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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잉글랜드 8강 진출, D조 1위 의미는?

 

잉글랜드의 유로 2012 8강 진출은 예상된 시나리오 였습니다. 우승 전력은 아니지만 선수들의 네임 벨류를 봐도 조별 본선에서 탈락할 클래스는 아닙니다. 본선 3경기에서 2승1무를 기록하면서 D조 1위로 8강에 진출했습니다. 1차전 프랑스전에서 1-1로 비겼지만 2차전 스웨덴전에서 3-2로 이겼으며 3차전 우크라이나전에서는 1-0으로 승리하면서 토너먼트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나타난 잉글랜드의 특징은 점유율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1차전 프랑스전에서는 45-55(%)로 밀렸으며 2차전 스웨덴전에서는 52-48(%)로 근소하게 앞섰습니다. 3차전 우크라이나전에서는 29-71(%)로 눈에 띤 열세를 보였죠. 많은 시간 동안 볼을 소유하기 보다는 선 수비-후 역습에 주력했습니다. 상대팀 공세를 막는데 치중하면서 짧은 시간 몇번의 볼 연결로 골을 노리는 공격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잉글랜드가 본선 3경기에서 기록한 5골 중에 2골은 세트 피스 과정에서 연출됐습니다.

잉글랜드는 프랑스전에서 유효 슈팅이 단 1개에 불과했음에도 승점 1점을 따냈습니다. 슈팅 숫자에서는 3-19(유효 슈팅 15-1, 개)의 엄청난 열세를 보였으나 상대팀의 골 결정력 불안으로 패배 위기를 넘겼습니다. 스웨덴전에서는 슈팅 15-12(유효 슈팅 9-8, 개)로 앞섰지만 우크라이나전에서는 9-16(유효 슈팅 5-5, 개)로 밀렸습니다. 승점 3점 획득에 올인했던 스웨덴전에 비해서 프랑스-우크라이나전에서는 공격보다는 수비에 무게감을 높였습니다. 실리를 중요시하는 로이 호지슨 감독의 색깔이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실리 축구는 결과가 중요하며 잉글랜드는 2승1무를 거두었습니다. 호지슨 감독에게 성과를 돌릴 수 있습니다.

호지슨 감독은 전력이 약한 팀을 끈끈한 팀으로 바꾸는데 일가견 있습니다. 1~2년 전 리버풀에서는 실패했지만 풀럼의 유로파리그 준우승, 웨스트 브로미치의 올 시즌 잔류(1부리그 강등이 잦았던 팀)를 이끌어내면서 지도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잉글랜드의 본래 경기력은 유로 2012 이전까지는 유럽 정상급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기대만큼 실망이 많았죠. 호지슨 감독은 전임 사령탑이었던 파비오 카펠로 전 감독처럼 화려한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지도자는 아니지만 잉글랜드를 바꿀 적임자임에 틀림 없었습니다. 그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과대 평가 되었던 잉글랜드에게 실속을 안겨주변서 D조 1위로 본선을 통과했습니다.

당초, 잉글랜드의 최대 약점으로 거론된 웨인 루니의 1~2차전 출전 정지 공백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차전 프랑스전에서는 대니 웰백-애슐리 영 투톱이 동반 부진했지만, 2차전 스웨덴전에서는 앤디 캐롤과 웰백 투톱이 동시에 골을 터뜨렸습니다.

잉글랜드의 루니 공백 메우기는 특정 공격수 맹활약보다는 스티븐 제라드의 3경기 연속 도움의 효과가 컸습니다. 제라드는 프랑스전에서 전반 30분 오른쪽 프리킥을 날렸으며 줄리온 레스콧 헤딩골로 이어졌습니다. 스웨덴전에서는 전반 23분 오른쪽 측면 크로스를 캐롤의 헤딩골로 엮어냈습니다. 우크라이나전에서도 후반 3분 오른쪽 측면 크로스가 루니의 헤딩골로 연결되었죠. 제라드는 그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프랭크 램퍼드와의 공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램퍼드가 부상으로 빠진 효과(?)로 공격 전개에 힘을 얻었습니다. 허리에서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는데 치중했으며 3경기 연속 팀의 골에 관여했습니다.

잉글랜드 8강 진출 과정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골키퍼 조 하트의 존재감입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안정적인 기세가 유로 2012에서도 재현됐습니다. 2년 전 남아공 월드컵 미국전에서 일명 '알까기' 실책을 범했던 로버트 그린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잉글랜드는 그동안 골키퍼 실수로 한숨을 쉬었지만 이번 대회 본선 3경기에서는 하트 덕분에 뒷문이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게리 케이힐 부상과 리오 퍼디난드 제외로 잡음이 났던 센터백은 테리-레스콧 조합이 완성됐습니다. 우크라이나전에서는 무실점 경기를 펼치면서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D조 1위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8강 이탈리아전에서 패하면 기존 메이저 대회 행보와 다를 바 없는 성적을 거두게 되죠.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 유로 2004에서는 8강 진출에 만족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이름값이라면 최소 4강에 올라야 합니다.

루니의 복귀는 8강 이탈리아전을 앞둔 잉글랜드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루니는 우크라이나전에서 경기 내용상 부진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터뜨렸습니다. 이번 경기는 실전 감각을 회복하는 목적이 없지 않았습니다. 8강 이탈리아전 선발 출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캐롤-웰백-애슐리 영-디포에 비해서 메이저 대회와 빅 매치 경험이 많기 때문이죠. 루니의 월드컵 통산 0골을 운운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로 대회 만큼은 잘했습니다. 이탈리아가 전통적으로 수비가 강했다는 점에서 루니가 미쳐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전 골 장면 하나만으로는 징계로 본선 2경기에 못나왔던 잘못을 속죄하기가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