베스 대신에 '지난해 백업이었던' 최성환이 투입되었지만 그는 포항에게 첫번째와 세번째 실점을 헌납하는 빌미를 제공하면서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습니다. 물론 '송종국-이관우' 더블 볼란치 조합이 조원희처럼 중원에서 상대 공격의 흐름을 차단하는데 실패했던 것도 팀 패배를 부추겼지요.

외국인 선수들이 K리그의 경기력에 적응하려면 수많은 실전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원이 시즌 초반에 많은 실점을 허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토 같은 경우 데뷔년도인 2005시즌 초반에는 불안한 수비와 부정확한 크로스로 팀 전력에 이렇다할 공헌을 하지 못했었죠. 외국인 선수들이 얼마만큼 팀 전력에 녹아들고 그라운드에서 팀을 위해 헌신적인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코리안 드림'이 성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중국 대표팀 주장이자 중국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던 리웨이펑은 그야말로 '대륙의 기상'을 떨쳐가고 있습니다. 지난 포항전에서는 팀의 중원과 최성환이 흔들리는 수많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고군분투하여 K리그 데뷔 선수 치고는 제 몫을 다했으며 지난 11일 가시마 앤틀러스전에서는 전반 44분 코너킥 상황에서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J리그 최우수 선수(MVP) 마르퀴노스의 발을 묶는 악착같은 대인방어로 여러차례 실점 위기를 막으며 수원팬들에게 인상깊은 경기를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리웨이펑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그리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리웨이펑은 적극적인 대인마크로 상대 공격수들을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다혈질 성격과 순간적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비매너' 행동으로 팬들의 지탄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2005년 여름 국내에서 열린 동아시아 축구 대회에서 유경렬의 얼굴을 오른손으로 밀어 버린 장면은 여전히 국내 축구팬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엄청난 원성을 샀습니다. 지난해 2월 동아시아 축구 대회 일본전에서는 상대 공격수의 목을 비틀기도 했고, 그해 9월 중국리그에서는 난투극을 벌이며 8경기 출장정지의 중징계를 받더니 소속팀 우한 광구가 2부리그로 강등되는 바람에 무적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결국 실업자가 된 리웨이펑은 1998년 선전 핑안에서 무명이었던 자신을 중국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키워준 차범근 감독의 품에 안았습니다. 2007년 12월 수원에 입단할 뻔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마토 대체자'로 손꼽혀왔던 것이죠. (당시 리웨이펑 소속팀인 상하이 선화가 그의 대체자로 마토를 원하는 바람에 두 선수의 트레이드가 실패했던 겁니다.) 그래서 마토가 지난해 시즌 종료 후 J리그 오미야로 떠나더니, 지난 1월 입단 테스트 끝에 수원에 입단할 수 있었습니다. 입단 테스트의 목적은 지난해 중국리그에서의 중징계 및 우한의 잔여경기 불참 여파로 실전 감각이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파악했던 것이었을 뿐, 차 감독이 그의 수비력을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 리웨이펑은 자신의 코리안 드림을 위해 적지 않은 장애물에 직면 했습니다. 지난 1월말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스파르타 프라하(체코)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면서 '거친 선수'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이죠. 수원팬들 조차도 '리웨이펑 때문에 올 시즌 팀 성적 및 분위기가 걱정된다'고 우려할 정도로 K리그 적응에 대한 의문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리웨이펑은 스파르타 프라하전 종료 후 동료 선수들에게 복조리를 돌리며 반성의 뜻을 밝혔고 지금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거칠지 않고 영리한 수비수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며 수원에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러더니 지난 포항전과 가시마전에서 여러차례 실점 위기를 몸을 날려 저지하고 비매너 수비를 지양하면서 자신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자신보다는 팀을 위해 헌신을 다하는 수비력으로 곽희주와 알베스의 수비 부담을 줄였고 백지훈과 이상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할 만큼 팀 분위기에 완전히 녹아들었습니다. 그런 열성적인 마인드가 있었기에 수원팬들이 리웨이펑을 좋아하게 된 것이며 가시마전에서는 '짜요우(加油, 힘내라) 리웨이펑'을 외치며 그를 열성적으로 응원했던 것입니다.

사실 리웨이펑의 K리그 성공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이장수 베이징 궈안 감독이 지난달 8일 <스포츠칸>과의 인터뷰를 통해 "리웨이펑은 중국에서 거칠기로 악명높은 선수다. K리그에 잘 적응할지 궁금하다"고 할 만큼 거친 플레이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습니다. 더욱이 상대팀 선수들이 자신의 심리를 적극 공략하여 퇴장을 유도한다면 수원에게는 엄청난 전력적 손해가 돌아갈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래서 수원의 올 시즌 우승 여부가 낮게 점쳐줬던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마토가 역대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던 만큼, 그에게는 '마토 대체자'라는 부담감까지 가중될 수 밖에 없었죠.

그런 리웨이펑이 자신을 향한 모든 우려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 '변화'를 받아들인 것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A매치 105경기 출장 및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튼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맞는 스타일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겁니다. 또한 무적 선수였던 자신을 수원으로 데려온 차범근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솔선수범하여 팀의 주전급 수비수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리웨이펑에 대한 수원팬들의 인기는 부쩍 높아졌습니다. 수원팬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리웨이펑을 한국식 한자 이름(李玮峰)인 '이위봉', '위봉이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가시마전에서는 '짜요우 리웨이펑'이라는 구호까지 외쳤으니, 이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 관심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제는 '형'이라는 친근적인 단어까지 붙이면서 그를 수원의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신이 좋은 경기를 펼치길 바라는 글들을 꾸준히 올리며 그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리웨이펑의 높은 인기에, 최근에는 중국 최고의 수비수인 자신을 상징하는 새로운 별명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중국의 자존심인 '만리장성'입니다. 마토의 수원 시절 별명이 '통곡의 벽'이었기 때문에 '만리장성'이 그대로 따라 붙인 겁니다. 지난 가시마전을 중계했던 모 해설위원이 자신에게 '수원의 만리장성이다'고 치켜 세웠던 것이 발단이 되어 여론에서 만리장성으로 불리게 된 것이죠. 공교롭게도 수원 선수들의 유니폼 상의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지인 '수원화성' 무늬가 그려져 있기 때문에 만리장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자신의 이미지와 잘 맞습니다. 이는 수원팬 그리고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한 '상징'인 셈입니다.

"통곡의 벽이 사라진 자리에 만리장성이 등장했다"

최근 국내 언론들은 리웨이펑 관련 기사에서 만리장성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리웨이펑에 대한 관심이 팬들의 지지를 넘어 언론들의 주된 취재 대상으로 이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수원이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최고의 인기구단이자 기자들의 취재가 많은 팀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리웨이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임엔 분명합니다. 더욱이 경기력까지 물이 오른 상황이어서 그가 K리그의 흥행을 이끄는 이슈메이커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수원과 그외 부근 지역에서도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만큼, 법인화 체제에 들어간 수원 구단이 '리웨이펑 마케팅'을 펼친다면 적지 않은 마케팅 이익까지 거둘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만약 리웨이펑이 꾸준한 맹활약으로 팀 수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면 만리장성을 넘어 수원과 K리그를 빛낸 외국인 선수로 길이 남게 될지 모릅니다. 1980년대 K리그를 접수했던 태국 공격수 피아퐁(전 LG)에 이어 두 번째로 K리그에서 성공한 아시아 선수로 도약할지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