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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축구, 수비력이 강해지는 방법은?

"저라고 4백을 쓰고 싶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한국 축구에 쓸 만한 중앙 수비수가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쓸 만한 중앙 수비수란 4백에 맞는 중앙 수비수를 말하는 겁니다. 만약 있다면 천거를 해주십시오. 저 자신도 정말 좋은 중앙 수비수를 찾고 있습니다"

허정무 국가 대표팀 감독은 지난 15일 < OSEN >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중앙 수비수에 대한 넋두리를 남겼다. 이 소식은 유명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를 찾는 팬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중 대부분은 국가대표팀의 수비력 불안을 예로 들며 그의 평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논란의 화두는 한국 대표팀 4백에 맞는 중앙 수비수가 과연 존재한다는 것. 일부 국내 축구인들은 2000년대 초 거스 히딩크 시절부터 수비수의 기량 등을 이유로 4백이 한국 축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지금의 세계 축구는 ´4백이 대세´로 굳혀져 있다. 과연 한국 축구는 4백 중앙에서 탁월한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수비수가 존재하는 걸까?

허정무 감독의 부정적 반응...´선수 탓´ 논란 불러 일으켜

´논란의 중심이 된´ 허정무 감독은 그 이전에도 국내 수비수들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 놓은 바 있다.

허정무 감독은 축구 전문 잡지 <포포투> 6월호를 통해 K리그 14구단 수비수 개개인을 날카롭게 평가하며 각각의 선수들에 대한 평가를 들려줬다. 반응은 냉담했다. 해당 수비수 기량에 대한 문제점을 주로 열거하는 형식의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 이었으며 곽희주와 이정수(이상 수원)만이 유일한 칭찬을 받았음에도 ´성실한 선수´라는 짧은 멘트에 불과했다.

이러한 평가는 팬들에게 논란을 불러 일으킨 "한국 축구에는 중앙 수비수가 없다"고 발언한 것과 맥이 비슷하다. 허정무 감독의 말대로라면 K리그 14구단에서 국가 대표팀 4백 중앙에 어울릴만한 수비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미와 같다.

물론 선수 파악에 가장 능한 위치에 서 있는 존재는 ´팬들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그들을 관찰하는 감독의 몫이며 선수 선발 또한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국가 대표팀 수장´ 허정무 감독 입장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지닌 수비수를 뽑고 싶은 것이 전력 강화의 길이자 욕심일 것이다. 분명 그의 눈은 아직 K리그 수비수들이 대표팀 4백 중앙을 소화하기에 무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눈을 넓게 바라보면 세계적인 중앙 수비수도 약점은 분명 존재한다. 리오 퍼디난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파워풀한 타겟맨에게 1-1 경합과정에서 힘에 밀려며 그의 단짝인 네마냐 비디치는 활동 반경이 넓지 않은 것이 흠이다. 카를레스 푸욜(FC 바르셀로나)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실수로 무너지는 모습이 부쩍 잦아졌고 알렉산드로 네스타(AC밀란) 파비오 칸나바로(레알 마드리드)는 특유의 질긴 대인 마크가 근래에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허정무 감독의 발언이 팬들의 비판을 받는 이유는 국가대표팀의 불안한 수비력과 연관된 ´선수 탓´ 논란 때문이다.(얼마전 김용대도 ´선수 탓´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감독으로서 도를 넘은 발언을 언론에 공개했던 것이 ´선수단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팬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감독은 ´축구를 즐길 권리가 있는´ 팬들에게 자신의 말이 아닌 그에 상응하는 경기력과 성적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한국 축구, 특출난 수비수는 없어도 조합은 강하다

그러나 수비수 한 명의 기량이 아닌 두 명의 조합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수비수는 공격수와 달리 개인 활약보다 조직의 끈끈한 힘을 필요로 하는 포지션이자 동료 선수와의 척척 맞는 호흡을 필요로 한다. 4백을 구사할 경우 선수 선발부터 4백에 맞는 선수를 뽑아(특히 두 명의 중앙 수비수) 유기적인 조직력을 최대화 하는 것이 감독의 능력이다.

