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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7번 계보 부럽지 않은 수원 11번

 

세계적인 명문 클럽이자 지난해 클럽 월드컵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대표하는 상징은 단연 7번 계보입니다. 역대 등번호 7번으로 활약했던 스타 플레이어들이 맹활약을 펼치자 어느덧 맨유의 얼굴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맨유 7번 계보를 빛낸 이들은 보비 찰튼(1954~1972년) 조지 베스트(1963~1974년) 스티브 코펠(1975~1983년) 브라이언 롭슨(1981~1994년) 에릭 칸토나(1993~1997년) 데이비드 베컴(1992~2003년) 그리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003~현재)가 바로 그들입니다. 맨유를 오늘날 명실상부한 슈퍼 클럽으로 이끈 대표주자들이죠.

반면 맨유 못지 않게 등번호의 상징성과 의미를 키워가기 시작하는 구단이 있습니다. 지난해 정규리그 우승팀 수원이 그 주인공인데요. 비록 팀 역사가 길지 않지만(1995년 12월 15일 창단), 첫 우승을 달성했던 1998년부터 지난해 네번째 별을 가슴에 새기기 까지 등번호 11번을 달던 선수들이 전부 왼쪽 윙어로 활약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수원에서 왼쪽 미드필더로 뛰었던 데니스-에니오-김대의는 11번 선수로서 맹위를 떨친 선수들입니다. 올해는 왼쪽 윙어 남궁웅이 김대의의 배번을 물려받아 11번으로 활약할 예정입니다. 11번 왼쪽 윙어 계보(이하 11번 계보)의 주인공이 바뀐 것이죠.

수원, '11번 왼쪽 윙어 계보' 어떻게 이어졌나?

1996년 부터 K리그에 참가한 수원은 초창기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11번에 대한 존재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1996년 11번 선수로 활약했던 김이주는 5경기 1도움에 그쳐 이듬해 천안 일화(현 성남)으로 이적했고 1997년 11번 선수로 활약했던 최성호는 단 4경기만 뛰고 프로 생활을 접었습니다. 당시 일화의 스타 플레이어로 명성 떨쳤던 왼쪽 윙어 김이주가 수원에서 성공했다면, 수원은 원년부터 지금까지 계보를 이어갔을지 모릅니다.(개인적으로는, 김이주가 일화 원년 멤버여서 신생팀 수원에서 성공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자리 잡지 못한것이 아쉬워했습니다.)

11번 윙어 계보의 첫 시작은 러시아 출신의 데니스 락티오노프(현 FC 시비르) 였습니다. 1996년 19세의 나이로 수원 유니폼을 입어 2002년까지 몸 담았고, 1996~1997년과 2006년에는 33번으로 활약했습니다. 데니스는 수원에서 주로 왼쪽 윙어로 활약했지만 때로는 오른쪽 윙어와 투톱 공격수까지 소화하는 만능 역할을 해냈습니다. 1997년 정규리그 도움왕을 비롯 1999년 아디다스컵 득점왕&도움왕 동시 수상, 2000년 아디다스컵 도움왕에 올라 특급 도우미의 진가를 뽐내면서 수원의 첫번째 전성기를 이끌었죠.

그런 데니스가 2003년 1월 성남으로 이적하면서 11번은 잠시 공석이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안양(현 FC서울)에서 방출된 브라질 공격수 뚜따가 수원 입단식에서 11번 상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만, 정작 뚜따는 9번을 강력하게 요청하면서 구단이 이를 받아들였죠. 결국 11번은 2003년 초 남해 전지훈련에서 입단 테스트 끝에 수원 유니폼을 입은 브라질 미드필더 에니오(=전북 에닝요, 편의상 에니오로 적겠습니다.)에게 돌아갔습니다.

당시 22세였던 에니오는 김호 감독(현 대전 감독)이 데니스 처럼 원석에서 보석으로 키우기 위해서 영입되었던 선수입니다. 2003 시즌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공격형 미드필더와 원톱으로 교체 투입되는 경우가 잦았지만 시즌 후반에 이르러 4-4-2 포메이션의 주전 왼쪽 윙어로 활약하면서 '뚜따-나드손' 투톱의 공격력을 뒷받침했습니다. 당시 에니오는 현란한 발재간을 활용한 대각선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가볍게 뚫었던 선수였으며 강력한 중거리슛이 일품이었죠.

하지만 에니오는 2003시즌이 끝난 뒤 팀에서 방출되었습니다. 자신을 애지중지하게 키웠던 김호 감독이 팀을 떠나면서 활용도가 없어진 것이죠. 물론 스탯이 화려하지 않았던(21경기 출장 2골 2도움) 단점이 있었지만 입단 테스트를 거친 유망주로 들어왔던 것을 감안할때, 수원에서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김대의가 11번을 달았습니다. 2004년 1월 성남에서 FA(자유계약)로 풀리면서 에니오가 달던 11번을 이어받았는데, 왼발을 잘 썼기 때문에 주로 왼쪽 윙어와 풀백으로 기용 되었습니다. 2004년과 2008년 정규리그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죠.

수원팬들은 김대의를 맨유 11번 라이언 긱스와 비견하는데요. 두 선수 모두 왼발 킥력과 크로스가 일품인데다 발 빠른 돌파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가볍게 뚫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두 선수는 나이까지 서로 비슷한 것을 비롯(김대의 74년생, 긱스 73년생)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을 사고 있습니다.


