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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구자철 3호골, 그에게 특별한 기질이 있다

 

'구파드' 구자철이 시즌 3호골을 넣으며 아우크스부르크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3월 31일 저녁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SGL아레나에서 진행된 2011/12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28라운드 FC 쾰른전에서 팀의 2-1 승리를 기여하는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구자철은 전반 19분 박스 왼쪽 바깥에서 악셀 벨링하우젠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지난 1월 이적시장 마감일에 볼프스부르크에서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된 이후 9경기 3골 2도움 기록했으며 최근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렸습니다. 후반 31분에는 쾰른에서 활약중인 북한 공격수 정대세가 출전하면서 남북 대결이 성사됐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구자철이 유니폼 상의를 벗으며 정대세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사진=구자철 (C) 아우크스부르크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fcaugsburg.de)]

구자철 맹활약 보며 제주 시절을 떠올리다

구자철은 쾰른전에서 4-1-4-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습니다. 다니엘 바이어와 함께 허리에서 팀 공격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죠. 90.91%의 정확한 패싱력(40/44개)과 너른 시야로 팀의 연계 플레이 기회를 만들어주면서 킬러 패스까지 찔러주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팀 내에서 패스 성공 횟수가 가장 많았습니다. 90분 풀타임 출전하여 10.51Km 뛰었으며 팀 내 활동량 1위를 기록했습니다. 때로는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하거나 수비에 가담하면서 동료 선수들을 도와줬습니다. 총 20개의 태클을 시도했으며 그 중에 12개가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구자철이 아우크스부르크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봐야 합니다. 허리에서 패스에 관여하는 장면이 많았던 것은 동료 선수들의 믿음을 얻고 있다는 뜻이죠. 자신의 축구 실력을 인정 받았다는 뜻입니다. 원 소속팀 볼프스부르크에서 때때로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받지 못했던 상황과 다른 분위기 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경기에서 패스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팀에서는 공격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보다는 자기 플레이에 자신감을 붙으려는 단계였습니다. 포지션마저 불규칙적인 로테이션 멤버였으니까요. 반면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팀의 새로운 중원 사령관으로 떠올랐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는 기본적으로 볼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수비형-공격형 미드필더로 구분되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중앙에서 팀의 공격을 풀어주는 역할로써 동료 선수들 플레이의 기준점을 잡아줘야 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폴 스콜스, 한국 대표팀에서 기성용이 팀 전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그런 위치에 도달했습니다. 동료 중앙 미드필더들과 비교하면 공수에서 착실한 움직임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축구 재능이 볼프스부르크에서는 마가트 감독에 의해 측면에 국한되었지만,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루후카이 감독에 의해 프리롤을 부여 받으며 제주 시절의 경기 감각을 회복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 임대 영입 이후 9경기에서 3승5무1패를 기록했습니다. 구자철 임대 당시 팀 순위는 전체 18개 팀 중에서 17위였지만 지금은 14위(6승12무10패, 승점 30) 뛰어오르며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10위 마인츠-11위 호펜하임(이상 승점 33)과의 승점 차이를 3점으로 좁혔습니다. '구자철 효과'로 재미를 보는 최근 흐름이라면 시즌 막판 중위권 도약이 가능합니다. 구자철 임대 이후 미드필드진에서의 공격 전개에 자신감이 붙은 것이 순위 향상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여기서 구자철의 특별한 기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구자철은 제주 시절이었던 2010년 K리그에서 5골 12도움 기록했습니다. 박현범(수원)과 함께 4-2-3-1의 더블 볼란치를 맡았지만 12도움을 올릴 정도로 공격 옵션들에게 적극적인 골 기회를 밀어줬습니다. 21세의 어린 나이에 도움왕을 달성했으며 그 기세에 힘입어 제주의 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09년 14위에 그쳤던 팀을 2위로 도약 시켰죠.

박경훈 감독의 용병술과 김은중(강원)의 물 오른 골 감각이 한 몫을 했지만, 구자철이 중원에서 일취월장한 경기력을 발휘하면서 제주 돌풍의 화룡정점을 찍었습니다. 반면 구자철이 떠난 2011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32강 탈락, K리그 9위에 머물렀습니다. 특히 지난해 3월 1일 텐진 테다(중국)전 0-1 패배 당시 구자철 공백을 드러냈고 그 여파가 시즌 전체 성적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수적인 성적 하락 원인도 있겠지만, 특출난 중앙 미드필더의 존재감이 이렇게 큽니다.

'제주 구자철', '아우크스부르크 구자철' 공통점은 하위팀에서 공격을 끌어올리는 기질에 강했습니다. 제주 시절에는 어린 선수 답지 않게 넓은 활동량, 부드러운 퍼스트 터치, 빠른 패싱력을 발휘하며 서서히 출전 기회를 늘렸습니다. 빅 클럽 유망주였다면 출중한 개인 실력과 경험까지 쌓인 중앙 미드필더와 경쟁하는 버거운 상황에 놓였겠지만, 하위팀 제주에서 성장한 것이 실전 감각 향상에 도움이 됐습니다. 그 여파가 국가 대표팀 차출로 이어졌죠.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에는 볼프스부르크의 쟁쟁한 미드필더 자원과 경쟁하면서 출전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실전 감각 저하까지 겹치면서 제주 시절의 포스를 재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반면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고정적인 선발 멤버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축구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는 팀 공격의 중심을 잡아줘야 합니다. 특히 어린 선수에게는 출전 시간이 중요합니다. 노련한 선수에 비해서 경험이 부족하니까요. 기성용이 셀틱 이적 초기 경기력 저하에 시달린 것은 실전에 자주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자철도 마찬가지였던 셈입니다. 제주와 아우크스부르크 활약상을 살펴보면, 자신에게 확실한 기회를 제공하는 팀에 강했습니다. 준수한 경기력으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했습니다. 구자철의 아우크스브루크 임대는 분데스리가 정착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고, 아우크스부르크의 구자철 영입은 '신의 한 수'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