한국 축구가 4백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K리그다. 2000대 중후반 K리그를 독주한 성남은 ´김영철-조병국´으로 짜인 4백 중앙 수비수 조합의 활약에 힘입어 2005 후기리그(최소 실점 공동 2위)-2006 전기리그(최소 실점 1위)-2006 챔피언결정전(2경기 1실점) 우승과 2007 정규리그 1위(최소 실점 2위)를 해내는 K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정규리그 7위 서울은 부진한 공격력 속에서도 ´김진규(김한윤)-김치곤´ 조합으로 최소 실점 1위(26경기 16실점)를 거두는 짠물 수비를 펼쳤다. 올 시즌 정규리그 1위 수원은 마토의 부상 공백을 비웃듯 ´이정수-곽희주´ 조합의 탄탄한 수비력을 앞세워 최소 실점 1위(11경기 8실점)에 올랐다. 눈여겨 볼 것은, 이 글에 언급된 6~7명의 선수들이 다름아닌 국내파 중앙 수비수라는 점.

허정무 감독 이전에 국가 대표팀을 지휘했던 핌 베어벡 전 감독(현 호주 대표팀 감독)은 4백을 완성시킨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그는 지난해 아시안컵 6경기서 ´김진규-강민수´ 조합을 앞세워 3실점을 거두는 견고한 수비력을 지휘했다. 김진규와 강민수는 약점이 쉽게 눈에 띄는 스타일임에도(각각 느린 발, 볼 빼았을때의 세밀함) 손발이 척척 맞는 탄탄한 호흡을 과시하며 한국 대표팀의 수비진을 든든히 지켰다.

한국 축구는 특출난 중앙 수비수가 없을지 몰라도 선수끼리의 단결된 조합이 강하다는 것을 지난해 아시안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근래 K리그에서 최소 실점 1~2위를 기록하는 팀들이 국내파 중앙 수비수를 조합으로 두는 공통점도 눈여겨 볼 부분. 이는 수비수 개인의 ´기량´보다 수비수 끼리의 ´조합´이 경쟁력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허정무호, 최상의 4백 중앙 수비수 조합 찾아라

베어벡 전 감독이 4백을 성공시킨 결정적 이유는 수비수 기량 향상 보다는 최적의 조합 찾기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부임 중반까지 ´김상식-김동진´ 조합을 꾸준히 내세웠으며 이들의 수비력이 잦은 결함을 노출하자 지난해 아시안컵에서 ´김진규-강민수´ 조합으로 교체해 만족스런 성과를 거뒀다.

´김진규-강민수´ 조합이 성공했던 결정적 요인은 서로 호흡을 많이 맞춰봤기 때문. 두 선수는 당시 전남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4백 중앙을 맡아 수많은 실전 경험 끝에 수비력을 가다듬었다. 또한 K리그는 대표팀보다 더 많은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수비 조직력을 끌어 올리기에 충분한 장점이 있으며 앞에 언급 된 성남과 서울, 수원이 이러한 이점을 앞세워 4백 정착에 성공했다.

이에 비해 허정무호는 지나친 실험이라는 여론의 비판 속에서도 새로운 수비수 발굴에 무게감을 실었다. 곽태휘(전남) 곽희주, 이정수(이상 수원) 조용형(제주) 황재원(포항) 등은 대표팀에 새롭게 발탁되거나 오랜만에 재승선하여 A매치에 출전했고 경기 때마다 수비수들이 번갈아 기용되고 있다.

물론 허정무호가 닻을 올린지 5개월 되었다는 점에서 선수 구성이 바뀌는 실험과 그로 인한 시행 착오(수비수들의 불안한 호흡)는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점점 다가오는 시점에서 실험은 이제 결실로 맺어져야 하며 최상의 중앙 수비수 조합이 완성시킬 궤도에 오게 됐다.

우리는 세계 축구의 현재 흐름을 제시하는 유로 2008에서 수비 조직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수비진의 어느 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상대팀 공격수에 의해 여지없이 실점 위기 상황을 맞이하는 모습을 통해 현대 축구의 수비는 ´조합의 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견고해져야 강하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한국 중앙 수비수 중에 특출난 선수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 보다 ´조합이 중요하다´는 현대 축구의 흐름에 맞물려 최상의 4백 중앙 수비수 조합을 완성시키는 것이 허정무 감독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