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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은 결장해도 '저력'은 불변하다


최근 박지성의 3경기 연속 결장은 국내 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최근에 치렀던 6경기 중에 1경기(12일 첼시전)만 출전한 것이어서 우려를 더해가고 있죠.

박지성의 실제 결장 이유는 체력 안배 때문입니다. 맨유 언론 담당관 캐런 숏볼트는 지난 21일 국내 축구 전문 언론사인 <스포탈 코리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많은 경기를 소화한 박지성에게 푹 쉴수 있도록 시간을 준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아마 이러한 인터뷰가 국내에서 보도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국내 여론에서는 '박지성 논란'에 대한 소모적인 공방전이 오갔을 것입니다. 박지성이 2경기 연속 결장했던 지난 18일 볼튼전까지만 하더라도 박지성 입지를 놓고 '박지성이 퍼거슨에게 팽당했다', '이러다 토시치에게 밀리는 것 아냐', '재계약 실패?' 등 부정적인 반응들이 유명 축구 커뮤니티에서 대세를 이뤘으니까요.

이러한 박지성을 연속 결장시키는 퍼거슨 감독의 의도는 '시즌 후반 올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시즌 후반에 정규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향한 중요한 경기들이 많기 때문에 '강팀용 카드'인 박지성의 쓰임새는 어느 경기때 보다 큽니다. 박지성의 가치는 이미 첼시, 아스날, AS로마, FC 바르셀로나 같은 유럽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더욱 빛났기 때문에 시즌 후반이 기대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박지성은 자신이 맨유에서 넣은 9골 중에 7골이 시즌 후반기에 터졌습니다. 결국 박지성의 연속 결장은 그에게 재충전을 위한 휴식을 주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배려였지, 결코 '지나친 휴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박지성을 대하는 국내 여론의 '냄비성' 반응입니다. 박지성이 올 시즌 맨유가 중요한 경기를 펼칠 때마다 주전으로 나올 때 '붙박이 주전'이라는 키워드를 안겨주었지만 그가 2~3경기 결장만 하면 예외없이 주전 논쟁이 벌어집니다. 지난해 11월 8일 아스날전 이전에는 박지성이 3경기 연속 결장하자, '박지성이 나니에게 밀렸다'는 언론보도까지 등장했을 정도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박지성은 이적해야 한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박지성 출장 자체에 '일희일비'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박지성이 호날두, 루니 처럼 거의 매 경기를 뛸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차례 강조했지만, 박지성은 맨유 입단 이후 '큰' 부상 빈도가 많았습니다. 3번의 큰 부상으로 총 1년 2개월 동안 부상과 싸웠고 불과 지난해 이맘때 즈음에는 9개월 부상 후유증으로 퍼스트 터치까지 불안하여 결장을 거듭해 긱스, 나니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린 듯한 인상까지 주었으니까요. 더구나 그는 맨유 선수 중에서 대표적으로 많이 뛰는 선수이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합니다. 그런 선수에게 거의 매 경기를 뛰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가혹하지 않나요.

맨유를 비롯 유럽 정상급 팀들은 주전 경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특히 맨유 중앙 미드필더진에는 누가 붙박이 주전인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데요. 스콜스, 캐릭, 플래처, 긱스 중에서 2명이 주전이겠지만 로테이션 시스템에 따라 쓰임새가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즌 맨유 더블 우승 주역인 테베즈가 묵묵히 베르바토프와 주전 경쟁하는 것, 맨유 주장 게리 네빌이 하파엘과 주전 경쟁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것 처럼, 박지성의 연속 결장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부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박지성이 연속 결장한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와 실력 등 모든 것들이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박지성이 2005년 맨유에 입단할 때 현지 언론에서 '박지성은 유니폼을 팔기 위해 맨유에 입성했다'고 비꼬았지만 정작 그 주인공은 맨유 통산 100경기 이상 출장에 성공했습니다. 더욱이, 박지성은 2006/07시즌 개막전 이후 5경기 연속 교체 출장 및 3개월 부상, 그 이후 선발-교체-결장을 빈번히 오가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부상 복귀 후 10경기에서 5골 1도움을 기록했죠.

아무리 연속 결장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쌓아왔던 저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입니다. 저력이라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쌓이고 또 쌓여서 가치가 더해지기 때문이죠. 그동안 국내 여론에서는 박지성이 최소 2경기 이상 결장할때마다 안좋은 말들을 거듭 내뱉었지만 오히려 그의 입지는 올 시즌에 이르러 탄탄해진 상황입니다.

아무리 최근 3경기 연속 결장하더라도 '체력 안배'였기 때문에 이는 문제될게 없습니다. 12일 첼시전에서 평점 8점의 맹활약을 받은 선수에게 '일부 국내팬들이 의심하는' 기량 부족을 이유로 3경기 연속 결장시킨다는 것은 감독 자질이 우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21일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가 선정한 '세계 최고 감독'으로 꼽힌 퍼거슨 감독이 그럴 만한 사람은 아니죠.

일부 팬들은 박지성이 호날두처럼 맨유의 에이스로 성공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박지성은 이미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축구계에서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고 맨유에서 네번째 시즌을 보내는 올 시즌에는 때가 묻어나는 공격 본능을 과시하며 자신의 진가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맨유에서 네 시즌 동안 '타고난 성실맨'으로 이름을 떨친 끝에 퍼거슨 감독의 사랑을 받으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보통 저력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축구 실력이 출중한 선수더라도 퍼거슨 감독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야프 스탐, 데이비드 베컴, 뤼트 판 니스텔로이 같은 선수들이죠. 그러나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이 공개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선수'라고 밝힐 만큼(지난해 클럽 월드컵 결승전 이전에 가진 기자회견) 세계 최고 감독이 아끼고 있는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재능이 출중한 선수보다 성실한 선수가 감독에게 인정받고 있는 것은 축구의 당연한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박지성이 그동안 쌓아왔던 저력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교시절 프로팀 입단테스트에서 체력 부족을 이유로 퇴짜 맞은것과 명문대 진학 실패라는 시련이 있었지만 극적으로 명지대 진학에 성공했고, 교토-에인트호벤을 거쳐 맨유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순탄치 않았던 나날도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 당시 여론으로부터 '최종엔트리에서 제외될 선수'라고 낙인찍힌적이 있었고  에인트호벤 시절에는 극심한 부진으로 홈팬들의 야유에 시달렸으니까요. 맨유에서는 큰 부상에 3번이나 발목잡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경을 이기고 맨유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발돋움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비록 박지성이 최근 3경기에 결장했지만 앞으로 출전하게 될 맨유 경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며 자신의 진면목을 다할 수 있는 기회 역시 많습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활약하고 스쳐가게 될 시간은 한국 축구에 영원히 기억될 역사입니다. 그가 치열한 생존 경쟁 무대인 프리미어리그, 그리고 맨유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전정신과 저력 만큼은 우리가 높이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By. 효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