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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지동원, 카가와 영광 재현하기를 바라며

지동원에게 도르트문트 입단은 일생일대의 기회다. 유럽에서 롱런할지 아니면 선덜랜드에 이어 좌절의 쓴맛을 보게 될지 이번 시즌이 중요하다. 특히 도르트문트는 일본 축구의 에이스 카가와 신지가 유럽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팀으로 잘 알려졌다. 지동원 등번호 23번은 카가와가 도르트문트 시절에 달았던 번호와 동일하다. 아마도 도르트문트는 지동원이 카가와처럼 성공하기를 기대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지동원은 카가와를 넘어설지 모른다. 지금의 도르트문트는 카가와가 있을 때에 비해서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팀으로 진화했다. 지동원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도르트문트 선전을 주도하면서 분데스리가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과시하면 카가와보다 더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최상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사진=도르트문트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등장한 지동원. 그는 최근 팀 훈련에 합류했다. (C) bvb.de]

 

하지만 지동원을 둘러싼 현실은 차갑다. 카가와는 2010/11시즌 전반기에 붙박이 주전을 보장 받으면서 대형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으나 지동원은 다르다. 도르트문트가 그때에 비해서 대형 선수들이 여럿 등장했다.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2013/14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 득점왕 시로 임모빌레를 영입하면서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던 공백을 메웠다.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 공동 4위 구스타보 아드리안 라모스도 올 시즌부터 도르트문트에서 뛰게 됐다. 두 선수는 도르트문트의 원톱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지동원은 원톱보다는 2선 미드필더에서 주전 경쟁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도르트문트 2선은 경쟁자가 수두룩하다. 왼쪽 윙어에 마르코 로이스-피에르 에메릭 오바메양, 공격형 미드필더에 헨리크 음키타리안-일카이 귄도간, 오른쪽 윙어에 야쿱 블라지코프스키-케빈 그로스크로이츠가 맡는다. 6명 모두 두 가지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이며 이제는 지동원까지 가세했다. 지동원은 2010년 카가와에 비해서 험난한 주전 경쟁을 뚫고 붙박이 주전을 보장 받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어쩌면 지동원은 도르트문트의 로테이션 멤버 보강을 위해 위르겐 클롭 감독의 선택을 받았을 것이다. 원톱과 2선 미드필더로 뛰는 선수들 모두 도르트문트에서 잔뼈가 굵거나 분데스리가에서 검증된, 유럽 무대에서 수준급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았다. 반면 지동원은 2012/13시즌 하반기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시절에 잘했던 것 빼고는 지난 3년 동안 유럽 무대에서 두각을 떨치지 못했다. 선덜랜드 시절에는 철저한 벤치 멤버였으며 마틴 오닐 전 감독 시절에는 18인 엔트리 제외가 잦았다. 지난 시즌 하반기에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다시 뛰었으나 벤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도르트문트 입단은 의외였다. 선덜랜드에서 외면 받았던 자신의 축구 재능을 클롭 감독에게 인정받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클롭 감독은 선수를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이며 그와 함께하면서 대형 축구 스타로 성장했던 선수들이 여럿 있다. 카가와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도르트문트 입단 전까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일본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없었던 J리그 출신의 영건이었을 뿐이다. 이적료도 35만 유로(약 4억 8700만 원)의 헐값이었다. 그랬던 선수가 클롭 감독과 함께한 이후에는 분데스리가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지동원은 카가와가 도르트문트 스타 플레이어로 명성을 떨쳤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 혹자는 그가 일본인 선수와 비견되는 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카가와가 도르트문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동양인 선수의 가치를 높인 것이 지동원의 도르트문트 입단에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손흥민과 류승우가 도르트문트 영입 관심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롭게도 손흥민과 류승우, 지동원은 카가와처럼 2선 미드필더를 맡는 한국인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카가와를 발굴했던' 클롭 감독과 함께하게 된 지동원은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선덜랜드와 아우크스부르크의 촉망받는 영건이었으나 이제부터는 분데스리가 정복을 위해 사력을 쏟아야 할 때다. 쟁쟁한 선수들과의 주전 경쟁이 만만치 않겠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면 언젠가 좋은 성과가 찾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카가와도 도르트문트 입단 초창기에는 대형 선수가 아니었다. 지동원이 카가와처럼 도르트문트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