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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허정무 감독, 시리아전에서 잘한 것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지난 사우디 아라비아전 처럼 좋은 경기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 삽을 떴을 뿐입니다.

한국은 1일 저녁 11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1-1로 비겼습니다. 후반 35분 상대팀의 자책골로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내주고 무승부에 그쳤습니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수비를 강화했다면 1-0의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뒷심이 부족했습니다.

이번 시리아전에서 허정무호가 보여준 경기력만을 놓고 보면, 한마디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2위인 한국이 105위의 시리아를 이기지 못해 아쉬웠다기 보다는, 경기력이 기대에 미흡했던 것이죠. 시리아와 똑같은 12개의 슈팅을 기록하고도 유효슛이 5:7의 열세를 나타냈다는 것은 골 결정력에 문제가 있음을 말하며, 볼 점유율(56:44) 패스 성공률(79:76)에서 우세를 기록했음에도 시리아의 기세를 무너뜨리지 못한 것은 앞날을 위해 반드시 되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상대 공격수를 번번이 놓치는 수비수들의 집중력 부족과 그로 인한 실점 상황도 아쉬웠죠. 그만큼 친선전에서는 경기 결과보다 내용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시리아전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들은 비시즌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컨디션이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지난달 15일 광운대와의 연습 경기 직후 "선수들의 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아쉬워했던 것 처럼 말이죠.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리아와의 친선전을 치른 목적이 오는 11일 이란과의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전 승리를 위한 모의고사 였기 때문에, 경기력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이 거둔 한 가지의 값진 소득이 있었다면, 이 경기를 친선전 목적에 충실했던 겁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달부터 줄곧 언론을 통해 "시리아전과 바레인전(4일) 결과는 중요치 않다. 이란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 처럼 시리아전을 철저한 친선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인지, 허정무호는 시리아와의 전반전에서 4-4-2가 아닌 3-4-3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후반전에는 4-4-2, 4-3-3 등을 골고루 실험했고 선수 등번호까지 바꾸는 등 한국의 전력 탐색차 경기장을 찾은 이란측에 혼란을 주기 위한 작전을 펼쳤습니다.(참고로 시리아전은 무료입장 경기였죠.) 이는 시리아전 경기 결과에 매달리지 않고 이란을 반드시 잡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허 감독도 축구팬들이 바라는 것 처럼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3-4-3을 썼다는 것은 이란전 승리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이번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4-4-2를 집중연마했기 때문이죠.

'앞서 언급했지만' 그럼에도 경기력이 아쉬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허정무호는 이번 경기에서 박지성, 이영표, 박주영 같은 유럽파들에 의존하는 불안 요소를 떨치지 못했죠. 손쉽게 골을 넣을 수 있는 세트피스도 대부분 부정확하게 날라갔죠.

비록 경기력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란전을 앞두고 약점을 발견한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임에 틀림 없습니다. 앞으로 이란전까지 9일 남은데다 오는 4일에는 바레인과의 친선전이 있기 때문에 대표팀의 불안요소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충만합니다. 수비수들은 상대 공격수에게 한 순간이라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미드필더들은 상대 허리 진영을 공략하기 위한 해법의 길을, 공격수들은 중동 수비수를 상대로 골을 넣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

시리아전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모습이 있었다면, 전반전과는 달리 후반전에 들어 공수 전개 흐름이 빨라졌던 것입니다. 전반전에 이근호와 염기훈, 김치우, 최효진을 필두로 하는 사이드 공격에 중점을 두었다면 후반전에는 좌우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빠른 템포의 패스와 적극적인 문전 침투를 앞세워 시리아 수비진을 파고드는 공격력을 펼쳤습니다. 수비시에는 빠른 수비 전환으로 상대팀 공격을 봉쇄하려고 했죠. 이는 이란 축구 특유의 빠른 역습 공격과 발이 느린 수비진을 정면 공략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표팀 신예 하대성의 맹활약 또한 반가웠습니다. 하대성은 전반 18분 기성용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교체 투입되어 생애 두번째 A매치를 치르게 되었는데요. 그는 짧고 정확한 패싱력과 활발한 움직임을 앞세워 동료 선수들에게 적극적인 공격 기회를 제공했으며 경기 상황에 따라 시리아 수비진을 파고드는 침투로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데 주력했습니다. 조금만 더 국제경기 감각을 쌓는다면 머지않아 대표팀 전력의 뼈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어 앞으로의 활약에 기대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리아전 결과를 굳이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경기력이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시리아전을 철저한 친선전에 목적을 두어 경기를 운영했던 허정무 감독의 의도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죠. 과연 '이란을 꺾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전략이 이란전에서 베일을 벗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