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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전의 역사' 최은성의 안타까운 이별

 

한국과 쿠웨이트가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을 놓고 격돌했던 2월 29일. 하프타임때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공식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통산 A매치 71경기 출전하면서 대한축구협회(KFA)가 명시하는 은퇴식 기준(A매치 70경기 이상 출전)을 충족했습니다. 90년대 후반 고종수-이동국-김은중과 더불어 K리그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2006년 독일 월드컵 원정 첫 승의 기쁨을 국민들에게 안겨줬던 안정환의 은퇴식은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선수 시절은 한국 축구 역사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날. 안정환과 더불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멤버로 이름을 알렸던 골키퍼 최은성(41)이 대전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불과 며칠전 대전과의 재계약이 지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팀을 떠날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대전이 창단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 동안 한 팀에서 464경기 출전했던, 대전 축구의 역사이자 K리그의 전설이었던 그가 말입니다. K리그 개막이 불과 얼마 안남은 시점이라 대전과 K리그를 사랑하는 축구팬들에게 충격이 큽니다.

최은성이 대전과 이별한 이유는 구단과의 갈등입니다. 그동안 연봉 협상이 지지부진했지만 그래도 대전은 레전드 예우를 잘해줬어야 합니다. 단순히 돈 문제 하나만으로 판단할 사안은 아닙니다. 최은성은 연봉 협상 과정에서 자신을 홀대했던 구단 관계자와의 대립을 주장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최은성이 은퇴했다고 보도했지만 정확히는 재계약 결렬입니다. K리그 선수 등록 시한이 끝났지만 여름에 재등록이 가능합니다. 전반기에 휴식을 취하면서 후반기에 다시 K리그에 돌아올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전과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됐습니다. '최은성 없는 대전'은 특히 대전팬들에게 상상하기 싫은 현실입니다.

현대 축구에서 원클럽맨의 존재는 매우 귀합니다. 과거에는 한 팀에서 오랫동안 뛰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였으나 이제는 많은 선수들이 돈을 많이 주는 클럽을 선호하게 됐죠. 그래서 선수 영입 및 이적이 빈번하게 됐습니다. 한 팀을 위해 충성했던 선수들이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K리그도 다를 바 없습니다. 특급 선수들의 해외 진출 및 국내 빅 클럽(수원과 서울) 이적이 빈번해졌죠. 구단과의 이해 관계에 의해 트레이드 되거나, 다른 팀에서 많은 출전 횟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소속팀을 떠나는 것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특히 K리그는 선수 동의 없이 트레이드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죠.

'원클럽맨' 최은성이 대전에서 15년 동안 롱런한 것은 K리그에서 의미있는 업적입니다. K리그 단일팀 최다 출전 기록이니까요. 지금까지 K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업적을 세웠던 신태용 현 성남 감독(1992년부터 2004년까지 13년 동안 401경기 출전)보다 한 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시 주제에서 벗어나면, 신태용 감독도 현역 선수 시절이었던 2004시즌 종료 후 구단과의 재계약 결렬로 팀을 떠났습니다. 2005년 3월 은퇴 기자회견을 했지만 선수 생활을 접지 않았습니다. 그해 9월 은퇴하기 전까지 호주 A리그 퀸즐랜드 로어에서 활약했습니다. 성남팬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은퇴식을 치르지 못하고 호주로 떠나게 됐죠. 당시 많은 K리그 팬들이 안타깝게 여겼지만 2012년에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진=저는 최은성의 재계약 결렬을 보면서 신태용 성남 감독을 떠올렸습니다. 신태용 감독의 성남 선수 시절 마지막이 좋지 못했습니다. 구단과의 재계약이 성사되지 못하면서 영광스런 은퇴식을 치르지 못하고 호주로 떠나게 됐죠. (C) 효리사랑]

모든 K리그 레전드가 구단과 안좋게 떠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은성과 신태용의 사례를 보면 K리그는 레전드 예우를 확실하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레전드를 우대하자는 목적 때문만은 아닙니다. K리그의 전설을 꿈꾸는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죠. 그들이 레전드의 영광스러운 작별 또는 롱런을 보면서 'K리그에서 오랫동안 뛰어야겠다', 'K리그를 더욱 사랑하자'는 애착을 느끼도록 말입니다.

K리그는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닙니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 축구 선수들이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고된 훈련을 견디고 있지만, K리그에 진출한 선수보다는 프로팀 선택을 받지 못했거나 그 이전에 중도 포기했던 케이스가 더 많습니다. 매년 시즌이 끝나면 방출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K리그의 한 팀에서 오랫동안 뛰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럴수록 K리그가 레전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최은성이라는 축구 선수의 존재감이 약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얼굴을 자주 내밀었던 선수가 아니었죠. 안정환과 한솥밥을 먹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에 포함되면서 4강 멤버로 몸담았지만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그럼에도 최은성 23인 합류는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까지는 김용대가 대표팀 No.3 골키퍼로 유력했죠. 올림픽대표팀 주전 골키퍼라는 인지도가 한 몫을 했죠.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김용대보다는 최은성을 원했습니다.) 대중들보다는 K리그 축구팬들에게 익숙한 체육인입니다.

과거 대전에는 김은중과 이관우라는 프랜차이즈가 있었습니다. 두 선수가 함께 뛰었던 2003년에는 K리그 6위를 기록하며 대전 축구 역사상 최고의 해를 보냈습니다. 한때는 상위권까지 질주했죠. 당시 대전의 K리그 평균 관중은 1위였습니다. 대전팬들이 가장 싫어했던 수원을 능가하는 기록입니다.(그때는 대전vs수원의 맞대결이 전쟁이었죠. 지금은 대립이 약해졌지만) 하지만 김은중과 이관우는 각자의 사정을 이유로 각각 서울과 수원으로 떠났습니다. 대전을 대표하는 선수는 최은성이 됐습니다.

대전은 최은성이라는 '소중한 역사'를 잃었습니다. 최은성은 대전의 창단멤버로서 15년 동안 줄곧 한 팀에서 활약했던 원클럽맨 입니다. 대전 축구의 역사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것이 아닙니다. 비록 대전은 15년 동안 K리그에 참가하면서 '만년 하위권' 이미지를 떨치지 못했지만 최은성은 오랫동안 No.1 골키퍼를 지켰습니다. 그것도 실력으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팀의 전력 강화를 위해서 주전 멤버를 바꾸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그래도 최은성은 끝까지 생존했습니다. 최은성이 있었기에 대전팬들이 대전 축구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죠. 이 세상에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팀의 레전드니까요.

한편으로는 대전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프로야구에서 영구결번을 받은 선수는 총 10명이며 그 중에 3명(송진우, 장종훈, 정민철)이 한화 소속입니다.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영구결번 선수를 보유했습니다. 영구결번이 거론되었던 구대성이라는 또 하나의 레전드를 빼놓을 수 없죠. 그리고 K리그 대전은 3년 전 최은성 등번호 21번을 21년 동안 결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최은성은 대전을 떠나면서 모 언론을 통해 21년 결번을 없애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대전을 향한 섭섭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