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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2012/13시즌 EPL, QPR 돌풍 기대된다

 

프로는 돈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K리그의 경우, 시민구단이나 도민구단에서 잘하는 선수가 수원 블루윙즈와 FC서울 같은 재정이 풍부한 기업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난해 중국 슈퍼리그 챔피언 광저우 에버그란데는 2010년까지 2부리그 클럽 이었다. 그런데 2011년에는 1부리그 챔피언이 되었고 2012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우수한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던 자금력이 성적 향상의 지름길이 됐다. 최근 중국 축구에서는 유럽 축구의 스타플레이어 영입이 활발하다. 디디에 드록바, 니콜라 아넬카(이상 상하이 선화) 루카스 바리오스(광저우 에버그란데) 야쿠부 아예그베니(광저우 부리)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유럽 축구도 마찬가지다. 특급 스타의 이적료 폭등이 끊이지 않는 현실. 얼마전에는 파리 생제르맹이 AC밀란 공격과 수비의 핵심이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티아구 실바를 영입했으며 총 이적료는 6200만 유로(약 866억원)다. 지난해 6월 1일 카타르 투자청에 인수되면서 잇따른 대형 선수의 보강이 가능했다. 이처럼 최근 이적시장에서는 부자 클럽들이 우수한 선수를 거액에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하는 추세다. 지난 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대표적인 예. 디펜딩 챔피언 맨시티와 7년 연속 무관에 그친 아스널의 대표적 차이를 꼽으라면 돈이다.

거액의 선수 영입이 마냥 좋은 현상은 아니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불과 10년 전에는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클럽이었으나 무리한 인건비 투자로 재정적 어려움에 빠진 끝에 2004년 파산했다. 팀의 재정을 고려하지 못한 선수 영입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된다. 하지만 긍정적 측면도 있다. 아랍에미리트 연합(UAE) 아부다비 그룹의 막강한 자금에 힘을 얻은 맨시티가 대표적인 예. 파산 직전에 몰렸으나 러시아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등장으로 클럽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던 첼시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리버풀은 2011년 1월과 겨울 이적시장에 걸쳐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쏟았으나 프리미어리그 빅4 재진입에 실패했다. 지난 시즌 8위 추락까지 겹쳐 케니 달글리시 전 감독이 경질됐다.

그렇다면 박지성의 새로운 소속팀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 전망은 어떨까? 불과 한 달전까지는 QPR의 박지성 영입은 실현 불가능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17위에 그친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시즌 동안 200경기 넘게 뛰었던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QPR은 이적료 500만 파운드(약 89억원)에 스카우트했다. 500만 파운드가 최근 이적시장 추세에서는 많은 돈이 아니지만 QPR의 선수 영입이 공격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QPR은 이번 이적시장에서 데이비드 호일렛(전 블랙번) 로버트 그린(전 웨스트햄) 라이언 넬슨(전 토트넘) 같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검증된 자원들을 보강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망주 파비우 다 실바는 임대 영입했다.

QPR은 말레이시아 저가 항공사 '에어 아시아' 최고 경영자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가 2011년 8월에 인수한 팀이다.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평범했던 에어 아시아를 세계 11위 항공사로 성장시켰던 기업인이다. QPR 구단주가 된 이후에는 지난해 9월 데이비드 베컴 스카우트를 추진했으며, 올해 1월 이적시장에서는 지브릴 시세, 보비 자모라, 네둠 오누오하, 타예 타이워(AC밀란 임대) 등을 데려오면서 프리미어리그 클럽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박지성을 보강했으며 최근에는 기성용 영입을 추진중이다.

가장 기대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QPR의 대형 선수 영입이다. 맨시티는 2008년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 호비뉴를 3250만 파운드(약 579억원)에 영입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호비뉴는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먹튀가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맨시티의 호비뉴 영입은 부자 구단으로서 본격적인 위용을 과시했던 상징성이 있다.

물론 QPR이 4년 전 맨시티의 전례를 재현할지는 의문이다. 빅 사이닝이 가능한 상위권 클럽과 달리 QPR은 프리미어리그 17위 클럽이다.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는 클럽도 아니다. 슈퍼 스타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클럽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맨시티의 호비뉴 영입 같은 사례를 연출하면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주목받을 수 있다. 참고로, 4년 전의 맨시티는 평범했던 클럽이다.

QPR은 적어도 이번 시즌에는 강등 위협을 받지 않을 것 같다. 박지성 영입에서 상징성을 찾을 수 있다. QPR은 '악동' 조이 바튼을 제외하면 허리쪽에서 살림꾼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다. 맨시티의 야야 투레, 첼시의 마이클 에시엔(최근에는 존 오비 미켈이 에시엔을 밀어낸 분위기지만)이 있다면 QPR에는 박지성에게 부지런한 수비를 주문할 수 있다. QPR에 측면 옵션이 즐비한 특성을 고려하면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배치가 설득력을 얻는다. 강팀의 기본 요건은 실점 줄이기다. QPR이 수비에 무게감을 두면서도 리그 17위에 그친 것은 실점이 많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QPR은 지난 시즌 리그 최다 실점 공동 4위(66실점)였다.

하지만 QRP 돌풍을 기대하기 힘든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마크 휴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기 때문. 휴즈 감독은 블랙번 시절을 통해서 중소 클럽을 다크호스로 성장시킨 경험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맨시티에서는 실패했다. 개인 클래스가 뛰어난 선수들이 계속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점 관리에 충실하지 못했다. 일부 국내 축구팬들은 맨시티의 잦은 무승부를 이유로 휴즈 감독을 '마크 휴무'라고 지칭했다. 2009/10시즌 전반기에는 성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끝내 경질됐다. 중위권 클럽을 상위권으로 도약 시키기에는 휴즈 감독 특유의 실용적인 축구는 한계가 있었다.

휴즈 감독과 성향이 비슷한 로이 호지슨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도 리버풀에서는 실용적인 축구가 먹히지 않았다. 자신의 지도력으로 풀럼의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기여했지만 리버풀에서는 10위권 이하의 성적을 거듭하면서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전형적인 중소 클럽과 빅 클럽에 맞는 축구는 서로 다르다. QPR은 현재까지는 중소 클럽이지만 박지성 같은 좋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 어느 시점에서는 보수적인 색깔을 버려야 한다. 다른 관점에서는, 휴즈 감독의 맨시티 시절 실패가 QPR에서 성공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로 이어지는 법은 없다.

강팀끼리 리그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때로는 흥미가 떨어진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 약팀도 언젠가 강팀이 될 수 있듯 QPR 돌풍을 기대하게 된다. 다수의 한국인 축구팬들은 박지성이 QPR 돌풍의 중심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기왕이면 기성용이 QPR 주전으로 도약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