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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라이프

일밤의 부활, 마치 축구를 보는 것 같다

 

5년 넘게 축구 블로거로 활동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다. TV에서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을 웃기게 하면서 감동을 주는 예능을 보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나 예전에는 축구를 보는 것 외에는 별 다른 취미가 없었다. 예능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때 당시에는 유재석과 강호동의 양대 산맥 체제가 확고했다. 특히 유재석의 <무한도전>과 강호동의 <1박2일>은 '과연 어떤 프로가 한국 최고의 예능인가?'를 놓고 시청자끼리 논쟁이 벌어지는 일이 잦았다. 예를 들면 '무한도전이 1박2일보다 더 재미있다', '1박2일은 남녀노소 누구나 다 좋아한다'는 식이었다. <X맨> 이후 두 명의 국민MC가 함께 진행했던 프로가 없었던 만큼 '유재석vs강호동'의 맞대결은 후끈했으며, 유재석 또는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는 항상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사진=<아빠! 어디가?><진짜 사나이>. 출처 : 일밤 공식 홈페이지 메인]

 

이제는 예능 판도가 새롭게 바뀌었다. 강호동의 내림세가 두드러지면서 유재석 독주 체제가 확고해졌다. 일각에서는 유재석-김구라-신동엽의 3강을 언급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문MC 없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예능이 대세를 굳히게 됐다. <일밤>이 <아빠! 어디가?(이하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를 통해 부활에 성공한 것이다. 유재석-강호동 2강 체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일밤이 일요일 예능의 강자로 떠올랐다.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는 MC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예능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은 출연자들이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일부 출연자는 과거 예능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과시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진짜 사나이의 경우 TV에 출연하는 현역 군인들이 실질적으로 제8의 멤버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예능은 서로의 다른 개성과 역할이 하나의 시너지로 뭉치면서 촬영 현장의 특성과 맞물려 프로그램의 다양한 재미와 볼 거리를 선사했다. 멤버가 많은 특성 답게 지루함이 없다. 병풍 이미지가 강한 멤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일밤의 부활은 마치 축구를 보는 것 같다.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의 양강 체제는 여전하지만, 메시와 호날두 효과 만으로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추세다. 2012/13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이전까지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더비'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성사될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두 팀은 4강에서 각각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의 짜임새 넘치는 조직력에 덜미를 잡혔다. 심지어 FC 바르셀로나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4강 1~2차전 통합 스코어에서 0-7로 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는 메시-호날두 같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선수가 없다. 지난 시즌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던 바이에른 뮌헨은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득점력으로 유럽 최강의 화력을 과시했다. 골을 터뜨릴 옵션들이 즐비하다. 독일 최고의 공격수 마리오 고메스(현 피오렌티나)가 백업 멤버였을 정도다. 개인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많으나 이 선수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하나로 협동하면서 조직적인 플레이를 펼친 끝에 독일과 유럽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나마 도르트문트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득점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레반도프스키는 '신계'를 형성하는 메시-호날두와 달리 아직까지는 '인간계' 공격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 시즌 2선을 뒷받침했던 마르코 로이스, 야쿱 블라스지코프스키, 마리오 괴체(현 바이에른 뮌헨)는 분데스리가에서 10골 넘는 득점력을 과시했다. 레반도프스키 골 결정력에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다. 또한 전방 압박을 통해 모든 선수들이 수비 안정과 기습적인 반격에 힘을 기울이며 공수 양면에서 탄탄한 팀 워크를 과시했다. 바이에른 뮌헨도 전방 압박을 펼치지만 도르트문트는 팀 전술의 근간이 전방 압박이었다.

 

아울러 두 팀은 과거 유럽 최강의 리그로 손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의 부활을 주도했다. 분데스리가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유럽 3대리그에 포함되지 못했으나 이제는 UEFA 리그 랭킹 3위에 오르면서 2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를 추격중이다. 분데스리가의 재정 건전성과 많은 관중 확보, 우수한 영건들의 끊임없는 등장을 놓고 볼 때 언젠가 유럽 최고의 리그로 등극할 수도 있다. 일요일 예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되찾은 일밤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지금까지 예능에서는 유재석과 강호동의 영향력을 앞세운 '1인자 시대'가 강했으나 이제는 일밤을 통해 '팀의 시대'로 바뀌는 추세다.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팀의 성격이 강한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메시-호날두 없이도 유럽을 제패할 수 있으며 팀이 강할수록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활발한 선수 영입을 펼쳤으면서 팀이 단합되지 못했던 퀸즈 파크 레인저스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꼴찌로 밀려 2부리그로 강등됐다. 일밤을 보며 팀의 결속력이 요구되는 축구의 본질적인 특성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