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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2012 피스컵 결산, 클럽 축구의 묘미

 

2012 피스컵은 개막 이전까지 외부에서 걱정스런 시각을 보냈다. 이전 대회와 달리 유럽 명문 클럽이 참가하지 않은 것, 선덜랜드 지동원의 런던 올림픽 참가에 따른 불참이 흥행 악재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성남(한국)-함부르크(독일)가 맞붙었던 결승전에서는 관중석 E석이 거의 꽉찼다. 골대 뒤에 있는 N석 2층과 S석 2층에 빈 자리가 많았던 것을 제외하면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에 운집했다. 당초 우려와 달리 성대하게 막을 내린 것. 이번 대회를 통해서 클럽 축구의 저력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사진=손흥민과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피스컵 우승 인터뷰 이후에 기념 촬영하는 모습 (C) 효리사랑]

피스컵이 개최되었던 2003년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클럽 축구보다 대표팀이 중시됐다. 인기에서도 대표팀이 우세였으며 그때는 유럽 축구가 지금처럼 많은 관심을 끌었던 시절이 아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도 K리그의 희생이 없었으면 이루지 못할 성과였다. 대표팀이 월드컵 선전을 위해 수많은 A매치를 치르고 장기 합숙훈련에 돌입하면서 K리그 구단들이 거듭된 선수 차출을 감수했다. 그 정도로 한국에서 클럽 축구는 힘이 약했다. 더욱이 한일 월드컵 이전은 'K리그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인기가 막을 내렸던 시점이다.

하지만 피스컵 초대 대회가 흥행 성공하면서 클럽 축구에 재미를 느끼는 축구팬들이 많아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전사였던 박지성과 이영표가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의 피스컵 초대 우승을 이끌었고, 피스컵 이후에는 팀의 주력 멤버로 성장하면서 사람들이 클럽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한일 월드컵 이전까지 유럽 클럽 축구를 빛냈던 한국인 선수가 흔치 않던 때라서 박지성과 이영표 활약상을 보며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기대하는 심리가 강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클럽 축구가 인기를 끌게 된 근원이자 발단은 피스컵이었을지 모른다.

반면 2012년 피스컵은 9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클럽 축구가 우리들에게 익숙해졌기 때문. 2000년대 초중반과 비교하면 클럽 축구를 향한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축구팬들의 눈높이도 그때보다 높아졌다. 2012년 피스컵에 참가했던 외국 클럽들의 면면을 놓고 보면 축구팬들에게 이목을 끌을만한 팀들이 아니다. 선덜랜드-함부르크-흐로닝언(네덜란드)은 명문 클럽으로 지칭하기에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클럽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 결승전에는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클럽 축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축구팬이 입장료를 지불하며 관중석에 앉는 주 목적은 수준 높은 경기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클럽 축구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췄던 선수들이 팀의 전술적 목적을 완성시키는데 이바지한다. 대표팀에 비해서 경기가 꾸준하게 진행되는 장점도 있다. 한 번 못하더라도 다음 경기에서 만회할 수 있는 것이 클럽 축구만의 매력이다. 클럽 축구를 좋아하는 축구팬이라면 피스컵에 관심을 가질만 했다. 비록 해외 참가 클럽들이 수준 높은 경기력을 자랑하는 팀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승전은 흥행 성공했다. 명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기대치가 반영된 것이다.

피스컵 마지막날이었던 7월 22일 일요일에는 빅버드에서 3~4위전과 결승전이 동시에 열렸다. 두 경기에서 이번 대회를 빛낸 명장면들이 탄생했다. 3~4위전에서는 흐로닝언의 석현준이 선덜랜드를 상대로 오버헤드킥 골을 성공시켰다. 프리미어리그 팀을 혼쭐내는 화끈한 골 장면이었다. 그런데 승리는 선덜랜드에게 돌아갔다. 1-2로 밀렸던 후반 43분에 프레이져 캠벨이 동점골을 터뜨렸고 후반 45분에는 라이언 노블이 역전골을 선사하는 '2분의 기적'을 연출했다. 유럽 강팀들의 경기력보다 더 의미있는 장면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꼽는 이번 대회 또 다른 명장면은 결승전이 끝난 뒤였다. 함부르크 선수들은 성남전 1-0 승리로 우승이 확정되자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으며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다수의 관중들은 성남을 응원했겠지만 경기가 끝나자 함부르크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승을 축하하는 박수였던 것. '축구를 통한 인류 화합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창설되었던 피스컵 취지에 맞는 장면이었다. 함부르크는 외국 클럽이지만 관중들은 그들의 피스컵 경기를 통해 축구라는 공감대를 일치시켰다. 축구는 지구촌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이며 세계인들과 소통하기 쉬운 존재임을 일깨워졌다.

2012 피스컵은 유럽파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함부르크에는 손흥민, 흐로닝언에는 석현준이 있었다. 당연히 미디어 관심을 받았고 축구팬들은 손흥민-석현준 관련 보도를 보면서 피스컵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무엇보다 두 선수는 어렸을적 한국 축구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을 보며 성장했던 유망주들이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피스컵 초대 대회를 빛냈다면 손흥민과 석현준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주도할 선수들이다. 자신의 클럽팀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서 국내팬들의 성원을 받으면서 유럽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동기부여를 느꼈을 것이다. 클럽 축구의 또 다른 묘미였다.

*저는 피스컵 파워블로거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