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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리버풀, 3시즌 연속 빅4 탈락이 남긴 것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8위에 그쳤던 리버풀이 케니 달글리시 감독을 경질했습니다. 달글리시 감독은 올 시즌 리버풀의 칼링컵 우승, FA컵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지지부진한 성적이 팀을 떠나게 된 빌미가 됐습니다. 7위를 기록한 지역 라이벌 에버턴보다 성적이 저조했으며 안필드에서 6승9무4패에 그치면서 홈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달글리시 감독의 경질은 예견된 시나리오 였습니다.

리버풀은 3시즌 연속 빅4에서 탈락했습니다. 2009/10시즌 7위, 2010/11시즌 6위, 2011/12시즌 8위로 부진했습니다. 한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첼시와 더불어 빅4를 형성했지만 올 시즌 침체에 빠지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데 실패했습니다. 더욱이 8위는 중위권을 의미합니다. 팀에 확실한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단기적으로 빅4 재진입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진=케니 달글리시 감독 (C)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liverpoolfc.tv)]

7위-6위-8위, 리버풀의 현 주소

리버풀 침체의 근본적 원인은 감독들에게 있었습니다. 2009/10시즌을 7위로 마친 뒤에는 라파엘 베니테즈 전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습니다. 2010/11시즌에는 로이 호지슨(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시즌 전반기 10위권 바깥을 맴돌면서 해임됐습니다. 시즌 후반기에는 달글리시 감독 대행이 부임한 효과에 힘입어 6위까지 올라왔습니다. 올 시즌에는 달글리시 감독이 정식 사령탑을 맡았지만 프리미어리그 8위에 만족했습니다.

베니테즈 체제에서는 미드필더진의 조직력이 무너졌습니다. 사비 알론소가 2009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이후부터 중원에서의 볼 배급이 엉성하거나 경직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호지슨 체제에서는 롱볼에 의존했습니다. 전임 감독 지휘하에 아기자기한 축구에 익숙했던 선수단과의 전술적인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페르난도 토레스가 헤딩볼을 따내는 역할을 맡을 정도로 말입니다. 강팀치고는(적어도 그때까지는) 수비가 불안했던 것으로 회자됩니다. 호지슨 감독이 경질되기 이전까지는 원정 경기에서 1승2무7패로 부진했습니다. 승점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입니다.

리버풀의 거듭된 성적 부진은 팀의 레전드였던 달글리시 감독도 소용 없었습니다. 대행 시절이었던 지난 시즌 후반기에는 성적 향상 효과가 있었지만 올 시즌 8위에 그쳤습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4위권 진입 여부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구단이 지난해 1월,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에 거금을 들이면서 빅4 진입 의욕을 나타냈죠. 그러나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앤디 캐롤(3500만 파운드) 스튜어트 다우닝(2000만 파운드) 호세 엔리케(1900만 파운드) 찰리 아담(700만 파운드) 영입은 실패작입니다. 루이스 수아레스는 그라운드 안에서 구설수를 일으키면서 몇몇 경기를 징계로 뛰지 못했습니다. 선수 영입은 달글리시 감독이 관여했던 부분이죠.

리버풀은 올해 여름에 대형 선수를 영입할지 모릅니다.(오히려 주력 선수의 이탈을 걱정해야 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술적인 능력이 뛰어난 지장이 필요합니다. 주어진 스쿼드로 최대한의 전술적 응집력을 발휘할 적임자가 리버풀을 이끌어야 합니다. 기존 주력 선수가 못하면 벤치로 내려 앉히는 과감함을 겸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몸값이 비싼 선수라도 실전에서 못하면 소용 없습니다. 리버풀의 새로운 감독이라면 그런 선수를 내치면서 잠재력이 풍부한 영건을 주력 선수로 키우는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까지는 로베르토 마르니테스 위건 감독이 리버풀 차기 사령탑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리버풀 부진은 '에이스' 스티븐 제라드 내림세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리버풀이 빅4에서 탈락했던 2009/10시즌은 제라드의 폼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때입니다. 팀이 프리미어리그 2위를 기록했던 2008/09시즌에는 31경기 16골 9도움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4-2-3-1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토레스(첼시)와 성공적으로 공존하면서 많은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습니다.

제라드는 2009/10시즌 33경기에서 9골 7도움 올렸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부족하지 않은 공격 포인트지만 경기 내용에서 기복이 심해졌습니다. 이전 시즌에 비해 상대팀 집중 견제를 받을때 파괴력이 반감됐습니다. 사타구니 부상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심리적으로 위축된 느낌이 없지 않았습니다. 2008년 연말에 폭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2009년 7월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폭행을 시인했습니다. 그때는 리버풀이 프리시즌에 돌입했던 시점입니다. 프리시즌은 선수들이 체력을 보강하면서 팀 전력의 완성도를 높이는 목적이 있지만 제라드는 재판을 받으면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겪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 이후 제라드는 2010/11시즌 21경기 4골 5도움, 2011/12시즌 18경기 5골 2도움 기록했습니다. 출전 횟수에 비해서 공격 포인트가 나쁘지 않지만 부상으로 경기 투입 횟수가 부쩍 줄었습니다. 전체적인 경기력이 부진했을 정도는 아니지만 팀의 에이스로서 결장이 잦은것이 흠입니다. 팀의 빅4 재진입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공헌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리버풀의 3시즌 연속 빅4 탈락의 주 원인을 제라드라고 꼽을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팀의 성적 향상에 있어서 에이스의 지속적인 활약은 당연히 전제되는 부분입니다. 리버풀이 다음 시즌에 명예회복하려면 제라드의 2008/09시즌 모드 회복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리버풀의 10년을 이끌어갈 또 다른 에이스를 길러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