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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달글리시 감독, FA컵 우승으로 면죄부 받나?

 

적어도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는 리버풀의 현재 행보가 처참합니다. 12승10무11패로 프리미어리그 8위를 기록중입니다. 남은 5경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8위라는 성적은 강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더욱이 7위는 지역 라이벌 에버턴입니다. 사실상 3시즌 연속 4위권 진입에 실패하면서 강팀의 이미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33경기 40골에 그친 득점력, 루카스 레예바 부상에 따른 중원 경쟁력 약화, 케니 달글리시 감독의 전술적인 아쉬움은 팀이 정체된 요인으로 꼽힙니다. 올 시즌 종료 후 특단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진=케니 달글리시 감독 (C)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liverpoolfc.tv)]

하지만 리버풀은 칼링컵 우승팀입니다.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출전이 확정되면서 시즌 후반기 프리미어리그 일정에 대한 동기부여가 약화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올 시즌에는 유로파리그 못나갔죠.) 칼링컵 우승 이후 프리미어리그 8경기에서 2승1무5패로 부진했으며 한때 3연패에 빠졌습니다. 당시 상대팀은 퀸즈 파크 레인저스-위건-뉴캐슬입니다. 리버풀 선수들이야 모든 경기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시즌 후반에 페이스가 더딘 것은 동기부여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기부여가 성적 부진의 주 원인은 아닐겁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 17경기 성적이 4승5무8패에 불과하니까요. 앞서 언급했던 팀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풀리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성적이라면 달글리시 감독의 경질은 가능합니다. 리버풀이 지난해 1월과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앤디 캐롤, 스튜어트 다우닝, 호세 엔리케, 찰리 아담 영입은 지금까지 실패작이거나 적응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성공작으로 분류되는 루이스 수아레스는 구설수로 리버풀이라는 이미지에 안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개인 기량만을 놓고 보면 좋은 선수들이 많았지만 팀 성적은 8위였습니다.

또 리버풀은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지 않았다면 프리미어리그 4위권 진입에 전념했어야 합니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분명 누군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습니다. 얼마전 데미안 코몰리 전 단장이 떠났지만 성적 부진의 책임이 이것으로 끝날지는 더 두고봐야 합니다. 달글리시 감독의 경질론이 결코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달글리시 감독이 리버풀에서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1월 감독 대행을 맡았을 당시의 2010/11시즌 리버풀 성적은 12위였지만 시즌 후반기에 기력을 회복하면서 6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올 시즌 칼링컵에서는 우승했죠. 그럼에도 달글리시 감독이 진퇴양난에 빠진 이유는 현재 프리미어리그 성적이 8위라는 점입니다. 남은 경기에서 6위권으로 회복할 여지가 있지만 이번에도 빅4 재진입에 실패한 것은 분명합니다.

달글리시 감독이 다음 시즌에도 리버풀을 지휘할 명분을 얻는 방법은 단 하나 입니다. FA컵에서 우승하는 것입니다. 지난 14일 FA컵 준결승 에버턴전 2-1 승리를 이끌면서 팀이 결승에 안착했습니다. 결승 상대가 첼시라는 점이 부담스럽지만 리버풀이 유리한 부분도 있습니다. 첼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한 3개 대회를 소화하느라 선수들의 체력적인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리버풀로서는 한 시즌에 칼링컵-FA컵 동시 우승을 이룰 기회를 맞이했죠. 웬만한 빅 클럽들도 2관왕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FA컵 우승이라면 달글리시 감독이 면죄부를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 축구의 사례지만, 수원 블루윙즈는 2009년 K리그에서 10위에 머물렀습니다. 2008년 디펜딩 챔피언이 다음년도에 10위로 떨어졌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 탈락에 그쳤죠. 당시 팀을 지휘했던 차범근 전 감독(현 SBS 해설위원)은 수원팬들의 경질 압박을 받았습니다. FA컵 우승으로 면죄부 받으면서 2010년 상반기까지 팀을 이끌게 됐습니다. 그때는 스스로 팀을 떠났지만요. 만약 2009년 FA컵 우승이 없었다면 감독직을 유지하기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FA컵 제패로 수원팬들의 경질 요구가 한동안 가라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수원과 리버풀은 다른 클럽입니다. 시즌 내내 성적 부진이 이어졌지만 막판에 다른 대회에서 우승했다면 감독은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명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은 미래를 내다봐야 합니다. 과연 달글리시 감독이 팀을 오랫동안 상위권에서 우승을 노릴 수 있는 레벨로 발전시킬 적임자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니라고 판단되면 다른 감독을 찾아야겠죠. 어쩌면 달글리시 감독은 FA컵 우승으로 리버풀 감독직과 '아름다운 이별'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리버풀을 떠나는 것과 차원이 다른) 대부분의 감독들은 화려하게 팀을 떠나지 못했으니까요. FA컵 결승은 5월초에 열리지만 우승 여부를 떠나 달글리시 감독의 거취는 불투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