[사진=수원 11번 계보의 새로운 주인공이 된 남궁웅(왼쪽). 2007년 9월 15일 광주전에서 자신의 친형인 남궁도(현 포항)와 함께 찍은 사진 입니다. 이 사진은 제가 직접 찍었습니다. (C) 효리사랑]

수원 11번이 빛날 수 밖에 없는 이유, '팀에 대한 애정'

김대의가 올해 남궁웅에게 11번을 물려준 이유는 자신이 19번을 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김대의는 2000년대 초반 성남의 19번 선수로서 정규리그 3연패와 MVP(2002년)를 수상하여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가장 최전성기를 맛봤습니다. 그래서 지난 14일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 홈페이지 게시판에 직접 글을 남기며 "나에게 있어 19번은 축구 인생 최고의 번호다. 꼭 19번을 달고 은퇴하고 싶다"며 19번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죠. 지금까지 11번 선수로서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도맡았기 때문에, 은퇴가 가까워진 올해에 이르러 '마음 편하게' 등번호를 바꿀 수 있었던 겁니다.

수원에서 11번이 맡는 역할은 중요합니다. 차범근 감독이 평소 김대의에게 "11번 달고 그만큼 밖에 못 하냐"고 자극을 줄 정도로 전력의 중요성을 떠맡기 때문이죠. 수원이 김호 감독 시절 두번의 K리그&아시안 클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을때의 주역은 11번 데니스였고 2004년과 2008년 정규리그 우승 주역은 11번 김대의였습니다. 이제 그 임무를 남궁웅이 맡게 되었는데, 그동안 수원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경기력으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던 그가 '11번 효과'에 힘입어 팀의 중심 선수로 거듭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11번 계보의 가치는 단순히 등번호 물려받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수원의 11번으로서 맹활약을 펼친 선수들 모두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궁웅은 수원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선수입니다. 제가 2007년 6월 수원-경남전 종료 후 기자분들이 남궁웅을 믹스드존에서 인터뷰하길래 그 내용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요.(제가 취재기자 프레스로 들어왔기 때문에) 어떤 한 기자가 남궁웅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수원에서 예전에 함께 호흡했던 동기 선수들이 지금은 다른 팀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맹활약 펼치고 있는데, 남궁웅 선수는 다른 팀에서 뛰고 싶은 생각을 지금까지 해본적이 있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남궁웅의 경기 출장 횟수가 많지 않아서 이러한 질문이 나왔던 것이죠.

그러자 남궁웅은 "나는 다른 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나의 목표는 수원의 주전이며 꼭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싶다"며 수원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3개월 뒤 남궁웅을 믹스드존에서 다시 만나 직접 "3개월전에 수원의 주전이 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지금도 그 마음은 변치 않느냐"고 질문하니까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절대로 변치 않는다. 오늘도 얼마 못뛰었지만(후반전에 교체 투입) 앞으로는 전반전부터 뛰기를 바라고 있다"며 수원 주전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이러한 목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지난해 주전과 교체를 오가며 제 몫을 다할 수 있었고 '수원의 자랑'인 11번 계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남궁웅 못지 않게 '데니스-에니오-김대의'도 수원에 대한 애정이 강했습니다. 데니스 같은 경우 2003년 성남 이적 후 수원팬들에게 '배신자'라는 오명을 받았지만, 2005년 4월 수원 경기를 보기 위해 빅버드(수원 월드컵 경기장) 관중석을 찾았고, 몇몇 팬들에게 "수원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수원에서 다시 뛰기를 갈망했습니다. 이러한 애정 때문인지, 그는 2006년 수원에 복귀하게 되었죠. 

에니오는 수원팬들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인상적인 선수였습니다. 팬들이 자신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하면 항상 웃는 얼굴로 혼쾌히 승낙하는것은 물론, 팬들과 만날때 환한 미소을 지으며 반가워했죠. 특히 2003년 10월 안양 원정에서 상대팀 벤치를 향해 대포알슛을 날렸던 것과, 경기 막판 자신의 60m 드리블 돌파로 나드손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던 골 상황은 수원팬들에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비록 수원 방출 과정에서 섭섭한 대우를 받으며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당시 수원 소속이었던 그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선수였습니다.

김대의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 없습니다. 수원 선수중에서 그랑블루 홈페이지에 가장 많은 글을 남긴 선수이자 평소 '수원을 위해 뛰겠다', '수원에서 은퇴하고 싶다'며 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던 선수죠. 2년 전에는 팬서비스 차원에서 스파이더맨 골 세리머니로 인기를 끌었고, 그랑블루가 자신에게 '춤 춰라'는 구호를 외치면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현란한 춤사위로 흥을 돋웠죠.

이렇게 11번 계보에 포함된 선수들은, 수원에 대한 애정으로 꽉차있는 소유자들 입니다. 수원 11번 계보가 맨유 7번 계보에 비해 역사와 명성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팀에 대한 애정 만큼은 맨유 7번 계보가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수원과 맨유는 한국과 잉글랜드 클럽 축구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입니다. 많은 팬들을 보유할 만큼 인기가 뜨거운 공통점까지 있죠. 이러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수원 11번 계보는 맨유 7번 계보 처럼 장치 팀의 상징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수원에 대한 애정이 투철한 남궁웅이 11번 효과를 앞세워 꽃을 피울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By. 효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