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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박지성과 QPR 박지성은 다르다

 

많은 축구팬들은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와 스완지 시티가 2012/13시즌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 맞대결을 펼치기 1시간 전을 주목했다. QPR이 트위터를 통해 박지성이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고 밝히자 트위터 타임라인에서는 박지성을 축하하는 맨션들이 쏟아졌다. 아시아 출신 선수가 최초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정식 주장으로 선출된 순간이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 축구가 박지성을 훌륭하게 평가한다는 뜻이자 아시아 축구의 상징적인 일이다. 여기까지는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QPR은 스완지 시티에게 0-5로 대패했다. 전반 8분 미추에게 선제골을 내주면서 불안한 출발을 하더니 후반 8분 미추에게 또 다시 실점하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팀이 0-1로 뒤졌을때 여러차례의 골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고 0-2 이후에도 수비 조직력 불안을 노출하며 대량 실점을 허용 당했다. 그것도 홈 경기에서 무기력하게 패하면서 현지 QPR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경기 종료 후 포털 댓글에서는 QPR 경기력을 꼬집는 반응이 많았다. 박지성이 주장에 임명되었을 때보다 반응이 안좋았다.

우리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박지성' 맹활약을 기대하는 관점에서 경기를 봤다면 스완지 시티를 약팀으로 여겼을 것이다. 맨유는 빅 클럽이고 스완지 시티는 중소 클럽이다. 스완지 시티는 과소평가 되기에 충분한 팀이었다.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승격팀이며 시즌 종료 후에는 브랜든 로저스 감독이 리버풀로 떠났다. 얼마전에는 팀의 주축 선수였던 조 앨런이 로저스 감독의 품에 안았다. 스완지 시티와 격돌하는 QPR은 여름 이적시장에서 박지성을 비롯한 여러명의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했다. QPR의 스완지 시티전 승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QPR은 스완지 시티전에서 약팀임을 부정하지 못했다. 공격 옵션들의 연계 플레이 부족, 골 결정력 불안, 미흡한 수비 조직력, 몇몇 선수의 아쉬운 개인 실력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단점을 노출했다. 슈팅 숫자에서 21-14(유효 슈팅 4-6, 개)로 앞섰음에도 0-5로 대패한 것. 무엇보다 모든 선수들이 하나된 호흡을 맞추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팀 전술에서도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이 벌어져 있었다. 최근에는 첼시 출신 오른쪽 풀백 조세 보싱와를 영입했으며 이적시장 마감 전까지 추가 영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조직력 부재를 감수해야 한다.

QPR 주장 박지성은 4-2-3-1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제 몫을 다했다. 특유의 끈끈한 수비력으로 상대방 선수의 공격을 저지했으며 패스 정확도 92%와 킬러 패스 5개를 기록할 정도로 개인 공격력이 좋았다. 특히 킬러 패스는 공격형 미드필더 아델 타랍과 함께 양팀 공동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1명이 잘해도 10명이 못하면 소용없는 것이 '팀 플레이가 강조되는' 축구의 본질이다. QPR과 스완지 시티의 결정적 차이는 조직력이었다.

QPR에게 있어서 박지성 영입은 꼭 필요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17위 팀 미드필더진에 빅 매치 경험이 많고, 이타적이며, 공격과 수비에서 많은 기여를 해줄 선수를 보강하면서 이전과 다른 팀 전력을 기대했을 것이다. 개인보다 팀을 우선시하는 박지성의 본능이라면 동료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 박지성을 주장으로 내세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마크 휴즈 감독의 박지성 활용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박지성의 주 포지션은 왼쪽 윙어다. 맨유 시절과 한국 대표팀에서 4-4-2 중앙 미드필더,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경험이 여럿 있지만 중앙보다는 측면에 있을 때의 경기력이 더 좋았다. 그럼에도 휴즈 감독은 박지성을 4-2-3-1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웠다. 그의 수비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자 팀에 윙어가 즐비한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박지성이 지난 시즌 맨유에서 입지가 약화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활기찬 움직임 이외에는 동료 중앙 미드필더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만약 박지성이 스완지 시티전에서 왼쪽 윙어로 출전했으면 QPR이 5골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왼쪽 풀백 파비우 다 실바의 수비력 부족을 해소했을지 모른다.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서 적극적인 수비 가담에 의한 커팅을 뽐냈다면 파비우 약점 노출을 줄였을 것이다. 더욱이 박지성과 파비우는 맨유 시절에 호흡을 맞춰봤던 사이다.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전환이 옳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파비우의 수비 의지 부족은 QPR이 성적 향상을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맨유 박지성과 QPR 박지성은 다르다. 전자가 팀의 로테이션 멤버라면 후자는 팀의 주장으로서 붙박이 주전을 보장 받았다. 맨유는 승리가 패배보다 더 많은 팀이며 QPR은 무승부와 패배 횟수가 많다. 그리고 QPR은 하위권 전력이면서 팀 플레이까지 불안했다. QPR이 하루 아침에 강팀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 시즌 현실적인 목표는 프리미어리그 10위 진입 혹은 강등권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박지성이 주장으로서 팀을 변화 시킬려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해결 될 일이 아니다. 축구팬들은 한동안 QPR의 답답한 경기력을 감안하고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