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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판 페르시, 지금의 루니보다 더 나은 이유

 

네덜란드의 골잡이 로빈 판 페르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2013 커뮤니티 실드 위건전 2-0 승리와 동시에 우승을 이끌었다. 전반 7분과 후반 14분에 걸쳐 2골을 터뜨렸던 것. 선제골 장면에서는 파트리스 에브라의 왼쪽 크로스를 헤딩 슈팅으로 연결했으며 추가골 상황에서는 위건 진영의 오른쪽 공간에서 왼발 강슛으로 득점을 해결지었다. 두 골을 통해 프리시즌에서 고전을 거듭했던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며 맨유의 에이스가 자신임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판 페르시는 커뮤니티 실드를 통해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3연패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세 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달성했던 선수는 앨런 시어러(당시 블랙번-뉴캐슬, 1994/95~1996/97시즌) 티에리 앙리(당시 아스널, 2003/04~2005/06시즌) 뿐이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최고의 득점왕으로 명성을 떨쳤던 지금보다 유리몸으로 신음했던 기간이 더 길었던 판 페르시에게 득점왕 3연패를 이루겠다는 동기부여가 클 것이다.

 

만약 판 페르시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맨유의 올 시즌 성적은 여론의 우려에 비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판 페르시는 팀의 저조한 경기 내용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하는 집념과 정확성이 뛰어나다. 2011/12시즌 빅4 탈락 위기에 직면했던 당시 소속팀 아스널의 위기를 구했으며 2012/13시즌에는 측면 공격이 붕괴된 것과 다름 없었던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20번째 우승의 쐐기를 박았다. 올 시즌에도 건재하면 맨유가 예상외로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

 

 

[사진=로빈 판 페르시 (C) 유럽축구연맹(UEFA)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또한 판 페르시는 커뮤니티 실드에서 자신의 기량이 '지금의 루니'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줬다. 공격수로서의 골 능력은 판 페르시가 루니보다 더 좋은 것이 사실이다. 판 페르시는 지난 시즌까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2연패를 달성했으며 루니는 2011/12시즌까지 공격수로서 만개했다. 루니가 여전히 맨유 전력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존재인 것은 분명하나 프리미어리그 내에서 득점왕 2연패를 이기는 공격수는 없다. 아울러 루니가 그동안 맨유 에이스로서 명성을 떨쳤으나 지금은 판 페르시가 팀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잡았다.

 

그렇다고 루니의 능력을 득점력으로 한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루니는 지난 시즌 판 페르시의 득점을 보조하는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패싱력과 활동량을 기반으로 팀 공격의 물꼬를 트는 이타적인 본능은 맨유가 우승하는데 적잖은 보탬이 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공존했던 시절에도 도우미 역할에 충실했다. 당시 팀의 사령탑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그의 조연적인 기질을 최대한 활용했다. 흥미롭게도 루니가 득점왕에 등극할 뻔했던 2009/10, 2011/12시즌에는 맨유가 우승에 실패했다.

 

판 페르시와 루니의 결정적 차이는 스포트라이트다. 판 페르시는 맨유의 최전방 공격수로서 많은 골을 터뜨리며 여론의 높은 주목을 받았다면 루니는 지금까지 판 페르시를 돕는 쪽이었다. 공격수가 공격형 미드필더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판 페르시는 지난 시즌 득점왕을 달성하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 '맨유 에이스'라는 이미지를 키웠다. 이 때문에 루니의 기량이 정체된 것이 아니냐는 외부 여론의 지적이 불거졌다. 호날두가 맨유에서 잘 나갔던 2000년대 후반에도 루니의 득점력 정체(?)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루니는 공격형 미드필더보다 공격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지난 시즌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은 팀의 주 포메이션이 4-2-3-1로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맨유와 잉글랜드 대표팀의 공격수로서 많은 기간 뛰었다. 여전히 루니를 공격수로 인식하는 축구팬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루니는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27골 기록했으나 2012/13시즌 12골로 뚝 떨어졌다. 다른 팀에서 2선 미드필더를 맡는 가레스 베일(21골, 토트넘) 프랭크 램퍼드(15골, 첼시) 시오 월컷(14골, 아스널)보다 더 적은 수치였다. 이 때문에 루니의 득점력이 저하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름 설득력을 얻었다.

 

과연 루니의 기량이 정체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득점력을 비롯하여 다른 장점들을 겸비한 만능 공격수라는 점, 프리미어리그에서 꾸준히 두자릿 수 득점을 올렸다는 점에서 그의 기량을 쉽게 과소평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공격수로서의 골 능력은 판 페르시가 더 낫다. 공격수가 골로 말하는 포지션임을 놓고 볼 때 판 페르시는 현 시점에서 루니를 능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